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톺아보기

문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물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지만, 단서가 될 수 있는 장은 있다. 동시대의 아이디어가 집약되는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문구와 도구에 대한 제안을 선보이는 이 장을 통해 앞으로 문구가 어떻게 발전할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나갈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톺아보기

많은 이들이 고쿠요를 단지 문구 회사로 생각하지만, 이는 고쿠요를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사실 고쿠요는 제품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 방식을 디자인하는 회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1905년 장부 표지 제작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문구를 넘어 가구와 공간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쓰고 기록하고 일하는 방식 전반을 설계해왔다. 고쿠요의 노트는 필기 방식을, 오피스 가구는 협업 구조를, 공간 디자인은 업무의 흐름을 바꾼다. 이 회사가 200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다. 전 세계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이 국제 공모전은 동시대의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아이디어를 발굴해왔다.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양산을 전제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고쿠요 개발진은 수상 디자이너와 협업해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제품을 출시했다. 매년 특정 테마로 공모를 진행해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기업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점도 돋보인다. 일례로 지난 3월에 열린 2026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의 주제는 ‘파문(HAMON – Design that Resonates)’이었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로 파문처럼 확산되는 새로운 기준의 제품을 찾겠다는 의미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출품된 1344점 중 그랑프리를 거머쥔 것은 가미나리 히로키가 디자인한 ‘노트의 재료’다. 풀로 제본한 종이 묶음으로, 사용자가 분량과 표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노트를 완성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림으로써 대량생산과 개인화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수용한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용자뿐 아니라 제작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제안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형태나 소재를 바꾸지 않고 무게만 섬세하게 조정한 히가시데 가즈시의 ‘그램’ 펜, 표지 가장자리에 색을 넣어 구분과 통일감을 동시에 구현한 쓰카모토 히로히토의 ‘가장자리로 구분하는 노트’, 선 대신 그러데이션을 통해 하루를 나누는 방식으로 일정을 유연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한 이가라시 미즈키, 다키자와 라라의 ‘흐르는 다이어리’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4~2025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그랑프리 수상작 거슬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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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수상작 뉴런NEWRON
디자인 가와다 도시유키
주제 프로토타입
인간의 손끝에는 많은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자극하면 뇌 활동이 활성화된다. ‘뉴런’은 그립 부분에 다양한 돌기를 적용한 펜으로, 필기와 동시에 손끝을 자극해 창의적 사고를 돕는 아이디어 생성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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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수상작 유 셰이프You Shape
디자인 덴노 다스쿠
주제 프리미티브Primitive
‘유 셰이프’는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재료형 연필이다. 덴노 다스쿠는 어릴 때부터 손이 커서 일반 연필을 잡기 어려웠던 경험을 이 제품에 녹였다. 규격화된 제품이 모두에게 편리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용자마다 다른 필요를 반영할 수 있는 도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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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수상작 사하라Sahara
디자인 오비 히토시
주제 엠브레이스Embrace
사막을 닮은 팔레트 ‘사하라’는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도구다. 일반적인 팔레트는 물감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제품은 곡면을 따라 자유롭게 흘러 색상이 자연스럽게 혼합된다. ‘자유롭게 그리려면, 도구 역시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사하라사막의 광활함처럼 경계 없는 형태로 창의성을 받아들인다.

2022

2022
수상작 생각의 흐름(Flow of Thoughts)
디자인 에밀리 & 조제프(에밀리마리 지오아니, 조제프 샤테뇨르)
주제 언러닝Unlearning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 미니멀한 저널이다. 전통적인 흰색 노트를 재해석해 필기 공간을 한곳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낙서를 유도하는 선으로 채워 새로운 아이디어를 장려한다. 불필요한 생각은 자유롭게 흘려보내고, 중요한 생각만 선별해 정신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다.

2021

2021
수상작 RAE
디자인 밀라 & 에를렌드(밀라 에벨리이나 니스카코스키, 에를렌드 스토르술 옵달)
주제 포스트노멀
‘RAE’는 종이접기처럼 접고 펼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특정한 용도에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쓰이는 도구다. 포스트팬데믹 시대의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사용 방식을 제안한다.

2020

2020
수상작 어딘가, 언젠가(Somewhere, Sometime)
디자인 OBAKE(도모다 나쓰키, 미우라 마이)
주제
폐목재로 제작한 연필이다. 연필 측면에는 주소와 소재명을 적어 이 목재가 쓰였던 건물이나 가구를 알려준다. 표면의 질감, 냄새, 긁힌 흔적과 색, 나뭇결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이 연필은 사용자로 하여금 또 다른 시공을 상상하게 만든다.

2018

2018
수상작 그림의 소리(Sound of Drawing)
디자인 야마자키 다쿠마
주제 경계를 넘어(Beyond Boundaries)
연필과 종이의 마찰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를 증폭시키는 장치를 결합해 문구를 통한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안한다. 시각 중심의 도구였던 연필이 청각 중심의 경험으로 확장하고, 형태 또한 악기처럼 독립적인 조형성을 갖는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새로운 창작 경험을 제공하는 도구다.

