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김하늘 디자이너: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재정의하다

김하늘 디자이너

김하늘은 버려진 것의 쓸모를 넘어 사물이 지닌 ‘생존의 이유’를 새롭게 정의한다. 마스크 의자로 세계적 이목을 끈 그는 이제 소재의 순환 구조를 직접 설계하는 집요한 실험가로 거듭났다. 효율적인 현대 디자인의 공식 대신 원시적 감각과 손맛을 믿는 그의 작업 방식은 독보적인 결을 지닌다. 불편함 속에서 창의적 해답을 건져 올리는 정직한 창작 여정을 직접 들여다보았다.

[Creator+] 김하늘 디자이너: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재정의하다

editor’s note

디자이너 김하늘은 버려진 것의 쓸모를 찾는 것을 넘어, 사물이 가진 ‘생존의 이유’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코로나19의 상징인 마스크를 쌓아 만든 의자 ‘스택 앤 스택(Stack and Stack)’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그는 이제 공공 도서관의 대형 가구부터 미술관의 섬세한 오브제까지, 소재의 순환 구조 그 자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계량하지 않는 요리사’에 비유하며 원시적인 감각과 손맛을 믿는 그의 작업 방식은, 매끈하고 효율적인 현대 디자인의 공식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닙니다. 불편함 속에서 창의적인 해답을 건져 올리는 집요한 실험가 김하늘. 그가 묵묵히 쌓아온 창작 여정과 사물을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을 들여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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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디자이너

PLUS 1. 공공의 자리, 사물에 깃든 새로운 리듬

지난해 10월, 국내 최대 규모로 개관한 ‘경기도서관‘을 위한 가구를 제작하셨어요. 살펴보니 작업 규모가 꽤 있더군요. 이번 프로젝트에 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경기도서관의 콘셉트가 기후 도서관인 만큼, 도서관 측에서 기후 위기와 업사이클 소재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특히 도서관의 상징인 ‘책(폐도서)’이라는 소재를 던져줘도 잘 해낼 것 같은 작가를 찾았다고 말씀해 주셨죠. 물론 공간 전체를 저 혼자 채운 것은 아닙니다. ‘철의 여왕’이라 불리는 양윤선 대표님의 브랜드 ‘레어로우’에서 서가와 선반 등 주요 집기를 담당하셨고, 기성 가구들도 일부 들어갔어요.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량의 포인트 가구들을 저희 팀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표작인 ‘스택 앤 스택(Stack and Stack)’ 시리즈로 70인석 정도를 수용하려 했는데, 저희 전체 포트폴리오를 보시더니 “좋은 게 너무 많으니 다양하게 넣어보자”라고 하셔서 120라운드 소파부터 키즈 체어까지 훨씬 풍부한 구성으로 프로젝트 규모가 확장되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는 대개 가이드라인이 엄격해 창작자의 의도가 희석되기도 할 텐데요. 이번 프로젝트는 오히려 디자인 자유도가 높았다고요.

저 역시 공공 프로젝트는 제약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번에는 클라이언트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70인의 가구를 이 작가가 책임지게 하라”라는 파격적인 결정 덕분에, 예산이나 디자인 사양을 두고 소모적인 줄다리기를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업사이클 가구가 공공 공간에서 기성 제품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줄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평소 바쁜 일정 탓에 화이트 컬러로만 선보였던 체어를 이번엔 소재가 가진 본연의 다채로운 색감을 살려 ‘무지갯빛’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풍요로울 수 있는지 시각적으로 대중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오랜 갈증을 해소한 순간이기도 했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나선형 구조 속에서, 가구가 건축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을 듯싶어요.

맞아요. 경기도서관은 내부가 스프링처럼 5층에서 1층까지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굉장히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저는 가구가 건축의 조형미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리듬감’을 더하는 요소가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큰 소파와 작은 스툴을 ‘대-중-소, 중-대, 소-중’ 등의 순서로 유기적으로 배치해, 사용자가 동선을 따라 내려오면 마주치는 풍경이 단조롭지 않게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4~5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큰 ‘120라운드 소파’ 옆에 작은 스툴이나 1인용 소파, 어린이용 체어 등을 유기적으로 섞어 놓는 식이죠. 또한, 가구들이 서로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각 층의 형태적 특성에 맞춰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배치와 간격도 세밀하게 조율했고요.

