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디자이너 민디 서가 ‘인덱스(Index)’를 쌓는 이유는?
목록이 역사가 되는 방식
디자이너 민디 서는 아카이브, 비평, 퍼포먼스, 출판을 융합해 권력과 젠더의 역사적 기록 방식을 탐구한다. 그녀는 크라우드소싱 기반의 『Cyberfeminism Index』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연계한 『A Sexual History of the Internet』을 통해, 단일 저자성을 해체하고 지식의 집합적 생산과 재분배를 실천한다.

뉴욕 기반으로 활동하는 민디 서(Mindy Seu)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연구자, 비평가로 소개되지만, 그 어느 쪽도 그녀의 실천 전체를 담지 못한다.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술 비평 글쓰기, 강연 퍼포먼스, 출판, 교육 등이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 UCLA 디자인미디어아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최근 몇 년간 『Cyberfeminism Index』와 『A Sexual History of the Internet』을 연달아 펴냈다. 이 두 권의 책은 물성도, 출판 방식도, 그리고 독자와 맺는 관계도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누구의 역사가 기록되고, 누가 그것을 소유하며, 어떤 형식이 그 기록을 살아남게 하는가.
Cyberfeminism Index(2023)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두께의 책 『Cyberfeminism Index』(2023)는 대학원생 시절의 스프레드시트에서 시작됐다. 처음에 그녀는 기술의 비판적인 사용과 관련된 기존 이론과 실천들을 조사하면서 순전히 자신만을 위한 참고 목록을 작성했다. 그런데 이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피드백을 요청하자 리좀처럼 퍼져나갔다. 온라인에서 이를 본 동료들이 직접 항목을 추가하고, 그 동료가 다른 동료에게 소개하면서 자발적인 참여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후 뉴욕의 넷 아트 기관인 리좀(Rhizome)의 커미션으로 이 목록은 웹사이트로 전환되었고, 팬데믹 기간 동안 책의 초고가 완성됐다. 결국 1년여의 편집과 디자인 작업을 거쳐 2023년, 700개가 넘는 항목으로 해커스페이스, 선언문, 페미니스트 넷 아트, 학술 논문, 디지털 권리 단체의 기록 등을 망라하는 책이 출간됐다.
책의 형식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한데, 민디 서는 이 프로젝트가 에세이가 아닌 인덱스여야만 한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아카이브와 인덱스를 구분하며, “아카이브가 내부를 향해 있다면, 인덱스는 바깥을 가리킨다”라고 말한다. 아카이브라면 ‘무엇이 사이버페미니즘인가’를 먼저 결정한 후, 항목의 포함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에 단일한 역사 서술이 불가피해진다. 반면 인덱스는 서로 모순되는 정의들을 병렬로 놓을 수 있다.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는 사이버페미니즘이라면, 이질적인 것들이 분류되지 않고 공존하는 형식을 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로라 쿰스(Laura Coombs)와 함께 디자인된 책의 물성 역시 이 논리를 구현한다. 책은 형광 녹색과 검은색의 커버, 재활용 신문지 용지인 내지, 그리고 해상도를 변환하지 않아 픽셀과 뭉개짐이 그대로 드러난 이미지가 실렸다. 쿰스는 이를 ‘원본 해상도(native resolution)’라 부르는데, 웹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의 물질적인 시간성을 종이 위에 번역한 결과다.
A Sexual History of the Internet(2025)


두 번째 책 『A Sexual History of the Internet』(2025)은 지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끝내 해소되지 않은 미완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수백 개의 항목을 들여다보면서 작가는 기술의 발달과 욕망, 친밀성의 관계가 그동안 조명되지 않은 계보라고 생각했다. 디지털 도구가 중립적인 인프라라는 통념을 거스르는 작업인 이 책은 컴퓨터 마우스의 인체공학적 설계, ‘컴퓨터’라는 단어가 원래 수치를 계산하던 여성 노동자를 지칭했다는 사실, 플랫폼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이 특정 신체와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삭제해온 방식 등 기술의 ‘몸’ 안에 새겨진 젠더와 권력의 흔적을 면밀히 살핀다.

책 출간에 앞서 민디 서는 퍼포먼스를 먼저 기획했다. 예일대 강의에서 함께 한 학생과 발전시킨 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반의 콘셉트는, 강연에서의 권위를 한 사람의 목소리와 단일한 무대에 묶어 두지 않으려는 시도다. 이후 실현된 퍼포먼스(2025)에는 특별한 무대도, 조명도 없다. 바닥에 놓인 의자는 제각각 방향을 달리한 채 놓였고, 관람객은 각자 휴대폰을 꺼내 안내받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접속한다. 카운트 10에 맞춰 스토리 하이라이트가 재생되면, 어두운 방안에 수백 개의 핸드폰 화면이 동시에 켜진다. 5초마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슬라이드는 빠른 스크롤을 유도하는 플랫폼의 논리를 의도적으로 거스른다. 관객은 화면에 등장하는 인용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고, 작가는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내레이션을 더한다. 발화가 개인의 디지털 기기에서 다수의 목소리로 옮겨지는 순간, 텍스트 인용은 신체적인 행위가 된다.

이 퍼포먼스를 인쇄물로 정착시킨 것이 책 『A Sexual History of the Internet』이다. 스마트폰과 거의 같은 판형으로 독일산 블랙 카드지에 은박 인쇄한 이 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 쿰스와 함께 700 페이지가 넘는 기기이자 퍼포먼스의 기록으로 읽히도록 설계됐다. 책의 유통 과정 역시 실험의 연장선에 있다. 작가는 Metalabel과 Dark Forest Collective를 통해 5,000부 한정 초판을 발행하고, 수익의 30%를 책 안에 수록된 45인에게 분배하는 ‘인용 분할(Citational Splits)’ 모델을 시도했다. 사실 학계에서 인용은 연구자의 영향력과 연구의 공신력을 높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저자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이 관행을 비틀어 인용 행위 그 자체를 재분배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처럼 민디 서의 두 출판물은 크라우드소싱 인덱스부터 낭독 퍼포먼스, 인용 분할 모델까지 저자를 단일한 주체로 상정하지 않는다. 지식은 이미 복수의 목소리가 쌓인 집합적 생산물이라는 이 전제를 그녀는 단순히 선언하거나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성과 유통 구조로 확장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두 책 모두 영어권 독자를 주 대상으로 하고, 유통 경로와 인용 생태계가 상당 부분 뉴욕과 런던 중심의 예술 네트워크에 기댄다. ‘비주류를 기록한다’는 선언이 특정 문화 자본의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순간, 네트워크 경계 너머의 또 다른 비주류는 여전히 그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밀려난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인덱스가 주관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점을 솔직히 드러내며,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가 ‘유지 보수의 서약’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항목을 다듬고 웹사이트를 관리하며 끊임없이 갱신하는 비가시적 노동이야말로 프로젝트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다. 포함과 배제의 경계를 의식하면서도 계속 쌓아 가는 행위, 완결을 유보한 채 갱신을 반복하는 자세. 그녀의 이 불완전한 인덱스가 박제된 아카이브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완전무결이 아니라 돌봄과 생성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