프롭 스타일리스트

패션 직업의 세계

“프롭 스타일리스트는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감각이 필요해요. 다만 흔히 공간 디자인 하면 떠올리는 인테리어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하죠. 사진 프레임이라는 한정된 2차원 공간 안에서 다양한 소품이나 제작물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야 하는데, 이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다음엔 포토그래퍼나 스태프들과의 콘셉트에 관한 조율이 뒤따르겠죠”

프롭 스타일리스트

태초에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할 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 존재 이유를 두었을 테다. 글의 시작부터 천지창조나 조물주 같은 거룩하고도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려는 직업이 바로 패션계에서 천지를 창조하는 조물주 같은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 광고나 화보 촬영, 혹은 패션쇼나 이벤트 등 패션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 사진의 프레임 속이나 행사 무대에서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배치와 배열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조물주 같은 존재, 그런 사람을 우리는 프롭 스타일리스트(prop stylist)라고 부른다.


‘프롭 스타일리스트’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스타일리스트’라는 명칭 앞에 붙어 있는 ‘프롭(prop)’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겠다. 본래 ‘프롭’은 재산이나 부동산, 건물 등의 소유 자산을 의미하는 단어 ‘프로퍼티(properties)’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진이나 영상 촬영 현장에서 ‘프롭’이라 할 때는 세트를 꾸미는 데 사용하는 소도구 혹은 소품을 의미한다. 프롭의 종류는 크게 컵이나 펜처럼 손으로 다루는 프롭, 세트장을 장식하는 세트 프롭, 차량 프롭, 마지막으로 연기자가 몸에 부착하거나 직접 사용하는 아이템인 퍼스널 프롭까지 4종류로 나뉜다. ‘소품’이라는 말 대신 굳이 프롭이란 생소한 영어 단어를 쓴 이유는 프롭이란 단순한 소품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품이나 소도구라 하면 대개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아이템을 세트나 무대에 어울리게 조달해 오거나 존재하는 물건을 설정에 맞게 약간 손을 봐서 사용하는 것에 국한된다. 그러나 프롭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은 그런 소품과 소도구를 준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화보 속 상황에 맞는 소품을 빌리거나 구입해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정해진 콘셉트를 바탕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오브제를 주어진 예산 안에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이 모두 프롭 스타일리스트의 일이다.

패션 화보를 촬영하는 스튜디오는 대개 하얀 바닥과 벽면으로만 구성된 공간이기에 서두에서 프롭 스타일리스트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이라 부른 것은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정해진 촬영 전에 포토그래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비롯한 여러 스태프와 촬영 콘셉트에 관해 교감해야 하므로 작업 팀과의 호흡이나 콘셉트를 읽어내는 감성, 나아가 새로운 콘셉트를 창출해내는 미적 감각도 필수적이다. ‘패션 포토그래퍼’ 칼럼을 유심히 보았던 독자라면 기억하겠지만, 프롭을 이용해 사진 속 상황을 환상적으로 표현해내는 대표적 사진가를 꼽으라면 단연 팀 워커(Tim Walker)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하고 성공적인 사례는 미국의 패션 브랜드 쥬시 꾸뛰르(Juicy Couture)의 광고 시리즈였는데, 이 모든 촬영의 뒤에는 바로 프롭 스타일리스트 사이먼 코스틴(Simon Costin)이 있었다. 눈이 번잡해질 정도로 잔디밭을 가득 메운 알록달록한 소품, 방 한편을 가득 차지할 만큼 커다란 향수병 등 쥬시 꾸뛰르라는 브랜드의 동화적인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각양각색의 소품은 단순한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디자이너’인 사이먼 코스틴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광고 작업을 할 때 팀 워커의 단골 파트너가 사이먼 코스틴이라면 패션 화보에는 앤디 힐먼(Andy Hilman)이 있다. ‘환상의 콤비’라고도 불리는 앤디 힐먼과 팀 워커는 <보그> 미국판, 영국판, 일본판, 이탈리아판 등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가는 장면을 연출해왔다. “팀과의 작업은 매번 고난도예요. 그가 요구하는 프롭을 만들려면 촬영까지 주어진 시간을 모두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로 작업 양이 상당하거든요. 그리고 언제나 빠듯한 예산과도 싸워야 하고요. 이 모든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팀과의 작업은 언제나 성취도가 가장 높은 편이기도 해요. 그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었을 작업을 저도 해나가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그와 인연이 닿아 오래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제게 큰 행운이라 생각해요”라고 프롭 스타일리스트 앤디 힐먼은 팀 워커와의 작업에 대해 기쁘게 이야기했다. 물론 앤디 힐먼이 팀 워커하고만 작업하는 건 아니다. 팀 워커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프롭을 이용하는 포토그래퍼 테리 리처드슨(Terry Richardson)이나 마일스 앨더리지(Miles Alderidge) 등과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cons)이 런던에 운영하는 편집 매장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에서 팀 워커의 사진집 <픽처스Pictures> 발간 기념으로 매장 쇼윈도를 자신이 제작한 프롭으로 꾸미는 등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프롭 스타일리스트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대해 팀 워커와 광고 작업을 해왔던 사이먼 코스틴은 “프롭 스타일리스트는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감각이 필요해요. 다만 흔히 공간 디자인 하면 떠올리는 인테리어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하죠. 사진 프레임이라는 한정된 2차원 공간 안에서 다양한 소품이나 제작물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야 하는데, 이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다음엔 포토그래퍼나 스태프들과의 콘셉트에 관한 조율이 뒤따르겠죠”라고 답했다. 한편 팀 워커와 액서서리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Kate Spade), 디올(Dior)의 미스 디올(Miss Dior) 향수 광고를 작업했던 프롭 스타일리스트 쇼나 히스(Shona Heath)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이 일의 승부처는 바로 상상력인 것 같아요. 누구나 생각하는 프롭을 준비해오고, 어디선가 본 듯한 프롭을 제작하거나 개조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꼭 저를 써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제안된 콘셉트에 맞는 최상의 프롭을 준비하고 최적의 위치에 배치해 모델들과 어우러지게 하는 프롭 스타일리스트에게 상상력은 필수 아닐까 싶다. 닉 나이트(Nick Knight),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 등 쟁쟁한 포토그래퍼와 작업해왔으며 D&G, 버버리, 루이비통 등 유수의 패션 브랜드 광고 작업에 참여해왔고, <에버 애프터Ever After> <내니 맥피Nanny McPhee> 등 영화 세트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진 마이클 하우얼스(Michael Howells)는 프롭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적합한 장소에 적합한 프롭이 매치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그 낮은 확률을 넘어 프레임 안에 완벽하게 세팅되었을 때의 쾌감을 알기에 이 직업이 매력적이다. 마치 큐피드 같은 매치메이커라고나 할까.”

조 벡 Joel Kimbeck
글쓴이 조 벡은 패비언 배런의 광고 기획사 ‘배런&배런’에서 미디어 플래너로 캘빈 클라인, 버버리, 프라다 등 다수의 광고 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마크 도프만 컴퍼니(Mark Dorfman Co.)에서 톰 포드, 라프 시몬스, 시거슨 모리슨 등의 광고 기획에 관여하고 있다. 패션 산업에는 패션 디자이너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며, ‘조 벡의 패션 직업’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패션 관련 직업의 세계를 소개하는 칼럼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391호(2011.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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