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서비스센터 전수민: 디자인 너머, 브랜드의 본질을 설계하다

전수민 서비스센터 디렉터

브랜드의 본질과 감도, 공간의 분위기까지 고민하는 서비스센터. 전수민 디렉터가 이끄는 이곳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직무를 넘어 브랜드와 사람을 연결한다. 디자인 너머, 브랜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서비스센터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Creator+] 서비스센터 전수민: 디자인 너머, 브랜드의 본질을 설계하다

editor’s note

디자인 스튜디오 ‘서비스센터(Service Center)’를 운영하는 전수민 디렉터는 브랜드의 감도를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브랜드의 정서와 경험을 함께 구축하는 디렉터로 일하고 있죠. 컴포즈커피, 베르크, 버거샵, 속초QC 등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로컬의 스몰 브랜드까지 단단한 팬덤을 지닌 브랜드들 뒤에는 그의 손길이 스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도’란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나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공간의 분위기, 손님을 맞이하는 말투, 응대의 온도, 심지어 브랜드가 말을 아끼는 방식까지, 사람이 브랜드를 마주할 때 느끼는 전반적인 정서와 태도의 결을 말하죠. 서비스센터는 그런 감도를 함께 설계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이름부터가 선언 같았죠. 디자인을 ‘해주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가 외롭지 않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곁에 머무는 곳. 전수민 디렉터는 디자인을 기술보다 감정에 가까운 행위로 바라보며, 브랜드가 어떻게 존재하고 기억될 것인지를 끝까지 함께 고민합니다.

디자인플러스는 앞서 2021년 디자인프레스의 <Oh! 크리에이터> 시리즈를 통해 전수민 디렉터를 만난 바 있는데요. 당시 서비스센터는 막 3년 차에 접어든 신생 스튜디오였고,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우리는 정말 디자이너가 맞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단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넓은 결정을 고민하는 중이라고요. 브랜드를 살아 있는 생명처럼 대하는 디렉터, 전수민이 말하는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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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서비스센터의 전수민 디렉터

PLUS 1. 서비스센터, 브랜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하다

디자인프레스의 <Oh! 크리에이터> 인터뷰 이후 4년 만입니다. 그사이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었겠지만, 특히 최근에 공개된 두 작업이 눈에 띄더군요. 속초의 안경원 QC 리브랜딩과 <파묘>, <명량>의 영화 음악감독으로 알려진 김태성 감독님의 주거 공간 설계 말이죠. 프로젝트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어떤 계기로 시작된 작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속초에 있는 QC 안경원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여러 인연을 통해 다다른 작업이에요. 고성에 있는 카페 테시트(TACIT)의 대표님께서 서비스센터와는 일면식도 없고 일해본 적도 없으셨지만, 꼭 한번 함께 일해보고 싶은 팀이라고 하시며 속초 QC 안경원 대표님께 저희를 추천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흥미로운 게 카페 테시트의 작업을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The First Penguin)’ 출신 멤버들이 진행했고, 제가 서비스센터로 독립하기 전에 다니던 직장인 더퍼스트펭귄이었거든요. 여러 인연 덕분에 프로젝트까지 이르게 된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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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 글라스 리브랜딩 프로젝트 모습 (사진. 김동휘)

비록 일면식은 없었지만, 첫 미팅 후에 바로 작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QC 안경원은 기존에 지역에서 고객과 쌓아온 시간이 있는 브랜드라, 새롭게 다 바꾸기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괜히 갑자기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면, 지역 단골들이 멀어질 수 있거든요.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이지만 접근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특히 브랜드가 너무 앞서 나가지 않게 조율하는 일이 핵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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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성 영화 음악감독 주거 프로젝트 (사진. 전수만)

반면 김태성 감독님의 주거 공간 프로젝트는 결이 완전히 달랐죠. 브랜드나 상업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를 다루는 작업이었으니까요. 감독님께서 사내 이사님께 주거와 작업 공간을 맡길 만한 팀을 추천해달라고 하셨고, 조건은 명확했어요. 젊고, 디자인이 과시적이지 않은 팀일 것. 그렇게 저희가 후보에 올랐고, 처음 미팅한 팀도 서비스센터였죠. 처음 스튜디오에 방문하셨을 때, 공간의 결이 좋다며 바로 진행을 결정하셨죠.

