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문화마을 화장실, 세계 디자인상을 받다
엠오씨 건축사사무소 인터뷰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공공화장실을 새롭게 그린 엠오씨 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이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Best of the Best’를 수상했다.

공공화장실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건축이 될 수 있을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간다. 잠시 들른 사람들의 모습과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주인공의 일상이 교차하는 영화 속 화장실은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 16팀이 참여한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로 조성됐다. 평범한 공공시설을 도시의 풍경으로 바라본 시도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도 공공화장실의 가능성을 다시 그린 설계안이 나왔다. 엠오씨 건축사사무소(이하 엠오씨)가 제안한 ‘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Best of the Best’를 수상했다. 엠오씨는 감천문화마을 특유의 지형과 골목을 활용해 화장실과 쉼터를 결합한 공공공간을 제안한다.

삶의 지형을 품은 최소의 건축
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은 2025년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한 ‘부산 우수공공디자인 국제공모전: 지명공모’에서 출발했다. 해외 디자이너 2팀과 부산 디자이너 2팀이 참여한 공모전에서 엠오씨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종 선정됐다. 이후 부산디자인진흥원의 권유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해 수상으로 이어졌다.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정착하며 형성된 계단식 주거지다. 엠오씨는 가파른 경사와 좁은 골목이 이어지는 마을의 구조적 특성에 주목해, 기존 지형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공공화장실을 배치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설계안은 남녀 및 장애인 화장실을 각각의 작은 공간으로 나누어 약 1.2m의 단차가 있는 부지에 배치했다. 나뉜 화장실 사이에는 전면 도로와 후면 골목을 잇는 길을 내고, 그 위로 마루와 지붕을 덮어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쉼터로 조성했다. 화장실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마을의 지형과 일상을 잇는 공공공간으로 확장한 설계다. 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은 ‘Best of the Best’ 수상과 함께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최고상인 ‘Luminary’ 후보에도 올랐다. 최종 수상 여부는 오는 10월 싱가포르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Interview
신주영·황현혜 엠오씨건축사무소 대표
신주영·황현혜 건축사가 2018년 부산에서 설립한 엠오씨 건축사사무소는 고정된 양식에 갇히지 않고 장소의 맥락과 일상의 풍경에서 디자인의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 건축의 규모와 쓰임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로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Best of the Best’를 수상했다.

공모전 대상지로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화려한 해변 대신 감천문화마을을 택했다. 이유가 있나?
부산은 대비가 매력적인 도시다. 바다와 산이 마주하고 해안가의 초고층 빌딩 뒤편 산동네에는 아기자기한 소형 주거지가 군락을 이룬다. 이 역동적인 도시를 단일한 이미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해양 도시’라는 거대한 상징 속에 숨겨진, 작지만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온 부산의 또 다른 이면을 재조명하고 싶었다.

설계 전 현장을 답사하며 특히 주목한 장면이 있다면.
감천동은 계획된 도로가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는 대로 자연스럽게 길이 난 동네다. 막다른 길과 건물 사이를 관통하는 속골목이 혼재한다. 기존 화장실은 앞 도로와 뒷골목 사이에 단차가 있어 빙 둘러 가야 하는 구조였는데, 주민들은 아예 화장실 내부를 관통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등 뒤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 거다. 그 풍경이 이상하다기보다는 거주민들의 지혜로 다가왔다. 디자이너로서 가진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출발점이 됐다.
지붕마다 놓인 물탱크와 넉넉하지 않은 실내를 확장하기 위해 어설프게 덮어둔 렉산(투명 플라스틱) 지붕도 흥미로웠다. 척박한 생활환경에서 비롯된 생존의 요소들이 역설적이게도 훌륭한 디자인적 가능성으로 보였다.

