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물건의 문장들 ③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하우스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 소소문구 & 웬아이워즈영 & 쿠오뜨

'읽는다'는 행위는 결국 손끝에서 완성된다. 책 위에 머무는 시선, 페이지를 고정하는 문진,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까지. 이 모든 감각이 모여 한 편의 ‘독서 경험’을 만든다. 책과 함께 머무는 작은 오브제, 글을 쓰는 행위를 감싸는 도구, 일상의 리듬을 조용히 만들어주는 물건들. 읽는 순간을 더 아름답게 채워주는 브랜드 소소문구, 웬아이워즈영, 쿠오뜨가 각자의 방식으로 ‘물건이 건네는 문장’을 전한다.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물건의 문장들 ③

Text 05. 쓰는 사람을 위하여, 소소문구

Interview with 유지현 실장, 윤혜원 콘텐츠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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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문구’ 브랜드를 소개해 주세요. 어떤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나요?

소소문구는 #쓰는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듭니다. 쓰는 사람이란 스스로 선택한 터, 지면(紙面)을 곁에 두고 꾸준히 쓰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의 터에는 사소한 끄적임부터 구체적인 설계까지 다양한 생각의 씨앗이 자라고 있죠. 소소문구는 그 씨앗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쓰는 사람과 함께 도구를 연구하고 기록의 방식을 고민합니다.

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만날 수 있나요?

​이번 도서전에서는 하루의 리듬에 맞춰 쓸 수 있는 다양한 문구들을 선보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쓰는 사람의 페이스에 맞춘 기록 도구들로 각각의 시간에 어울리는 ‘쓰기 루틴’을 제안합니다. 아침에는 무의식의 흐름을 써내려갈 모닝 북, 낮에는 일정과 업무를 정리할 하프 다이어리, 저녁에는 두세 줄의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할 디깅 다이어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디깅 노트, 문덕 스탠드 체크리스트, 양면 코너 책갈피 등 기록의 순간마다 곁에 둘 수 있는 도구들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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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중학생 때 한 배우가 직접 쓰고 그린 책이 있었어요. 그 책 속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 방 벽지에 하나하나 따라 그렸죠. 결국 부모님이 방을 다시 도배하셨지만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계속 새롭게 그리고, 써 내려가는 일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게요. 벽지를 가득 채우던 그 시절처럼, 지금도 비어 있는 지면을 채워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방에는 언제나 새 스케치북이 쌓여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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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어느 북토크에서 책의 한 구절을 작가님이 아닌, 삽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분이 직접 읽어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으니 같은 문장인데도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은 문장을 만나면 꼭 소리 내어 읽어보게 됐어요. 물론 대중교통 안에서는 참습니다.(웃음)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한수희, AROUND

산책하면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 내적인 삶이 없다면 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외적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러니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삶의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내적인 삶이 얼마나 견고한지에 달려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처럼, 언제까지고 그렇게 믿고 싶다.

살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을 꼽자면, 저는 주저 없이 ‘영화’라고 말할 거예요.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관계의 결, 사랑의 형태를 영화 속에서 배워왔거든요. 수많은 캐릭터들을 통해 나를 비춰보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10년 넘게 책과 영화에 대한 산문을 써온 한수희 작가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작가님은 스크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 안으로 끌어와 사유한 뒤 다시 언어로 다듬어내는 분이에요. 그 내면의 힘은 때로 영화보다 더 큰 울림을 주죠.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의 세계를 끝까지 탐색하려는 태도. 저는 그 자세를 닮고 싶어서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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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3권을 큐레이션 한다면요?

① <1월의 책 죽고 싶은 김승일>, 김승일, 베드베드북스
반차를 내고 들른 연남동의 한 독립서점에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책이었어요. 마침표 하나 없이 이어지는 긴 시를 읽다 보니, 시인과 나의 호흡이 같은 속도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김승일 시인의 시집과 웹페이지의 글들을 찾아 읽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믿어요.

② <피프티 피플>, 정세랑, 창비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소설이에요. 각자의 삶이 조금씩 맞닿으며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경계가 서서히 희미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단어의 온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에요.

③ <개별꽃>, 구정연·김뉘연·린다 판 되르선·박가희·신해옥 외 1명, 화원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 믿던 시절, 디자인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에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의미와 경험이 확장되는 과정은 지금도 늘 새롭습니다. 관찰의 태도를 디자인의 언어로 풀어낸 이 책은, 저에게 처음으로 ‘나는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 책이었습니다.


Text 06. 문장을 기록하고 수집하다, 웬아이워즈영

Interview with 최현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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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아이워즈영’ 브랜드를 소개해 주세요. 어떤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나요?