한편,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만큼 내구성이나 관리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내구성이 큰 숙제였죠. 예전에 아모레퍼시픽 라운지에 설치했던 의자들이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 경기도서관 가구들은 다리 두께를 기존 30mm에서 40mm로 증량해 하중을 더 견디도록 몰드를 새로 팠습니다. 또한 지류(폐도서)를 활용한 작업이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해 물성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요. 오염 문제 역시 이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애초에 광도를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폴리우레탄 코팅 마감을 직접 제안해 반영했고요. 사물이 공공의 장소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공정에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나이키, 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히 해오셨잖아요. 그간의 경험을 빗대어 봤을 때,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파급력이죠. 보통 브랜드와 작업하면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영향을 끼치지만, 공공기관은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개관 두 달 만에 30만 명 넘는 분들이 다녀가셨다고 들었는데, 그 숫자가 정말 믿기지 않았죠. 제가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수많은 리뷰가 올라오고, 심지어 제가 모르는 매체에서 직접 찾아와 촬영하고 소개해 주시는 걸 보면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정말 크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새로운 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앞으로도 기준이 잘 맞는 클라이언트라면 공공 프로젝트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더라고요.

PLUS 2. 비효율의 틈에서 건져 올린 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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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x 김하늘 협업 제품. 전시 후 버려지는 ‘폐석고보드’를 활용해 일상 집기를 디자인했다.
경기도서관 프로젝트 이전에 국립현대미술관(MMCA)과도 협업하신 적이 있어요. 전시 후 버려지는 ‘폐석고보드’를 활용해 일상 집기를 만드셨는데, 가구가 아닌 오브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창작자에게는 가장 상징적인 클라이언트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하던 대로 가구를 만들기보다는, 제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카테고리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미술관은 전시가 한 번 끝날 때마다 가벽으로 쓰인 폐석고보드가 대형 폐기물 트럭으로 몇 대씩 쏟아져 나오는 곳인데요. 저는 이 거대한 폐기물을 일상에서 매일 손에 닿는 기물로 변주해보고 싶어 ‘일상 용품’ 라인업을 먼저 제안했습니다. 대형 가구는 개인이 소유하기 어렵지만, 작은 오브제는 관람객이 미술관의 정체성을 자신의 공간으로 직접 가져가 더 밀도 있게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버려진 전시의 파편이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새로운 생존을 시작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폐석고보드 같은 건축 폐자재는 분진이나 잠재적 유해 물질에 대한 우려가 따르기 마련인데요. 이를 직접 다루는 작업자 또한 오염 물질에 노출될 수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나요?

매우 중요한 지점이에요. 만드는 사람이 고통받거나 위험을 감수하며 만든 제품을 진정으로 ‘지속 가능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석고보드는 특성상 가공할 때 가루가 많이 날리고 호흡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합제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단순히 결과물의 강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작업 과정 자체가 무해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국의 친환경 레진인 ‘제스모나이트’였고요. 일반적인 화학 레진은 독한 냄새와 유해 가스 때문에 방독면 수준의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제스모나이트는 수성 기반이라 마스크 없이 작업해도 될 만큼 안전하죠.

제스모나이트’라는 생소한 소재를 도입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석고보드는 내부 기포가 많아 충격에 매우 취약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포 사이사이를 채워줄 강력한 바인더가 필요하죠. 랩크리트 스튜디오의 자문과 협업을 통해 제스모나이트를 혼합하는 최적의 비율을 찾아냈습니다. 제스모나이트는 일반 레진과 달리 10분이면 경화가 끝나 양산에 매우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거든요. 단순히 재활용이라는 명분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공정에서 효율성과 작업자의 건강, 그리고 최종 결과물의 견고함까지 모두 잡기 위해 수개월간 수많은 테스트를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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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아이덴티티(MI)를 구성하는는 조형 언어를 사각형, 원형, 삼각형 세 가지의 기초 도형을 활용해 재해석했다.
미술관의 아이덴티티(Museum Identity, 이하 MI)를 조형적으로 풀어낸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사각형, 원형, 삼각형이라는 기초 도형을 주목한 이유가 있다면요?

국립현대미술관 MI에서 M(사각형), C(원형), 삼각형(A)은 미술관의 가장 본질적인 시각 언어에요. 버려진 폐석고보드라는 투박한 소재가 이 ‘순수한 기초 도형’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조형적 긴장감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사소한 폐기물이 미술관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싶었거든요. 또한, 이 기초 도형들은 확장이 무궁무진하죠. 벽걸이 훅, 북엔드, 트레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형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향후 가구나 조명 같은 큰 작업으로 넘어갈 때 단단한 디자인적 뼈대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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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와 협업해 제작한 일상 오브제. 작품 설치를 위해 사용하고 버려진 석고보드를 재활용했다.
그간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으셨지만 컬러 팔레트도 분명 돋보입니다. 색상에 대한 감각에 영향을 주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실제로 작업할 때 저는 계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감이 있으니까 ‘손맛’ 느낌으로, 뭐가 부족하다 싶으면 더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태도가 제 사생활은 물론 작업 방식에도 그대로 닮았어요. 마치 요리사가 감으로 간을 맞추듯 안료를 배합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탄생하는 조형적인 색감을 마주할 때 창작자로서 쾌감을 느끼곤 합니다. (웃음)

특별히 선호하거나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색상도 있으세요?

