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 경계를 넘는 방식, 〈미래공예〉전

지금, 공예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2025 공예주간 선정 기획 전시 <미래공예>는 전통과 기술, 감각과 개념을 넘나들며 동시대 공예의 실험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KCDF갤러리와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오는 5월 25일까지 진행 중인 <미래공예> 전시를 소개한다.

공예가 경계를 넘는 방식, 〈미래공예〉전

2025 공예주간을 맞아 공예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5 공예 주간 선정 전시인 <미래공예(Future Crafts: Beyond the Present)>(이하 <미래공예>)가 바로 그것이다. 2025년 5월 16일부터 오는 5월 25일까지 KCDF갤러리 전관과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동시 개최되며, 공예의 동시대적 실천과 그 경계를 주제로 삼는다.

총 14인(팀)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전통적인 기술과 재료를 넘어, 새로운 감각·개념·방식을 통해 공예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특히 두 전시 공간은 각기 다른 연출과 메시지를 통해 공예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2013년부터 공예와 디자인이 맞닿는 지점에서 사회적, 역사적, 지역적 리서치를 바탕으로 기획과 제작, 비평적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공예·디자인 컬렉티브 컨트리뷰터스(김은학, 이정은, 한톨)가 기획했다.

전시 <미래공예>는 공예를 전통적인 매체나 기능 중심의 작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실험과 실천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시대 창작의 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전시는 공예가 단순한 오브제 제작을 넘어 개념적·사회적·감각적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재료와 감각으로 풀어낸 공예의 새로운 모습

KCDF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전시 1부는 공예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일을 넘어, 어떻게 이야기와 질문을 담는 창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흙, 섬유, 금속, 그래픽 등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공예 재료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하나하나가 단지 ‘아름다운 오브제’로 끝나지 않고, 개인의 기억, 지역의 역사, 사회적 맥락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시와 작품을 둘러보기에 앞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바로 ‘캡션’을 바라보는 방식을 확장한 시도다. 일반적으로 전시에서는 작품 옆에 짧은 설명 문구가 부착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타이포백(Typobag)과 유사한 재질을 활용해 길게 늘어뜨려진 형태의 확장형 캡션이 작품 옆에 설치되어 있다. 특히 이 재질은 쉽게 찢어지지 않고, 구겨졌다가도 금방 형태를 회복하는 특유의 탄성과 질감을 지니고 있어, 내용뿐 아니라 물성 면에서도 공예적인 세심함이 느껴진다. 캡션이 단순한 정보지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공간 속에 배치된 하나의 오브제처럼 기능하는 셈이다.

내용 구성에서도 기존의 방식과 차별점이 있다. 이 캡션들은 ‘도자’, ‘섬유’, ‘금속’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 구분이 아니라, ‘기억’, ‘몸’, ‘기술과 감각’, ‘무형 유산의 재해석’처럼 작가가 작업에서 집중한 키워드와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공예를 단순한 손기술이나 재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창작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전시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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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DF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미래공예(Future Crafts: Beyond the Present)>전 1부 전경

한편, KCDF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기억, 공동체, 감각, 기술 같은 주제를 공예의 언어로 풀어낸다. 김진은 흙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의 기억과 민담을 조형화한 시리즈 작품 <감자설화>(2022-2024)를 선보인다.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흙에 주목하며, 공예가 관계와 시간을 품는 방식에 집중한다. <감자 설화>는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광명시 재개발 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땅을 둘러싼 기억과 서사를 흙으로 기록하는 창작 설화로 확장된다. 특히 시리즈 중 <사랑, 감자, 노동> (2022)은 뜨개 모임에서 나눠 먹던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등을 슬립 캐스팅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민트색과 그 형태 속에는 공동체가 나눈 감각과 돌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면, 조완희 작가는 금속과 빛, 반사를 활용해 감각과 인식의 경계를 탐색한다. 작품 <Projection of Illusion>(2024)은 몸을 유동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순간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 작업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몸이 어떻게 감지되고, 어떤 방식으로 형체를 갖게 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조형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2024년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위너로 선정된 바 있는 문보리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직조와 센서, 알고리즘을 결합한 인터랙티브 텍스타일 작품으로, 손의 감각과 반복적인 움직임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 직물에 새겼다. 작가는 직조가 단순한 손작업을 넘어서, 데이터와 소리, 빛을 연결하는 감각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우원 작가는 로봇공학과 예술을 함께 공부한 배경을 바탕으로, 기술과 조형을 결합한 상상력 넘치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 <If It Looks Real, It Is>(2025)는 백제 장인이 상상 속 환수를 금속과 문양으로 봉인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조형적 상상을 펼친다. 향과 금속, 구조물로 구성된 설치는 관람자에게 고대 신화를 디지털 감각으로 체험하는 듯한 몰입을 제공한다.