‘내가 어렸을 때(When I Was Young)’를 뜻하는 브랜드 웬아이워즈영은 어린 시절 우리가 접했던 쉽고 단순한 형태, 선명한 원색을 바탕으로 제품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물건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하거나, 활기 넘치는 컬러와 단순한 그래픽 속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모두의 일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대표 아이템으로는 볼드한 그래픽이 돋보이는 무지노트 시리즈 ‘MY OWN BOOK’, 100가지의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수집할 수 있는 ‘EPISODE’ 다이어리가 있어요.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각을 현대적인 디자인 언어로 풀어내며, 쓰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에너지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만날 수 있나요?

페어가 열리는 시기가 연말이라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어울리는 달력과 다이어리를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또 도서전의 분위기에 맞춰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인상적인 구절을 수집, 기록할 수 있는 노트류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에요.

대표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 또는 아이템을 꼽자면요?

저는 어릴 때 독서량보다는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량이 더 많은 편인데요. 그래서 추억이 있는 책보다는 아이템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바로 부모님께서 사 주셨던 MP3와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 듣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요즘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감성을 축적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저는 항상 필사 노트와 펜을 곁에 두는 편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써온 노트들을 지금까지 한 권도 버리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는데요. 간 노트들을 어떻게 활용했나 살펴보니, 공부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필사하는 방식으로 소모를 더 많이 했더라고요. 그때 옮겨 적은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니 여러모로 삶의 자양분이 된 것들이 있어서 지금도 책을 읽을 때에는 노트와 펜을 늘 준비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나가오카 겐메이, 안그라픽스

장벽은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다.

이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던 터라 ‘디자인’이라는 세계를 잘 몰랐을 때,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어요. 직업에 대한 고민이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시선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이후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에도 일의 기준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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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3권을 큐레이션 한다면요?

①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통찰하게 만들어 준 책

②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더스토리​
20대 초반에 읽었던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일과 삶에 영향을 준 책

③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릭 루빈, 코쿤북스​
창작에 대해 헤매일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책


Text 07. 도구의 무대를 만드는 브랜드, 쿠오

Interview with 김기범, 김유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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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T NOMAL TEXT
‘쿠오뜨’ 브랜드를 소개해 주세요. 어떤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나요?

쿠오뜨(QUOTT)는 ‘인용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Quote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상황과 쓰임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되는 인용구처럼, 저희 제품도 사용자의 공간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쿠오뜨는 사용자의 일상적인 물건들이 놓이는 ‘자리’와 ‘공간’을 위한 오브제들을 주로 제작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무대’라고 부르는데요. 말하자면 사용자의 취향과 도구들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들의 매력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무대’를 만드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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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만날 수 있나요?

쿠오뜨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며 ‘세상에서 가장 큰 책갈피’라는 별명을 얻은 ‘북레스트 시리즈’ 를 비롯해 필사·독서·필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오버랩 필사대’, 다양한 책과 지류를 나만의 방식으로 수납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그리드 박스’, 현재 클라우드 펀딩 중인 신제품 ‘무드 도어’까지 브랜드의 대표적인 제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대표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어릴 적’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입니다. 혼자 시간을 보내던 제 일상과 책 속 ‘제제’의 삶이 닮아 있다고 느꼈고 그 안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아마 그때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일에 익숙해진 게요. 어쩌면 지금 ‘쿠오뜨’를 운영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제품 역시 우리만의 세계관 안에서,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된 결과물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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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예전엔 그저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책 읽기를 즐겼는데, 2년전부터 빈티지 만년필에 관심이 생겨 컬렉팅을 하다보니 ‘필사’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습니다. 적게는 30년, 많게는 100년이 넘은 만년필에 좋아하는 잉크를 채워 넣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다가 가슴에 남기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면 간단하게 그 문장을 종이에 옮겨두는 일이 참 좋습니다. 필사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는 행위’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러너가 되지 않겠습니까?” 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지금의 나이길 부탁하거나 바라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바람과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우연히 찾아올 기회를 위해 나만의 선택지를 많이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다짐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가 좋아져서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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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3권을 큐레이션 한다면요?

①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에밀리 디킨슨, 민음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저 두가지를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②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삶의 무거움와 가벼움 사이에서 어디에 나를 위치할 수 있을까. 매번 달라지는 저 두 가치의 중심점을 찾아 시소 놀이하는 삶에 대해 끊임없는 영감을 줍니다.

③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민음사 ​
‘고도는 언제 오냐’고 묻는 질문에 ‘사과는 정말 파랗다’고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사과가 파랗다는 사실과 그 파란 사과의 의미와 가치를 그 어느때보다 새롭게 떠올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을 때 항상 읽는 희곡입니다.


내가 조우한 문장들, <더 텍스트 The Text>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감각의 문장들 ①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사유의 문장들 ②
▶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물건의 문장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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