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김지영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디자이너는 오픈AI의 ‘크리에이티브 랩 서울’에 선정되어 지난 8월 한 달간 생성형 AI를 활용한 창작 실험을 진행했다. 알보우, 윌슨, 메디필, 코오롱스포츠, 살로몬 등과 협업하며 인공지능을 통해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브랜드의 니즈에 응답해 온 그는, 생성형 AI를 단순한 기술을 넘어 브랜드의 맥락과 미감을 정리하는 하나의 언어로 다룬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김지영 디자이너는 오픈AI가 주목한 크리에이터입니다. 지난 8월, 오픈AI가 선보인 ‘크리에이티브 랩 서울(Creative Lab Seoul)’에 참여한 21명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선정됐죠. 약 한 달간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AI ‘소라(Sora)’와 ‘ChatGPT’만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전에 ‘미드저니(Midjourney)’, ‘클링AI(KlingAI)’, ‘런웨이(Runway)’ 등 다양한 이미지·영상 생성 툴을 사용해왔던 그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분명한 제약이 있는 환경이었지만,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ChatGPT만의 장점을 발견하며, 생성형 AI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창작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김지영 디자이너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뒤 스포츠 패션 브랜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스위스 디자인 학교 에칼(ECAL)에서 ‘MAS Design for Luxury & Craftsmanship’ 과정을 통해 디자인과 공예 감각을 경험했죠. 이렇게 축적된 경험은 그만의 ‘미감’으로 이어졌고, 생성형 AI로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금의 환경에서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생성형 AI 시대에 그가 지키고 있는 창작의 기준과 태도, 그리고 커리어의 궤적을 살펴봅니다.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 03 10](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03-10-832x1248.jpg)
PLUS 1. 오픈AI가 주목한 디자이너
지난 2025년 8월, 오픈AI가 공개한 ‘크리에이티브 랩 서울(Creative Lab Seoul)’에 아티스트로 참여하셨어요.
저를 포함한 총 21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약 한 달 동안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AI 서비스 ‘소라(Sora)’와 ChatGPT만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오픈AI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지금 가장 역동적인 창작 환경 중 하나로 보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과 함께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였어요.
‘크리에이티브 랩 서울’에서는 오픈AI의 서비스만을 사용해야 했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다른 툴과의 차이가 작업 결과물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아직 업그레이드된 ‘소라 2(Sora 2)’가 나오기 전이기도 했고, 저는 이미 ‘미드저니(Midjourney)’, ‘클링AI(KlingAI)’, ‘런웨이(Runway)’와 같은 다른 이미지·영상 생성 툴을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소라는 영상 프로그램으로서 완성도나 컨트롤 측면에서 아직 아쉬운 점이 여전히 많다고 느꼈어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쉽지 않았고, 제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학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소라 대신 ‘ChatGPT’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2 ggggg 4](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ggggg-4-832x1112.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3 face3 1 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face3_1-3-832x1248.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4 face6 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face6-1-832x1033.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5 face3 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face3-1-832x1062.jpg)
작업 과정 중에 오히려 ChatGPT만의 장점도 발견하셨다고요.
사실 ChatGPT는 생성형 AI가 처음 나왔을 때 대중적인 툴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작업자들 사이에서는 비주얼 작업에 잘 쓰이지 않았잖아요. 저 역시 이미지 퀄리티가 아쉽다고 느껴 한동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이번 ‘크리에이티브 랩 서울’ 프로젝트를 계기로, 이 툴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비주얼 작업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미드저니가 프롬프트와 레퍼런스를 중심으로 비주얼을 만든다면, ChatGPT는 정보 검색과 팩트체크까지를 한 흐름 안에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달랐는데요. 그 덕분에 리서치와 기획을 마친 뒤, 다시 프롬프트를 정리해 다른 툴로 넘기는 중간 단계를 줄일 수 있었죠.