속초 QC 안경원 대표님도, 김태성 감독님도 단번에 서비스센터를 결정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인데요. 클라이언트가 매료된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공통으로 말씀해 주신 건 “결이 좋았다”는 거였어요. QC 안경원 대표님은 처음 미팅하고 나서 “여기랑 꼭 같이 일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고, 감독님도 저희 스튜디오에 들어왔을 때 공간의 분위기에서 일단 신뢰가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꼭 무슨 스펙이나 포트폴리오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희가 “이걸 해드릴게요”보다 “이걸 정말 하셔야 할까요?”라는 식의 태도를 가질 때, 그게 신뢰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뭔가를 잘해주는 팀이라기보다, 같이 고민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디자인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결정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는 일에 더 가까워요. 그 감도를 믿고 찾아와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태성 감독님의 주거 공간 프로젝트는 서비스센터의 첫 번째 주거 프로젝트인 만큼 더욱 신경을 썼을 듯해요. 반면 QC 안경원 리브랜딩은 서비스센터가 꾸준히 해 온 일의 연장선이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QC 프로젝트는 말하자면 ‘익숙한 언어’였어요. 다만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게 더 중요했던 작업이었죠.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랫동안 다녀온 지역 손님들이 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는데요. 고급스러운 유리잔 대신 200ml 생수 페트병을 내는 것도 그 때문이었죠.

반대로 김태성 감독님의 주거 공간 프로젝트는 오히려 얼마나 깊이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브랜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를 다루는 작업이었으니까요.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고,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갔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본인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상태를 설계하는 일이었죠. ‘세상에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내면’을 다루는 일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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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성 영화 음악감독 주거 프로젝트 (사진. 전수만)

그래서인지 작업 과정 중에 감독님과의 대화도 기억에 오래 남아요. 평소 제가 해외 셀럽의 집을 덕질하는 걸 좋아해서, 감독님께 류이치 사카모토의 하와이 별장 사진을 보여드린 적이 있었어요. 주방 안에 놓인 캔버스 백 같은 디테일까지 찾아보는 스타일인데, 그런 이야기를 흥미로워하셨어요. 그 이후엔 “자기 라이프스타일을 한번 디자인해 보라”라면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추천도 해달라고 하셨죠. 그런 대화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톤을 만들어준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서비스센터가 정의하는 ‘브랜딩’의 개념도 초창기와는 사뭇 달라졌겠네요? 디렉터님은 오늘날 ‘브랜딩’이 어떤 일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브랜딩을 단순히 보이는 것만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경험을 주는지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공기, 음악, 응대의 톤 같은 사소한 요소들까지도 브랜드의 일부라고 보고요. 그래서 늘 “이게 이 브랜드의 진짜 말투일까?”, “이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이 맞을까?”를 질문하면서 작업해요.

“서비스센터는 브랜딩을 단순히 시각 언어를 설계하는 일로 보지 않아요. 브랜드가 어떻게 보일지 뿐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경험을 주며, 어떻게 관계 맺는지까지를 설계의 범위로 보고 있죠. 결국 브랜드는 인식되는 것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 각인되는 측면도 있는 셈이죠.”

결국 브랜딩은 브랜드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비스센터는 그 모든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혼자 고민하고 외로워지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브랜드가 작동하는 방식, 관계 맺는 태도까지 고민하며,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그 시간까지가 서비스센터가 생각하는 지금의 ‘브랜딩’이에요.

PLUS 2. 디자인 키드, 디렉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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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플러스와 인터뷰 중인 서비스센터 전수민 디렉터

다양한 브랜드의 브랜딩을 설계하고 계시는데요. ‘브랜딩을 잘한다’라는 건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건가요? 더불어 브랜딩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도 있는 걸까 궁금하더군요.

글쎄요. 브랜딩 감각이 타고나는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만 호기심은 어릴 적에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언제부터였는지 딱 기억나진 않지만, 어릴 적부터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이 늘 컸거든요. 특히 아버지 일로 가족이 LA에 가게 되면서 살았던 4년이라는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했어요. 그때 폴로, 휴고보스, 리바이스 같은 브랜드들을 정말 많이 외웠고, 로고를 따라 그리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게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 거예요. 그 이후 LA에 있는 세컨드핸드 숍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물건을 구경하고, 가게마다의 분위기나 물건 배치를 관찰하고,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도 주의 깊게 듣곤 했어요. 쇼핑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도와 정서를 알아가는 게 좋았거든요.