조상현 디자이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감각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Hi-rezo>(2021) 시리즈는 도예가 이영호의 백자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도자 표면의 아주 미세한 질감이나 작업 중에 들리는 소리, 남겨진 흔적들을 오브제로 표현한 작품이다. 공예가 남기는 작은 여운이나 잔잔한 느낌 같은 것들에 집중하며, 쉽게 보이지 않는 감각을 눈앞에 펼쳐 보이듯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재료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형과 개념을 탐구하는 이재준 작가는 <Protruding Function>(2025)을 선보였다. 평면 타일 위에 솟아오른 원기둥 형태를 통해 기능이 어떻게 생기고 인식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같은 구조에 서로 다른 재료를 적용해 재료에 따라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험한다. 특히 SLM 금속 프린팅, 레진, 실리콘, 설탕 등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를 사용해 형태는 같지만 감각은 다른 조형을 만들어낸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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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DF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미래공예(Future Crafts: Beyond the Present)> 전 1부 전경

3층으로 올라서면, 공예를 감각 너머의 언어와 구조로 확장하는 실험이 이어진다. 그래픽 디자이너 정사록은 공예 전문지 <공예문화>에 등장한 ‘미래’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수집해 시각화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과거부터 오늘까지 공예 안에서 ‘미래’가 어떻게 말해졌는지를 추적했는데 텍스트의 흐름과 반복을 통해 공예 담론의 풍경을 다시 읽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벽면을 따라 펼쳐진 타이포그래피는 전시 공간을 리듬감 있는 언어의 장으로 바꾸며, 읽기라는 감각을 통해 관람을 유도한다.

한편, 컨트리뷰터스는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로, 전시 준비 과정에서 쌓인 자료들을 하나의 아카이브로 구성해 선보인다. 설문지, 회의록, 문헌, 이미지 등 다양한 리서치 자료는 전시장에 마련된 ‘텍스트 키오스크’를 통해 소개되며, 이 키오스크는 관람객에게 전시와 연결된 책이나 읽을거리를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공예를 단지 만들어진 결과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생각과 대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인 셈이다.

사물에서 이야기로, 공예가 바뀌는 순간들

이어지는 전시의 두 번째 장은 문화역서울284 RTO 공간에서 펼쳐진다. 전시장 특유의 거칠고 비워진 공간감 위로, 공예를 둘러싼 시간과 서사, 기억의 결이 보다 직관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펼쳐진다. 앞선 1부에서 공예의 감각적 확장을 실험했다면, 이곳에서는 사물과 장면, 조형물로 구현된 공예적 서사가 관람자의 몸과 시선 사이에 직접 개입하며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낸다. 이곳에서는 김대욱, 채범석, 노경택, 김서희, 이선, 언리얼스튜디오, 문보리 등 동시대 공예의 서사적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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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진행 중인 <미래공예(Future Crafts: Beyond the Present)> 전 2부 전경

김대욱은 조각과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정체성과 젠더 표현,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다.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규범의 틀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제한되고 침묵된 목소리를 오브제로 드러내며, 문화적 경계를 넘는 서사를 제안한다. 작품 <NORI mask>(2022)는 작가가 어린 시절 인형 대신 가지고 놀던 노리개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긴 머리처럼 느껴졌던 노리개는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이어주는 도구였고, 지금은 가면, 토템, 로프 등으로 재해석된 오브제들이 되어 돌아왔다.

