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사유의 문장들 ②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하우스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 녹색광선 & 아침달
고전 소설과 시, 산문 속 문장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한 사유의 언어다. 오래된 문장들은 인간의 본질을 묻고,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조용히 일깨운다. 이번 섹션에서는 언어의 깊이와 시간의 무게를 전하는 녹색광선과 아침달이 각각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문장, 오래 남는 문장’을 소개한다.

| 오는 11월 12일부터 16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는 디자인하우스가 기획한 특별 전시 〈더 텍스트 The Text〉가 함께 열린다. 이번 전시는 일상과 삶에 영감을 주는 책 속 문장들을 모아, 활자가 지닌 감정의 깊이를 전한다. 우연히 만난 한 문장은 마음을 위로하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책은 그렇게 사유의 속도를 늦추며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더 텍스트〉는 자극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읽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환기한다.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을유문화사, 아침달, 녹색광선, 소소문구, 웬아이워즈영, 쿠오뜨가 참여하며, 읽는 경험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제안한다. 전시 공간 속에서는 문장이 감정의 결로 시각화되며, 활자가 여전히 우리의 사유와 정체성을 이루는 언어임을 보여준다. |
Text 03. 책이 남기는 텍스트의 온도, 녹색광선
Interview with 박소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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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은 어떤 책을 선보이고 있나요?
‘녹색광선’이라는 이름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광선〉에서 가져왔어요. 아주 맑은 날, 일몰 직전에 잠깐 보이는 희귀한 녹색빛을 뜻하죠. 영화 속 주인공이 그 흔치 않은 빛을 보기 위해 끝없이 찾아 헤매는데, 저희도 그런 마음을 출판사 이름에 담았어요. 쉽게 볼 순 없지만 애서가라면 한 번쯤 만나고 싶은 그런 책. 물성과 내용이 모두 흔치 않게 빛나는 책 말이에요. 저희는 ‘가치 있는 것은 아름답게, 아름다운 것은 가치 있게’라는 모토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별한 책을 만나고 싶은 애서가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담은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책 커버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여러 소재 중 패브릭 커버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품별로 컬러를 선정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저희는 책을 만들 때 패브릭 표지를 통해 손끝으로 느껴지는 물성과 내용, 형태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독자가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이건 찾던 책이야’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 즉 그 감각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부터 읽는 감각 전체까지 녹색광선이라는 이름처럼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흔하지 않은 소재인 패브릭을 선택했습니다. 초역 원고를 받아 읽다 보면 떠오르는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색을 패브릭 컬러로 반영합니다. 어떤 책은 원고를 읽자마자 색이 바로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책은 한참 숙고 끝에 결정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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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책과 문장을 만날 수 있나요?
이번 도서전에서는 ‘사랑의 여러 얼굴’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선별했습니다. 구체적인 사랑의 설렘과 욕망 그리고 이별을 다룬 〈패배의 신호〉, 첫사랑을 통해 고독과 환멸을 경험하는 이야기의 〈아름다운 여름〉, 어느 순간 놓아버려야 하는 사랑을 그린 〈셰리〉까지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풀어낸 책들로 골라 보았는데요.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복합적인 감정이지만 모든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마주한 사랑의 이야기 위에 독자 각자의 경험을 겹쳐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표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저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은, 일곱살 때 선물로 받았던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에요. 아버지께서 헌 책방에서 1978년판 전집을 사다 주셨는데요. 본문 앞에 배치된 컬러 삽지와 양장으로 제작된 방식, 일종의 시리즈 물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까지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책에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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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습관적인 행동이나 곁에 두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책 읽을 때 가장 유용한 사물은 ‘문진’ 아닐까 해요. 저는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을 출간했을 때 굿즈로 함께 제작했던 유리 문진을 지금도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녹색광선
잠시 후 압생트 풀밭에 몸을 던져 그 향이 몸에 배게 할 때, 나는 모든 편견에 맞서 진리를 실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그 진리는 태양의 진리이고, 또한 내 죽음의 진리일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 삶. (P.23)
가장 사랑하는 문장 하나만 소개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소개한다면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결혼 여름> 속 문장을 소개할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는 문장이거든요.
Text 04. 일상에 곁을 내어주는 문학, 아침달
Interview with 이기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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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은 어떤 책을 선보이고 있나요?