사실 예전에는 디자이너들이 블랙만 고집하는 게 개성 없어 보여서 일부러 피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에 설치했던 아이보리색 소파가 단 2년 만에 오염되어 회색으로 변해버린 걸 목격하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블랙이야말로 오염을 가려 사물의 수명을 늘려주는 가장 ‘지속 가능한’ 색상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재밌게도 저는 그 비효율에서
창의적인 것들이 출발한다고 믿는 편이에요.” 

한데 모든 것이 수치로 환산되는 효율의 시대잖아요. 앞서 말한 ‘감’에 의존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지 않아요?

사실 과학적인 수치로 소재를 입증하는 분들은 이미 세상에 많잖아요. 정해진 결론을 향해 효율적으로 달리기보다, 소재를 직접 만지고 섞는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건져 올리는 것이 제가 창작을 지속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찰나의 미감은 대개 수치가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와 무모한 실험 끝에 발견되곤 하니까요.

PLUS 3. 김하늘과 서버번피플

코로나 시기 마스크를 재활용한 ‘스택 앤 스택’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으셨잖아요. 외신에서도 앞다투어 소개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친환경’이나 ‘리사이클링’ 같은 키워드가 창작의 스펙트럼을 가둬 버리는 리스크도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확실히 그 키워드들이 저를 세상에 빨리 알린 고마운 존재인 건 맞지만, 창작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늘 경계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이 분야가 앞으로 시장을 더 장악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장르를 선도해 만들어가고 있는 제가 ‘뱀의 머리’가 아닌 ‘용의 머리’라는 생각으로 폭발적으로 계속 만들었어요. 어떤 재료를 가져오든 저만의 조형 언어로 근사하게 요리해 낼 자신이 있기에, 특정 키워드는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제 디자인의 가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반전의 장치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인터뷰 내내 ‘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시더군요.

혼자서는 물리적으로 이만큼의 파급력을 낼 수 없다는 걸 일찍 깨달았어요. (웃음) 팀원들에게 단순한 어시스턴트 이상의 소속감과 주체성을 주고 싶어 ‘서버번피플’이라는 크루를 만들었죠. 현재는 어시스턴트를 포함해 총 7인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요. 제가 밖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소통하는 ‘얼굴’이라면, 팀원들은 그 기회를 완벽한 결과물로 구현해 내는 ‘몸통’이자 ‘심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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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플러스와 인터뷰 중인 김하늘 디자이너
 ‘프런트맨’ 역할을 자처하신 건가요?

맞아요. 사실 초반에 팀으로 갑자기 등장하면 자칫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단 ‘김하늘’로 가자고 뜻을 모았죠. 비즈니스적으로 ‘김하늘’이라는 이름이 더 커져야 팀 전체를 살릴 수 있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했거든요.

“제가 프런트맨으로서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영향력을 강화해야
우리 팀원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비즈니스 감각도 돋보이네요. 클라이언트와의 협상이나 예산 조율을 위한 노하우도 있어요?

사실 저는 제가 비즈니스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주변 지인들이 “하늘이 너 비즈니스 진짜 잘하는 것 같아”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웃음) 예산을 어떻게 조율하고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지 동료들과 공유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나름의 감각이 있다는 걸 조금은 실감하고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팀을 리드하는 처지에서 동료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이야기도 있나요?

저는 릭 오웬스(Rick Owens)와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인터뷰를 보며 깊이 공감했던 부분이 있어요. “일단 계속 많이 만들어야 그중에 무언가가 이슈가 되고 확장이 되는 거지, 계속 고민만 하다가 보여주지도 못하면 그게 어떻게 창작자냐”라는 이야기였죠. 그래서인가 저 역시 팀원들에게 항상 “일단 해보자”라고 자주 말하는 것 같아요.

최근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로의 확장을 준비하는 것도 그런 자세의 일환이겠네요.

가구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큰 걸 만들고 싶다”라는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가구는 결국 공간 안에 놓이는 사물인데, 그 공간의 조명, 벽의 질감, 동선까지 제가 직접 설계한다면 가구가 가진 매력을 200% 끌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선배 디자이너들이 개인 작업과 인테리어를 병행하며 시너지를 내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요.