LA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브랜드를 관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특히 인천에서 서울 명동에 자리한 유명 백화점들까지, 그 먼 거리를 그렇게 자주 다니셨다고요.

한국에 와서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홈스쿨링을 했었거든요. 사실 말만 홈스쿨링이지 그냥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주 5일은 인천에서 서울로 나와 명동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나 롯데백화점 본점 같은 곳을 다녔어요. 어린 고등학생이었지만요. (웃음) 물건을 보러 들어가서 가게의 분위기, 물건 배치, 직원 응대 같은 걸 관찰하는 걸 정말 좋아했던 거죠.  돈도 없으면서 백화점에 혼자 들어가는 게 좀 당돌했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게 재밌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저한테는 디자인과 브랜딩 감각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그렇게 브랜드를 자꾸 보다 보니 디자인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거네요? 첫 커리어가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이유도 그런 경험에서 기인하겠군요.

그렇죠. 백화점에 다니면서 브랜드를 보고, 공간의 감도나 정서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종종 교회에서 포스터나 배너를 만들어야 할 때 제가 맡아서 하곤 했거든요. 포토샵도 못 다뤄서 파워포인트로 만들었지만 그게 저한테는 디자인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죠. 그때는 그 일이 디자인인 줄도 몰랐어요. 그러다 2008년 10월호 월간<디자인>을 보는데 영국의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다룬 기사를 읽고, “내가 교회에서 하던 작업이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 안에 있었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그러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거죠.

일찍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셨어요.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닐 텐데요.

빠르게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시간은 조금 ‘어른 흉내’를 내는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이 역할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느꼈어요. 실제로 클라이언트가 제 나이를 듣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도 그때 쌓은 작은 프로젝트 경험들이 나중에 큰 프로젝트를 할 때 큰 힘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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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스트펭귄에서의 경험 덕분에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전수민 디렉터

이후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에 들어가면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더퍼스트펭귄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그래픽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감했어요. 이전에는 로고나 인쇄물처럼 ‘단위’로만 디자인을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그 결과물이 공간 안에서 동선, 구조, 빛, 질감 같은 요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매일 경험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디자인이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까?’를 상상하게 되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걸 넘어서 사람의 감각과 경험에 다가가는 일이고, 결국 관계와 감각을 설계하는 일이더라고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경험한 더퍼스트펭귄으로부터 독립하신 계기가 있어요?

더퍼스트펭귄에서 일하면서 디자인을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언젠가는 제 방식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이곳에선 그래픽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일 경험하며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야 하고 제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독립해서 저만의 색깔로 디자인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지금의 ‘서비스센터’가 탄생했어요. 서비스센터라는 이름도 그런 마음을 담아서 붙였어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스튜디오, 누군가 고민을 안고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의 관계를 다시 연결해 주는 스튜디오가 되길 바랐어요.

PLUS 3. 서비스센터가 말하는 브랜드 비즈니스, 그리고 파트너십

2018년에 ‘서비스센터’를 오픈하고 가장 먼저 한 일도 기억나세요?

퇴사한 다음 날 바로 웹사이트 디자이너와 미팅을 잡고 서비스센터 웹사이트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도쿄를 매달 일주일씩 다녀왔는데, 그냥 여행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다녔어요. 카페, 편집숍, 브랜드 매장, 갤러리, 건축물 등을 살펴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매일매일을 보냈습니다.

도쿄를 콕 집어 선택한 이유도 있을까요?

가까운 곳 중에서 도쿄만큼 영감을 주는 도시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와 공간, 연출, 분위기까지 감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말하고 느껴지게 만드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퇴직금으로 웹사이트 제작을 하고, 남은 돈으로 도쿄에 다녀오자고 마음먹었죠.

앞서 고등학생 때 인천에서 서울 명동의 백화점까지 주 5일을 다닌 것의 확장된 버전인 셈이네요. 브랜드를 상대하는 비즈니스 감각은 이때 키워진 걸까요?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브랜드를 보는 게 재미있어서 명동 백화점을 다녔던 거라면, 도쿄에서는 공간의 연출과 브랜드의 말투까지 관찰하려고 의식적으로 움직였어요. 단순히 보는 걸 넘어서 브랜드가 공간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계속 관찰하면서, 이게 결국 비즈니스 감각의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도쿄에서 다닌 매장들은 단순히 진열과 판매만이 아니라 공간, 응대, 감도까지 통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브랜드가 어떻게 사람들의 경험을 설계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어요.