또 하나 주목하게 된 점은 맥락에 대한 이해도였어요. 제가 계속 조사해 온 정보와 레퍼런스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와, 이를 다시 정리해 다른 툴로 넘길 때의 결과는 확연히 달랐거든요. ChatGPT는 그동안 입력해 온 정보와 작업 맥락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반영하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고 느꼈어요. 그 이후로는 생성형 AI 툴을 최대한 단순하게 쓰는 방식을 계속 실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인물, 세계관, 무드 등을 나누어 작업했다면, 지금은 ChatGPT 하나 안에서 작업 전반을 정리하는 방식에 가까워졌어요.
한국어와 영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의 차이가 있지 않나요?
초창기에 생성형 AI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저도 “영어로 써야 더 잘 알아듣는다”라고 팁을 주기도 했었죠. 그런데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언어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 건 하나의 툴을 얼마나 오래, 꾸준히 쓰는가였어요. 영어든 한국어든, 같은 툴을 계속 사용하면서 질문하는 방식이나 맥락이 쌓일수록 결과가 더 안정적으로 나온다는 쪽에 가까웠고요.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6 material6 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6-2-832x1137.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7 material7 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7-2-832x1087.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8 material8 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8-1-832x1102.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9 material4 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4-2-832x1248.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0 material5 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5-2-832x1166.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1 material2 1](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material2-1-832x1247.jpg)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When Art Becomes Science’인데요. 어떤 내용의 작업인가요?
이번 프로젝트는 별도의 주제나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저는 그동안 뷰티 분야에서 작업해온 경험과 웰니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관련 주제를 선택했죠. 스포츠 브랜드에서 일했던 경험도 영향을 줬고요. 운동이나 자기 관리처럼, 몸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계속 이어져 있었거든요. 이번 작업에서는 인간의 몸과 관리, 그리고 그사이에 개입하는 기술의 관계를 하나의 이미지로 풀어냈습니다.
한편, 오픈AI 팀과 프로젝트를 함께한 경험도 궁금해요. 현시점에서 기술과 창작 환경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 중 하나잖아요.
일하는 과정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부터 제가 익숙했던 한국 클라이언트들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아, 정말 미국 회사랑 일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었달까요. 특히 커뮤니티 분위기에서 그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어요. 한국 프로젝트에서는 처음 만나는 자리일수록 어느 정도 조심스러운 공기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인사부터 훨씬 캐주얼했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거든요. 오픈AI 팀원들과 해외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툴이나 작은 시도까지도 거리낌 없이 공유했고, 결과보다 과정에 더 집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AI를 실무에 활용해 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작업 전반을 드러내는 데도 훨씬 열린 분위기였어요.
PLUS 2. 기술이 아닌 감각을 번역하는 언어, 프롬프트
생성형 AI를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F&F라는 회사에서 일할 때였어요. 어느 날 디자이너들에게 “내일부터 미드저니로 작업해라”라는 이야기가 위에서 나온 거예요. 정말 문자 그대로 ‘내일부터’ 말이죠.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모델링이나 렌더링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다만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정과 시간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존에는 며칠씩 걸리던 작업이 미드저니를 통해 몇십 초 만에 이미지로 구현되는 걸 직접 보고 나니, 이건 단순히 새로운 툴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 방식 자체가 바뀌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게 미래구나. 이건 무조건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죠.
당장 배우겠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맞아요. 지금처럼 자료도 많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관련 정보도 거의 없던 때였죠. 그래서 그냥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미드저니를 계속 만져봤고, 당시에는 거의 미국 유튜브 영상밖에 없어서 그걸 보면서 이것저것 따라 해봤어요. 하나 해보고, 또 막히면 다시 찾아보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감각을 익혀갔던 것 같아요.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2 resize 06 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resize_06-2-832x1248.jpg)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라고 말하시네요? 생성형 AI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프롬프트의 ‘기술적인 설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프롬프트 설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작업을 이어가며 느낀 건, 프롬프트 기술보다 먼저 정리돼야 할 게 있다는 점이었죠. 바로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맥락과 분위기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에요. 이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한 프롬프트를 써도 결과는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하더라고요. 초반에는 ‘잘 만든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결과가 점점 제 작업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완성도 높은 이미지’와 ‘내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자각하게 된 거죠.
