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주목할 4개의 국가관

건축의 경계를 묻다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가 2025년 5월 10일부터 11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Intelligens. Natural. Artificial. Collective.’를 주제로,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일본 국가관이 건축의 전환 가능성을 실험하며 주목받고 있다.

202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주목할 4개의 국가관

기후 위기와 기술 진화, 사회적 전환이 맞물린 시대.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건축은 변화하는 세계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올해 비엔날레는 예술 감독 카를로 라티(Carlo Ratti)의 기획 아래, 지난 5월 10일부터 11월 23일까지 ‘Intelligens. Natural. Artificial. Collective.’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 건축의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다. 전 세계 건축가, 과학자, 예술가 등 750여 명이 참여한 300여 개 프로젝트는 도시, 생태, 사회, 기술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펼쳐낸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일본의 국가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주목 받고 있다. 네 개의 국가관을 통해 지금, 건축이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감각하고 응답하는지를 들여다보자.


모두를 위한 스포츠 바, 네덜란드관

올해 네덜란드관은 익숙한 스포츠 바를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의 큐레이터 아만다 피나티(Amanda Pinatih)의 기획과 사회 디자이너 가브리엘 폰타나(Gabriel Fontana)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이번 전시는, 건축이 사회적 규범과 정체성, 소속감의 문제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netherlands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pavilion 2025 dezeen 2364 col 2
SIDELINED: A Space to Rethink Togetherness. Foto: Cristiano Corte.
Sidelined Dutch Pavilion Biennale 2025 photo Cristiano Corte 03 9b34fe82b3
SIDELINED: A Space to Rethink Togetherness. Foto: Cristiano Corte.

전시 제목 <SIDELINED>는 대결과 소외의 상징이기도 한 ‘스포츠 바’를, 모두가 환영받는 열린 공간으로 전환했다. 기존 ‘스포츠 바’가 일방적인 응원과 경쟁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포용성과 유동성을 중심에 둔 구조로 이를 새롭게 해석한다. 육각형 형태의 3방향 경기장, 경계를 흐리는 좌석 배치, 팀을 나누지 않는 유니폼과 머플러, 바닥에 투사된 영상 등 공간 전반은 고정된 질서가 아닌 움직임과 관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다. 각 오브제와 동선은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가’를 묻는 하나의 건축적 장치로 기능하는 셈이다.

netherlands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pavilion 2025 dezeen 2364 col 7

덕분에 관객은 이 안에서 단순히 전시를 ‘보는’ 것을 넘어, 규칙이 불분명한 경기장에 들어온 듯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때 건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감, 관계의 흐름을 조율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폰타나는 이 전시를 통해 공간을 하나의 사회적 실험실로 제시하며,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공존의 방식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짓지 않고 더하기, 덴마크관

2025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덴마크관은 새로운 건축을 ‘짓지 않음’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덴마크관 전시 <Build of Site>는 건축사무소 피엘만 아키텍츠(pihlmann architects)의 소렌 피엘만(Søren Pihlmann)이 큐레이터를 맡았다. 노후화된 덴마크관을 전시와 공사 현장이 겹쳐진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다.

01 build of site danish pavilion biennale architettura 2025 photo hampus berndtson low
©Hampus Berndtson
04b build of site danish pavilion biennale architettura 2025 photo hampus berndtson low
©Hampus Berndtson

덴마크관이 선보인 전시의 핵심은 새로운 자원을 투입하기보다,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 자재를 활용해 새로운 구조물을 구축하는 방식에 있다. 바닥, 경사로, 테이블, 벤치 등은 폐기될 뻔한 콘크리트, 석재, 목재, 점토, 심지어 어업 부산물인 젤라틴까지 활용해 제작했다.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자재의 원래 기능을 재정의하고 공간의 감각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설계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관객은 다져진 흙길, 거친 콘크리트 바닥, 보존된 타일 사이를 지나며 ‘공사 중’인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건축이 어떻게 물질과 장소에 반응하고 응답하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재사용과 감각, 협업을 통해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살아 있는 실험실이 된 덴마크관을 이번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돌봄의 건축을 말하다, 핀란드관

2025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핀란드관은 건축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돌봄의 과정’으로 다시 정의한다. 전시 제목은 <파빌리온 – 돌봄의 건축(The Pavilion – Architecture of Stewardship)>. 건축 스튜디오 보칼(Vokal)의 엘라 카이라(Ella Kaira)와 마티 옌캘러(Matti Jänkälä)가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영상 작가 머를 카프(Merle Karp)와 사운드 디자이너 유시 헤르츠(Jussi Hertz)와의 협업을 통해 몰입형 설치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20250711 073804
20250711 073815
The Pavilion – Architecture of Stewardship in the Pavilion of Finland. Curated by Ella Kaira and Matti Jänkälä. Commissioned by Archinfo, the Information Centre for Finnish Architecture. Audiovisual art by Merle Karp and Jussi Hertz. Graphic design by Samuli Saarinen. Exhibition design by Antti Auvinen. Photos: Ugo Carmeni / Archinfo

핀란드 자르디니에 위치한 핀란드관은 1956년 알바 알토와 엘리사 알토가 설계한 목조건물이다. 원래 임시 구조물이었으나 지금은 보호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나무 쓰러짐 사고로 인해 해체 후 복원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핀란드관 자체의 유지·복원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전시로 전환시키며 건축의 중심 서사를 재구성한다.

흔히 ‘알바 알토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사실상 수많은 기술자와 정비인력, 큐레이터, 청소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돌봄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다. 전시는 이들 ‘보이지 않던 협업자들’을 건축의 공동 창작자로 조명한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감정적 노동을 강조한다.

resize 1 5 Finland photo Gianni Talamini 2012
Construction workers from Biohouse reinstalling the restored white triangles on the pavilion’s facade during the 2012 restoration. Photo: Gianni Talamini

세 차례에 걸친 복원 과정과 건축의 보이지 않는 손길들을 영상과 음향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알토의 도면을 넘어 공간을 구성하고 지켜온 다양한 존재들과 마주하도록 한다. 건축은 더 이상 건설의 서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핀란드관은 ‘돌봄’이라는 느리고 지속적인 실천이야말로, 건축을 진정 살아 있게 만드는 힘임을 보여준다.


생성형 AI와의 대화 실험, 일본관

2025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일본관은 인간과 생성형 AI 사이에 존재하는 ‘마(間)’의 공간에 주목한다. 아오키 준(Jun Aoki)이 큐레이터를 맡은 전시 <IN-BETWEEN – 생성형 AI와 함께하는 미래>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건축이 어떻게 새로운 주체성과 상호작용을 설계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일본 전통 개념인 ‘마(間)’를 중심에 둔다. ‘마’는 단순한 틈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AI 사이에 존재하는 응답의 공간, 즉 창조가 움트는 여백이다. 큐레이터 아오키 준은 생성형 AI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감각과 판단은 어떻게 조율되고 보존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관 건물 자체가 실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1956년 요시자카 다카마사(Takamasa Yoshizaka)가 설계한 일본 파빌리온은 르코르뷔지에에게 사사한 건축가의 대표작으로 일본 근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상징적인 건축물 일부가 생성형 AI 알고리즘을 통해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참여 건축가 후지쿠라 아사코 + 오오무라 타카히로, SUNAKI(기우치 토시키츠 + 스나야마 타이치)는 이러한 공간 개념을 시각적이면서도 물리적인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이들은 AI의 오류와 창의, 인간의 직관과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며,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전시는 생성형 AI에 대한 맹목적 신뢰도 비판적 거부도 아닌, 그 사이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건축이 대화와 긴장의 매개로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이 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