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갤러리 TTOS의 시리즈 전시, <지극히 사적인>

TTOS x 정우원 작가, 심장의 울림을 그리다

안국역 근처에 자리한 다이얼로그 갤러리 TTOS에서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전시가 진행 중이다. 첫 번째 전시는 로봇 공학과 예술, 디자인을 넘나드는 정우원 작가와 함께했다. 기존 갤러리에서 볼 수 없던 전시의 형태와 독특한 콘셉트의 작품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전시를 만나보자.

다이얼로그 갤러리 TTOS의 시리즈 전시, <지극히 사적인>

서울 안국역 근처에 새롭게 문을 연 다이얼로그 갤러리 TTOS에서 흥미로운 시리즈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는 개개인의 사적인 요소들을 예술적 언어로 환원하여 존재의 의미,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여정을 선보일 예정이다. 울림, 형태, 시간, 기억, 분위기, 단어 여섯 개의 키워드 아래 두 달 간격으로 진행되며, 지난 2024년 12월 27일부터 시작해 오는 1월 26일에 막을 내릴 첫 번째 전시는 정우원 작가와 함께 ‘울림’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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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OS에서 진행 중인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 중 정우원 작가와 함께한 첫 번째 전시

정우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심장의 울림을 기록하는 신작을 소개했다. 심장은 어떤 신체 기관보다 은유와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생물학적 그래프이자 정서적 기록이기도 하다. 로봇 공학을 전공한 뒤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기계를 통해 관객의 심장의 울림을 데이터화한다. 종이 위에 선과 점으로 울림이 축적되는데 이 기록은 곧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갤러리, 가장 사적인 공간이 되다

본격적인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전시의 형태가 눈길을 끈다.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작가와 마주 보고 차담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작가와의 1 대 1 만남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작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관객은 보다 가깝게, 또 사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그간 갤러리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전시 형태다. 수동적일 수밖에 없던 관객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전시의 한 주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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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OS 공간 내부 모습

이처럼 독특한 전시 형태를 갖게 된 배경에는 정우원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도 자리한다. 그는 “갤러리에서 VIP를 모시고 전시 오프닝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느새 작품은 뒷전이 된 것 같은 순간이 있었어요. 작품과 작가 그리고 갤러리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과연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TTOS와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는 작품과 공간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된 이들에게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도 이제 관객을 선택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울러 TTOS의 김성렵, 제아 두 명의 디렉터는 기존의 갤러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가지지 못한 지점에 대한 갈증을 이 공간과 전시가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프라이빗’한 전시 관람 콘셉트를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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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로그 갤러리를 표방하는 TTOS는 작가, 공간, 작품, 관객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TTOS가 스스로를 다이얼로그 갤러리라고 정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화’라는 뜻을 가진 다이얼로그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서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와의 물리적인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온전히 나와 작품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소통에도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100년을 지속할 예술 작품

정우원 작가는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의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RCA)에서 디자인 프로덕트를 공부하며 영국의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케네스 그랜지(Kenneth Grange)와 네덜란드 출신의 디자이너 토드 분체(Tord Boontje)로부터 작업적 영향을 받았다. 이후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기업 및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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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울림을 기록하는 정우원 작가의 작품 모습

특히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계’와 ‘기술’을 사용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한 고민은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기계나 기술 그 자체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작가의 생각과 표현이 작품이 가진 힘의 중심에 있기를 바랐다고.

나에게 기술은 단순히 ‘도구’일뿐이다.
나는 디지털 기술을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함에 있어
지난 10년간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항상 스스로 질문해 왔다.
나는 아날로그를 더욱 아날로그답게 만들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기를 원했다.

정우원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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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뛰었던 구간을 기록하는 작품은 레코드판의 제작 원리와도 비슷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번 작업은 관객의 심장의 울림을 작가가 직접 개발한 기계가 기록한다. 종이 위에 펜이 입력한 기록물은 마치 레코드판과 비슷한 원리로 제작된다. 심장과 심장이 뛰었던 구간에 맞춰 빈티지 레드 색상의 펜이 시간을 기록한다. 이후 작가가 제작한 광학 장비를 이용해 선의 길이를 읽어내 소리로 전환해 재생하는 식이다. 단, 이번 전시에서는 심장의 울림을 기록하는 것까지만 공개됐다. 작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후 열릴 작가의 또 다른 전시를 찾아가야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우원 작가가 소개한 작품은 약 25분가량 진행된다. 관객은 실시간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25분 동안 온전히 작품만을 바라본다. 어느새 작가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심장의 울림을 기록하는 장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작가가 100% 참여한 작업이지만, 장비가 완성된 이후부터는 작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 또한 한 명의 관객으로 그저 참여할 뿐이죠.”라며 정우원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작품에 반영했을 때야말로 작품과의 진정한 상호 교류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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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공학을 전공한 정우원 작가가 직접 제작한 기계 작품. 작가는 기계가 아니라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와 표현이 힘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작품에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이 작업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작가가 기획한 작업 중 가장 앞단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정우원 작가는 총 4개의 챕터를 나누어 작업의 이야기를 설계했다. 즉, 그는 100년에 이르는 장대한 작품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첫 번째 스토리텔러인 셈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흘러 그가 죽음에 이르더라도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설계와 설정은 “왜 작가 사후에 작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일까?” 그리고 “작가가 죽음에 이르면 작업은 멈춰질 수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작가가 죽으면 작업은 멈춰져야만 하는가?
이 작업은 이것에 대한 나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
작가로서 나의 개입은 작업이 완성되기 까지다.
이 작업이 완성되어 관객에게 보일 때, 나도 관객의 일부로서 존재하게 된다.

정우원 작가의 작가노트 중에서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작가 본인의 시선과 이야기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TTOS와 정우원 작가가 선보인 이번 전시는 일방향적인 예술 작품의 소통 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관객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의식적으로 마주하기를 유도한다.

정우원 작가는 이번 전시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을 재방문이 일어나는가의 여부에 뒀다고 한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 시간을 제공한 이 작업이 다시 한번 관객의 발걸음을 이끈다면, 혹은 그 주변인을 이끈다면 작가가 생각한 작업의 존재와 의도가 잘 전달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지극히 사적인 순간의 매력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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