“결국 프롬프트는 기술이라기보다 감각을 번역하는 언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느냐보다, 그 안에 담긴 맥락과 판단 기준이 분명한지가 더 중요해진 거죠.“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프롬프트를 최대한 기술적으로 설계하려고 하기보다, 자연어로 AI와 대화하는 방식을 더 많이 쓰고 있어요. 사람한테 설명하듯이, 혹은 팀원에게 작업 방향을 이야기하듯이 맥락을 전달하는 거죠. 이전에 조사했던 리서치나 참고 이미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감(Aesthetic)을 계속 쌓아두면, AI도 그 흐름 안에서 점점 제 의도를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렇다면 지금 생성형 AI를 활용할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뭐라고 보세요?
‘아카이빙’이요. 단순히 레퍼런스를 많이 모으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이미지에 반응하고 어떤 미학을 중요하게 보는지를 스스로 정리해두는 과정에 가깝죠. 작업을 하면서 제가 만든 이미지나 좋아하는 레퍼런스들을 AI에게 계속 인풋(Input)으로 넣고, 이걸 어떤 키워드로 이해하는지 다시 분석해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아, 내가 중요하게 보고 있는 기준이 이거구나’ 하고 명확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결국 새로운 툴을 계속 배우는 것보다, 하나의 툴 안에서 제 감각을 얼마나 깊게 축적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들을 다시 정리해 두고, 다음 작업에 활용하는 식이에요. 이렇게 쌓인 정보가 많아질수록 프롬프트를 길게 설계하지 않아도 원하는 결과에 훨씬 빠르게 도달할 수 있거든요.
PLUS 3. 스위스 디자인 학교 ‘ECAL’부터 ‘유레카이 스튜디오’까지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3 07 7](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07-7-832x1248.jpg)
커리어 패스를 이야기해 볼까요. 직장을 다니시다가 스위스 로잔에 있는 디자인 학교 에칼(ECAL)로 떠나셨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당시 데상트 코리아 부산 R&D 센터에서 신발 디자인을 맡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일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어요. 이전에는 한 시즌에 50개 안팎의 제품을 빠르게 설계하던 제품 디자이너였지만, 신발 디자인으로 옮기며 한 시즌에 5~6개 스타일을 깊게 다루는 구조로 작업 리듬이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신발은 구조적으로 밀도 높은 제품이지만, 저한테는 그 흐름이 지나치게 느리게 느껴졌어요. 어느 순간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을 스스로를 다른 환경에 던져야겠다고 판단했죠.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리듬의 작업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였고, 유학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거든요. 또, 결정적으로 에칼(ECAL)은 영어 점수 같은 조건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던 점도 선택에 영향을 줬고요
에칼(ECAL)에서는 ‘MAS Design for Luxury & Craftsmanship’과정을 전공하셨어요. 당시 고민했던 다른 옵션도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네덜란드의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인터뷰나 졸업 작업을 보면 훨씬 더 급진적이고, 도전적이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실험적인 성격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반면, 에칼(ECAL)은 전반적으로 마케팅을 굉장히 잘하는 학교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온라인에서 보이는 작업도 잘 정리돼 있고, 이를 전담하는 관리자도 있었고요.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에서는 이미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학교이기도 했고요. 특히 결정적으로 다가왔던 건 ‘MAS Design for Luxury & Craftsmanship’ 과정이었어요. 럭셔리 브랜드이면서도 크래프트맨십을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들과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커리큘럼인데, 브랜드 디렉터를 직접 만나고 회사 현장을 방문하거나, 수공예 장인들을 실제로 만나 교류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두 가지 프로젝트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첫 번째는 네슬레(Nestlé)와 함께한 과제였어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본사 직원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로, 종 모양의 치즈 초콜릿 그라인더를 디자인했죠. 제품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선물이 전달되는 방식과 스토리, 마케팅 방향까지 함께 구성했어요. 웹사이트와 레시피북, 엽서를 포함한 패키지 형태로 제안했고, 발표 때는 크리스마스 음악과 눈이 내리는 영상을 함께 보여줬죠. 그 경험을 통해 물건 자체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전달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강하게 실감했어요.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4 20251224 013548](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13548-832x468.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5 20251224 01355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13552-832x468.jpg)
