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W 2026 ② 밀라노에서 마주한 한국 디자인의 네 장면

보테가 베네타×이광호 협업 작품부터 17인이 재해석한 소반 전시까지

세계 최대 디자인 행사로 손꼽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가 지난 4월 26일 막을 내렸다. 디자인 위크 기간 중 주목 받은 글로벌 브랜드 간의 협업부터 한국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튜디오의 전시, 전통 소재인 '한지'를 활용한 클레어 스튜디오의 조명 등 밀라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디자인 장면을 정리했다.

MDW 2026 ② 밀라노에서 마주한 한국 디자인의 네 장면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한국 디자인의 저력이 확인됐다.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부터 갤러리 개인전, 기관 기획전, 국제 그룹전까지. 한국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무대에 오르는 방식은 다양했다. 그 안에서 형태의 과시보다 한국 고유의 생활문화와 재료 감각, 사물을 다루는 태도를 자기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두드러졌다. 소반과 젓가락 같은 오래된 생활 도구에서 출발한 작업, 직조를 빛으로 확장하거나 취약함을 디자인의 조건으로 끌어올린 실험. 밀라노 곳곳에서 포착한 네 개의 장면을 짚었다.

직조를 빛으로 확장하다

보테가 베네타 × 이광호 ‘Light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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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TTEGA VENETTA

이광호 작가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와 함께한 설치 작품 ‘라이트 풀(Lightful)’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산탄드레아(Sant’Andrea) 매장에서 선보였다. 공중에 매달린 직조 구조에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을 엮어 완성한 빛 조형물이다.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가 엄선한 블랙과 그린 색조로 완성된 조형물은 작가의 수공예 작업 방식으로 각각 고유한 형태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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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작가 © BOTTEGA VENETTA

이광호는 홍익대학교에서 금속조형 디자인을 전공한 뒤 직조, 바구니 엮기, 칠보 에나멜링 같은 전통 기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환해왔다. 그의 작업은 알루미늄과 구리에서 볏짚, 정원용 호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소재를 아우른다. 서로 다른 재료의 조우에서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는 작업 방식은 보테가 베네타의 핵심인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즉 가죽 직조와도 맞닿는다. 이번 작업에서도 직조는 장식을 넘어 공간과 빛, 재료를 연결하는 구조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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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루이스 트로터 디렉션 아래 세 번째 협업이다. 2025년 서울 전시 〈세상을 엮다: 인트레치아토의 언어〉, 2026 여름 컬렉션 쇼 공간에 이어 밀라노 디자인 위크까지 관계가 이어졌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몬테벨로 비첸티노(Montebello Vicentino)의 보테가 베네타 아틀리에에 머물며 장인들의 가죽 공예 과정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브랜드 협업이 단발성 프로젝트로 소비되는 것과 달리, 이들의 협업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며 촘촘히 엮여가고 있다.

디자인 조건이 된 불완전함

르동일 워크숍 개인전, 〈Fragile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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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ile Structure〉 전시 전경 © 르동일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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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ile Structure〉 전시 전경 © 르동일 워크숍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동안 애니 우 갤러리(Anni Wu Gallery)에서 르동일 워크숍의 개인전 〈Fragile Structure〉가 열렸다. ‘연약한 구조’는 르동일이 2022년부터 탐구해 온 디자인 방법론이다. 그는 불완전함과 불안정함을 결함이 아니라, 사물이 존재하는 본질적 조건으로 바라본다. 동시에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존재의 취약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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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ight of Light with Ephemeral Smoke, 2026. 790 × 1640 × 2,840(H) mm 스테인리스 스틸, 구리, 유리, 철, 대리석 © 르동일 워크숍

전시의 중심은 LWL 시리즈를 변주한 세 점의 설치 작품이다. ‘The Weight of Light with Ephemeral Smoke’, ‘Two Shimmering Lights’, ‘A Light Illuminating the Book’. 스테인리스 스틸과 구리, 유리, 대리석 같은 단단한 재료가 쓰였지만, 연약한 금속 구조가 서로를 지지하며 간신히 하나의 개체로 성립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서로 기대는 구조. 기능성과 효율 중심의 디자인 문법과는 다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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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동일 워크숍

여기에 솔리드 금속, 돌 원석, 덩어리 유리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능적 오브제(Functional Object)’가 공간을 채웠다. 정교하게 가공하면서도 구조적 특성과 물질적 결함을 숨기지 않는 작업들이다. 더불어 큐레토리얼 스튜디오 아넥스(ANNEX)와 공동 기획한 출판물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소개하는 리딩룸이 마련됐고, 전시를 위해 제작한 인센스 향이 공간을 채우며 다층적인 경험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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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동일 워크숍

