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에 불어드는 변화의 바람
새로운 향, 보틀 디자인, 브랜딩을 맞이한 이솝(Aesop)
오랜 시간 자신만의 철학과 디자인 언어를 구축해 온 이솝에 변화가 찾아왔다. 익숙한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향과 브랜딩, 디자인부터 공간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솝이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봤다.

개성 있으면서도 절제된 향, 미니멀하고 세련된 디자인. 이솝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앰버 보틀과 절제된 패키지, 지역의 맥락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스토어까지, 일관된 철학을 고유한 디자인 언어로 보여줘 왔다. 그리고 최근, 우리에게 익숙했던 이솝에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조향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향수 컬렉션이다. 이솝은 지난 10월 1일 ‘프래그런트 페이블즈(Fragrant Fables)’를 선보이며 기존 향수 라인업을 새롭게 정비했다. 기존 향수들이 쌓아온 고유한 향과 스토리텔링, 미학적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조향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고, 각각의 향에는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부여했다. 총 12종으로 구성된 컬렉션 가운데 8종을 먼저 공개했으며, 새로운 향 ‘언포어신 아에르(Unforeseen Aer)’도 함께 선보였다.

향수 라인업의 브랜딩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그 중심에는 ‘우화(Fable)’가 있다. 브랜드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고대 그리스의 우화 작가 이솝에게서 영감을 받아 기존 향수에 담긴 이야기를 한 편의 우화 같은 시로 다시 풀어내고, 각각의 향에 새로운 이름과 서사를 부여했다. 향수의 이름과 패키지에도 이러한 우화를 반영해 향을 맡는 경험을 넘어 이야기를 읽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경험으로 확장했다.


새롭게 합류한 ‘언포어신 아에르’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잘 드러난다. 제라늄과 라반딘, 로즈마리의 싱그러운 아로마에 넛맥의 따뜻한 스파이시함을 더한 향으로, ‘예기치 못한 변화’를 주제로 한 우화를 담았다. 혼돈을 두려워해 세상을 고요하게 두던 공기가 내면의 본능을 따라 움직이고, 마침내 불완전함 속에서 환희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향과 우화가 맞물리며 ‘언포어신 아에르’만의 성격을 완성한다.
“그것은 잎사귀들을 흩날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춤을 추며 뒤틀린 형상 속에서 선율을 자아냈다. 휘몰아치고 회전하며, 정해진 질서 없이 스스로의 불완전함 속에서 환희를 만끽했다. 예기치 못한 이 변화들은 우리의 존재에 얼마나 깊이를 더할까?“
— ‘언포어신 아에르(Unforeseen Aer)’ 우화 중
새롭게 단장한 보틀 디자인
새로운 이야기를 담는 보틀도 달라졌다. 이솝을 상징해 온 앰버 글라스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실루엣은 이전보다 길고 날렵하게 다듬었다. 익숙한 인상을 완전히 바꾸기보다는 기존의 디자인 언어 안에서 세부적인 변화를 택한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틀의 상,하단부다. 하단에는 와인병의 펀트를 연상시키는 돔 형태의 바닥면을 적용했다. 상단 캡에는 이솝이 탄생한 호주의 멜버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수천 년 된 현무암에서 영감을 받은 거친 질감을 입혔다. 매끈한 앰버 글라스와 대비되는 표면 덕분에 시각뿐 아니라 손끝에서도 이전과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래픽 역시 한층 진화했다. 보틀에 프린트하던 기존 로고 대신 글라스 자체에 이솝 엠블럼을 양각으로 새기고, 향수의 이름은 메탈릭 앰버 컬러로 표현했다. 또, 패키지에는 각 향의 우화를 표현하는 이미지가 새겨졌다. 형태와 그래픽, 촉감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소를 손봤지만 한눈에 이솝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인상은 유지했다. 브랜드의 오랜 시각적 자산을 버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컬렉션의 정체성을 더한 리뉴얼이다.


한국의 새로운 시그니처 스토어, 이솝 도산
글로벌에서 향수 컬렉션이 새롭게 단장하는 동안 한국에서도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지난 5년간 이솝의 한국 오피스로 사용해 온 공간이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 ‘이솝 도산’으로 탈바꿈했다. 공간 디자인은 임태희 디자이너가 이끄는 LTH 스튜디오가 맡았다.이곳에서는 다른 이솝 스토어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의 출발점은 조부모의 집에서 식사를 하던 따뜻한 기억이었다. 1980~90년대 한국 가정집에서 영감을 받아 미닫이식 그릇장과 찬장, 평상, 일력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요소를 곳곳에 녹였다. 오래된 집에서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방문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소재 하나하나에도 공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앙 아일랜드를 감싼 도자 타일은 이솝 도산만을 위해 특별 제작했으며, 바닥 타일의 컬러는 이솝 바 비누 패키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벽면의 제품을 진열하는 옻칠한 벚나무 선반 역시 과거 한국 주택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었던 요소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글로벌에서 향수 컬렉션에 변화를 시도한 이솝은 국내에서도 이솝 도산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향과 이야기, 디자인부터 지역의 기억을 담아낸 공간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익숙한 이솝의 모습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는 것. 오랜 시간 자신만의 철학과 디자인 헤리티지를 구축해 온 이솝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