또 하나는 스위스 하이엔드 탁상시계 브랜드 ‘레페 1839(L’Epée 1839)와 진행했던 프로젝트예요. 수천만 원대의 탁상용 시계를 제안하는 과제였는데, 내부 무브먼트 구조는 브랜드에서 제공하고, 외형과 콘셉트를 새롭게 제안하는 방식이었어요. 당시 브리프가 ‘교통수단’이었고, 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러버덕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어요. 욕조에서 놀던 기억처럼 행복한 감정을 불러오는 오브제를, 키치하면서도 럭셔리한 방식으로 풀어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최종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디렉터로부터 아이디어 자체는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럭셔리 시장이 어떤 기준과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가장 애정이 많이 남아 있는 프로젝트예요.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6 20251224 061740](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61740-832x413.jpg)
ECAL 재학 시절, 작업 방식이나 태도에 영향을 준 사람도 있었나요?
디자이너 사빈 마르셀리스(Sabine Marcelis)요. 독일의 하이엔드 아웃도어 가구 브랜드 ‘데돈(DEDON)’과 협업 프로젝트를 할 때 멘토로 참여하셨거든요. 작업도 작업이지만, 개인적으로 멘토로서의 태도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보통 멘토나 교수님을 만나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부족하다”라는 식의 피드백을 받게 되잖아요. 그런데 사빈은 아이디어를 바로 평가하거나 현실적인 기준으로 재단하기보다, 먼저 “이 점이 흥미롭다.”, “너무 좋다.”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멘토였어요. 각자의 창의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최대한 살려주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죠.
“생성형 AI를 쓰는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툴을 쓰면 결과물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서, 결국 경쟁력을 만드는 건 ‘나답다’, ‘이 사람답다’라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사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고, 너무 이른 판단이 오히려 가능성을 꺾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이후로 저 역시 작업을 볼 때나 협업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가’보다 ‘이 사람이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인가’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그런 태도가 현재 운영 중인 ‘유레카이 스튜디오’의 작업 방식이나 협업 기준에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해요.
유레카이 스튜디오는 디자이너인 저와 마케터로 일하는 친구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구조 자체가 작업 방식과 협업 기준을 많이 규정하고 있어요. 저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고, 친구는 그 결과물이 어떤 맥락에서 전달돼야 하는지를 계속 점검해 줘요. 그래서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게 왜 필요한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일지”를 함께 이야기하게 돼요. 사빈에게서 배운 것처럼 아이디어를 성급하게 평가하지 않되, 동시에 이 작업이 어떤 지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는 끝까지 고민하는 거죠.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7 20251224 034455](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34455-832x1071.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8 20251224 03442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34423-832x810.jpg)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이후 브랜드 마케팅 책임자가 되어 다시 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창작자가 마케팅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체감하게 됐어요. 실제로 알보우(RboW), 윌슨(Wilson), 메디필(MEDIPEEL), 코오롱 스포츠, 살로몬(Salomon) 같은 브랜드들과의 협업에서도, 단순히 이미지를 잘 만드는 것보다 그 결과물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유레카이 스튜디오에서는 디자인과 마케팅을 분리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의 흐름 안에서 함께 고민하는 방식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케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 기업이나 브랜드가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비용 절감’인데, 그런 변화가 체감되나요?
그럼요. 실제로 체감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특히 뷰티 분야에서는 국가별 이미지나 톤이 다르고, 모델 섭외와 촬영 비용 부담도 크다 보니 생성형 AI를 활용해 비주얼을 효율적으로 테스트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거든요. 다만 저는 이를 단순한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브랜드와 시장에 맞게 어떻게 제안하느냐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환경일수록 결과물을 고르고 정리하는 큐레이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LUS 4. 대체되지 않기 위한 창작자의 자세
생성형 AI를 창작 과정에 쓰다 보면, 언젠가는 대체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나 고민은 없으신요?
