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감각의 문장들 ①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하우스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 디자인하우스 & 을유문화사

디자인과 예술, 그림책 속 문장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언어다. 시선이 머무는 색과 형태, 손끝에 닿는 질감, 한 장의 여백이 주는 여운까지. 디자인은 결국 경험으로 완성된다. 일과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디자인하우스 그리고 예술과 사유의 깊이를 전하는 을유문화사가 각자의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읽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감각의 문장들 ①

Text 01. 일과 삶을 디자인하다, 디자인하우스

Interview with 김선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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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에서는 어떤 책을 선보이고 있나요?

디자인하우스는 ‘일과 삶을 디자인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는 키워드를 꼽자면 ‘나로 살기’가 아닐까 싶어요. 자기다움이란 무엇인지,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저 역시 늘 고민하거든요. 인생은 결국 자신의 취향과 기호, 재능을 찾아가는 여정이자나요. 그렇게 스스로 알아가다 보면 ‘아,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살고 싶구나’하는 순간이 찾아오죠.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가 일하고 사는 방식이 하나의 참고가 될 때가 있는데, 그때 펼쳐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우리가 만드는 ‘레퍼런스 북’이에요. 결국 저희는 독자들이 자신만의 워크 스타일과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 한 방울을 더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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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에서 책의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이 있을까요?

요즘은 인터넷 기사나 SNS 피드, 숏츠, OTT 같은 콘텐츠가 너무 많잖아요. 굳이 책을 찾지 않아도 손끝에서 수많은 정보와 자극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도 종이책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책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독자에게 사려와 숙고의 여지를 던지는 깊이 있는 지식이에요. 콘텐츠가 즉각적인 자극과 재미를 준다면, 책은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죠. 그래서 저희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 읽히는 주제, 대중이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저자만의 시선과 전문성이 담긴 콘셉트를 중심으로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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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책과 문장을 만날 수 있나요?

저희 디자인하우스가 만드는 책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일과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이번 도서전에서도 그런 흐름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책과 문장들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브랜드 기획자, 현대미술가, 사업가, 디자이너 등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과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들의 때로는 치열하고, 또 한편으로는 멋진 삶의 장면을 ‘문장’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편집장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지금까지의 인터뷰 흐름과는 조금 결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문학을 많이 읽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을 뽑자면, 추리 소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였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 어머니가 동네 서점을 하셨는데, 거기서 ‘기암성’편을 읽고 완전히 빠져버렸거든요. 결국 엄마한테 전집을 사 달라고 졸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고등학생 때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졌어요. <바보 이반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백야> 같은 짧은 단편부터 시작해 <안나 카레니나>와 <죄와 벌>까지 다 읽었죠. 심지어 그 두 작가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네 번이나 여행했어요. 대학교 때 한 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세 번 더요. 학창 시절에는 늘 문학 코너만 기웃거렸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결국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네요.

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제 독서 필수템은 인덱스 테이프예요. 저는 책에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편이 아니라 최대한 새 책처럼 오래오래 깨끗하게 보관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읽다 보면 밑줄을 긋지 않고는 못 지나칠 만큼 좋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 인덱스 테이프가 정말 유용해요. 브랜드명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토야(Itoya)’에서 판매하는 북마크형 인덱스 테이프를 특히 좋아해요. 책에 끼워두기도 편하고 디자인도 깔끔해서 도쿄에 갈 때마다 잔뜩 사 오는 ‘쇼핑템’이죠. 게다가 본업상 교정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는 일할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생존템’이 되어버렸어요.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① <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 어크로스

어떤 찰나들을 포착하고 기록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의 결점을 통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냈던 저 순간과 같은. 그런 알아봄의 경험은 정의를 구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하등 쓸모를 갖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되어줄 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 모른다.

이 책은 작가가 신문에 연재한 50여 편의 칼럼을 엮은 작품이에요. 이소영 작가님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고 해요. 자식을 잃은 부부에게 커피와 롤빵을 내어놓는 소설 속 빵집 주인처럼, 세상의 고통을 완전히 덜 순 없어도 잠시나마 마음을 데워줄 수 있다고 믿었죠. 그래서일까요, 책의 부제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에요.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많지만, 그중 한 단락만 소개해보려 합니다.

②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하늘을 나는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 나가는 겁니다.