한편, 채범석은 기술과 조형, 상상을 결합해 근미래적 미감과 형태 언어를 구축하는 디자이너이자 아트 오브제 작가다.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이후, 산업 기반의 기능적 조형에서 출발해 점차 기술에서 파생된 형태의 은유와 조합에 주목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왔다. 시리즈 작<DOMINION PROTOTYPE VASE>(2025)는 전통적인 공예 오브제인 화병의 기능을 해체하고, 보조적 존재였던 꽃과 구조물의 관계를 전복하는 조형 실험이다. 기능보다 형상 자체가 중심이 되는 그의 작품은 기술과 사고, 감각이 교차하는 실험적 공예의 가능성을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 제안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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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택 작가의 작품 모습

전시장 안쪽에는 노경택 작가와 언리얼스튜디오(지요한·진서연)의 작업이 나란히 설치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예의 경계를 탐구한다. 노경택 작가는 <마림바 시퀀스>(2023), <셀렘을 위한 가구>(2021), <박쥐란을 위한 가구>(2021), <플란타리움>(2021), <스피커>(2023)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식물, 인간, 기계가 함께 움직이고 반응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식물의 전기신호로 연주되는 악기, 스스로 빛과 물을 조절하는 식물 가구,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소리 등은 비인간 생명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공예가 감각과 생명의 관계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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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얼스튜디오는 프롭 과정에서 공예적 태도를 느낀다고 말한다.

한편, 언리얼스튜디오는 제품을 찍는 상업 사진에서 출발해, 이번에는 사진에서 제품을 지워버리는 실험을 보여준다. 시리즈 <목적 없는 목적>(2025)은 조명, 배경, 스타일링은 그대로 두고 중심이었던 오브제만 제거한 이미지들로, 사라진 피사체 대신 남겨진 장면의 구조와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된다. 특히 이들은 프롭을 준비하고 장면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질감, 조도, 배치 하나하나를 조율해나가는 감각에서 공예적 태도를 느낀다고 말한다. 사진이 꼭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공예를 감각과 시간, 이미지로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암스테르담과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선 작가는 점차 사라져 가는 종이 공예를 주제로 한 작업 <Cut-Out Legacy>(2023-2025)를 선보였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전통 공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기억, 정체성, 문화 교류의 교차점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보이는 것’과 ‘기억되는 것’ 사이의 공예적 대화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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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진행 중인 <미래공예(Future Crafts: Beyond the Present)> 전 2부 전경

도쿄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서희는 패션을 둘러싼 제도와 관습을 해체하고, 입는 행위에 내재된 시간과 기억을 탐색하는 작가이자 연구자다. 세히쿄(SEHIKYO)라는 이름으로 전개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손뜨개, 바느질, 소재의 재구성 등 공예적 감각이 깃든 방식으로 옷을 다시 만드는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옷을 입고, 푸르고, 다시 엮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입는다’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질문으로 바꿔냈다. 몸 위에서 실시간으로 옷이 구성되고 변화하는 이 과정을 통해, 공예를 재료나 기술이 아닌, 관계와 시간, 움직임의 언어로 풀어내는 점이 인상 깊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전시 스크리닝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만든 영상 작업과 더불어, 오픈콜을 통해 선별된 작품들도 함께 상영된다. 공예를 단지 만들어진 오브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장면, 리듬과 감정으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스크리닝은 KCDF갤러리와 문화역서울284 두 공간 모두에서 상영되니,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찬찬히 감상해 보길 권한다. 전시장 안에서 미처 다 담기지 않았던 공예의 숨결과 감각들이, 조용히 흐르는 장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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