그런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같은 툴과 기능을 쓰다 보면 결과물이 빠르게 비슷해지는 걸 보면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요. 다만 작업을 이어갈수록 AI가 나를 대체할지보다, 내가 나답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결국 대체의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창작자가 스스로의 기준을 잃을 때 생긴다고 느꼈습니다.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19 20251224 03385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33853-832x1040.jpg)
그렇다면 생성형 AI를 어디까지 ‘도구’로 받아들이고, 어디까지는 반드시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보세요?
생성형 AI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데는 굉장히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그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지 결정하는 일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고 느껴요. 작업을 하다 보면 결과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선택의 책임이 더 중요해지거든요. 효율과 속도는 AI가 도와줄 수 있지만, 맥락을 읽고 방향을 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자로서 오랫동안 꾸준히 일하기 위해 지키는 태도나 원칙이 있다면요?
저는 무엇보다 ‘루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회사에 다니든, 프리랜서든, 개인 작업을 하든 일정한 생활 리듬과 반복되는 작업 시간이 있어야 오래 작업할 수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야 몸도 덜 망가지고, 작업도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에서 이어갈 수 있고요. 그래서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언제 집중해서 작업하고, 언제 쉬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쓸 수 있는 창의적인 에너지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어떻게 조절할지 아는 것이 결국 오래 버티는 힘이 된다고 봅니다.
PLUS LIST
김지영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 3
-테르메 발스(Therme Vals)
발스 스파는 김지영 디자이너에게 ‘최소한의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만드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스위스 발스 지역에 있는 이 온천은 건축가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한 곳으로, 돌·물·빛이라는 제한된 요소만으로 공간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호텔 안에 식당이 있고, 스파로 들어가는 길과 내부에는 사과가 놓여 있는데, 이 사과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김지영 디자이너는 스위스와 독일 사람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겨울에 난방을 최소한으로 하고, 추운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공간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었다고 느꼈다. 발스 스파 안에서 경험한 초현실적인 감각, 공간과 풍경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Fondation Beyeler)
바이엘러 뮤지엄은 발스 스파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꼽힌다. 스위스 바젤 근교에 있는 이 미술관은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건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지영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현대미술가 올라프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를 관람했는데,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빛과 환경을 다루는 태도, 설명 없이도 몸으로 먼저 느껴지는 전시 경험이 인상적이었다고.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파리 중심에 있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을 보기 위해 찾은 공간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증축을 맡아 재개장했을 당시 바로 방문한 장소이기도 하다. 기존의 역사적인 건물 디테일 위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더해진 구조는 처음에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실제 공간을 경험하며 왜 서양에서 안도 다다오를 높이 평가하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안도 다다오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하며, 웰니스(Wellness)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감각을 언급했다.
TIPPING POINT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아티스트는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김지영 디자이너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생성형 AI를 다루는 방식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는 같은 툴을 쓰는 환경에서 결과물이 평준화될수록,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나답다’, ‘이 사람답다’라는 감각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익히는 것보다, 하나의 도구 안에서 자신의 감각과 판단 기준을 얼마나 깊게 축적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인식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관점은 프롬프트를 기술로 다루는 기존의 방식과도 분명히 다르다. 김지영 디자이너에게 프롬프트는 정교하게 설계된 공식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감각을 자연어로 전달하는 언어에 가깝다. 생성형 AI 를 효율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기보다, 작업의 방향과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매개로 활용한다. 이 지점이 그의 작업이 동시대 AI 기반 창작 흐름 속에서 돋보이는 이유다.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20 20251224 005540](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05540.jpg)
![[Creator+] 유레카이 스튜디오 디자이너 김지영: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 니즈에 답하다 21 20251224 00554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12/20251224_00554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