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와 한지가 만나는 지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한지 도서 프로젝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한지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한글-한지 융합 프리미엄 브랜드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오랜 세월 기록과 보존의 매체로 사용된 한지는 오늘날 출판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소재다. 종이 고유의 질감과 색감, 뛰어난 보존성은 책의 시각적 표현은 물론 제작 방식에도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이러한 한지의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 현대 출판 콘텐츠와 연결해 활용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한글-한지 융합 프리미엄 브랜드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늘날 출판물에도 한지가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도록 한지의 활용 가능성을 넓히는 프로젝트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민음사, 비룡소, 창비 5개 출판사는 작품의 성격에 맞춰 한지를 선택하고 인쇄와 후가공, 제본 방식을 조율해 11종의 한지 도서를 제작했다. 종이의 물성을 시각적 표현과 책의 구조에 반영하며 소재 선택이 디자인의 방향과 제작 방식을 어떻게 이끄는지 보여준다. 완성된 한지 도서는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광화문 교보문고점에서 열리는 〈2026 한지 도서 특별전〉에서도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5개 출판사가 제작한 11종의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이 마련된다.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다양한 참여 이벤트도 열린다.
문학동네
박과 실크스크린으로 더한 한지의 미감〈연어〉
한 권의 책이 서른 해를 건너 오래도록 기록을 보존해 온 종이를 만났다. 1996년 출간된 안도현의 〈연어〉가 30주년을 맞아 한지 에디션으로 돌아온 것.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생명력과 한지의 지속성은 이번 개정판을 관통하는 연결 고리다. 1996년 초판이 펜 드로잉으로 연어의 속도감과 강인함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물의 흐름과 생명체의 질감을 담아내기 위해 수채화를 택했다.

휘리 작가가 작품의 주요 문장을 바탕으로 그린 23점의 그림은 종이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채화의 발색을 살리면서 한지의 결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을 감싸는 두 종류의 슬리브에는 섬유질이 살아 있는 전통 한지를, 표지와 본문에는 색 표현과 비침을 조절하기 쉬운 기계 한지를 사용했다. 책 한 권에 서로 다른 한지를 조합해 사용한 것은 재료의 특성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각 부분의 역할에 맞게 해석한 결과다. 제작 과정에서는 전통 한지의 불규칙한 표면이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켰다. 박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자 아교 처리에 따른 앞뒷면의 차이를 확인해 종이를 뒤집었고, 실크스크린 작업에서는 섬유질과 분진이 망을 막자 그림과 글자의 판을 분리하고 색과 펄을 나눠 인쇄했다. 일반적인 제작 공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던 조건이 오히려 종이의 성질을 세밀하게 살피는 계기가 됐다.

한편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이 두 종류의 슬리브를 비교하고 한지의 촉감을 확인하며 책을 선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표지 디자인을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재료와 후가공 자체가 구매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연어〉는 종이를 바꾸는 일이 인쇄와 제본의 기술적 조정에 그치지 않고 책을 만들고 선택하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생명체라면, 한지는 오랜 시간을 견디며 기록을 보존해 온 종이다.”
– 최정윤 문학동네 디자인국 과장
디자인 최정윤
겉표지 고궁한지, 맥순지 3번 4합 43g
속표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3 120g
내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3 80g
박완서 단편 문학의 정수를 담다,〈쥬디 할머니〉
전통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책까지 고전적일 이유는 없다. 박완서 15주기를 맞아 기획한 소설집 〈쥬디 할머니〉는 오히려 이러한 예상에서 벗어나는 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췄다. 한국 소설가 31명의 추천으로 선정한 단편 10편을 통해 익숙한 작가의 날카롭고 낯선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 기획은 책의 외형에도 이어졌다. 전통 한지 슬리브에는 집과 정원의 이미지를 절제된 선으로 표현했지만 이를 벗기면 분홍색과 보라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선명한 표지가 나타난다. 책을 감싼 외피와 그 안쪽의 대비가 작품의 반전과도 맞물린다.


제작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청색 박이 흐리게 찍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펄박 위에 청색 박을 다시 입히는 방식을 택했고, 두꺼운 본문이 편안하게 펼쳐지도록 제본과 슬리브의 치수도 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 한지의 불규칙성이 익숙한 제작 방식을 재검토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재료를 다루는 데 든 수고가 결과적으로 책의 시각적 대비와 후가공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한지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미감을 함께 지닌 종이라고 생각했다. 표지에 청색 박을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펄박 위에 청색 박을 한 번 더 입혔다.”
– 정민교, 문학동네 편집부 과장
디자인 엄자영, 유현아
겉표지 고궁한지, 맥순지 3번 4합 43g
속표지 고감한지엔페이퍼, 인견한지 110g
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인견한지 연분홍 80g
본문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두성종이, 인의예지 구름지) 80g
비룡소
색감과 질감으로 구현한 한국의 멋 ,〈아씨방 일곱 동무〉
이영경 작가의 〈아씨방 일곱 동무〉는 한지와 그림책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98년 출간된 원작은 옛 수필 〈규중칠우쟁론기〉를 바탕으로 작가가 한지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 그림을 담았다. 28년 만에 제작한 특별판에서는 그 그림을 다시 한지에 인쇄했다. 중요한 것은 원화의 재료를 그대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인쇄물로서의 조건을 새롭게 판단했다는 점이다.

