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기본과 신뢰에서 건축의 답을 찾다

윤한진·한승재·한양규 푸하하하 프렌즈 공동 대표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는 2025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 성수동 사옥 ‘코어해체시스템’은 건축주인 브랜드의 성격과 업무 방식을 반영해 필수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사례다. 하이브 사옥, 성수연방, JTBC PLAY, ㅁㅁㄷ-작은집 등 기업부터 개인까지, 프로젝트는 달라도 클라이언트를 0순위로 두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설립 12년 차, 지금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집단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Creator+]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기본과 신뢰에서 건축의 답을 찾다

editor’s note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윤한진, 한승재, 한양규)가 2025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작은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의 사옥으로도 알려진 ‘코어해체시스템’으로 엘리베이터, 계단, 화장실 같은 필수 공간을 과감히 흩어 배치해, 사람들의 이동과 공간 활용을 유연하게 만들었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클라이언트의 업무 방식을 건축 설계에 적극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패션 브랜드 업무 특성상 부서 간 협업과 회의가 잦은 조직 구조를 고려해, 푸하하하 프렌즈는 건물 중앙에 교차형 ‘가위 계단’을 배치했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계단은 층과 부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조직 내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는 핵심 장치인거죠.

덕분에 사옥은 단순한 업무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조직 문화를 담아내는 건축 실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처럼 클라이언트를 0순위로 고려하는 건 푸하하하 프렌즈의 일관된 문법입니다. 하이브 사옥(2021), JTBC PLAY(2020),  성수연방(2018), 어라운드 사옥(2017) 등 기업과 브랜드의 공간부터 빈 모서리 집(2023), 후암동의 추억(2022), 괴산27호(2019), 세거리집(2018), ㅁㅁㄷ-작은집(2016), 흙담(2015) 등 개인 공간까지 프로젝트의 성격은 달라도 접근 방식은 변하지 않았죠.

디자인플러스는 지난 2017년 디자인프레스 <Oh! 크리에이터> 시리즈를 통해 푸하하하 프렌즈를 만나 바 있는데요. 어느새 설립 12년 차를 맞은 이들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집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클라이언트를 0순위로 두는 원칙, 과정에 대한 실험, 그리고 협업과 논쟁을 밑바탕으로 끊임없이 건축을 고민해 온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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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한양규·윤한진·한승재 푸하하하 프렌즈 공동 대표. 윤한진 대표는 현재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이다. 그와는 화상 미팅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PLUS 1. 푸하하하 프렌즈, 2025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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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거머쥔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2025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앞서 김해건축대상(2014),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2017), 젋은건축가상(2019) 등 여러 수상 경력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이번 대상은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고요.

윤한진. 푸하하하 프렌즈를 설립한 지 벌써 12년이 됐는데요. 저희가 그동안 건축을 하면서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인정받고 싶다’라는 욕구예요. 그래서 매년 완공되는 건물은 꾸준히 건축상에 출품했어요. 서울시 건축상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아직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위에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서울시 건축상은 한 해 동안 서울에서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축가들이 대부분 출품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한민국의 축약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번 대상이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또, 저희는 공모전에 참여할 때 단순한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누구에게 인정받는가’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데요. 서울시 건축상은 심사위원 구성도 공정성이 확보되어 있어, 저희가 평가받기에는 좋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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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력 12년에 이르는 푸하하하 프렌즈는 다양한 건축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이번 서울시 건축상의 주제가 ‘서울성: 다층도시(Seoul-ness: Multi-Layered City)’더군요. 서울의 고유성과 정체성, 지역성을 미래 지향적으로 풀어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평가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푸하하하 프렌즈가 설계한 대상 수상작 ‘코어해체시스템’은 그 독특한 이름부터가 눈길을 사로잡아요.