장소성이 강한 곳이다. 지역의 풍경과 생활을 존중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로 부상하며 원주민들이 겪는 생활의 불편함과 활기가 공존하는 곳이다. 새로워도 이질적이지 않은 공간을 위해 주변 건물의 규모를 넘어서지 않도록 제한했다. 외벽은 주민들에게 친숙한 모자이크 타일을 택했다. 렉산 같은 반투명 마감재의 가능성을 경사지붕 디자인에 차용했다.
마을에는 경사지에 집을 지을 때 앞집이 뒷집의 햇빛을 가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 그리고 집과 집 사이 비워진 공간을 모두가 공유하는 장소로 여기는 정서가 있었다. 도심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방식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사소해 보이는 가능성을 채집하는 데 집중했다.

화장실을 작은 단위로 나누고, 그 사이에 골목을 냈다. 공간 배치의 기준이 궁금하다.
부지가 비좁고 경사져 있었다. 화장실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지으려면 땅을 깎거나 메워야 하고, 필연적으로 옹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화장실을 관통하며 다니던 마을의 오랜 지혜에 오히려 역행하는 퇴보라 여겼다. 그래서 화장실을 최소한의 기능 단위로 해부한 뒤 땅의 크기와 지형에 맞춰 적절한 위치를 찾아 얹었다. 덩어리 사이로 꺾인 길을 내면 외부에서 화장실 내부가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아 불쾌감을 줄일 수 있고,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과 채광을 통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화장실 위에 마루와 지붕을 더해 쉼터를 계획했다. 위생 시설에서 머무는 공간까지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디자인은 감정이다. 기능만큼이나 디자인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아름답다’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대중교통이 닿기 힘든 산동네까지 올라온 관광객이 화장실을 마주했을 때 ‘좋다’는 감정을 받고,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잠깐이라도 쉬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화장실 맞은편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늘 아래 놓인 의자는 마을의 사랑방이다. 밤새 안녕했는지, 누구 집 자식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화장실 위에 가벼운 지붕을 얹어서 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지붕 위 고깔 모양의 물탱크에서 물을 끌어와 김장을 하거나 작은 소일거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리를 펴면 감천마을의 지붕들과 먼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일상에서 문득 좋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 이런 게 좋은 디자인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인의 완성도와 공공시설로서의 실용성, 그 균형은 어떻게 맞췄나?
논리적이고 순차적으로 접근하려 노력하지만, 공간에 대한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는 본능적 직관이 앞설 때도 많다. 논리와 직관을 오가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목표와 최소한의 질서가 잡힌다. 이번 작업은 운 좋게도 그 균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경사진 부지와 주변 골목을 자연스럽게 잇고, 화장실을 쪼개어 그 흐름 위에 얹어두었을 뿐이다. 어쩌면 건축가로서의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덕분에 그 균형을 얻은 것 같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계획안이다. 레드닷 심사위원단이 높이 평가한 가치는 무엇이라 보나?
‘부산’이라는 거대한 상징보다, 작고 소소한 삶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에 조심스럽게 녹아든 디자인이 공감을 얻은 것 같다. 또한 자연환경과 대면하는 접점을 늘렸다는 점도 유효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건축물은 점차 밀폐되는 추세지만, 적어도 공공공간만큼은 자연과 만나는 지점이 많아야 한다. 춥거나 덥더라도 잠시 바깥바람을 쐴 때 느끼는 상쾌함은 누구나 아는 즐거움이니까.

프로젝트의 현재 진행 상황과 향후 실제 건립될 때 끝까지 지키고 싶은 원칙이 있다면.
현재 지자체와 구체적인 건립 협의가 진행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기존 화장실의 노후화가 심각해 조만간 개선의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한다. 향후 실제로 지어진다면, 화장실을 잘게 나누고 그 틈을 골목으로 엮어낸 ‘공간의 구조’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다. 예산이나 사정에 따라 마감재는 바뀔 수 있어도, 감천마을의 삶과 지형을 담아낸 이 구조가 유지되어야만 프로젝트의 본질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