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전시

한지가헌 기획 전시 <기원(祈願)(起源) : FROM ORIGIN TO WISH>

한지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기원>은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다. 이번 기획전시는 한국의 유산을 단순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기지 않고, 전통 속에 담긴 미적 단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한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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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가헌 기획전시 〈기원(祈願)(起源)) : FROM ORIGIN TO WISH〉 사진 제공 한지가헌

종로구 북촌에 위치한 한지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기원〉은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다.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기획전은, 한국의 유산을 단순히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기지 않고, 전통 속에 담긴 미적 단서를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내어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기원〉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소망과 염원을 의미하는 ‘기원(祈願)’이며, 또 하나는 근원과 시작을 뜻하는 ‘기원(起源)’이다. 전시는 이 두 의미를 동시에 엮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지속 가능한 가치를 널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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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시 내부 전경 © 디자인하우스

이번 전시에는 총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한지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는 양정모, 오상원, 이선이 한국 전통 조명 ‘등(燈)’과 수납함인 ‘합(盒)’을 재해석한 한지 작품을 각 한 점씩, 총 여섯 점 선보인다. 각 작가가 제작한 지등과 지합은 단순히 모던함을 갖춘 오브제들이 아닌, 한국의 전통 벽 ‘담’에 새겨졌던 감각적인 문양들을 작품에 적용시켜 더욱 뜻이 깊다. 여섯 점의 작품은 과거의 상징과 현대적 미감이 공존하는 결과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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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과 담주색, 그리고 스테인리스 소재를 활용해 전시장 내부 디테일을 살렸다 ©디자인하우스

전시장의 벽면에 걸린 한국의 ‘담’ 사진과 작품 디테일 사진은 포토그래퍼 최산이 촬영했다. 초점의 흐림과 선명함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그의 촬영 방식은, 흐릿해져 가는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뚜렷한 미래를 제시한다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작품 디테일 사진은 한국 고유의 색인 담주색을 활용해 전통의 미를 살렸으며, 한지에 인쇄해 한지 특유의 질감과 미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참여 작가 3인과 전시 작품

양정모 작가

전통 한지의 특성과 제작 기법을 치밀하게 연구하며, 이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은 경복궁 자경전(보물 제 809호) 꽃담에 새겨진 ‘만자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대나무 틀과 흑지를 활용한 지등은 전통 문양의 조화로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부드러운 한지의 질감과 문양의 도회적 감각을 함께 담아냈다.

오상원 작가

오상원은 한지를 섞고 짓이겨 형태를 만드는 전통 기법인 지호(紙糊)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작품의 포인트가 된 문양은 낙산사(사적 제495호) 꽃담에 새겨진 ‘일월성신日月星辰’ 문양에서 비롯되었다. 금빛으로 변주된 태양, 달, 별의 문양을 입힌 지합으로 전통적 상징을 현대적 미감으로 풀어냈다.

이선 작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텍스타일 작가 이선은 전통 공예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끊임없는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버려진 한지를 재활용해 패딩처럼 독특한 구조를 가진 지등을 제작하고, 닥 섬유의 질감을 살려 정교하게 완성된 지합을 선보였다. 작품은 방화수류정(보물 제1709호) 꽃담에 새겨진 십자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 문양은 지등과 지합의 디자인 포인트로 활용되었다.


Interview

이동훈 <기원> 전시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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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시 내부 전경 © 디자인하우스

등(燈)과 합(盒), 전시 오브제의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과거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라는 말은 이번 전시의 기획을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천 년 넘게 이어진 한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창호, 바구니, 그릇 등 생활 속 곳곳에 녹아 있던 가치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삶과 정서를 담아온 존재였음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등과 합은 선조들의 소망과 염원을 담은 상징적인 기물이에요. 빛을 품어 세상을 밝히는 등, 소중한 것을 담아내는 합 또한 한지를 소재로 만들어졌었고, 단순한 생활 용도를 넘어 아름다움과 선조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세분의 작가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세 작가님 모두 한지를 다루던 선조들의 전통 제작법을 기반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응용해 작업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방식과 기법은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하다고 느껴졌죠. 이것이 이번 전시 작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 한국의 지등과 지합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육면체로 통일해 만들어진 이유가 있을까요?

지등과 지합을 육면체로 만든 이유는 한국의 고유한 비례인 금강비를 기반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전통적 비례를 작품에 적용하며 단순한 형태적 아름다움을 넘어 우리 고유의 미학적 철학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 전시공간과 작품이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어떤 점을 포인트로 삼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이 무채색 위주로 제작된 만큼, 한국 전통의 색감을 다른 요소에 담아내기 위해 신경을 썼습니다. 전시대는 한국 전통의 옥색을 표현하려 했고, 한지에 프린트된 작품들의 디테일 컷은 담주색 조명을 활용해 촬영했죠. 이렇게 한국 고유의 미를 담은 색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전시의 깊이를 더하고자 했습니다.

또, 전시 공간은 모든 작품과 벽면이 한지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작품 캡션에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금속성을 추가해 현대적 감각을 더했어요. 벽면에 걸린 작품 디테일 컷은 벽과 거리를 두어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며 공간에 경쾌함을 더했습니다.


메종 오브제 앙코르 전시

〈시간의 결, 한지: Skin of Time, HA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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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결, 한지: Skin of Time, HANJI〉 사진 제공 한지가헌

한지가헌 지하 1층에서는 지난 9월 메종 오브제(Masion & Object)에서 한지를 주제로 전시되었던 작가 5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의 결, 한지: Skin of Time, HANJI〉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이 전시는 한지를 공통 소재로 활용해 예술적 가능성과 다양성을 탐구했다.

전시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지를 표현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소개된다.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부터, 작가 한기주, 김선형, 남궁환, 배우이자 작가인 조셉 리까지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지를 통해 다섯 작가가 구현한 각기 다른 감각과 미학을 조명하며, 한지가 가진 재료로서의 풍부한 잠재력과 매력을 깊이 탐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니, 방문한다면 지하에서 진행 중인 앙코르 전시도 꼭 둘러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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