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문승지의 A to Z: 블루보틀 공간부터 삼성전자의 밀라노 전시까지

문승지 팀바이럴스·하바구든 디렉터

문승지 디자이너는 때로는 작가로, 때로는 팀바이럴스의 디렉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넘나든다. 단정한 블루보틀, 레트로한 프릳츠, 미래지향적인 삼성전자, 전혀 다른 성격의 브랜드가 모두 그의 파트너다. 리서치에서 출발해 감각과 구조, 서사로 이어지는 디자인. 문승지 디자이너와 팀바이럴스의 설계 방식을 대표 프로젝트로 들여다본다.

[Creator+] 문승지의 A to Z: 블루보틀 공간부터 삼성전자의 밀라노 전시까지

문승지 디자이너는 작가이자 제작자이며, 팀바이럴스의 공동대표로서 공간, 제품, 전시, 브랜딩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놓일 맥락을 섬세히 읽어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이후 구조와 감각, 서사를 설계하며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어 나가죠. 팀바이럴스의 가구 브랜드 하바구든부터 코스, 블루보틀, 프릳츠, 삼성전자, 미나 페르호넨에 이르기까지, 문승지 디자이너와 팀바이럴스가 10여 년간 쌓아 올린 대표 프로젝트들을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프로젝트 A to Z

BLUE BOTTLE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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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은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시작된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팀바이럴스는 2021년 블루보틀의 비수도권 첫 번째 매장인 블루보틀 제주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23년 블루보틀 연남 프로젝트까지, 2개 지점의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담당해 지역의 문화와 리듬을 반영한 공간을 완성했다.

블루보틀 제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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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제주시 구좌 업무 범위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블루보틀 제주가 위치한 송당리는 돌담이 둘러싼 고요하고 한적한 마을로, 오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팀바이럴스는 제주도의 상징적인 요소인 ‘정낭’과 ‘퐁낭’에서 영감 받아 블루보틀 제주를 디자인했다. 공간 전체와 가구에 이러한 구조적 요소와 디테일이 적용되었으며, 친환경 건축자재와 제주 바다에서 수집한 폐공병을 가공 후 배합해 공간과 가구의 메인 소재로 활용했다.

블루보틀 연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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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은 번화한 홍대와는 달리, 아직은 상업화의 밀도가 낮고 오래된 주택과 감도 높은 로컬 상점이 골목마다 교차하는 매력적인 동네다. 팀바이럴스는 블루보틀 연남의 위치적 특성에 맞춰 서울 골목길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을 디자인했다. 블루보틀 연남 프로젝트에서 골목 평상을 모티프로 디자인된 체어와 스툴은 이후 하바구든의 ‘YN 체어’와 ‘YN 스툴’로 이어졌다. 골목 계단과 집 앞 평상, 담벼락의 가스배관 등 연남동 일대의 과거와 현재에서 얻은 인상은 가구와 천장 구조에도 반영되었으며, 내부의 타일 패턴은 세로선과 가로선의 밀도와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도한다.

COS X Seungji Mun – Four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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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 Musical chair 1
왼쪽에서 두 번째가 문승지 디자이너의 대표작인 ‘포 브라더스’. 한 장의 합판에서 버려지는 나무 없이 4개의 의자가 만들어진다.

2012년 패션 브랜드 코스(COS)와의 윈도우 디스플레이 협업은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시된 ‘포 브라더스(For Brothers)’는 문승지 디자이너가 처음 선보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철학을 담은 프로젝트였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작업은, 하나의 합판으로 네 가지 형태의 의자를 제작하며 지속가능한 제작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후 다양한 버전의 포 브라더스 체어가 디자인되었고, 현재는 의자를 포함해 조명, 테이블 등 단일 소재로 공간 전체를 구성할 수 있는 ‘브라더스 컬렉션’으로 확장되었다.

