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문을 연 가장 동시대적인 호스피탤리티 공간, 치커리 호텔

어니언 스튜디오가 선보인 패션, 아트, 미식의 교차점

1980년대에 지어진 여관 자리에 특별한 호텔이 들어섰다. 서울 동빙고동의 한강변, 잠수교를 앞에 두고 강남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 치커리 호텔(Hotel Chicory)이다.

서울에 문을 연 가장 동시대적인 호스피탤리티 공간, 치커리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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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지닌 호텔은 독보적이고 유일하다. 동빙고동의 한강변, 잠수교를 앞에 두고 강남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 치커리 호텔(Hotel Chicory)은 1980년대 이 자리에 지어진 여관 ‘잠수장’에서 시작했다. 40년이 넘게 여관으로 운영되다 문을 닫은 건물이다. 그 역사를 이어받은 이는 ‘카페 어니언’을 이끄는 유주형 대표다. 뒤편에는 재개발을 앞두고 조금씩 사라져가는 오래된 동네가 남아 있고, 정면으로는 한강과 빠르게 움직이는 서울이 펼쳐진다. 낡고 정겨운 것과 화려하고 역동적인 것, 과거와 현재가 한 자리에서 충돌한다. 치커리 호텔이 말하는 ‘아름다운 혼돈’은 이 장소에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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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치커리 호텔은 본래 여관이던 건물의 구조와 기능을 최대한 살렸다. 규모도 작다. 객실은 단 8개. 오래된 벽을 무조건 새것으로 덮는 대신 수십 년간 겹쳐진 벽지의 흔적을 드러내고, 한지와 옻칠 같은 재료를 더했다. 보따리 형태의 침구, 온돌 방, 옥색 변기, 등 전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색과 재료, 몸이 머무는 방식에 스며들게 했다. 기존 두 객실을 합쳐 넓힌 방이 있는가 하면 1980년대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16㎡ 남짓한 객실도 있다. 낡은 재료와 가구 역시 버리는 대신 다시 갈고 닦아 공간 안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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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동시대 미술과 디자인이다. 서도호, 양혜규, 류성실의 작품이 객실과 공용 공간을 채웠고, 미샤 칸(Misha Kahn), 김민재, 이혜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이곳을 위해 가구와 오브제를 제작했다. 4층 스위트에서는 미샤 칸의 조각적인 가구가 거실에 자리하고, 김민재의 의자와 조명 등이 침실의 유니크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공식적으로 이 공간에 붙인 이름도 ‘혼돈과 고요의 대화(A Dialogue of Chaos and Calm)’다. 오래된 여관의 몸체 위에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이 겹치면서 치커리만의 오묘한 아우라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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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1층의 치커리 카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올데이 다이닝 공간이고, 2층 티타산(TITASAN)에서는 박지오 셰프를 필두로 디저트와 주류를 결합한 실험적인 미식 경험을 선보인다. 예술과 디자인, 음식과 술, 숙소가 한 건물 안에서 느슨하게 뒤섞이는 것이 특징. 카페 어니언을 통해 오래된 건물과 동네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온 유주형 대표가 이번에는 호텔이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젠가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는 여관을 첫 번째 플래그십으로 삼아, 한국의 동시대적 미감과 호스피탤리티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치커리 호텔을 만든 유주형 대표에게 그 시작과 다음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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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바 티타산. (왼쪽), 지하 1층의 노 글로브(No Glove)는 현재 오픈을 앞두고 있다. (오른쪽) © Hotel Chicory

Interview

유주형 치커리 호텔 대표

어니언을 통해 F&B 공간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호텔’이라는 형식을 택했다. 치커리 호텔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대개의 일이 그렇듯, 여러 이유가 겹쳤다. 우리 회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지방 도시를 살리는 일이다. 그걸 현실적으로 해보려면 호텔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힘이 크고, 한 지역에 머무는 시간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빙고동의 잠수장을 알게 됐다. 3대째 이어진 여관으로, 그 시간을 우리가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곳은 재개발 구역이다.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도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조건이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로컬 호텔 브랜드를 시작하기에 꽤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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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이름도 인상적이다. ‘치커리(Chicory)’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 명칭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어떤 단어는 나라마다 사람들이 자기 언어처럼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파친코’가 그렇다. 일본 사람은 일본어라고 생각하고, 미국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다. 나는 그런 단어가 굉장히 인터내셔널하다고 느꼈다. 원조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진다. 어쩌면 그 점이 지금의 국제적인 상황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치커리’도 비슷했다. 여러 언어권에서 비슷한 형태로 쓰이고, 각자의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한국 사람 중에는 치커리를 한국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점이 재미있었다.

가구와 공간을 함께 만든 창작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작가와 작품을 고를 때 어떤 기준점을 두었나?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을 정해두고 작가를 고른 것은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돌아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우리 관점에서는 각자 분명한 ‘다름’을 가진 창작자들이었다. 치커리 호텔을 기획하면서 내내 큰 화두였던 것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어니언 안국점을 만들 때도 최순우 선생님의 글을 따라 무량수전과 부석사를 찾아가고, 한국 건축을 돌아보며 그 원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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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그런 면에서 서도호 선생님의 작업은 내게 중요한 힌트를 줬다. 한국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수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구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름다움이 함께 느껴졌다. 어느 한쪽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각이 흥미로웠다. 서도호 선생님의 <집 속의 집> 작업에서 느낀 감정 역시 치커리 호텔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닿아 있었다. 짧은 동선을 지나는 동안 전혀 다른 감각으로 환기됐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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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기존 여관의 골조와 흔적은 최대한 남기는 한편, 버려진 재료를 다시 다듬어 가구로 만들고 공간 곳곳에 손으로 만든 요소를 더했다.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도 궁금하다.

어니언을 만들 때도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공간은 참고하지 않으려 한다.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일부러 잘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오히려 미술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굳이 꼽는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다. 그것이 소재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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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Chicory

또 하나는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중 하나는 손으로 만드는 일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직접 손으로 만든다. 버려진 재료를 수거해 갈고 닦고, 다시 가구로 만들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소외된 것을 다시 꺼내고, 손으로 다듬어 사람들이 다시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지방 도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도시가 쇠퇴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면, 그 안에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들을 다시 발견해 보여주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고 싶다. 그런 태도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계속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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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커리는 재개발로 언젠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호텔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이어질 호스피탤리티 브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어떤 비전을 품고 있나?

앞으로 치커리 호텔을 계속 늘려갈 생각이다. 동빙고동의 치커리 호텔은 플래그십에 가깝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호스피탤리티와 미감이 있다고 본다. 그 감각을 우리가 한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동시에 어느 지역에 있든 계속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 싶다. 글로벌 스탠더드 안에서 경쟁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큰 숙제가 있다. 하나는 국내에서 지방을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해외에 효과적으로 알리고 확장할 것인가다. 그 두 가지 목표를 함께 가져가며 성실하게 도전해보고 싶다.

치커리 호텔

장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295
홈페이지 치커리 호텔
인스타그램 @chicoryhotel (예약 및 문의는 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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