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진: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으로 언어와 세대를 초월하다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스트릭트(d’strict)는 ‘디자인을 엄격하게’라는 철학으로 출발한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 아트 컴퍼니다. 2004년 웹 에이전시에서 시작해 ‘라이브파크’, ‘플레이 케이팝’을 거쳐 몰입형 미디어아트 브랜드 ‘아르떼뮤지엄’으로 성장했다. 공동 창립 멤버 이상진 부사장은 UX 기획자로 입사해 디스트릭트의 창의적 실험을 이끌어왔으며, 최근 뉴욕 첼시 피어에 아홉 번째 아르떼뮤지엄을 열며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의 세계관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Creator+]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진: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으로 언어와 세대를 초월하다

editor’s note

디자인을 엄격하게(design strict).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 아트 컴퍼니 ‘디스트릭트(d’strict)‘는 그 이름처럼 디자인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해 온 회사입니다. 2004년 웹 에이전시로 출발해  2012년 ‘라이브파크(LIVE PARK)’, 2015년 ‘플레이 케이팝(PLAY K-POP)’을 거쳐 오늘날에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브랜드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으로 더 잘 알려졌죠. 이 여정을 20년 넘게 함께해 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디자인 비전공자로 입사해 UX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고(故)최은석, 김준한, 이동훈 창업주와 함께 디스트릭트 창립 멤버 중 한 명인데요. 디스트릭트만의 창의적인 실험을 이끌며,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조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특히 2020년 제주에 개관한 ‘아르떼뮤지엄’은 그가 구축해 온 세계관의 결정체죠.

이후 강릉, 여수, 부산, 두바이, 라스베이거스, 청두 등 국내외로 빠르게 확산했고, 지난 9월 18일에는 아홉 번째 아르떼뮤지엄이 미국 뉴욕 첼시 피어(Chelsea Piers)에 문을 열었습니다. 글로벌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에 자리한 아르떼뮤지엄은 디스트릭트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을 테마로 이어온 여정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감각과 만나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 그리고 그 안에서 디스트릭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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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PLUS 1. New York Is Art

지난 9월 18일 아르떼뮤지엄 뉴욕이 개관했습니다. 앞서 국내에 4개 지점(제주, 강릉, 여수, 부산), 해외에 3개 지점(청두, 라스베이거스, 두바이)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오래전부터 뉴욕에 아르떼뮤지엄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셨다고요.

2020년 제주에 아르떼뮤지엄을 처음 열고, 그다음 해에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Waterfall-NYC’(2021)이라는 공공미술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그때 ‘언젠가는 꼭 뉴욕에 아르떼뮤지엄을 열어야겠다’라는 목표가 생겼어요. 뉴욕은 상징적인 도시잖아요. 세계적인 예술의 중심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성공해야 브랜드의 신뢰도와 인지도를 진짜로 검증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에게는 오랜 숙제와도 같은 셈이었죠.

아르떼뮤지엄 공간은 전시 특성상 넓은 부지가 필요할 텐데요. 뉴욕 한복판에서 그런 부지를 찾기 쉽지 않잖아요.

실제로 저희가 원하는 규모의 공간을 찾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뉴욕 도심에서 약 1,500평 정도의 상설 전시 공간을 세울 수 있는 대지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처음에는 빈 극장 같은 공연장 부지를 검토하기도 했어요. 팬데믹 영향으로 뉴욕의 극장들이 많이 비어 있었거든요. 규모는 적당했지만, 구조적으로 몰입형 미디어 전시를 구현하기엔 한계가 있더라고요. 대부분 다층 구조라 1층 전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저희가 원하는 공간감을 만들려면 기존 구조를 거의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더라고요. 벽면이나 층고, 동선 등에서도 제약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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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뉴욕은 과거 여객선 터미널로 사용된 뉴욕의 첼시 피어(Chelsea Piers) 부지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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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뉴욕은 약 1,500평 규모로 지난 2025년 9월 18일 개관했다.

그 이후 수소문 끝에 첼시 피어 부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원래 여객선 터미널로 쓰이던 곳인데, 높은 층고와 트인 구조 덕분에 미디어 아트를 구현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죠. 사실 그 주변에도 비상설 전시를 운영할 수 있는 임시 공간들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 단기 임대 형태였고, 저희가 생각하는 아르떼뮤지엄의 상설 전시 구조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몇 군데 검토했던 곳들도 규모나 동선이 탐탁지 않았고요. 그런 점에서 첼시 피어는 드물게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공간이었습니다.