PLUS 4. 경계를 넘는 협업, 그리고 새로운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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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와의 협업. 폐알루미늄을 재활용해 디자인한 ‘스택 앤 스택’ 시리즈
국내외 브랜드로부터 워낙 다양한 제안이 올 텐데요. 협업을 위한 나름의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준이 잘 통하는 클라이언트라면 특별히 작업을 가리지는 않아요. 다만, 과정과 목적이 어긋나는 ‘모순적인’ 상황은 철저히 경계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폐기물을 활용하기로 한 프로젝트에서 정작 작업실로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한 새 자재들이 트럭째 배달되는 식이죠. 그런 모순을 마주하면 창작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또한,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너무 강력해 디자이너의 개성보다 브랜드의 고집이 앞서는 경우도 조심스럽죠. 자칫 창작자가 아닌 단순 외주 업체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반면, 거대 글로벌 기업이라도 “계속 가보자(Keep going)”라며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유연한 파트너십을 만날 때, 비로소 경계를 넘는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대개 클라이언트의 제안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곤 하는데요. 반대로, 디자이너 관점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요?

5년 전부터 꾸준히 제안 메일을 보내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구글(Google)입니다. 저는 ‘디지털 온실가스’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우리가 이메일 한 통을 보낼 때 약 4g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오가는 메일 양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만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메일을 계속 보내고 있는데, 아직 답장은 없네요 (웃음).

최근 주목하는 소재나 유독 눈길에 밟히는 일상 속 장면이 있다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에 사과나 배를 감싸는 하얀색 스티로폼 포장재를 쓰고 있어요. 명절이 지나면 정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중 하나잖아요. 와인병 같은 곳에도 쓰이고요. 다른 쓰레기들은 바로 분리 배출하는데, 유독 이 소재는 버리기 전에 한참을 만지작거리게 돼요. “이걸로 뭘 해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계속 대면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은 없지만, 조만간 이 비효율적인 고민이 창의적인 가구로 탄생할지도 모르죠.

‘스택 앤 스택’ 시리즈가 스웨덴 예테보리의 뤼스카 박물관(Röhsska Museum)에 영구 소장됐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다음 행보에 어떤 이정표가 되었을지도 궁금하더군요.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같은 거장들의 작업이나 비트라(Vitra)의 체어들과 제 작품이 나란히 소장되었다는 점이 무척 짜릿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도 고무적이었고요. 이번 소장은 제가 진짜 디자인 역사에 기록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달까요.(웃음) 50년 뒤 디자인사를 돌아봤을 때 “이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었구나”라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무대에서 겨룰 수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PLUS LIST

김하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공간 3

  • 어머니의 목공방

그의 디자인 철학이 시작된 뿌리 같은 공간이다. 어머니의 목공방에서 배운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그가 소재의 본질을 깊게 들여다보는 단단한 바탕이 되었다.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재료를 대하는 창작자의 진실한 태도를 체득하게 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 경기도 여주의 시골 풍경

김하늘 디자이너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다. 낡은 철문과 세월의 흔적이 남은 여주의 풍경은 소재에 담긴 서사를 읽어내는 시야를 열어주었다. 매끄럽고 완벽한 새것보다 시간의 흐름이 깃든 불규칙한 디테일에 집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투박한 풍경 속에서 발견한 미학은 버려진 것들의 새로운 생존 방식을 제안하는 작업관으로 이어졌다.

  • 비행기 내부

영감이 실제 스케치로 구현되는 가장 활동적인 창작 공간이다. 제주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오가는 비행기 안의 고립된 환경은 지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 감각에만 몰입하게 해준다. 효율과 공식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계산된 공식 없이 자기 감각을 믿고 펜을 움직이는 장소가 되었다.

TIPPING POINT

김하늘을 움직이는 힘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다. 어린 시절 9년 동안 장래 희망에 ‘대통령’을 적어냈던 소년의 당찬 포부는, 이제 디자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 풍경과 어머니의 목공방에서 보고 배운 ‘정직한 노동’은 그가 사물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단단한 뿌리가 됐다. 그는 정해진 공식이나 효율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불규칙한 디테일의 힘을 믿는다. 유행을 좇기보다 소재가 가진 저마다의 이야기를 탐구하며,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쓰임을 찾아주는 그의 작업은 창작자로서의 색깔을 명확히 보여준다. 익숙한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해 내는 그의 시선이야말로,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의 디자인에 주목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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