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가 주목한 퍼스널 아이웨어, 브리즘 박형진 대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2018년 론칭한 퍼스널 아이웨어 브랜드 '브리즘'. 이들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안경=패션'이라는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 시키는 중이다. 테크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해 가는 이들의 비즈니스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와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있다. 바로 브리즘(breezm)이다. 주식회사 콥틱을 운영하는 박형진, 성우석 공동대표가 2018년 론칭한 퍼스널 아이웨어 브랜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체 개발한 페이스 룰러, 폴리머 3D 프린팅, 버추얼 피팅, AI 빅테이터 등 IT 기술을 기반으로 ‘최적의 광학 기능’을 위해 커스터마이즈 제품을 생산해 눈길을 끈다. 그간 국내 안경 시장은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등장과 혁신을 거듭하는 행보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브리즘의 박형진 공동 대표를 만났다. 그가 바라보는 안경 산업과 시장의 현황부터 브리즘 론칭 과정과 브랜드 비즈니스로의 성장 동력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P&G 코리아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월트 디즈니 코리아에서 디즈니랜드 리조트 설립 기획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06년 안경 프랜차이즈 알로(ALO)를 창업. 8년 간 15개 매장을 오픈하고 연 매출 100억을 달성했다. 이후 성우석 대표를 만나 콥틱을 창업해 2018년 퍼스널 아이웨어 브랜드 브리즘(breezm)를 론칭했다.
안경은 사양 산업이 아니다
국내에서 안경 산업은 이미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도 나도 같은 물건을 파니까 가격과 속도 경쟁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국내 안경 산업이 이토록 정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실 지 궁금했습니다.
전 세계인의 급속한 근시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안경만큼 손쉽고 안전한 시력 교정 수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안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그에 비해 국내의 안경 산업은 제조와 생산부터 판매까지 여전히 구시대적인 현황에 머물러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공급자 중심의 시장 성격’과 그로부터 빚어진 고객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 깊은 불신이요?
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정보 차이가 컸으니까요. 특히 8, 90년대까지는 지금처럼 인터넷 공급이 활발하지 않았다 보니 소비자가 가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죠.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넘치던 시절이었기에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건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가 제대로 된 가격을 주고 구매한 것이 맞는지 늘 불안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공급자 간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고, 외부 경쟁자와의 경쟁도 정책적으로 막아두다 보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양 산업이라는 대중의 시선에도 퍼스널 아이웨어 브랜드 ‘브리즘’을 론칭 하셨어요.
맞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글로벌 안경 시장이 연 8%씩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시대에 8%씩 성장하는 산업 군은 정말 드물거든요. 이 시장 안에서 플레이어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요. 하지만 브리즘은 기존의 플레이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단순 안경 제조사도, 또 판매사도 아니에요. 대신 IT 기술을 통해 제조부터 판매까지 안경 구매에 대한 고객 경험을 기획하고 제공합니다. 이는 과거와 달리 오늘날 고객들은 이미 세련된 상거래 경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데요. 브리즘은 안경의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고자 합니다.
아이웨어 시장에 뛰어들다
말씀처럼 오늘날 AI와 반도체를 제외하고 성장하는 산업 군을 찾아보긴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리스크가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확신을 얻게 된 모멘텀이 있을까요?
브리즘 이전에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알로’를 론칭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이웨어는 단순히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40대에 재창업을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정작 저시력자, 노안 등 고관여자의 니즈를 케어해 줄 수 있는 브랜드가 없더라고요. 잠시 업계를 떠나있었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시장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공급자들은 가격 경쟁에만 몰두해 있더군요. 분명 소비자들의 ‘언맷니즈(Unmet Needs)’가 존재한다고 판단했어요. 더욱이 30대 초에 알로를 론칭한 덕분에 안경 산업에 대한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이 충분히 있었고요.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제품 퀄리티와 서비스, 그리고 투명한 신뢰도를 갖춘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전해 듣기로 이전에는 소비재 마케팅 업무를 하셨다고요. 과거의 직무 경험이 브랜드 론칭과 운영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합니다.