Fritz Coffee Seo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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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빈티지’를 키워드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공간을 제안해온 프릳츠는 성산점에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전 국민의 명소였던 성산일출봉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소환했다. 팀바이럴스는 프릳츠 성산점의 내부 전반을 맡아 어린 시절 집에서 보던 테이블 다리, 마을회관의 단체용 의자, 접견실의 진녹색 가죽 소파 등 익숙한 요소들을 통해 1980년대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을 구현했다. 청기와와 벽돌은 당시 시대의 상징이자 지금의 성산점을 상징하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내부는 그 시절 벽면과 바닥의 금속 디테일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가구들로 채워졌다.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펼쳐지는 프릳츠 성산점은 과거 ‘백록회관’이라는 횟집이 자리했던 곳에 들어섰다. 한때 지역 모임의 중심지였던 이 장소에 ‘한국적인 커피와 빵을 만드는 기술자의 공동체’라는 프릳츠의 정체성이 더해지며 현재 새로운 공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HAVAGOO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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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바이럴스가 만든 가구 브랜드. 오랫동안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3년여의 준비 끝에, 2025년 5월 정식 론칭됐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에게 전하는 인사 “Have a good one”에서 착안한 브랜드명처럼, 하바구든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 안의 중심이 되는 가구보다는 일상 속 ‘good one’을 오랫동안 고민해 불필요한 요소를 덜고 기본에 충실한, 편안한 ‘저자극 디자인’을 지향한다. 오후 4시, 햇살이 비췄을 때 텍스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방향을 고민하는 식이다. 하바구든은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까지 팀바이럴스가 모두 총괄해 그들의 취향이 온전히 담긴 브랜드다.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함께하기를 바란다.

“하바구든은 새롭게 만든 단어지만 그 안에 이처럼 좋은 의미를 담아 전개해 나간다면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브랜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브랜드를 만들며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에요. 우리는 보통 아침에 멋지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며 하루를 시작하죠. 반대로 생각해봤어요. 만약 하루의 시작이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조금 더 설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브랜드가 되기 위해 팀 모두가 노력하고 있어요.”

In’s 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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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제주 대정 업무 범위 인테리어 디자인, 브랜딩

제주 고유의 생활 방식과 문화적 정수를 담아내기 위해 제주 토박이들이 뜻을 모았다. 2020년에 문을 연 인스밀은 보리로 만든 음료와 함께 전시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제주 출신의 문승지 디자이너가 공간 구성과 기획을 이끌며, 제주의 전통과 유산을 토착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동시대적 디자인과 조화롭게 결합했다. 기존 건물의 구조와 벽을 최대한 보존하고 큰 유리창을 설치해 벽을 대신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제주 야자수 풍경이 인상적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물건들도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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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문승지 디자이너는 지금 가장 잘 알려진 제주 출신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제주라는 지역은 그의 디자인 감각의 토대이자 무의식적 훈련의 배경이다. 바다와 산을 곁에 두고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시시각각 마주하며 길러진 감각이 그의 디자인 세계에 내밀하게 스며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일과 일상 속에서 여전히 제주를 곁에 두고 있다.

Local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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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부산시 기장군 업무 범위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팀바이럴스는 지역과 장소가 지닌 고유한 감각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데 능하다. 호텔 엠비언스(Hotel Ambiance) 역시 그들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 프로젝트다. 이름과 달리 호텔 엠비언스는 부산 기장군에 자리한 비스트로다. ‘호텔’은 유형과 무형의 콘텐츠를 담아내는 플랫폼으로서의 공간을, ‘엠비언스’는 감각적이고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소리를 상징한다. 이름에서부터 공간을 바라보는 팀바이럴스의 시선이 드러난다. 이곳에서는 테이블 위를 오가는 대화,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그 주변을 감싸는 자연과 음식, 모두가 공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다.

