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있는 의외성을 만들어 가는 방법, 스튜디오 터 ②

스튜디오 터(STUDIO TUH) 인터뷰 ②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익숙한 사물에 의외성이라는 조미료를 더해 새로운 방식으로 기획을 요리하는 그들과 협업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작업을 대하는 태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위트 있는 의외성을 만들어 가는 방법, 스튜디오 터 ②

OPEN YY, 뉴발란스, 산산기어 등 요즘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부터 칸예(YE)와 같은 해외 아티스트까지. 가장 핫한 팝업이나 작업물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스튜디오 터(STUDIO TUH)’. 컴퓨터 기판과 웨어러블한 확대경으로 인비테이션을 만들고, 무한히 확장되는 큐브를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 굿즈로 구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익숙한 사물에 의외성이라는 조미료를 더해 새로운 방식으로 기획을 요리하는 그들과 협업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작업을 대하는 태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요즘 가장 핫한 작업물들 뒤에 있는 이름. 스튜디오 터 ①


—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정다빈 저희는 이전에 패션 브랜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파프)에서 함께 일했어요. 저는 그 안에서 인하우스 팀인 ‘돌파 스튜디오’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었고, 준우 님은 같은 팀원으로 함께했어요.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해결해 나가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잘 맞는다는 걸 느꼈어요. 독립 시기가 1년 정도 차이 났는데 따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됐죠. 사실 좋아하는 성향이나 디자인은 많이 다르지만 그게 저희의 강점 같아요. 저는 순수미술 안에서도 ‘융합예술’을 전공해서 장르의 경계를 정하지 않고 개념 기반의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김준우 저는 조소과 출신이라 입체적인 작업들이 익숙하고, 다빈 님은 디자인 실무 경험이 풍부해서 디자인 전반을 아우르는 뷰가 있거든요. 서로 다른 배경과 시선이 만나 입체와 디자인이 합쳐져서 더 흥미롭고 다양한 아웃풋이 나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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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KILO를 위한 오브제. 이외에도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및 프로덕션을 맡았다.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진행한 첫 협업이다. ©STUDIO TUH

—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떤 관점으로 프로젝트 기획이나 작업을 시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다빈 작업에 들어갈 때 저는 먼저 상대가 던져준 재료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어떤 키워드를 받았다면, 그 단어가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편이에요.

김준우 저는 이미지 자체의 미학적 완성도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이미지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죠. 그래서 가끔은 이미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기획이나 내러티브적인 부분을 놓칠 때가 있어요. 반대로 다빈 님은 이미지뿐 아니라 그 안의 내러티브와 기획 흐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두 관점이 서로 잘 보완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해요.

정다빈 하나에 몰입한 사람은 오히려 전체를 못 볼 수 있는데 옆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언하고 도와주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아요. ‘예쁘다’는 것과 대중에게 ‘매력적’인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준우님이 ‘예쁘게’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굉장히 잘 잡아주세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사처럼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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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alance U509 발매를 위한 팝업 공간. ©STUDIO T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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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위한 스케치. ©STUDIO TUH

— 조금 진부한 질문이겠지만, 주로 영감은 어디서 많이 받으시나요?

김준우 저는 일상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들과 주말에 어디서 경험했던 일, 예전에 봤던 영화, 인스타그램에서 무의식적으로 봐온 이미지들이요. 그런 것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인비테이션 작업처럼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일부러라도 머릿속에 많이 쌓이게끔 다양한 경험을 하려는 편이에요. 영감이란걸 정확히 ‘여기서 얻는다’가 아니라, 일상의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오는 것 같아요.

정다빈 저는 채집하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이디어가 워낙 휘발성이 강해서 떠오른 생각도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거든요. 다행히 요즘은 모두에게 핸드폰이라는 아주 좋은 채집 도구가 하나씩 있잖아요. 그래서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의식적으로 기록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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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스튜디오 터 인스타그램

채집이 좋은 이유는 예를 들어 ‘스튜디오 터’라는 이름도 버스 정류장 근처에 적혀 있던 ‘쉼터’라는 단어를 보고 떠올렸어요. 이런 식으로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나 감정, 단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잘 아카이브해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이든 메모든,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두면 나중에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작업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거든요. 그리고 영단어는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편이라 의미도 좋고 말했을 때 매력적인 단어는 따로 모아두죠.

김준우, 정다빈 물론 저희도 작업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레퍼런스 사이트도 뒤지고 디깅을 많이해요. 그런데 모두가 좋다고 했던 작업물을 살펴보면 사적인 경험이나 감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을 기록해두고 ‘왜 좋았지?’, ‘왜 예쁘게 느껴졌지?’ 하고 분석해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끌어오고, 그걸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레퍼런스를 수집하게 돼요. 그래서 저희는 웃기다던지, 약간은 이상하다던지, 그런 사진들을 보고 서로 이야기도 진짜 많이하는 것 같아요.(웃음)

— 건축적인 요소, 해체주의적인 요소, 스틸 같은 차가운 물성의 소재 사용 등 스튜디오 터 만의 색은 명확한 것 같아요.