한양규. 처음부터 ‘코어해체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내부적으로는 ‘디스이즈네버댓 오피스 빌딩’ 혹은 ‘JKND HQ’ 정도로 불렀죠. 그런데 출품 과정에서 개념적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어해체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시스템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한국어와 영어, 한자가 섞이면서 낯선 용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오히려 그게 전략적으로 작동한 측면도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 이름 못지않게 공간 구조도 낯설게 다가오는데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물 내 전형적인 코어 배치와는 다른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코어를 해체한다’라는 발상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한양규.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코어를 해체하자’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코어는 한곳에 묶어 두는 게 합리적이죠. 그래야 면적을 절약하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배치하다 보니 손님들의 동선과 사무실 내부 동선이 계속 겹치더라고요. 디스이즈네버댓처럼 부서 간 회의가 잦고, 인원 구성도 유동적인 조직에서는 큰 공간 제약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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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양끝족에는 엘리베이터를 배치하고, 가운데 계단, 화장실, 샤프트 등 설비 공간을 배치했다.

그래서 계단을 중심에 두고 양옆에 엘리베이터를 분산해서 배치했어요. 중앙에는 화장실과 샤프트를 두어 설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고요. 결과적으로 기존의 ‘뭉친 코어’를 흩어 배치하면서 각 층이 유연하게 이어지는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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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해체시스템 건축의 핵심은 가위 계단이다. 세 개의 층을 동시에 연결하는 구조로 부서 간 협업이 잦은 업무 환경과 성격을 공간에 반영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세 개 층을 동시에 연결하는 일명 ‘가위계단’을 적용했는데요. 덕분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협업과 교류가 쉼 없이 이어질 수 있는 공간 환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푸하하하 프렌즈 웹사이트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보니 필지, 그러니까 건물을 올리는 땅의 모양이나 주변 조건도 영향을 끼친 듯하던데요?

한양규. 맞아요. 대지 조건도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이번 부지는 원래 두 필지를 합한 길쭉한 땅인데, 이런 땅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양쪽이 모두 도로에 접해 있어서 자동차와 사람의 출입 동선을 분리하기가 수월했고, 주 출입구와 부출입구를 나누기도 좋았습니다. 또 철도와 고가가 인접해 있다는 점도 독특했죠. 이런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 ‘중앙 코어’ 방식보다는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접근을 열어주는 구조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 궁금한 건 안정성입니다. 코어를 해체한다는 발상이 신선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이잖아요.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한양규. 솔직히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처음에는 가운데 기둥을 세우려 했는데, 구조기술사께서 기둥 없이도 버틸 수 있는 ‘포스트 텐션(Post Tension) 보’를 제안해 주셨어요. 덕분에 공간을 넓게 확보하면서도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죠. 이후 일부를 바깥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캔틸레버 구조’를 적용해 지금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저희는 모양을 먼저 만들고 뒤늦게 구조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와 형태를 함께 고민했어요. 계단, 엘리베이터, 화장실, 샤프트 같은 기본 요소와 스프링클러 같은 설비까지도 초기 단계에서 검토했기 때문에, 막아도 쓰고 열어도 쓸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고, 안정성도 자연스럽게 확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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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공동 대표인 한양규 소장
디스이즈네버댓과는 2019년 연희동 사옥부터 인연이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코어해체시스템’이라는 설계 제안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지도 궁금하더군요.

한양규/한승재. 중앙 계단과 분산된 코어 구조를 제안했을 때, 처음엔 다소 낯설게 느끼셨겠죠? 하지만 곧 부서 간 회의가 많고 인원 구성도 자주 바뀌는 회사 조직 운영 방식과 특성에 잘 맞는다고 판단하시더니 “알아서 잘해달라”라며 전적으로 맡겨주셨어요. 저희가 처음부터 계단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두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죠. 결국 건축주와 오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완공 후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의 반응은 어때요? 의도치 못한 피드백도 있어요?