미국은 규제와 절차가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아르떼뮤지엄 뉴욕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맞아요. 미국은 인허가 절차가 굉장히 복잡해요. 앞서 라스베이거스에 아르떼뮤지엄 공간을 준비하면서 처음 그 과정을 경험했지만, 뉴욕은 또 다른 나라처럼 새롭게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정이 정해지면 바로 공사에 들어가지만, 미국은 행정 절차와 안전 규정 검토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거든요. 특히 ‘인스펙션(inspection)’이라고 하는 인허가 과정이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직군이나 역할도 아주 세분되어 있는데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 매니저(PM)만 해도 전체 일정을 관리하는 PM이 따로 있고, 구축을 진행하면서 저희와 랜드로드와 커뮤니케이션 진행을 전담하는 PM이 따로 있어요.

또, 인허가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엑스퍼다이터(expeditor)’라는 직군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로비스트까지 고용해야 하는 상황도 생겨요. 저희로서는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이었죠. 말 그대로 자본주의가 가장 세분된 도시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절차가 기관이나 담당자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인데요. 어떤 기관은 “한 달이면 가능하다”라고 하고, 또 다른 곳은 “6개월은 걸린다”라고 하더라고요. 정보를 확인할 때마다 내용이 달라서 초기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절차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대응했습니다.

아르떼뮤지엄은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이라는 주제를 다룬 ‘FLOWER’, ‘BEACH’, ‘WAVE’, ‘STAR’ 등 대표작과 함께 각 도시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이번에도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신작을 선보이셨다고요.

신작 제목은 ‘New York Is Art’인데요. 미국 사람들도 그렇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떤 걸 정말 좋아하거나 멋있다고 느낄 때 ‘완전 예술이다’라고 하잖아요. 뉴욕은 그런 의미에서 선망의 도시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뉴욕 이즈 아트(New York Is Art)’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번 작품은 ‘자유(Freedom)’, ‘다양성(Diversity)’, ‘사랑(Love)’ 세 가지 테마를 담고 있는데요. 뉴욕이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키워드였고,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결국 ‘아트(Art)’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안에서는 뉴욕의 정서를 세 장면으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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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뉴욕에서 만날 수 있는 신작 ‘New York Is Art’

첫 번째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노래 ‘New York, New York’(1980)을 테마로 한 시퀀스예요. 황금빛 파티클이 뉴욕의 야경과 함께 흐르면서 도시의 찬란한 에너지를 시각화했죠. 두 번째는 ‘자유(Freedom)’ 파트로, 과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철골에 앉아 있던 노동자들의 흑백 사진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그 시대의 용기와 정신을 지금의 뉴욕으로 이어지게 재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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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New York Is Art’의 두 번째 파트 ‘자유(Freedom)’는 과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 철골 위에 앉아 있던 노동자들의 흑백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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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다양성, 사랑 세 가지 키워드를 담은 신작 ‘New York Is Art’

세번째는 다양성(Diversity)으로 뉴욕의 다양한 생활군상을 쉐도우의 움직임으로 표현했고, 뉴욕 지하철 풍경과 뉴욕의 현대미술을 대조해 패러디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은 ‘사랑(Love)’입니다.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도시의 풍경을 빛으로 연결하며,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사랑의 감정처럼 그려냈어요. 그 외에도 그래피티, 팝아트, 힙합 문화 등 뉴욕의 예술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곳곳에 녹여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다양성·자유·사랑’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편, 기존 작품들에서도 강조된 디테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르떼뮤지엄 뉴욕에서는 기존 작품에도 뉴욕스러움,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새로운 디테일을 많이 더했어요. 예를 들어 ‘FLOWER’와 ‘BEACH’는 인터랙션이 적용된 버전으로 선보이고 있어요. 관람객이 움직이거나 가까이 다가가면 꽃밭의 또 다른 주인인 다양한 생명체들이 빛을 내어 보이지 않던 존재가 드러나도록 설계했죠. 공간 안에서 관람객이 ‘움직임’ 자체가 작품 일부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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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뉴욕에서는 인터랙션이 적용된 버전의 작품 ‘FLOWER’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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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예요. 아르떼뮤지엄은 공간마다 다른 향을 사용하는데요. 현지 마스터 조향사와 협업해 두 가지 향을 새로 개발했습니다. ‘BEACH’ 작품 공간에는 뉴욕만의 향이 적용됐고, 입구와 ‘STAR’ 작품 공간에는 또 다른 향을 사용했어요. 아직은 뉴욕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으면 국내 전시장에도 확대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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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만의 향을 적용한 작품 ‘BEACH, NIGHT BEING’도 아르떼뮤지엄 뉴욕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사운드도 훨씬 세밀하게 다듬었습니다. 이날치의 장영규 음악 감독님이 전체 사운드 디자인을 맡아주셨어요. 영화적 감각을 지닌 분이라 공간의 리듬과 서사를 음악적으로 완성해 주셨습니다.