르동일 워크숍은 디자인 스튜디오 언라벨(Studio Unravel) 대표 이동일의 개인 레이블로 2017년부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사물에 내재한 잠재성을 탐색하며 디자인의 개념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약한 구조’, ‘기능적 오브제’, ‘무한과 증식’ 같은 개념을 발전시켜왔으며, 보통 감춰지는 불완전함을 디자인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작업은 스톤아일랜드(Stone Island), 프리츠한센(Fritz Hansen) 등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밀라노로 건너간 한국의 독상 문화

〈Seoul Life 2026: Heritage Reimagined, S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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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디자인재단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의 기획 전시 〈Seoul Life 2026: Heritage Reimagined, Soban〉이 4월 20일부터 5월 10일까지 ADI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렸다. 한국의 전통 생활 오브제인 소반을 국내외 디자이너 17인(팀)이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한국 공예의 미감과 3D 프린팅, AI 등 현대 기술을 결합한 작품을 통해 서울의 일상과 동시대 디자인 언어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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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디자인재단

소반이 밀라노에 간 이유는 형태가 아니라 문화에 있다. 한국의 독상 문화에서 비롯된 소반은 한 사람이 하나의 상을 쓰되, 필요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낮고 가벼워 이동이 쉽고, 혼자 쓰다가도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유연함. 이 구조는 오늘날 1인 가구 중심의 생활 방식과 개인화된 공간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전시는 전통을 박제하는 대신 소반이 품고 있는 생활 방식의 원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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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식, Taking my snail for a walk

김진식의 ‘달팽이와 산책(Taking My Snail for a Walk)’은 조선시대 묵포도도의 엉킴에서 착안해 3D 프린팅으로 유기적인 넝쿨형 다리 구조를 구현했다. 강이연은 AI 기반 설계와 3D 프린팅으로 유기적 곡면 구조의 소반을, 문승지는 전통 소반의 프레임과 접합 방식을 현대적 구조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국내외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재료와 기술, 조형 언어로 소반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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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orisalone

전시 공간 역시 한국 전통 건축의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대청마루에서 착안한 플랫폼 구조 위에 한지를 바른 반투명 가벽을 세워, 한 사람이 하나의 상을 마주하는 독상의 경험을 공간으로 옮겼다. 밀라노에서 공개된 소반들은 DDP 소장품으로 등록되며, 서울에서 후속 전시로 이어진다.

가장 오래된 도구에서 꺼낸 질문들

〈Chopsticks 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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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zeen

동아시아 디자인 플랫폼 S—3의 첫 프로젝트 〈Chopsticks 箸〉는 큐레이터 요코 초이(Yoko Choy)의 기획으로, 16팀의 동아시아 크리에이터가 젓가락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숟가락과 포크가 역사 속에서 장식적 변형을 거듭해온 반면, 젓가락의 형태는 수백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 전시는 그 오래된 형태에 각자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을 개입시킨다. 한국에서는 네 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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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o Tsai

가구 및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듀오(KUO DUO)는 한국 커트러리 브랜드 호랑(HORANG)과 협업해 수저 ‘Seon’을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늘 한 세트다. 밥과 국에는 숟가락, 반찬에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위생과 세척의 편의로 금속 수저 문화가 발달해 온 것도 한국 식문화의 특징. 구오듀오는 이 전통 위에서 젓가락의 직선적 실루엣과 숟가락의 곡선을 연결하고, 사각형 헤드에서 물방울처럼 이어지는 형태를 만들었다. 매트, 매트골드, 매트로즈골드 마감은 전통의 결을 현대적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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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z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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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o Tsai

최중호 스튜디오는 완벽하게 짝지어진 세트가 아니라, 무심하게 집어 들면 자연스럽게 조합이 되는 한국적 사용 습관에 주목했다. 형태와 마감에 미묘한 차이를 둬 어떤 두 짝을 잡아도 사용할 수 있는 젓가락을 만들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나이스워크숍(NICEWORKSHOP)은 아예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 젓가락이 숙련을 전제하는 도구라는 점에 주목해, 두 개의 막대 대신 U자 형태의 단일 구조를 제안했다. 처음 쥐는 사람도 직관적으로 집을 수 있도록 도구의 문턱 자체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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