6년 전, 이 책의 초판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어요. 서점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는데, 읽고 나니 ‘라틴어 수업’은 결국 인생을 배우는 이야기더군요. 짧지만 깊게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한 단락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③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디자인하우스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저희 디자인하우스의 스테디셀러 〈마지막 거인〉입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그 물건을 사들인 건, 부두를 산책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로 시작해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죠. 그림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 편의 동화가 이렇게 깊이 있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에요.


Text 02. 오래 지속하는 가치를 전하다, 을유문화사

Interview with 함근아 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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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는 어떤 책을 선보이고 있나요?

을유문화사는 1945년 창립 이후 80년 동안 한국 출판의 흐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출판사입니다. <현대 예술의 거장> 같은 예술서부터 <암실문고> 등 문학과 에세이, 깊이 있는 교양 서적까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지적인 울림을 전해왔죠.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며, 예술을 사유하고 문화를 기록하는 출판사로 자리매김해 온 을유문화사는 책을 통해 독자에게 ‘사유의 경험’을 전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예술과 철학, 그리고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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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타깃에 맞춰 주제를 선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전문 분야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노하우,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을유문화사는 특정 유행이나 시장의 빠른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읽힐 수 있는 사유와 미감을 책 속에 담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이는 예술서와 교양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보이면서도 흔들림 없이 정체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독자의 취향과 시장의 흐름은 빠르게 변화하지만, 을유문화사가 생각하는 출판의 책임은 결국 ‘문화의 지속성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사 안에서 그 책이 어떤 자리와 시간을 갖게 될지까지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에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가치를 중심에 두되, 현재의 독서 경험과 문화적 감수성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것. 그 균형이 우리의 차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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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책과 문장을 만날 수 있나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을유문화사의 책들은 단순한 ‘디자인 서적’의 범주를 넘어 사유의 방식과 시선을 다루는 책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을유문화사는 오랫동안 예술과 인문, 디자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교차점에 주목해 왔는데요. 이번 큐레이션 역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계를 이해하는 감각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두었어요. 특히 이번 전시에는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디자인을 ‘형태’가 아닌 ‘태도’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는 80년간 을유문화사가 지켜온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어요. 유행을 좇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감각과 다시 읽히는 사유를 담아내려는 출판 철학이 이번 큐레이션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팀장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을유세계문학전집 중에서 한 권을 고르자면, 저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선택하고 싶어요. 이 책은 제게 처음으로 ‘사람은 언제든 이해되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작품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나 고립감, 그리고 그 상태로도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마음을 언어로 처음 마주했던 경험이었죠. 어릴 땐 그저 이상하고 낯선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삶의 결이 두꺼워질수록 “나는 지금 어느 방에서 어떤 모습으로 버티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조용히 따라오더군요. 이 책은 제가 계속 책을 만드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책은 종종 우리가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대신 말해주고, 혼자인 줄 알았던 마음이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이미 기록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하잖아요. 저에게 <변신>은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를 가르쳐 준 책이에요. 그 감각은 지금도 제 안에 살아있어요. 마케팅을 위한 한 문장을 고를 때나 한 권의 방향을 고민할 때,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고 싶은지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기준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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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책을 읽을 때 저는 늘 작은 조명과 인센스를 켜요. 밝은 조명보다 손이 닿는 곳만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좋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여백이 생기고, 그 안에서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거든요. 인센스는 향보다는 ‘숨을 고르는 시간’에 더 가깝습니다. 바쁜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읽고 있는 한 문장에 마음을 붙이는 일. 저에게 독서는 무엇을 더 배우는 행위라기보다 잠시 멈추고 머무는 시간에 가까워요. 작은 조명 하나 향 하나만으로도 책이 제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를 만들고 그 시간이 제 안으로 천천히 스며듭니다.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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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리스펙토르의 시간>, 엘렌 식수, 을유문화사

글쓰기란 신비를 건드리는 것이다. 신비를 짓밟아 진실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말의 끝으로 조심스레 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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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을유문화사

기억의 잔해 위에 서 있는 한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잊히지 않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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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리커버링>, 레슬리 제이미슨, 문학과지성사

부서진 순간들조차 삶의 일부로 다시 끌어안는 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회복의 기록.


내가 조우한 문장들, <더 텍스트 The Text>
▶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감각의 문장들 ①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사유의 문장들 ②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물건의 문장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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