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 WISH’부터 ‘삼성 라이온즈’까지, 산산기어가 말하는’지금’의 문화 ①

산산기어(SAN SAN GEAR) 인터뷰 ①

‘NCT WISH’부터 '실리카겔', ‘삼성 라이온즈’, ‘고마츠 나나’, ‘쿠리하라 하야토’까지. 지금 가장 핫한 인물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브랜드 산산기어. 매 시즌 친근하면서도 독창적인 컬렉션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산산기어스러움’이라는 독보적인 감각을 구축해온 브랜드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프로젝트들과 그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름의 끝자락, 산산기어와 만났다.

‘NCT WISH’부터 ‘삼성 라이온즈’까지, 산산기어가 말하는’지금’의 문화 ①

얼마 전 독립영화로 10만 관객을 돌파한 일본 영화 〈해피 엔드〉의 주연 쿠리하라 하야토가 바둑돌을 손에 쥔 채 서 있는 장면은 SNS에서 많은 화제가 됐다. 그가 입고 있던 브랜드가 바로 산산기어(SAN SAN GEAR).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올해 산산기어는 NCT, 고마츠 나나, 쿠리하라 하야토 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동시대의 얼굴들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그 저변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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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25SS 〈Check Point〉 캠페인 사진. 일본 배우 고마츠 나나가 메인 모델로 에디토리얼에 섰다. ©SAN SAN GEAR

가장 핫한 인물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산산기어가 포커싱을 두는 곳은 화제성이 아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쫓아가기보다 늘 한발 앞선 ‘길’을 제시하는 것. 매 시즌 선보이는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컬렉션, 그리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 ‘산산기어스러움’이라는 고유한 감각을 구축해왔다. 이 말만큼 이 브랜드를 설명하는 데 정확한 표현은 없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프로젝트와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름의 끝자락, 산산기어와 만났다. 어떤 출발점에서 시작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차근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Interview

이상엽 디렉터, 김세훈 디자인팀 팀장, 최민석 크리에이티브팀 팀장

— 산산기어라는 브랜드의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동양적인 느낌을 넘어서 한국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상쾌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순간을 뜻하는 ‘산산하다’라는 우리말을 알게 되었어요. 그 의미가 저희가 지향하는 산산기어의 이미지와 잘 맞아 끌리게 되었습니다. 이 의미를 생각하고 산산기어가 만드는 의류와 콘텐츠를 한 번 더 바라보시면 ‘산산하다’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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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폰트 로고

또, ‘산’이라는 발음이 일본어의 숫자 ‘3’, 한자어의 ‘뫼 산(山)’처럼 아시아 여러 문화권에서 통용된다는 점, 그리고 반복되는 발음 구조가 부드럽게 들린다는 점도 브랜드 네이밍에 확신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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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로고 심벌

— 브랜드 네임뿐 아니라 로고가 가지는 힘도 강한 것 같습니다. 로고는 브랜드의 어떤 정체성을 담고 있나요?

로고에서 ‘산산기어’가 가진 복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하학적인 요소와 곡선적인 실루엣을 조합해 디자인성을 주며 로고를 완성했어요. 전체적인 형태는 알파벳 S를 변형하면서 ‘산-산’처럼 대칭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합해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로고가 탄생했습니다. 로고가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고,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기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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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25FW 〈WAYFINDER〉 캠페인 Chapter.1 ©SAN SAN GEAR

25 FW Collection – 〈WAYFINDER〉

With 쿠리하라 하야토(Hayato Kurihara)

— 가장 최근의 두 시즌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25 FW 시즌인 〈웨이파인더(WAYFINDER)〉 시즌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매시즌을 전개하면서 ‘어떻게 시즌을 끌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습니다. 저희만의 시즌을 풀어가는 방법을 아주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특정 이미지를 상정하고 점진적으로 테마, 콘텐츠, 의류로 확장해가며 하나의 시즌을 풀어냅니다. 25FW 시즌은 ‘유목민’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해 길을 찾아가는 인물인 ‘WAYFINDER’라는 개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상적인 이미지들을 변주해 옷과 콘텐츠에 직, 간접적으로 표현하며 25FW 시즌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 에디토리얼의 전체적인 콘셉트에서 바둑이라는 요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WAYFINDER〉라는 시즌 테마 안에서 길을 찾아 골몰하는 인물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길을 찾는 과정은 크게 세가지로 생각했는데요. 먼저 정답을 찾아 방황하고, 이어 그 답을 향해 나아가며,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되짚는 흐름입니다. 이 과정을 바둑의 ‘포석 – 행마 – 복기’라는 흐름에 빗대어 영화적 구조의 에디토리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연출에 어울리는 모델을 고민하던 중 독립영화 〈해피엔드〉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 ‘쿠리하라 하야토’를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캠페인에 등장하며 이번 시즌은 맥락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한층 더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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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25FW 〈WAYFINDER〉 캠페인 Chapter.2 ©SAN SAN 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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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 25FW 〈WAYFINDER〉 캠페인 Chapter.2 ©SAN SAN GEAR