Minä Perhonen X Seungji Mun – Bird and 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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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마리메꼬’라 불리는 패션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이 2024년 9월부터 2025년 3월까지 DDP에서 열렸다. 지난 30년간의 텍스타일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4명의 한국 공예 작가와 협업한 의자, 가구, 조각보, 모시발 등이 함께 전시되었다. 문승지 디자이너는 이 전시에 ‘버드 앤 네스트(Bird and Nest)’라는 이름의 라운지체어, 모빌, 오브제 작업으로 참여했다. 미나 페르호넨의 미나가와 아키라 디렉터의 도쿄 작업실에서 함께 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나눈 디자인 회의를 통해 완성되었으며, 문승지 디자이너는 전시 이후 교류까지 포함해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회상한다. 작품은 문승지 디자이너의 기존 작업인 ‘포브라더스’의 제로 웨이스트 방식을 계승했다. 금속판의 기성 규격 내에서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해 한 장의 금속판으로 라운지체어 한 점과 아홉 쌍의 모빌 및 오브제를 제작했다. 금속과 패브릭의 대비되는 물성을 통해 상호 보완적인 아름다움을 전했다.

Pop-up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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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범위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클라이언트 Richemont

클래쉬 드 까르띠에 살롱(Clash de Cartier Salon)은 2021년 한국의 전통 정원과 유럽의 살롱이 지닌 기능적 공통점에서 출발해 두 세계의 이중성을 ‘Clash Universe’로 재해석한 팝업 공간이다. 문승지 디자이너는 해당 팝업 공간에서 클래쉬 드 까르띠에 라인을 위한 가구 및 공간 디자인에 참여했다. 공간은 차경을 중심 개념으로, 외부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분위기로 내부를 구성했다. 가구 디자인은 한국 전통 가구인 호족반의 구조에서 착안해 현대적인 라운지체어로 재해석했으며, 평상과 주춧돌, 서까래, 보 등 전통 건축 요소들은 살롱의 구조적 모티브로 적극 활용했다.

Samsung Electro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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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 2023. 4 클라이언트 삼성 장소 이탈리아, 밀라노 업무 범위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문승지 디자이너와 팀바이럴스는 삼성전자 비스포크 라인의 기획 초기부터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왔다. 특히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해 삼성전자와 함께 브랜드의 철학을 공간적으로 풀어냈다. 2023년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에서 열린 전시 〈We Breathe〉는 사용자가 쉬고 있는 동안 가전 역시 조용히 숨 쉬며 에너지를 저장하고, 지구 환경을 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시에 담았다. 2024년 유로쿠치나(EuroCucina)에서는 〈Symphonic Kitchen〉이라는 전시를 통해 비스포크 AI 가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방의 풍경을 제안했다. 서로 다른 악기가 조화를 이루듯 다양한 가전이 하나의 ‘심포니’를 이루며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방 밸런스를 만들어간다는 이야기다. 팀바이럴스는 여유로운 동선과 몰입을 유도하는 가구 배치, 쿠킹쇼 연출이 가능한 구조 등을 통해 기술이 스며든 일상의 장면을 연출했다.

TEAMVIR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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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바이럴스는 문승지, 정석병, 정창기 세 명의 공동대표가 이끄는 디자인 회사다. 프로젝트 단위로 시작된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후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동 운영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약 열두 명 규모, 총 네 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덕트 디자인 팀은 제품 디자인과 생산 전반을, 스페이스 팀은 공간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은 팀바이럴스와 하바구든의 콘텐츠, 캠페인,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브랜드 매니징 팀은 쇼룸 운영부터 세일즈, 클라이언트 응대, 사후 관리까지 폭넓게 맡고 있다. 세 대표는 각기 가구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매니지먼트를 중심으로 각 팀을 이끌고 있으며, 팀 간 유기적인 협업 체계를 바탕으로 디자인 전반을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공간, 가구, 전시,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초기에는 철저한 리서치를 통해 스토리를 설계하고, 전 과정에 걸친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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