김준우, 정다빈 사실 저희는 그런 걸 의도하거나 계획적으로 작업을 한 적은 없는데,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모든 프로젝트를 굉장히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완벽하게 준비해서 진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물론 서로 엄청 까다롭게 물고 늘어지거나 집착할 때도 있지만, 막히는 상황 자체를 좀 경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도 “일단 둘 다 해보자. 나중에 바꾸면 되지”라는 식으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태도가 어쩌면 스튜디오 터만의 중요한 방식이자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스타일, 소재에 갇히지 않는 것 같아요. ‘MIND THE GAP’ 프로젝트처럼 저희는 어떤 스타일에도, 작업물에도 열려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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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이거나 차가운 물성의 소재를 많이 사용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아래와 같은 캐릭터 디자인도 할 만큼 어떤 소재, 스타일에 갇히지 않는다. ©STUDIO TUH

— 오픈한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굉장히 많은 브랜드, 그리고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많이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비결이나 노하우가 있는 걸까요?

정다빈 스튜디오 터는 단순히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게 아니라 제작물의 퀄리티와 기획의 짜임새,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반영한 이야기까지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스튜디오 터에 먼저 연락을 주는 이유는 ‘인스타그램에서 유효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대 인스타 마케팅 시대’라고 할 만큼, 시각적 매력과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반응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경험을 통해 훈련되어 왔어요.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스튜디오 계정에는 오피셜한 결과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세스 이미지나 비공식적인 소스도 업로드하고 있어요. 이 역시 스튜디오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방식이고, 함께 협업하는 브랜드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 많은 협업 요청이 있을텐데,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김준우 저희는 기본적으로 외주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일정만 가능하다면 웬만한 프로젝트는 모두 수락하려고 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욕심이 나는 일들은, 저희가 보기에도 ‘가능성이 높고 브랜드와의 관계가 확장될 수 있겠다’ 싶은 경우죠. 예를 들어 오브제를 시작으로 인비테이션이나 다른 파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브랜드라면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돼요. 실제로 산산기어와의 협업이 그런 케이스였고요. 하나의 작업이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정다빈 덧붙이자면 ‘이미지를 만든다’라는 본질적인 일을 하고 있고, 그 이미지들이 쌓이는 것이 곧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단발성 프로젝트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쌓이지 않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함께 쌓아갈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의 협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브랜드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가며 브랜드가 얻고 싶은 ‘탄탄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길 바라고 있어요. 일정만 맞는다면 그런 방향성을 함께할 수 있는 팀인지도 기준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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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와는 스튜디오의 초기부터 좋은 ‘파트너’로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SANSANGEAR x PUMA 모스트로Mostro 발매를 기념해 만든 오브제의 제작과정.©STUDIO TUH

— SNS에 꾸준히 업로드 중인 플레이리스트 ‘TUH FM’은 무엇인가요? 기획의도와 큐레이터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김준우 ‘TUH FM’은 스튜디오 터가 운영하는 플레이리스트 공유 콘텐츠에요. 작업자들이 자유롭게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플랫폼’이 됐으면 하는 스튜디오 터의 지향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외주 포트폴리오 외에도 창작자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작업 중 자주 듣는 ‘노동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죠. 매달 한 명의 큐레이터를 초대해서 실제 작업 중 듣는 음악을 그대로 플레이리스트로 공유합니다. 큐레이터는 패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PD 등 다양한 창작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장르나 스타일에 제한 없이 각자의 테이스트를 자유롭게 담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요한 건 완성도보다는 자유롭게 참여하고 꾸준히 아카이빙되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정다빈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어요. 내가 있는 공간을 다른 사람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간편한 매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작업할 때 내가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누군가가 음악에 질렸을 때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리스트로 대신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작업자가 있다면?

김준우 저는 사실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다 보니 디자이너 분들을 많이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업자를 꼽자면 애니메이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입니다. 감독님은 <카우보이 비밥>과 <사무라이 참프루> 같은 작품을 연출했는데, 두 작품 모두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섞어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 내는게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사무라이 참프루>는 일본 사무라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누자베스(Nujabes)를 음악 감독으로 두고 힙합 음악을 베이스로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시대를 초월한 세련됨을 갖고 있다고 느낄 만큼 볼 때마다 질리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작업할 때 지향하는 방향성과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좋아하고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정다빈 때에 따라 다른데요. 요즘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나 스튜디오를 꼽자면, 일본의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입니다. 프로젝트마다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요. 아까 ‘영감을 어디서 얻냐’는 질문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넨도는 감정이나 이상향을 뻔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 그것만을 위해 디자인한 것처럼 느껴져요. 감정이나 개념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시각화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스튜디오 터가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김준우, 정다빈 장기적으로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터 같은 플랫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직은 그 과정에 있는 단계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방향을 구체화해 나가는 중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에서 단순히 요청을 수용하는 입장이 아니라, 터의 시각과 기준을 바탕으로 더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취향과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더 몰입도 높은 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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