2017

2017
수상작 잇툴Eatool
디자인 nyokki(가키노키 다이스케, 미타니 하루카, 야와타 유키)
주제 뉴 스토리
사무실에서 간식을 먹는 행위는 종종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도구가 업무에 필수적이라면 간식 또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잇툴’은 간식을 하나의 오피스 도구로 재정의한다. 회의 중에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벽에 부착해 커뮤니케이션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2016

2016
수상작 가공되지 않은 문구(Raw Stationery)
디자인 AATISMO(나카모리 다이키, 에비쓰카 게이타)
주제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
연필, 자, 지우개를 긴 막대 형태로 제작했다. 원하는 길이로 자를 수 있어, 도구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도 기능한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문구를 사용하는데 그 시작은 막대기로 땅에 무언가를 그리던 단순한 행위였다. 이후 재료로 도구를 만들어왔듯, 도구를 다시 재료로 바라봄으로써 사람과 사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한다.

2015

2015
수상작 워드 블록Word Block
디자인 alab(이토 미리, 다카하시 교코, 무로야 가오, 야마나카 미나토)
주제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Beautiful Lifestyle)
플래시 카드를 하나의 덩어리로 정리해주는 링 구조를 적용한 디자인이다. 링은 카드를 단단히 고정해 이동 시 흐트러짐을 방지하며, 낱장의 카드가 아닌 하나의 ‘덱’처럼 작동한다. 사용자는 이를 메모나 기록을 위한 작은 노트처럼 활용할 수 있으며, 색상에 따라 용도를 구분하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공부에 사용하던 플래시 카드를 일상의 다양한 상황으로 확장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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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수상작 스케루 하사미(sukeru hasami, 투명 가위)
디자인 오기시타 나오키, 오이시 고이치로
주제 넥스트 퀄리티Next Quality
선을 따라 종이를 자를 때 가위의 날 때문에 절단 부위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스케루 하사미’는 투명한 날을 적용해 이러한 불편을 줄였다. 손잡이까지 포함한 전체를 동일한 투명 소재로 제작해 미감과 작업 효율성, 재활용 가능성을 모두 확보했다.


Interview

RYO MANOME PORTRAITE








마노메 료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는 어떻게 시작됐나?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의 출발 배경에는 ‘고객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품에 반영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에는 주부와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사용자의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함께 제품을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중요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1회 어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개최했고, 그 연장선에서 지금까지 어워드가 이어지고 있다.

매년 다른 주제를 설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 주제는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적 과제를 반영하기 위해 매년 다른 주제를 설정한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듯 디자인이 다뤄야 할 문제 역시 변화하기 때문이다. 주제는 1~2개월에 걸친 ‘주제 회의’를 통해 결정되며, 고쿠요의 대표 집행 임원과 다양한 디자인 분야의 외부 심사위원이 함께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는 고쿠요가 지향하는 비전과 사회적 방향성을 바탕으로 해당 시기의 상황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예를 들어 2021년 주제인 ‘포스트노멀’은 팬데믹을 배경으로 미래에도 유효한 가치를 탐구한 것이며, 2016년 ‘어떻게 살 것인가’와 2018년 ‘경계를 넘어’는 문구를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려는 방향성을 반영한 사례다. 이처럼 주제는 기업의 비전과 시대적 맥락 사이의 균형 속에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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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트로피.
주제에 따라 포스터와 트로피 디자인이 모두 바뀌는 점도 인상적이다.

해당 연도의 주제를 반영한 포스터와 트로피는 매년 새롭게 디자인한다. 어워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은 매년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맡으며, 최근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기시모토 쇼고가 담당하고 있다. 키 비주얼은 외부 디렉터가 맡고, 트로피는 고쿠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그해의 주제를 해석하고, 이를 어떻게 형태로 구현할 것인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프로토타입’이 주제였던 해에는 시행착오와 탐색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향성과 긴장감을 삼각뿔 형태로 표현했다. 완결된 형태라기보다 아직 진행 중인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표면을 의도적으로 거칠게 마감했다. 이처럼 트로피는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그해의 주제를 물질적으로 구현한 결과물로 작용한다.

어워드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중시하는 심사 기준이 있다면?

최근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은 ‘본질의 재정의’다. 즉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에 더해 개인의 경험과 문제의식, 즉 강한 당사자 의식에서 출발한 시선이 동시대의 사회적 과제로 확장될 수 있는지 역시 중요한 기준이다. 이와 함께 ‘제품화 가능성’도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단순한 아이디어나 콘셉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공모전이 콘셉트 제안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는 왜 제품화까지 고려하는가?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는 처음부터 ‘함께 만든다’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상작이 선정된 이후에도 이를 그대로 제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함께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콘셉트의 수정은 물론 생산, 비용, 양산 가능성 등 제품화에 필요한 조건을 함께 검토한다. 매년 1000점 이상의 응모작 가운데 약 10팀의 파이널리스트가 선정되며, 최종적으로 그랑프리 1점과 우수상 3점이 제품화 검토 대상이 된다. 모든 수상작이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20여 점이 제품화됐다. 이러한 협업과 검토 과정 자체가 어워드의 중요한 가치이며, 수상자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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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 트로피. 유리 돔을 통해 디자인이 확대되면서 시점이 변화하는 콘셉트를 구현했다.
앞으로 고쿠요 디자인 어워드를 통해 어떤 아이디어와 변화를 기대하는가?

고쿠요는 ‘공감共感·공창共創’ 개념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서로 공감하고 함께 만든다는 의미로, 어워드 역시 이러한 가치 아래 운영한다. 사용자와 기업, 사회가 서로 공감하며 아이디어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 2025년 창립 120주년을 계기로 ‘호기심을 삶으로’라는 메시지를 새롭게 제시한 것처럼, 이 어워드 역시 개인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다양한 시선이 모여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4호(2026.04)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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