25 SS Collection – 〈Check Point〉

With 고마츠 나나(Nana Komatsu)

— 25 SS 〈체크포인트(Check Point)〉 컬렉션도 흥미로웠어요. 어떤 시즌이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시즌을 시작할 무렵 ‘갓 오브 워(God of War)’라는 게임을 자주 했습니다. 게임 속에서 특정 지점에서 계속 죽고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순환’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죠. 이를 컬렉션으로 풀어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산기어의 심벌 로고 역시 순환하는 듯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브랜드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껴 꼭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에디토리얼로 발전시키면서 순환이라는 개념을 게임 속 인물의 ‘리스폰(Respawn)’으로 확장했습니다. 배우 ‘고마츠 나나’를 상징적인 캐릭터로 설정해 기묘한 공간의 한 체크포인트에서 계속 리스폰하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움직이지 않는 시곗바늘, 컷마다 달라지는 의상, 기이한 모습의 톱 오브제 같은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은유적으로 담아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직관적이지 않은 만큼 난이도가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저희의 의도를 이해해 주신 덕분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5FW에는 쿠리하라 하야토가, 그리고 25 S/S 고마츠 나나가 캠페인에 등장했습니다. 올해 일본 배우들과 많은 콜라보를 한 것 같습니다. 일본 시장까지 노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모델 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저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분위기가 잘 맞는지입니다. 두 시즌에 가장 적합하다 생각했던 두 모델 모두가 일본 배우였을 뿐, 일본 시장을 겨냥한 접근은 아닙니다. 쿠리하야 하야토와 고마츠 나나 각각이 지닌 고유한 분위기가 산산기어가 지향하는 이미지와 잘 맞았고, 저희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를 가장 적합하게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산기어는 국적이나 인종과 무관하게 브랜드의 비전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언제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SAN SAN GEAR x NCT WISH’ -〈WISH GEAR : HEART STRINGS〉

— 협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NCT WISH와의 협업은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설명해주신다면.

각자의 분야에서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NCT WISH와 산산기어가 함께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 〈WISH GEAR : HEART STRINGS〉라는 컬렉션입니다. 이번 협업에서 저희는 NCT WISH의 세계관을 산산기어만의 언어로 재해석했고, 청춘의 성장, 멤버들의 정체성을 담아낸 의류와 아트 피스로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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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SAN GEAR x NCT WISH. 〈WISH GEAR : HEART STRINGS〉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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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NCT WISH의 리더 ‘시온’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 사실 아이돌과의 협업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NCT WISH와의 인연은 지난해 겨울, 리더 시온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온님은 이미 저희 브랜드의 여러 아이템을 보유하고 계셨는데요. 산산기어의 시그니처 제품인 서픽스 푸퍼 재킷을 착용하신 모습이 온라인에서 큰 반응을 얻으며 컬트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지하였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NCT WISH는 그간 행보를 고려해 보았을 때, 산산기어가 지향하는 ’문화적 맥락‘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NCT WISH의 팬분들 역시 각자가 향유하는 문화적인 취향, 취미를 적극적으로 소구하는 집단이라 판단했기에, 산산기어의 페르소나와 닮아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겹치며 만일 협업을 하게 된다면 단순한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관계를 넘어서는 협업까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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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NCT WISH ‘료’ ©SAN SAN GEAR

저희가 먼저 제안을 드렸고, 협업 여부에 대한 결정이 끝나고 난 후에는 굉장히 부드럽고 원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사내 팀원 중에도 진정성 있는 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SM ENT 측에서도 저희의 크리에이티브와 권한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양사의 적극적인 소통과 빠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NCT WISH의 컴백 이슈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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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캠페인에 사용된 아트피스 활. NCT WISH의 세계관을 담아 실제로도 제작했다. ©SAN SAN 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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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캠페인에 사용된 활 디테일. ©SAN SAN GEAR

WISH GEAR : HEART STRINGS의 메인 오브제를 활로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NCT의 세계관과도 연관이 있는건가요?