아르떼뮤지엄 뉴욕은 개관 한 달 만에 주말 평균 관객이 2천 명을 넘어섰어요. 뉴욕에서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있다면요?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객이든 관계자든 미디어아트에 대해 훨씬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국내에서는 아직도 ‘이건 미디어아트다’, ‘이건 순수 예술이다’처럼 경계를 나누려는 시선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그런 구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건 너무 멋지다”, “이런 방식의 예술도 흥미롭다”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죠. 낯선 것에도 포용력을 갖고, 자연스럽게 ‘경험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흥미로웠던 건, 관객층이 생각보다 다양했다는 점이에요. 해외 관광객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도시에서 온 관람객들도 많았어요. 뉴욕은 같은 미국인들에게도 ‘여행지’처럼 느껴지는 도시잖아요. 그만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찾아와 각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즐기고, 서로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분위기가 기억납니다.

PLUS 2. 아르떼뮤지엄,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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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제주
세어보니 2020년 아르떼뮤지엄 제주를 시작으로 해마다 국내외에서 1~2개 공간을 오픈하고 있더군요. 이처럼 아르떼뮤지엄을 빠르게 확장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디스트릭트가 2012년 ‘라이브파크’, 2015년 ‘플레이 케이팝’를 소개하면서 홀로그램, 미디어파사드, 풀바디 인터랙티브 등 새로운 기술들을 많이 선보였어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기술 회사라기보다 디자인 회사에 가깝거든요. 디스트릭트에게 기술은 결국 디자인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에요. 다만 관객들은 대개 기술적인 신기함을 먼저 주목하죠. 예를 들어 홀로그램도 반사 필름을 45도로 눕혀 영상을 허공에 띄워 보이게 하는 방식인데, 이건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기술이에요. 중요한 건 그 기술을 어떻게 ‘보이게’ 만드느냐, 다시 말해 시각적·공간적 연출을 통해 얼마나 새로운 감각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해요.

“기술은 누구나 살 수 있는 하드웨어지만, 그걸로 어떤 경험을 만들고, 어떻게 완성하느냐는 전혀 다른 영역이에요.”

하지만 시장에서는 기술에 1의 가치를 주면서 정작 콘텐츠에는 0.2 정도밖에 가치를 주지 않아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걸 어떻게 더 싸게 쓸 수 있을까’만 고민하다 보면, 결국 수준 낮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산업 전체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한때 홀로그램이 크게 주목받았다가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그래서 아르떼뮤지엄을 기획하면서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을 목표로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제대로 된 경험을 선보여야 사람들이 ‘디지털 미디어아트란 이런 것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 우리보다 더 좋은 걸 만든다면 상관없지만, 완성도가 낮은 걸 먼저 내놓으면 관객이 실망하고, 그 실망은 산업 전체로 번져요. 그런 점에서 디스트릭트가 아르떼뮤지엄을 빠르게 확장하는 일은 단순한 성장 욕심이 아니라, 이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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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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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여수
아르떼뮤지엄의 글로벌 누적 관객이 천만 명을 넘어섰어요. 티켓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한 번 방문한 관객이 다시 찾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재방문을 유도하는 전략도 있나요?

