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임태희 대표
여지의 미학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는 여운이 남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어지는 공간을 추구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공간이 쏟아져 나온다. 감도 높은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디자인 수준도 날로 높아간다. 인스타그램 같은 가상 공간은 역설적으로 현실 공간을 더 초현실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정교하게 잘 짠 각본 같은 공간. 우리의 미감을 충족시키는 데 손색이 없다. 그런데 문득 그 물 샐 틈 없는 공간에 숨이 막힌다. 그럴 때면 임태희의 공간으로 숨어들고 싶다. 그가 공간에 남겨둔 여지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가케코미데라•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에도 시대에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기혼 여성을 숨겨준 사찰.

교토라는 태도

일본 마에바시의 미나 페르호넨 매장을 디자인했다고 들었어요. 지난해 DDP에서 전시를 열며 화제가 된 브랜드이죠.
최근 매장이 문을 열었어요. 사실 미나 페르호넨 매장 설계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나 페르호넨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안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이었어요. 부모님 선물을 사려고 들른 백화점에서 미나 페르호넨의 가방을 봤죠. 매력적인 제품이었지만 유학생에게는 허들이 꽤 높았답니다. 그때 ‘언젠가 이런 가방을 주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리라’고 다짐했어요.(웃음) 제게 이 브랜드가 ‘어른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2019년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미나 페르호넨 전시가 열렸을 때 오로지 그 전시를 보려고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때 미나 페르호넨 가방도 샀죠.
정신적 성인식을 치른 셈이네요.(웃음)
맞아요. 그래서 DDP 전시 준비차 미나 페르호넨의 창립자 미나가와 아키라를 만났을 때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순회전이었지만 한국 전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작가 컬래버레이션 섹션이 있었습니다. 협업 작가로 참여 제안을 받은 것도 영광인데 첫 만남에서 매장 설계까지 제안받았습니다.

일본에도 쟁쟁한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많은데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를 선택한 게 흥미롭군요. 익히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이고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니 프로젝트가 수월하지 않았나요?
낮은 언어의 문턱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인정해요. 그래도 부담이 적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 디자인 생태계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잘 알기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잠시 보류하고 싶군요. 스튜디오의 첫 해외 진출 프로젝트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에서 오랜 기간 학업을 했습니다. 유학 생활이 현재 실무에 영향을 주었나요?
일본보다 교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군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교토는 이미 역사성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태도가 도심 곳곳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박사과정 연구 주제로 근대건축의 보존과 리노베이션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교토라는 도시가 흥미로운 점은 근대화 이전과 근대화를 이룬 에도 시대의 흔적이 현대와 병존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교토를 경주에 비하는데 저는 아주 적확한 비교는 아니라고 봐요. 경주가 과거의 모습을 박제하고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교토에선 보존을 넘어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실제로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이도 쉽게 볼 수 있고요. 결국 옛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교토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네요.

여지라는 가능성


그런 태도가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의 공간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트렌드를 좇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고 하기보다 검박하고 온화한 디자인 언어가 느껴집니다.
사실 한편으론 조바심도 나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임팩트 있고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인데 그런 부분이 우리에게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디자인한 공간에 대한 일련의 평가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첫눈에 빠지는 사랑도 좋지만 여운이 남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어지는 연애가 더 좋지 않나요? 공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잉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잘 성장하도록 돕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흥미로운 철학이지만 다소 관념적으로 들리는군요. 구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어떻게 발현하나요?
사실 작업 대부분에서 그런 요소가 묻어나요. 예컨대 오설록 티뮤지엄 프로젝트에선 한쪽 벽면에 소규모 전시를 할 수 있게끔 게시판 형태의 전시 존을 만들었어요. 여기를 디자인할 때 10년 뒤 이곳이 어떤 ‘인생’을 살지 고민했죠. 지속 가능한 쓰임을 위해선 여러 가능성을 담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석을 활용해 그 안의 요소를 쉽게 탈부착할 수 있도록 하고, 각 칸을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예전에 한 주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땐 의도적으로 거실에 경량화한 가구를 제작해 배치했어요. 아파트에선 보통 소파와 TV 위치가 결정되면 이후로 큰 변주를 주기 어렵잖아요. 이곳에선 그보다 더 다양한 활용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어요. 여지를 함께 설계했다고 해야 할까요?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의 공간에서 미완의 미학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군요.
맞습니다. 코디를 예로 들면 상대에게 “이 셔츠엔 이 바지가 제일 잘 어울려요”라고 정해주는 게 아니라 “이 셔츠는 그 자체로도 좋지만 겨울에 긴소매 티셔츠를 레이어드해서 착장할 수 있고, 미팅에 나갈 땐 포멀하지만 구깃구깃한 상태로 입어도 나름 멋스러워요”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일부러 100% 완벽한 상태를 설계하지 않아요. 여지를 남겨둘 때 또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일 여유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네요. 보통 디자이너들이 사용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결과물을 사용하기를 바라잖아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은 좋지만 의도와 너무 다르게 공간을 쓰는 경우는 없었나요?
다행히 아직 도가 지나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국의 클라이언트도 그런 면에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나 봐요. 디자이너의 의도를 이해하고 정도를 지키는 것이죠. 그리고 느슨함을 추구하는 게 방임을 뜻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디자인 과정에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죠.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만큼 클라이언트 혹은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좀 더 섬세하게 관찰하고, 클라이언트와 더 긴밀히 상의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용자가 공간을 좀 편하게 썼으면 해요. 그것이 공간의 생명력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믿고요.