한양규. 처음엔 직원들도 다소 당황했을 거예요. 기존 사옥과 구조가 많이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자리가 안정적으로 잡혔다고 들었어요. 어느 자리에 앉아도 다 연결돼 있어서 ‘좋은 자리·나쁜 자리’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채광도 좋아 만족도가 높다고요. 불평이 전혀 없을 순 없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의도했던 대로 잘 쓰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LUS 2. 클라이언트, 푸하하하 프렌즈가 건축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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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또한 창작자인 만큼 자신의 색을 드러내고 싶어 할 텐데요. 푸하하하 프렌즈는 늘 건축주를 먼저 이야기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윤한진. 저희가 대형 설계사무소에 있었잖아요. 거기서는 역할이 다 정해져 있어요. 소장은 스케치만 하고, 팀장은 도면만 그리고, 신입사원은 모형만 만드는 식이죠. 건축주 미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첫 미팅 때는 우리가 ‘깍두기’라고 부르는 매스 스터디 모형을 3~5개 가져가서 건축주에게 “어떤 게 좋으세요?”라고 질문하죠. 건축주가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내부에서는 마음이 놓이는 거예요. 이제 이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고요. 사실상 모든 중요한 결정을 건축주에게 미루는 방식인 거죠.

“저희는 작은 결정부터 큰 결정까지 책임지려는 습관이 베어져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긴장과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설계하죠.”

저희는 그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재미도 흥미도 없고요. 그래서 저희는 보통 설계를 시작하면 한두 달 치열하게 고민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만의 결론을 먼저 내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건축주에게 제안하는 거죠. 물론, 건축주가 “이건 전혀 아닌 것 같다”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과감하게 지우고 다시 시작합니다.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없으세요? 그 과정에 현실적인 고민도 얽혀 있을 텐데요. 

윤한진.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과정이에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늘 리스크를 안고 살아가는 조마조마한 삶이긴 하죠. 하지만 그게 건축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게 어렵게만 흘러가는 건 아닌데요. 디스이즈네버댓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좋은 건축주였어요. 안목이 있고, 맡길 줄 아는 태도를 가졌죠. 건축주가 요구 조건을 설명하는 건 괜찮지만, 세세하게 벽을 옮기고 창을 빼는 식으로 간섭하기 시작하면 건축가는 단순히 그림만 그려주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그러면 저희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지죠. 디스이즈네버댓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건축주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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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공동 대표 윤한진 소장
그렇다면 좋은 건축을 위해 건축주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윤한진. 단순히 미감이나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건물이나 집을 어떤 태도로 짓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관여해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할 줄 아는 태도가 있으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태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걸 요구하면,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갈등이 커지는 거죠.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분들을 만나면 1~2년이 지옥처럼 흘러갈 수도 있어요. 다행히 저희는 홈페이지나 이전 작업을 보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인 신뢰가 전제된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또 그게 100% 필터 역할을 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저희도 첫 미팅 때 건축주가 우리와 맞을지 유심히 살펴봅니다.

한양규. 결국 중요한 건 신뢰예요. 얼마나 건축가를 신뢰하느냐가 핵심이죠.

말씀하신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의 신뢰는 어떻게 쌓으세요?

한양규.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맛있겠다’라고 작정하고 가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잖아요. 건축도 비슷해요. 저희 말을 무조건 따르는 건축주를 원하는 건 아니에요. 건물 짓는 일이 변수도 많고 험난하잖아요. 그 가운데에서도 저희를 좋아해 주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셋도 신뢰를 쌓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저는 ‘어깨를 내어주는 타입’이에요. 건축주가 기대주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모든 걸 풀어갈 수 있죠. 승재 소장은 또 다릅니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면이 있는데, 건축주들이 그 순수함을 좋아하세요. (웃음) 한진 소장은 약간 교주 같다고 할까요. “믿으셔야 합니다!”와 같은 식으로 종교 집단처럼 신뢰를 만드는 스타일이죠.

PLUS 3. 건축가 집단, 그들이 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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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집단이라 불리는 ‘푸하하하 프렌즈’는 새로운 인원을 뽑을 때 전원이 동의해야 한다.
요즘 인재 영입이 중요한 시대라고 하잖아요. 마침, 푸하하하 프렌즈가 2026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더군요. 푸하하하 프렌즈가 같이 일하고 싶은 인재상이 있을까요?