아르떼뮤지엄의 주제는 ‘자연’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어떤 분은 감동을 받고, 어떤 분은 위로받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이걸 만든 사람이나 기술 자체에 흥미를 느끼죠. 같은 작품이라도 각자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르떼뮤지엄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선택한 주제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나 사유의 시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재방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말씀처럼 아르떼뮤지엄이 ‘자연’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어요.

앞서 시도했던 ‘라이브파크’(2012)나 ‘플레이 케이팝’(2015)처럼 새로운 기술이나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면서 흥행에 실패했던 경험이 아르떼뮤지엄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됐어요. 그때 느꼈던 게 소재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를 소비하는 관객층이 한정적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자연으로 방향을 잡게 됐습니다.

“꽃이나 물, 빛 같은 자연은 언어나 세대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감정적으로 닿을 수 있으니까요.”

디스트릭트가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색깔이 느껴져요.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점을 두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자연을 바라볼 때는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내고, 그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본질적인 면을 찾아내는 데 집중합니다. 예를 들면 ‘FLOWER’에서는 줄기나 나무 같은 부수적인 요소는 모두 제외하고, 꽃 자체의 가장 예쁜 부분만 보여주는 식이죠. ‘WATERFALL’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VFX로 표현하는 폭포라면 바위나 연기, 물안개 같은 요소가 함께 있어야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저희는 그런 걸 다 제거했어요. 오직 물줄기 그 자체, 떨어지는 에너지와 형태만 남겼습니다. ‘BEACH’ 역시 바다의 모래나 주변 풍경이 아니라 파도와 물결의 움직임 같은 본질적인 부분만 집중적으로 보여주죠. 이렇게 핵심적인 요소만 남겼을 때, 관객들은 익숙한 자연을 전혀 다르게 느끼는 거죠. 단순히 ‘예쁘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인지 모르게 시선을 멈추게 되는 감정이 생기거든요.

말씀하신 ‘본질’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스크린의 형태나 위치 같은 요소도 감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관객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작품 설치 환경에 두는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을 설계할 때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크기와 구조를 달리해요. 예를 들어 ‘WATERFALL’은 저희가 만든 공간 중 가장 높은 곳에 배치합니다. 상하좌우가 모두 유리로 된 유일한 공간인데, 아무리 반사 효과를 줘도 실제로 물이 떨어지는 듯한 압도감을 느끼려면 최소 6미터 이상은 되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워터폴은 항상 6미터 이상 높이에서 설치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FLOWER’는 전체를 아우르기보다는 실제 꽃밭처럼 낮고 넓은 공간이 어울려요. 대체로 4미터 정도의 높이에, 넓게 펼쳐진 형태로 배치합니다. 작품의 주제와 감정에 맞게 공간의 규모와 형태를 조절하면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PLUS 3. UX 기획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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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창립 멤버인 이상진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 비전공자인 그는 디스트릭트 입사 후 UX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4년 고(故) 최은석, 김준한, 이동훈 창업주와 함께 디스트릭트의 창립 멤버시라고요.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부사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특히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의 선구자였던 최은석 대표님과의 인연이 깊다고요.

당시 저는 다른 회사에 3개월가량 다니고 있었는데, 그 회사에 계시던 최은석 대표님의 지인분이 저한테 ‘여기보다는 최은석 대표 밑에서 배우면 훨씬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다’라고 권해주셨어요. 사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고, 최은석 대표님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인지도 몰랐죠. 처음 면접 보러 갔을 때 본 대표님이 아직도 기억나요. 제가 생각했던 상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노란 머리에 하늘하늘한 기지바지를 입고 계셨는데, 그 자체로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람이었어요. 

면접 내용도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제 전공이나 지식을 묻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당시가 ‘웹 에이전시’라는 개념이 막 생겨나던 시기라서, 애초에 물어볼 ‘전문적인 질문’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을 해본 사람도 거의 없었거든요. 대학을 갓 졸업한 제가 알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을 테고요. 그래서 대표님은 제 지식보다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대표님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직접 배웅을 해주시면서 90도로 인사해 주신 것도 인상 깊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어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으셨지만, 첫 커리어를 웹 디자인 분야에서 시작하셨어요. 당시 맡은 업무는 어떤 거였어요?