SM ENT의 배려로 크리에이티브를 전적으로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요. NCT WISH의 과거와 현재를 심도 있게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정체성 중 하나인 ‘CUPID SOCIETY’ 세계관을 산산기어만의 방식으로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성장해가는 청춘의 모습을 양궁 부원으로 비유하고, 멤버 개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한 ‘WISH GEAR’를 아트 피스인 활과 의류 컬렉션으로 제작했습니다. 의류는 산산기어가 지향하는 유틸리티와 심미성을 모두 담아 디자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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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팝업 스토어 전경.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활 처럼 공간을 꾸몄다. ©SAN SAN 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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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팝업 스토어 전경.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활 처럼 공간을 꾸몄다. ©SAN SAN GEAR

또한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전시처럼 꾸며, 협업의 흐름을 하나로 잇는 공간 경험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와이어가 매장을 가로지르며 활시위를 떠올리게 했고, 그 분위기를 기점으로 공간 전체를 하나의 활처럼 완성했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셨고, 저희의 의도와 미감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구현하는 등 협업의 과정은 힘들었지만 팬분들의 반응이 너무나 좋아 기쁘고 보람찬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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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GEAR : HEART STRINGS〉 팝업 스토어 전경. ©SAN SAN GEAR

‘SAN SAN GEAR X SAMSUNG LIONS’ -〈Born in Blue〉, 〈A Pride of Lions〉

— 삼성 라이온즈와도 함께 협업을 진행했어요. 야구 구단과 산산기어의 만남 역시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나요?

이상엽 스포츠 신(Scene)에서 팬의 마음은 때로 어떤 설명 보다 많은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유와 논리보다 ‘팬이니까’라는 한마디로 해소되는 부분들이 있죠. 그런 관점에서 다른 어떤 이유보다 ‘팬’으로서의 마음이 가장 큰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구에서 자랄 때 아버지를 따라 시민구장을 찾았고, 이웃집에 김성래 전 선수도 계셨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팬으로서의 꿈을 키워왔고, 그 마음을 현실로 옮기고 싶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응원해온 팀과 하나의 대등한 브랜드로 협업해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흥분되고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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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SAN GEAR X SAMSUNG LIONS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 기존 팀 컬러와 개성이 강한 야구 구단과의 협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행하셨나요?

야구 구단과의 협업은 말씀처럼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구단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쌓아온 고유의 팀 컬러와 팬덤 문화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저희가 가장 먼저 고민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죠. 또한, 야구 구단과의 협업에서의 미감은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형태와는 다르게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팀 로고만을 차용해 제품을 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유치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의류는 ‘의복’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자신을 대변하고, 소속감이나 가치관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스포츠 영역에서는 ‘자부심’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죠. 라이온즈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봐온 팬으로서, 역사와 자부심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협업에서 라이온즈 팬분들이 의류를 통해 그 자부심을 다시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두 축을 중심으로 양쪽 정체성의 균형을 맞추며 진정성 있게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산산기어만의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구단의 역사와 팬덤의 자부심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와 디자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 캠페인 비디오 연출은 삼성의 올드팬과 뉴팬 모두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어요. 캠페인 비디오에 대해서도 한번 설명을 해주신다면.

삼성 라이온즈는 원년부터 이름이 바뀌지 않은 전통 있는 팀입니다.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와 명장면을 만들어내고,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이죠. ‘푸른 피’, ‘사자’라는 상징적인 키워드는 이번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캠페인 〈Born in Blue〉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제 어린 시절과 주변 환경에서 출발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있던 원년 팀으로서 깊은 헤리티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청년 시절 에이스였던 김시진 투수에게 열광했듯이, 지금의 팬들은 로컬 보이이자 현재 팀의 에이스인 원태인 선수를 뜨겁게 응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대와 풍경은 달라졌지만, 두 시대의 주인공을 교차시키는 연출은 원년 팬부터 신규 팬까지 모두에게 벅찬 울림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캠페인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은유와 이스터에그를 심었어요. 삼성 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레전더리 선수들의 영구결번부터 시작해 구단 역사 속 의미 있는 연도와 숫자들까지 장면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했죠. 그 숫자들에 서사와의 연결성을 더해주며 팬분들이 더욱 즐겁게 해석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캠페인 동영상이 릴리즈 되고 난 후,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해석을 해주셔서 저희에게도 큰 기쁨이 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두 번째 캠페인 〈A Pride of Lions〉는 팬 한 명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구단, 선수까지 아우르는 ‘사자 떼’라는 개념으로 확장하며 진행한 비디오였습니다. 원년 팀, 강팀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되어왔고 동시에 오랜 세월 함께해 준 팬들 자체가 구단의 자부심이라는 점에서 ‘Pride of Lions’라는 문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슬로건의 사전적 의미도 함께 주목했는데요. ‘자부심’이라는 뜻도 있지만, ‘사자 무리’를 뜻하기도 한다는 사실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이 확정되었습니다. 야구는 한 사람의 활약만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팬, 선수, 프런트 등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죠. 그 모습은 마치 ‘우승’이라는 먹잇감을 향해 함께 돌진하는 사자 떼와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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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SAN GEAR X SAMSUNG LIONS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프로젝트 진행 과정도 슬로건에 걸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구단의 아낌없는 지원과 배려 덕분에 삼성의 홈구장 ‘라이온즈 파크’에서 캠페인 비디오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요. 제작 과정 내내 모두가 한마음으로 뛰는 ‘사자 떼’ 같다고 느꼈어요. 그만큼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야구장을 찾았을 때, 많은 팬분들께서 협업 제품을 입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꼈습니다. 라이온즈가 아홉 번째 우승을 이루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응원합니다.

