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로 낮춘 미술관의 문턱, SFMOMA Sans

가독성과 온기를 더한 새 전용 서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전용 서체 'SFMOMA Sans'를 공개했다. 활자 접근성 연구로 유명한 타입 디자이너 올리비아 킹이 디자인을 맡았다.

활자로 낮춘 미술관의 문턱, SFMOMA Sans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이하 SFMOMA)이 누구나 편안하게 읽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전용 서체 ‘SFMOMA Sans’를 공개했다. 디자인은 글로벌 출판 그룹 펭귄 랜던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브랜드 서체 리뉴얼을 이끌고, 시각 약자와 난독증 환자를 위한 오픈소스 서체 ‘인클루시브 산스(Inclusive Sans)’를 개발하며 활자 접근성 연구를 선도해 온 타입 디자이너 올리비아 킹(Olivia King)이 맡았다.

장벽 없는 활자, 포용적 미술관

SFMOMA의 전용 서체 리뉴얼은 미술관 전반에서 다년간 진행 중인 포용적 디자인 이니셔티브(Inclusive Design Initiative)의 핵심 축으로 출발했다. 2026년은 미술관 현대화의 상징인 ‘피셔 컬렉션(Fisher Collection)’ 유치 10주년이자 현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 10주년이 되는 해다. 아울러 미술관 전체 갤러리 공간의 40%를 새롭게 재단장하는 대대적인 공간 개편 프로젝트와 맞물려, 관람객 경험의 가장 전면에 위치한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을 진화시킬 최적의 계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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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리비아 킹 홈페이지

미술관 환경에서 서체는 단순한 문자 표기 도구가 아니다. 길 찾기 사인, 캡션, 웹사이트, 출판물, 뮤지엄 숍 제품까지 관람객과 만나는 가장 빈번한 시각 접점이다. SFMOMA 아트 디렉터 에이미 유 그레이(Amy Yu Gray)는 완벽한 기하학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기존 서체가 기계적인 인상을 주어 관람객에게 거리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짚었다. 특히 기존 활자 시스템은 저시력자나 난독증 등 시각·인지적 차이를 지닌 관람객에게 가독성 장벽으로 작용했다.

서체는 미술관의 가치를 전달합니다. ‘당신은 이곳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여기는 당신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죠.

에이미 유 그레이 SFMOMA 아트 디렉터

SFMOMA는 접근성 전문 컨설팅 기관인 프라임 액세스 컨설팅(Prime Access Consulting)과 함께 서체 감사를 진행했고, 덴마크 소피에 베이어(Dr. Sofie Beier) 박사 연구팀의 가독성 연구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도출한 과제는 명확했다. 미술관 유산인 기하학적 산세리프를 계승하면서도, 글자 형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누구에게나 다정한 시각 언어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통합된 시스템, 다정해진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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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MOMA Sans의 가장 큰 변화는 따로 놀던 큰 제목용 글씨와 작은 본문용 글씨를 하나로 합친 점이다. 그동안 제목 글씨는 각진 도형 느낌이 강했고, 설명문 글씨는 폭이 좁고 딱딱해 미술관 전체의 분위기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올리비아 킹은 이를 아주 얇은 두께부터 아주 두꺼운 두께까지 총 9가지 굵기로 정리해, 거대한 전시장 벽면 글씨부터 스마트폰 화면과 손바닥만 한 엽서 속 작은 설명문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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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인상을 결정짓는 조형은 SFMOMA의 지난 인쇄물과 전시 그래픽 아카이브에서 출발했다. 반듯하고 규칙적인 산세리프 골격을 바탕으로, 모서리에는 완만한 곡선을 두르고 획의 끝자락에는 손글씨의 자연스러운 뉘앙스를 더해 한결 부드럽고 다정한 인상을 빚어냈다. 여기에 형태가 한쪽으로 닫히지 않도록 글자 안팎의 공간을 여유롭게 열어두어, 읽는 이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인간적인 표정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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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리비아 킹 홈페이지

눈여겨볼 대목은 헷갈리기 쉬운 글자들을 뚜렷하게 구별한 디자인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숫자 ‘1’, 영어 소문자 ‘l(엘)’, 대문자 ‘I(아이)’를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모양을 나눴다. ‘b’와 ‘d’, ‘p’와 ‘q’처럼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똑같이 뒤집어 놓던 방식도 버리고, 글자마다 제각각 뚜렷한 특징을 주어 난독증이 있는 사람도 글자가 뒤집혀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다. 글자 안쪽의 빈 공간을 넓히고 글자 사이 간격도 넉넉하게 띄워, 글씨 크기가 아무리 작아져도 획이 뭉개지지 않고 시원하게 읽힌다.

특히 대문자 ‘Q’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작은 크기로 인쇄하면 알파벳 ‘O’와 구분이 안 되던 문제를 풀기 위해, 아래쪽 꼬리가 둥근 몸통 안쪽을 과감하게 가로지르도록 그렸다. 작은 글씨에서도 단번에 ‘Q’임을 알 수 있게 배려하면서도, 미술관다운 감각적인 개성을 살린 디테일로 눈길을 끈다.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민이 모여, 일반 관람객도 이유를 의식하지 못한 채 편안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글자 시스템을 완성했다.

공간으로 번지는 포용의 활자

한편 신규 서체는 지난 2026년 4월 피셔 컬렉션 10주년 기념전 <Reimagined: The Fisher Collection at 10>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현재 전시장 안내 사이니지와 리플릿 지도는 물론, 디지털 웹사이트와 공식 소셜 미디어 전반에 순차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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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리비아 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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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리비아 킹 홈페이지

“가장 훌륭한 타이포그래피는 투명하다”라는 디자이너의 말처럼, 서체의 변화를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고 미술관 전체가 한결 다정해졌다는 평이다. 작은 글자 하나로 미술관의 공기를 더 편안하게 바꾼 SFMOMA Sans가 새롭게 단장하는 전시 공간들과 미술관의 포용적 디자인 프로젝트 전반에 긍정적인 기준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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