정확히는 디자인보다는 기획에 가까웠어요. 지금으로 치면 UX나 IA(Information Architecture), 그러니까 화면의 구조와 동선을 설계하는 역할이었죠. 예를 들어 인테리어에도 설계와 시공이 있듯, 웹에서도 디자인 이전 단계의 설계가 필요했어요.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거의 없던 시기라 저희가 그걸 처음으로 체계화해 나갔던 것 같아요. 삼성물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요. 디자인 없이 화면 구조와 콘텐츠 배치를 기획하는 일만으로도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정도였죠. 그때의 경험이 디스트릭트의 초창기 디지털 설계 철학을 세우는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디스트릭트는 웹에이전시로 출발한 1.0 시기부터, 뉴미디어 프로젝트를 확장한 2.0, 그리고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구축한 3.0 시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 왔습니다. 여러 도전 속에서 ‘퀀텀 점프’를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전환점은 무엇이었다고 보세요?

디스트릭트의 큰 전환점 중 하나는 2009년에 진행했던 ‘삼성 모바일 제트(JET)’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당시만 해도 웹 에이전시 성격이 강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광고나 이벤트 같은 오프라인 캠페인 영역에 도전했거든요. 웹 기반에서 벗어나 공간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 비즈니스를 시도한 첫 사례였죠. 그때부터 디스트릭트는 단순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회사를 넘어, 물리적인 공간과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한 ‘경험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아르떼뮤지엄으로 이어지는 기술, 시스템, 감각, 디자인, 콘텐츠 등의 ‘근육’을 그때부터 다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으세요?

클라이언트인 삼성전자와의 미팅에서 원래 최은석 대표님이 프레젠테이션하시기로 했는데, 외장하드 반입 문제로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저랑 다른 기획자 두 명이 대신 발표를 맡게 됐죠. 문제는 저희가 제안했던 ‘홀로그램 연출’을 실제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리서치만 해서 제안했는데 그게 채택된 거죠. 순간 ‘이거 큰일 났다’ 싶었어요. 그 뒤로 국내외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며 홀로그램 기술을 검증했어요. 기대와 달리 대부분 원하는 수준이 아니었죠. 그러다 영국의 뮤전(Musion)이라는 회사를 찾아가 직접 보고 나서야 ‘이거다’ 싶었어요. 다행히 뮤전의 기술이 우리가 구상했던 방향과 잘 맞았고, 그때부터는 일단 질러놓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해결해 나갔어요. 게다가 무대 디자인도 직접 했거든요. 조명이나 무대 구조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는데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하나씩 만들어갔어요.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죠.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고…. 그게 계속 반복이었어요. (웃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는데,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용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 시행착오가 오히려 큰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PLUS 4. 혁신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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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와 아르떼뮤지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게기가 된 작품 ‘WAVE’
디스트릭트의 연대기를 보면 늘 새로운 디자인 비즈니스에 도전해 왔어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돌아가신 최은석 대표님이 늘 말씀하셨던 게 ‘지속 가능한 디자인 회사’였어요. 단발적인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같은 문화와 퀄리티가 이어지는 회사요. 나중에 ‘디스트릭트 출신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되는 게 저희의 바람이에요. 결국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그 이름을 더 오래, 단단하게 남기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한편, 여러 번의 도전과 위기를 지나오면서, 디스트릭트가 함께하고 싶은 멤버의 모습도 점점 더 또렷해졌을 것 같아요.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디스트릭트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맡은 일이 크든 작든, 주어진 역할 안에서 스스로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 말이죠. 저희가 하는 일은 결과가 늘 보장되지 않아요. 어떤 프로젝트는 잘되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사람, 끝까지 해보려는 사람이 결국 디스트릭트에서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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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플러스와 인터뷰 중인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현재는 아르떼뮤지엄 조직을 이끄는 부사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하고 계세요. 조직과 창작, 두 역할을 어떻게 조율하고 계세요?