한승재. 고집 있고 잘하는 사람. 주제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 좋아요. 괜히 이상한 욕심 부리지 않으면 더 좋고요. 신기하고 자극적인 건축 말고, 핵심과 본질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50명 지원했는데, 역대 가장 많은 인원 중에서도 결국 그런 사람들 눈에 확 꽂히는 것 같아요.

한양규. 저는 이전에는 지원자들의 도면만 봤어요. 계획을 어떻게 하는지, 관점은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태도가 어떤가를 더 신경 써서 봐요. 일을 하다 보면 “하자” 했을 때, “좋아요”라고 밝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좋죠. 괜한 자격지심을 드러내면 함께 일하기 어려워요.

윤한진. 맞아요. 자격지심이 있으면 딱 질색이에요. 재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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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공동 대표 한승재 소장
채용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게 있다면 단연 ‘에세이’ 일텐데요. 포트폴리오와 함께 에세이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한승재. 진위 판별을 위한 목적이 커요. 요즘은 입시 컨설팅 같은 데서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이나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건축은 그걸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작업이거든요. 포트폴리오에 친구랑 공동 작업한 걸 넣을 수도 있고, 그러면 누가 뭘 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간단하게라도 글을 쓰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작업했는지 알 수 있어요. 기술적으로 글을 잘 쓰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글만 보고 잘하는 사람을 뽑지는 않지만, ‘이 작업이 이 사람 게 맞구나’라는 걸 판별하는 데는 도움이 돼요.

한양규. 맞아요. 요즘은 가짜들이 많거든요. 진짜냐 아니냐를 구분할 수 있죠. 글이 프로젝트와 맥락을 같이 하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윤한진. 저는 조금 다르게, 맞춤법이나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도 봐요. 설계만 잘하고 아무것도 못 하면 곤란하잖아요. 메일 하나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하니까요. 결국 글을 조리 있게 쓰는 건 생각을 정리할 줄 아는 능력과도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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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푸하하하 프렌즈의 입사 지원에는 250명이 몰렸다. 지원자들은 그간의 작업물을 담은 포트폴리오와 건축 관련 자유주제로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앞서 올해 푸하하하 프렌즈에 250명이 지원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250개의 포트폴리오와 에세이를 세 분이 보시는 거에요? 

한승재. 저희 말고도 전 직원이 다 봐요. 이후 면접 보는 건 의견을 넉넉하게 수렴하는데, 최종 선별할 때는 꼭 만장일치여야 해요.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안 돼요. 만약 누군가 무조건 이 사람을 뽑고 싶다 하고, 죽어도 안 된다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설득해야죠.

‘건축가 집단’이라고 부를만하네요. (웃음) 푸하하하 프렌즈가 일하는 구조도 궁금해요.

한승재. 소장이 셋이니까 각자 팀을 꾸려서 따로 설계해요. 지금은 소장마다 팀원이 두 명씩 붙어 있고요. 사실 큰 프로젝트라면 소장 한 명이 두 개 정도씩 맡으면 딱 좋은데, 그게 잘 안되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큰 거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작은 거 열 개를 하는 거죠.

PLUS 4. 기둥은 기둥이요, 벽은 벽이요, 지붕은 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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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프렌즈 한양규, 윤한진, 한승재 소장
건축은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어요?

한양규. 그냥 계속 하는 거죠. 쉼 없이 하는 게 좋아요. 멈추면 오히려 지칠 것 같아요. 끝까지 한 번 달려보고, 심호흡 한 번 푹 쉬는 거죠.

한승재. 지치지 않는 게 결국 능력인 것 같아요. 번아웃이니 힘들다니 하는 얘기보다는, 끝까지 버텨내는 힘이 더 중요한 거죠.

윤한진. 저는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올라가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현장 다니고 사람들 만나느라 차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오히려 여기서는 책상 앞에 앉아 차분히 일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집이나 원하는 공간에서 일해보라고 권하는데, 다들 잘 안 하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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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을지로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푸하하하 프렌즈 사무실 공간 곳곳에는 건축 재료가 놓여 있다.
최근 건축가로서 프로젝트에 임하며 마주하는 고민이 있다면요?