이쯤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서비스센터가 전개하는 비즈니스는 무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특히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보면 단순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보다는 오히려 컨설팅에 가까워 보였거든요.

서비스센터는 단순히 디자인을 ‘해주는 곳’은 아니에요. 브랜드의 감각과 경험, 사람의 감정을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곳이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도 단순히 작업을 맡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옆에서 같이 고민해 주고 함께 결정해 주는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야구로 치면 타격코치나 투수코치와 같은 셈이에요. 물론, 어떤 면에서는 컨설팅 같아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이 일을 컨설팅이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컨설팅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하고 정답을 주는 역할이라면, 저희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길을 찾는 파트너 같은 역할을 하고 싶거든요.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관계가 이어지면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관계가 서비스센터의 비즈니스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단순한 비즈니스 이상으로 이어가고 계신 것 같은데요. 너무 깊어지면 오히려 일하기 힘들거나 조율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땐 어떻게 균형을 맞추세요?

사실 관계가 너무 깊어지면 오히려 객관적으로 필요한 말을 못 하게 될 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꼭 말씀드려요. “결정은 본인이 하셔야 하고, 저희는 그저 방향을 함께 고민해 드릴 뿐”이라고요. 관계는 깊게 맺되, 어느 지점에서는 한 발짝 떨어진 위치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렇게 해야 진짜 도움이 되는 조력자가 될 수 있거든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간적인 관계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일할 때는 중심을 잡으려고 합니다.

말씀처럼 클라이언트에게 단순한 프로젝트를 넘어서 진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세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아요. 이건 그렇게 해야지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에 마음이 가는 성격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브랜드의 성공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를 맡은 사람의 삶과 고민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물론 감정적으로 너무 깊이 개입하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그 사람이 잘될 때 느끼는 기쁨도 커요. 그래서 오히려 그게 저를 계속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그렇게 되더라고요.

“브랜드를 단순한 ‘일거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의 삶과 고민을 함께 이해하고 설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조력자라고 설정한 만큼 클라이언트에게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 듯싶어요.

클라이언트에게 기대하는 건 결국 ‘실행력’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좋은 방향을 제시해도, 그걸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 초기 미팅 때부터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유심히 보려고 해요. 방향만 제시하고 끝나는 컨설턴트가 아니라, 함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으니까요. 클라이언트의 실행력이 있어야 브랜드도 진짜로 변화할 수 있거든요.

클라이언트의 실행력은 어떻게 살펴보세요?

클라이언트의 실행력은 첫 미팅에서부터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 같아요. 말투나 태도,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보면 그 브랜드가 진짜로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디자인만 바꾸고 싶어 하는지를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가 제안한 방향에 대한 반응도 중요합니다. 단순히 “좋다”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우리 내부에서는 이런 부분이 힘들겠다”든지, 구체적으로 고민을 이어가는 클라이언트는 확실히 실행력이 있죠. 단적으로는 이메일 답장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응답이 빠르고 구체적인 클라이언트는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반대로 답장이 다소 느리거나 소극적인 경우는 실행까지 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관찰하며 파악합니다.

PLUS 4. 어쩌면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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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센터 전수민 디렉터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브랜드의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크고 작은 다양한 브랜드의 조력자로서 서비스센터가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도 궁금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 스튜디오이지만 저희는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요. 물론 결과물로서의 디자인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의 본질이에요.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끝까지 지켜야 하거든요. 디자인은 그 본질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예쁘게 만들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브랜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라”고 조언하죠.

“브랜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낼 때, 디자인은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도구로써 감각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게 돼요.”