두 역할이 공존한다는 게 쉽진 않아요. 부사장의 역할은 결국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기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하고, 팀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프로젝트마다 언제까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명확히 약속하고, 그 일정을 최대한 지키려 합니다. 또 구성원들이 불필요한 행정이나 절차에 신경 쓰지 않고, 본연의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바로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는 조금 다릅니다. 완성도를 끝까지 지키는 일, 그리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죠. 때로는 일정과 퀄리티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엔 일단 ‘오픈’을 목표로 삼고 이후 수정·보완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도 팀이 스스로 미진한 부분을 자각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두 역할의 본질적인 방향은 같아요. 약속을 지키는 동시에, 그 안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 영역에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죠. 지난 9월 30일에는 오픈AI가 영상 생성 인공지능인 ‘소라2(Sora2)’도 공개했고요. 디지털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디스트릭트는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크죠. 저는 결국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는 ‘그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작품을 봤을 때 ‘이건 그 사람이 만든 거야’하고 떠오르는 고유한 감각이 있어야 진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결국 중요한 건 기술을 ‘부리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기술에 휘둘리면 창작의 본질도 금방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인공지능 기술은 유용하고 편리하지만, 그런 고민의 시간을 건너뛰게 만들죠. 결국 비슷한 결과물만 쏟아지면서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이상한 평준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팀 내에서 시안을 만들 때 AI가 가져온 결과물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을 비교해 보면, 감정의 결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이건 AI 쓰지 말고 직접 다시 만들어보자’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디스트릭트 내부에서는 조직별로 활용 방식이 조금 달라요. 아르떼뮤지엄 디자인팀은 주로 아이데이션 단계에서 AI를 참고하는 정도예요. 예를 들어 파티클 효과나 동물의 움직임 같은 짧은 클립을 참고할 때는 AI를 적극적으로 쓰지만, 본격적인 디자인이나 영상은 여전히 직접 제작합니다. 반면 LED.ART처럼 빠른 생산과 다양한 변형이 필요한 팀은 AI를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결국 중요한 건 ‘어디까지 사람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LUS LIST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영감을 준 취미 3

-잡초 뽑기

가드닝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배운 건 ‘잡초와 잔디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어떤 게 잔디이고 어떤 게 잡초인지 알 수 없었다. 세 가닥이 잔디, 두 가닥이 잡초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잔디인 척하는 잡초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봄이 되면 잔디보다 먼저 푸르러지는 잡초처럼, 회사도 어려울 때는 누가 진심으로 함께하는 사람인지 쉽게 보이지만, 잘될수록 구분이 어렵다. 잔디처럼 보이지만 뿌리째 뽑고 나면 잡초였던 경우도 있다. 이상진 부사장은 “겉모습보다 뿌리를 봐야 한다”라는 깨달음을 이 경험에서 얻었다고 말한다.

-가지 치기

나무마다 가지를 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는 회사를 나무에 비유하게 되었다. 소나무류는 옆 가지를 쳐줘야 더 곧게 자라고, 과실수는 잘 자라는 가지의 끝을 잘라줘야 옆으로 퍼진다. 디자이너마다 성향이 다르듯, 누군가는 스스로 자라게 내버려두어야 하고, 누군가는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독특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가지치기의 원리를 알아야 해요. 누군가는 잘라야 더 자라고, 누군가는 놔둬야 자라죠.” 그가 조직 안에서 포용력과 균형감을 키워온 이유다.

-영양제 주기

가드닝 3년 차가 되자, 흙의 영양분이 떨어지면서 꽃이 피지 않았다. 마그네슘이 필요한 식물도 있고, 칼륨이 필요한 식물도 있었다. 이 단순한 사실이 그에게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비유가 되었다. 누구나 필요한 ‘영양소’가 다르고, 성장 속도도 다르다는 것. “잡초도, 나무도, 잔디도 각자 자라는 이유가 달라요. 회사도 그래요. 한 가지 방식으로만 키울 수 없어요.” 그에게 가드닝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조직을 이해하고 사람을 돌보는 방식이 되었다.

TIPPING POINT

“기술은 누구나 살 수 있지만, 경험의 완성도는 사서 얻을 수 없다.” 디스트릭트의 부사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진은 기술보다 디자인의 본질을 먼저 이야기한다. 웹 에이전시로 출발했던 회사가 몰입형 미디어아트 브랜드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디자인은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감각의 진화다. ‘FLOWER’, ‘BEACH’, ‘WATERFALL’로 이어진 시리즈는 자연의 본질만 남기는 실험이었고, 뉴욕 첼시 피어에 문을 연 아르떼뮤지엄은 그 실험이 한층 깊어진 무대다. 그는 기술을 다루는 대신 감각을 설계하며,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디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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