한승재. 요즘은 그냥 시공사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점점 마음에 안 들어요. 최근에 한 공간의 인테리어를 보러 갔는데, 계단 조명도 세련되고 마감도 깨끗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멋이 없더라고요. 양산되는 디자인이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거죠. 저는 현장에서 직접 손을 대면서 만들어가는 게 진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디스이즈네버댓 사옥 ‘코어해체시스템’ 프로젝트에서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COM이 그런 역할을 했거든요. 그 과정 덕분에 현장성이 살아 있었죠. 만약 도면만 던져놓고 그냥 찍어냈으면 멋이 없었겠죠.

한양규. 맞아요. COM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우리가 건물의 구조와 설비를 책임졌다면, 손에 닿는 거의 모든 디테일은 COM의 손을 거쳤거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훨씬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죠.

도전해보고 싶은 건축 프로젝트도 있어요?

한양규. 학교나 아파트 설계를 꼭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 학교 공모전에 도전했는데 떨어져서 아쉬움이 크거든요. 그만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죠. 아파트는 대부분 컨소시엄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분야예요.

윤한진. 저는 공항을 설계해 보고 싶어요. 규모가 워낙 크잖아요. 공항 설계 하나만 맡아도 한 10년 동안은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제가 생각해 본 건물 중에서는 공항이 가장 큰 스케일이더라고요.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기둥은 기둥이요, 벽은 벽이요, 지붕은 지붕이다.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푸하하하 프렌즈가 추구하는 건축가의 태도나 건축적 지향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한양규. 클라이언트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주입하는 건 저희 방식이 아니에요. 정말 중요한 가치라면 끝까지 설득하겠지만, 일부러 어긋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포용력은 가지고 있다고 봐요. 아직은 저희도 과정에 있지만, 우리가 하는 작업은 분명히 한국적이고, 또 서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한진. 저는 굳이 ‘푸하하하다움’을 만들려고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오히려 기본적인 걸 잘하는 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계할 때 가끔은 기둥을 휘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만, 그런 유혹을 자제하려고 해요. 벽은 벽이고, 기둥은 기둥이고, 지붕은 지붕이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PLUS LIST

푸하하하 프렌즈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공간 3

  • 비양도

윤한진 소장은 여행을 ‘일과 분리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건축가에게 건축 기행은 곧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 그럼에도 이번에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오래 함께한 팀원과의 이별 여행으로, 낚시를 좋아하는 팀원을 위해 제주 비양도를 택했다. 이유를 떠나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담긴 여행지다.

  • 무인도

한승재 소장은 도시가 아닌 섬을 꿈꾼다. 그는 “비행기가 불시착해 페트병과 철근만 있는 섬”을 상상하며, 그곳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잡으며 부족민으로 살아가는 긴 여정을 이야기했다. 문명이 닿지 않은 곳에서 기초부터 삶을 구축하는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건축적 상상력의 또 다른 원천일지 모른다.

  • 제주도

한양규 소장은 특별한 도시보다 ‘제주’를 꼽았다. “굳이 알아보고 가지 않아도 될 곳”이라는 말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공간을 원한다. 그는 일상에서 불편함을 건축의 재료로 삼듯, 제주에서의 경험 또한 단순한 영감보다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다.

TIPPING POINT

“기둥은 기둥, 벽은 벽, 지붕은 지붕이다.” 기본을 지키겠다는 단순하지만, 힘 있는 말. 푸하하하 프렌즈는 건축의 본질과 핵심을 향한 고민을 쉬지 않았다. 2025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디스이즈네버댓 사옥 ‘코어해체시스템’에서 코어를 해체하고, 가위계단을 적용한 것도 결국 공간이 본래 지닌 기능과 가능성을 다시 묻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라는 사훈처럼, 푸하하하 프렌즈는 건축을 완성된 결과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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