전통과 자연은 영원한 스승


화제를 바꿔보죠. 2022 예올×샤넬 프로젝트에서는 박수영 장인과 협업해 금박의 현대적 변용을 탐구했습니다.
전시 연출이 아닌 기획자로 참여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금박이라는 주제도 제가 선택했습니다. 금박을 선택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장르이기 때문이었어요. 요즘 공예가 화두이고 젊은 공예가들의 활약도 대단한데, 그렇다고 모든 분야가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현대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분야 위주로 활성화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금박을 선택하고 후회도 많았어요.(웃음) 금박이 그렇게 깊고 어려운 공예인지 미처 몰랐거든요. 그래도 박수영 장인과 만나서 이야기하며 오리지널 피스의 작업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죽공예가인 손민정 작가와도 협업했죠.
카페온양 설계 당시 처음 협업한 젊은 작가입니다. 공간 한편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작은 문 하나를 만들었는데 전통적인 형태의 문이 아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조였습니다. 사실 그 문은 손민정 작가가 죽공예를 배워 처음 제작한 결과물이었어요. 어찌 보면 신인 발굴이었다고도 할 수 있죠.(웃음) 그것이 연이 되어 제주도 카멜리아 힐 카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천장 부분을 협업했습니다. 공예가와 협업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장인에 대한 존경심 때문입니다. 정신이나 태도 면에서 배우는 점이 많죠. 손민정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첫눈을 맞지 않은 대나무는 쉽게 썩는다고 해요. 그래서 죽공예에선 그런 대나무는 일부러 열기에 쪄낸다고 하더군요.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런 것을 봤을 때 우리 인생에서 시련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죠?(웃음) 요즘같이 불확실한 시대에 근본적인 답을 주는 건 결국 자연과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 둘을 분리해서 봤는데 공부를 할수록 전통과 자연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인이 한국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 결국 전통이니까요.


전통을 자신의 디자인 언어로 삼는 젊은 디자이너도 많아졌습니다.
우리 스튜디오는 저까지 7명으로 이뤄졌는데 직원 대부분이 20대 후반의 젊은 디자이너입니다.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요즘 영 제너레이션이 얼마나 똑똑하고 훌륭한지 느끼곤 해요. 특히나 가장 탄복하는 것이 가치를 판단할 줄 안다는 점입니다. 젊은 세대는 소위 ‘영끌’을 해서 좋은 시계를 사고, 갖고 싶은 만년필을 구매하죠. 살뜰히 돈을 아껴 과감히 고가의 제품을 사는데 기성세대는 보통 혀를 차지만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치가 있다면 거기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우리 세대에선 갖기 어려웠던 태도입니다. 아마 빠르게 많은 것을 경험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통에 대한 젊은 창작자들의 관심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는 눈앞에 닥친 일만 열심히 했지, 정작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거나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 못했어요.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고 가치를 두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1979점 역시 가장 한국적인 티하우스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알고 있어요.
과거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티하우스의 존재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목표는 오감으로 접근하는 것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향기, 소리, 감촉과 맛을 다감각적으로 경험하기를 바랐죠. 사운드에서도 박형진 작가와 협업해 스피커를 특별 제작하고 문이랑 음악감독이 이곳을 위한 시그너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욕심 많은 실험가

다양한 소재에 대한 관심도 돋보입니다.
소재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커요. 이건 스튜디오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 소재에 천착한 디자인 회사로 비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소재에 과감히 도전해보려고 하죠. 전통 소재는 물론 레진 같은 현대적인 소재도 십분 활용하고요. 최근 진행한 윤현상재 리뉴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어요. 윤현상재가 다루는 타일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미 완결성 있는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원목이나 금속은 스펙트럼 자체가 넓고 탐구 과정에서 다양한 활용 방안을 찾을 수 있는데 타일은 재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아요. 더 많이 고민하고 탐구해야 했죠. 그 결과로 나온 것 중 하나가 재고로 남은 타일을 잘게 부숴 테라초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또 타일과 타일 사이의 매지에 가죽을 대고, 천연 대리석에 주로 사용하는 삼강 기법을 타일에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적용했어요. 이런 것들은 성패를 떠나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올×샤넬 프로젝트도 언급했지만, 단순히 공간 디자인을 넘어 전시 기획이나 연출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직업의 경계는 앞으로 더 허물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고요. 이와 관련해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유아체험교육원인데 폐교를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놀이 설계자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바람 놀이, 소리 놀이, 물놀이…. 건물 안팎에서 아이들이 누릴 다양한 체험 요소를 기획했어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닥이나 천장의 모양새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낄 기분, 시간의 격을 높이는 것이죠. 요즘 아이들이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아이들이 멀어진 자연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허물어진 직업의 경계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최근 공간 디자이너들이 전시 기획자로 나서는 일이 부쩍 늘었어요.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전문성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세분화가 곧 전문성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픽, 공간, 가구 등 각 영역의 디자이너가 따로 있고 이들이 모였을 때 전문적인 것을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죠. 그런데 저는 앞으로 이런 것이 점점 통합되리라고 생각해요. 희망한다고 모두가 그런 통합형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소 예술이나 공예에 조예가 깊은 디자이너가 기획자로 나서는 것도 결국 이들이 기획은 물론 공간 연출까지 통합적으로 관장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물론 연출이 과해 정작 작품이 안 보이는 맹점은 늘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통합의 시대에 종합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에 대한 필요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너무 많죠. 제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흐르긴 했지만 이 업에 오롯이 매진한 것은 6~7년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주변에 저를 신진 디자이너로 봐달라고 고집을 부리곤 합니다.(웃음) 정말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다분히 한국적인 숙박 공간이에요. 호텔일지 스테이일지 모르겠지만 한국 문화의 영감을 얻어 갈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죠. 단순한 공간 대여를 넘어 료칸처럼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참, 언젠가 무대 디자인도 시도하고 싶어요. 도전하고 실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디자이너로서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