말씀하신 본질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제가 브랜드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종종 드는 예시가 F&B 브랜드예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식당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인테리어나 비주얼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결국은 그 브랜드의 음식 맛이나 서비스, 분위기, 그리고 진정성에 끌리는 거예요. 아무리 멋진 공간이어도 맛이 없거나 서비스가 불편하면 다시 가지 않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팅 더 테이블(Setting the Table)>을 쓴 대니 메이어(Danny Meyer)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그룹인 유니온 스퀘어 호스피탈리티 그룹(Union Square Hospitality Group)의 창립자이자 CEO로, 뛰어난 서비스 철학을 실천한 사람이에요. 그는 좋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고, 손님이 브랜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저 역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F&B 브랜드나 다른 브랜드에서도 결국 본질은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고 관계를 맺느냐’라고 생각해요. 그게 브랜드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핵심인 셈이죠.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브랜딩의 중요성은 대중들도 공감하는 지점에 충분히 도달했다고 봐요. 소비자가 느끼는 감도도 높아졌고요. 이처럼 상향평준화를 이룬 상황에서 차별화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요즘은 소비자들은 브랜드들이 멋 부림을 해도 결국 다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괜히 새로운 시도를 하려다 리브랜딩에만 매달리거나, 일관성 없이 바꾸는 건 오히려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결국 중요한 건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 처음에 어떤 가치를 전하려 했는지를 다시 돌아보는 거예요. 뭔가를 더하는 대신, 덜어내고 진짜 중요한 본질을 지켜내는 브랜드가 돋보이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끝까지 붙잡고 가는 게 진짜 차별화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 일은 디자인만 잘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한편으로는 창작자로서의 자질도 분명 필요하잖아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아울러 좋은 디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불안을 읽어내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설득할지까지 고민해야 하니까요.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이해하고 설득하는 언어인 거죠. 그리고 저는 창의성이라는 건 단순한 재능이나 순간의 번뜩임이 아니라 아카이빙의 힘에서 온다고 믿는 편인데요. 경험과 관찰, 기록해 둔 것들이 쌓여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지곤 하거든요. 어제 본 것, 오늘 느낀 것, 내일 접할 것들이 쌓여서 결국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래서 좋은 디자이너는 사람을 이해하면서도,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하고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PLUS LIST

전수민 디렉터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 3

-열화당 책박물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열화당 책박물관은 조용하고 단정한 밀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공간이다. 특별한 구조나 시각적 장치 없이도 머물고 싶은 리듬감을 깊게 남기며, 절제와 여백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채운다. 이곳은 공간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공간을 완성한다. 언제 방문해도 정혜경 학예연구실장이 늘 같은 자리에 있다고 한다. 최근 전수민 디렉터는 미국에서 온 클라이언트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는데, 계획에 없던 방문에도 불구하고 정 학예연구실장은 기꺼이 안내를 해주었다고.

-홀리호크 하우스

전수민 디렉터는 최근 LA 출장 중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걸작으로 꼽히는 홀리호크 하우스(Hollyhock House)를 방문해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곳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라이트의 초기 주택 작품으로, 캘리포니아 기후와 풍경을 반영해 설계된 곳이다. 전통적인 주거 공간과는 다른, 중정과 분수, 개방적인 공간 구성으로 유명하며,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전수민 디렉터는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순히 ‘좋다’는 감각을 넘어선 전율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특히 그 초현실적인 몰입감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라이트가 생애를 걸고 쌓아온 디테일과 집착의 산물이 만들어낸 공간은 마치 살아 있는 조각처럼 느껴졌고, 빛과 그림자가 머무는 시간, 바람이 흐르는 방향, 방과 방 사이의 침묵까지 계산된 설계가 특히 돋보였다고 전한다.

-해운대 동백섬 해안산책로

부산 출장 시 전수민 디렉터는 늘 동백섬 해안산책로를 찾는다. 과거 클라이언트에서 이제는 지인이 된 버거샵과 로우앤스윗의 김동욱 대표와 함께 볼락회를 곁들인 소주 한 잔, 그리고 웨스틴조선호텔 오킴스 바에서 기네스 생맥주 한 잔을 즐긴 뒤, 밤 12시 무렵 바를 나와 해안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를 걷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든다고. 때로는 유난히 큰 달빛이 바다를 비추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모습은 일상의 리듬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TIPPING POINT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상대하는 서비스센터의 디렉터가 된 그가 말하는 성장의 모멘텀은 무엇일까? 전수민 디렉터는 더퍼스트펭귄에서 일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당시 그는 공간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브랜드가 단지 로고나 인쇄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다고. 가게의 분위기, 음악, 응대 방식처럼 디테일해 보이는 요소들이 오히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다. 직접 맡은 프로젝트들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으면서, 그는 디자이너보다 브랜드 디렉터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픽이 아닌 태도, 디자인이 아닌 관계. 전수민 디렉터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브랜드 디렉터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그건 책으로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퇴사 후 그는 퇴직금을 들여 웹사이트를 만들고, 매달 도쿄를 오가며 브랜드를 공부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일상의 아이쇼핑과 관찰, 진열 방식의 기록, 말투 있는 공간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서비스센터를 만든 비공식 커리큘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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