P&G에서 프링글스 브랜드 ABM으로 일했고, 이후 월트 디즈니에서 디즈니랜드 프로젝트 시장 조사와 디즈니랜드 서울 사업 기획을 맡았어요. 아이웨어 브랜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디즈니로 이직하기 전 다녀온 규슈 여행이 계기가 됐는데요. 2004년도에 일본에서 아이웨어 브랜드 ‘조프(Zoff)’를 처음 보고서 충격을 받았거든요. 조프(Zoff)는 제품 기획, 생산, 유통을 브랜드가 직접 진행하는 SPA 방식을 최초로 도입했는데요. 안경을 이렇게도 판매할 수 있구나 싶더군요. 저는 마케터로서 고객의 관점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덕분인지 ‘조프’를 보고서 국내 시장을 들여다보니 오랜 시간 쌓여 온 고객들의 불만이 외면 당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웨어 브랜드를 재창업하면서 전과 다르게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하나의 시장이 생기는 과정에 대해서 많이 배웠죠. 소비자도, 공급자도 쌍방향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소재부터 기술의 수준까지 그에 걸맞게 수준이 올라가야 하더라고요. 산업을 구성하는 수 많은 요소들이 딱 맞아 떨어져야만 없었던 시장이 새로이 탄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브리즘은 3D 프린팅 기법과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함으로써 소비자의 ‘언맷니즈(Unmet Needs)’를 공략하고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바우하우스 격언이 떠오르더라고요.
말씀하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은 브리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 가치입니다. 저희는 취향보다는 최적화를 추구하죠. 광학적으로 가장 잘 볼 수 있도록 얼굴 형태를 분석하고 그로부터 얻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최적의 안경 디자인을 추천하는 시스템입니다. 안경 디자인은 소재부터 구조까지 면이 아니라 선을 디자인하는 일인데요. 디자인적으로 보수적인 영역인 만큼 차별화 시키는 것이 쉽진 않아요. 그런 점에서 안경 디자인은 디자인의 영역 보다는 오히려 에디팅의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출시 전이지만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비전 리포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흥미롭던데요.
시력 검사 과정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 말로 시력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 주잖아요.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근시, 난시, 원시 등 전문 용어 덩어리 뿐이에요. 검사에 대한 정보와 결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리포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브리즘이 지닌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동년 대비 시력의 상태, 노안의 진행 정도 등에 관한 리포트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거죠.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무엇을 산다고 해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3D 프린팅, AI 빅데이터, 비전 리포트 등 브리즘이 이끌어가는 혁신적인 행보에 비해 정작 오프라인 매장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는 철저하게 ROI(투자수익률)를 분석해서 매장을 열어요. 주로 지하나 2층에 자리하죠.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굳이 비싼 1층 자리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요. 무엇보다 기존 안경 산업의 악순환 구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오늘날 안경점을 보면 지역 거점 서비스가 되어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평일이 아닌 주말에만 손님이 몰리는데 이는 좋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원인이 돼요. 예약제를 고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눈에 잘 보이진 않더라도 저희는 부동산 비용을 최소화 하고, 대신 질 좋은 서비스를 고객의 시간에 맞춰 제공하는 것이 더 우선돼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리즘이 뉴욕에 진출한 이유
지난 4월 초에는 뉴욕에 1호 매장을 오픈했어요. 브랜드 론칭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국 진출을 겨냥했었다고 들었는데요. 브랜드 입장에서 미국 시장이 매력적이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에는 시장 지배력을 가진 토종 안경 회사가 없어요. 유럽에는 룩소티카(Essilor Luxottica), 사필로(Safilo) 등 이미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이 자리하고 있거든요. 국내와 비교해 미국의 안경 시장은 30배 규모이고, 영어권이라 문화적으로도 저희가 접근하기 훨씬 수월하죠. 더욱이 미국은 워낙 인종이 다양하잖아요. 그말인 즉 얼굴의 형태가 제각각 다르다는 거죠. 하지만 시장에 유통되는 안경은 여전히 백인에게 맞춰져 있는 경향이 강하고요. 브리즘이 아니면 광학적인 기능을 제대로 하는 안경을 쓸 수 없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고관여자가 많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특히 미국에서 안경은 의료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있거든요. 의사에게 시력 검사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서 안경사에게 가는 식이죠. 그만큼 안경에 대한 관심도와 수용도가 높아요. 물론 가격에 대한 인식도 다르죠.
여러 도시 중에서도 뉴욕을 선택한 배경도 궁금했습니다.
미국 서부는 테크 기반이라 산업적으로도, 또 지리적으로도 한국과 가깝지만 분산된 도시 구조를 지녔어요. 반면 뉴욕은 한 블록만 지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잖아요. 그만큼 인구 집중도가 높아서 브랜드 노출에 유리했죠. 세계적인 도시인만큼 인종적 다양성도 보장되어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브리즘이 시장에 진출하기에 최적의 도시였어요. 저희가 테크 기반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어서 관계자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편인데요. 브랜드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대중에게 선택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소비를 하게 만드는 동기는 결국 욕망이니까요.
1호 매장 이후의 계획들도 궁금합니다.
뉴욕을 시작으로 1년 내로 앱을 통한 브리즘 서비스를 미 전역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케어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모두 진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