‘SAN SAN GEAR X Silica Gel’ -〈Mercurial〉

— 이어서 실리카겔과의 23 SS ʻMercurial’ 협업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실리카겔의 노래 제목과 시즌의 이름이 똑같은데,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

예전부터 로컬 아티스트와 의미 있는 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브랜드의 시작부터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 실리카겔의 보컬 한주님과 식사를 하던 도중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가며 시즌을 함께 하기로 성사되었죠. 실리카겔이 그 당시 음악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지점과 저희의 비전이 잘 맞아 실제 뮤직비디오에서도 브랜드 의상이 자주 활용되는 등 상호작용이 꾸준히 이어졌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그 당시 산산기어와 실리카겔의 케미가 좋았던 거죠.

함께 시즌 주제를 고민하던 과정에서 영화 〈키즈〉에서 느꼈던 ‘Youth(젊음, 청춘)’ 특유의 심리적 불안감과 가변성이 떠올렸습니다.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 수은을 메타포로 삼아 ‘MERCURIAL’이라는 테마를 설정했죠. 곡은 실리카겔 측에서 3곡 정도를 제안했고, 그중 ‘Mercurial’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콘셉트터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 의상 등 시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실리카겔과 산산기어가 함께 ‘이런 메시지를 담아보자, 이런 제목은 어떨까?’라는 제안이 오가며 방향성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음악, 패션, 가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서로 높은 만족감을 남겼습니다.

— 협업을 여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굉장히 많이 진행합니다. 거의 매 시즌 2번 이상의 협업이 있는데 이유가 있나요?

산산기어는 패션 브랜드인 동시에 다양하고 폭넓은 문화적 맥락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전개하는 SS와 FW 두 가지 정규 시즌 외에도 간헐적으로 ‘핫서머’와 같은 캠페인도 진행하지만, 이 컬렉션들만으로는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렇기에 더 다양한 새로운 시도, 복종과 표현 방식, 그리고 주목받아야 할 작업자들을 지지하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협업이라는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과 제안을 받고 있어 그만큼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만큼 콘텐츠와 미감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어지고 있기에 시즌 외 협업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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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FW 〈SAN SAN GEAR X PUMA〉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 협업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각자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기준입니다. 산산기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파트너사의 장점을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보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함께할 때 양측 모두 만족하며 성장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도 상상합니다. 또, 때로는 산산기어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잘 맞다고 생각이 드는 파트너를 찾아 직접 러브콜을 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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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FW 〈SAN SAN GEAR X PUMA〉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 다양한 브랜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다 보면 중심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브랜드의 중심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장, 단점이 있나요?

중심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잘 해내기 위해 저희는 지금도 끊임없이 산산기어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태어난 배경, 우리가 처음 만들었던 옷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해서요. 저희에게 브랜드의 본질, 중심이란 단순히 디자인의 형태나 미학에 그치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옷과 프로젝트를 통해 해석해 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결국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다양한 협업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저희만의 언어로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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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FW 〈SAN SAN GEAR X ALPHA INDUSTRIES〉 에디토리얼 이미지 ©SAN SAN GEAR

협업이 주는 신선함이나 대중적 파급력은 분명 큰 장점이지만, 그것에 휘둘리면 브랜드의 정체성이 쉽게 희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협업을 진행할수록 “산산기어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도무지 상상되지 않던 조합을 가능케 한다거나, 뜻밖의 시너지를 찾아내는 등 브랜드를 운영하며 느끼는 고민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갈 때, 협업의 보람이 더욱 커집니다. 반면 단점이라고 한다면 프로젝트를 연속적으로 진행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점 정도일 것 같습니다.


▼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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