아침달은 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삶과 일상의 곁에서 조용히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2018년 유희경 시인의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아침달 시집 1)을 시작으로 김소연 시인의 <i에게>(아침달 시집 9)까지 총 아홉 권의 시집을 같은 날 동시에 펴내며 본격적으로 아침달이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알렸어요. 아침달은 등단과 비등단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의 작품을 발굴해 ‘아침달 시집(시인선)’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동시에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안의 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문학 작품의 저변을 계속 확대하면서 모두의 일상을 더 의미 있게 가꾸는 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아침달은 일상에 곁을 내어주며, 신선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문학을 꿈꿉니다.
여러 장르 중에도 시, 특히 한국 시에 집중하여 소개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시집을 잘 만들어온 좋은 출판사들이 이미 많이 있지만, 전체 출판 시장으로 보면 여전히 시집을 꾸준히 내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아침달이 시에 집중하게 된 건 단순히 대표님이 시를 좋아하셨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시’라는 장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가 소외된 영역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가 되길 바랐어요. 그 과정에서 김소연 시인께 많은 자문을 받으며 새로운 시의 흐름을 고민할 수 있었고 기존과는 결이 다른 시집들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편집팀과 함께 기획하며 새로운 시인을 발굴하는 일 역시 아침달의 중요한 축이 되었죠. 요즘은 시가 독자들에게 한층 가까워지고 ‘텍스트힙’이라 불리는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한 점도 반갑게 느껴집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시를 읽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세상은 훨씬 흥미로워질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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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획 도서전 <더 텍스트 The text>에서는 어떤 책과 문장을 만날 수 있나요?
이번 도서전에서는 아침달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집과 산문집을 균형 있게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근간과 신간, 그리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를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김소연 시집 <i에게>와 이은규 시집 <무해한 복숭아>는 아침달을 오래 지켜봐 주신 독자분들이든, 이번에 처음 만나신 분들이든 늘 많이 찾아주시는 작품입니다. 최근 아침달 시집이 50권을 넘었는데요. 그 상징적인 50번째 책이 바로 심보선 시인의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입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7년 넘게 만들어온 50권의 시집은 수량의 의미를 넘어 아침달이 쌓아온 시간의 결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생각해요. 느린 걸음이지만, 그 속도 속에 삶의 진동과 문학의 리듬이 깃들어 있죠.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책은 아침달 편집부와 아침달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쓴 <여름어 사전>이에요. 무엇보다도 함께 만든 책이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목정원 작가의 첫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은 아침달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혀준 소중한 작품이에요.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저 또한 여러 번 다시 펼쳐본 책입니다.
편집자님이 가장 모티프가 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만 뽑자면요?
거창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단순히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을 한 권 뽑자면 박경철 작가님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에요. 고등학생 때 우연히 처음 접했던 책인데요. 이 책은 시골 의사인 박경철 작가님이 겪은 에피소드들 위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함께이기에 가능했던 일들, 동행이어서 아름다웠던 순간들, 의사로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등 우리 삶을 따뜻하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흡인력 있는 문장들로 쉼 없이 한 번에 쭉 읽었던 기억이 나요. 책을 덮고 머리 속에 남아 있던 단어는 ‘동행’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은 지치지 않기 위함이겠지요.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어디서든 함께할 수 있고 외롭지 않게 곁을 내어주는 존재. 그래서 지금까지도 책은 제 삶의 옆자리에 늘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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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항상 독서대를 둡니다. 책을 책상에 바로 두고 읽으면 고개를 숙이게 돼서 금세 목과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렇다고 독서대를 옆에 두고도 책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그냥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기도 해요. 밑줄 치는 도구도 꼭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형광펜을 썼는데, 색이 너무 진해서 뒤 페이지에 번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 SEOUL)’ 색연필을 사용하고 있어요. 조금 지저분하게 읽는 편이라 이런 필기구들이 늘 옆에 있습니다. 그리고 책상 한쪽에는 항상 티코스터를 두고 방금 우린 차를 한 잔 올려둡니다. 요즘은 선물받은 ‘델픽(DELPHIC)’ 티백을 자주 우려 마셔요. 좋은 향이 퍼지는 가운데 책을 읽다 보면 바쁜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지고 안정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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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커튼>, 밀란 쿤데라, 민음사
왜냐하면 예술의 역사는 덧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 지저귐은 영원하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어려운 질문에 도착해 버렸네요.(웃음) 가장 사랑하는 책을 고르는 일이라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아요. 그래도 굳이 한 권을 꼽자면,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작가인데 이 책 속 한 문장은 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책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떠올릴 때마다 어떤 ‘지저귐’을 생각하게 돼요. 이 문장을 잊지 않으려, 마음속에 조용히 새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조우한 문장들, <더 텍스트 The Text>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감각의 문장들 ①
▶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사유의 문장들 ②
[SDF X 도서전에서 조우한 문장] 물건의 문장들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