양면에 걸쳐 색이 인쇄되는 그림책인 만큼 비침을 줄여야 했지만 종이를 두껍게 만들면 책장을 넘기는 감각이 둔해질수 있었다. 잉크 묻어남을 막고 한지 특유의 촉감을 보존하기 위해 건조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보다 가로 길이를 줄인 판형과 완전히 펼쳐지는 실제본은 일곱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원화의 색과 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결국 책 크기와 제본, 독자의 감상 방식까지 결정한 셈이다.

“이 도서는 원화부터 한지에 그린 작품이고 선과 색에도 한지의 성질이 이미 담겨 있었다.”
– 이영경 작가
디자인 정상철
겉표지·속표지·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은은매력 150g
먹선을 활용한 듯한 묵직한 질감,〈강이〉
이수지 작가의 〈강이〉는 목탄 특유의 거칠고 부드러운 선에 푸른색을 더해 한 가족과 유기견이 함께한 시간을 그려낸다. 목탄의 번진 듯한 질감과 절제된 색채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먹먹한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든다. 비룡소는 이러한 원화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은은한 미색의 한지를 선택했다. 종이 표면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섬유의 결은 목탄의 입자감과 어우러지고, 넓은 여백에는 따뜻한 색감이 스며들어 장면에 깊이를 더한다.

검은 선과 별색 파랑의 발색, 뒷면의 비침 등을 확인하며 원화의 표현을 섬세하게 조율했고, 그림이 양면에 걸쳐 펼쳐지도록 사철제본을 적용했다. 책등의 실이 드러나는 구조는 가족의 시간을 한 장씩 묶어놓은 앨범을 연상시킨다. 한글과 함께 실린 영문은 이수지 작가가 직접 쓴 것으로, 해외 독자도 같은 판본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강이〉에서 한지는 목탄의 질감을 받쳐주는 바탕이자 이야기의 애틋한 감정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표현 수단이 된다.
“ 한지의 부드러운 미색과 질감이〈강이〉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검은 선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 정은정 비룡소 부장
디자인 정상철
겉표지·속표지·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닥향 125g
창비
원화의 전통 채색화 기법을 구현한 〈한밤중 개미 요정〉
10년 전 장지 위에 그린 신선미 작가의 그림이 한지를 만나 새로운 판본으로 탄생했다. 2016년 출간한 〈한밤중 개미 요정〉은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완성한 원화의 색감과 질감을 살리고자 한지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창비는 부드러운 채색과 섬세한 선을 살리기 위해 종이의 발색과 표면에 맞춰 이미지 데이터를 보정하고 인쇄 테스트를 거쳤다.

책을 보호하는 케이스에는 골판지와 한지를 결합했다. 케이스를 열어 책을 꺼내는 과정은 이야기 속 아이가 함을 열어 개미 요정들을 발견하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지의 물성과 그림책의 서사가 책 구조 안에서 조화를 이룬 사례다.

“본문 속 아이가 함을 들추어 개미 요정들을 만나는 것처럼 독자도 케이스를 열고 책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반서윤 창비 출판2본부 디자인팀 차장
평안도 방언의 토속적 미학이 담긴 〈백석 시전집〉
백석의 시를 한지에 인쇄하는 일은 오래된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창비가 〈백석 시전집〉에서 주목한 것은 시어와 함께 남아 있는 활판인쇄의 흔적이었다. 기존의 디지털 인쇄용 데이터를 사용하는 대신 옛 판본을 한 장씩 스캔해 활자의 고르지 않은 획과 잉크 농도를 살렸다.


표지에는 얇은 전통 한지를 사용해 안쪽의 노란 종이가 은은하게 비치도록 하고, ‘은펄 에칭’으로 표면에 미세한 요철을 더했다. 활자의 불균일한 인상과 종이의 결이 만나면서 책은 인쇄 당시의 물성을 연상시키는 표정을 갖게 됐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인쇄 설비에 맞추는 과정이 필요했다. 한지에서 발생하는 지분과 정전기, 잉크의 흡수 문제를 고려해 인쇄 속도를 낮추고 건조 시간을 늘렸다. 활판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현대적인 제작 기술을 세밀하게 조율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데 한지가 탁월한 종이라고 생각한다. 한지는 인쇄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고유한 색과 표면의 질감, 비침만으로 충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이범현 창비 제작부 부장
디자인 박정민
겉표지 고궁한지, 맥순지 3번 2합 43g
속표지 고감한지엔페이퍼, 순운용GP4-002(화인특수지, 순운용지 백색) 120g
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민예지CD3(화인특수지, 민예지 CD3) 45g
내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화인특수지 인의예지 구름지) 80g
케이스 고감한지엔페이퍼, 응용한지GHI100(화인특수지, 응용한지) 100g
민음사
겹겹이 포개 극대화한 고전의 품격,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제목만으로도 특정한 시대와 풍경이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전통 한지까지 더하면 책의 인상이 지나치게 고전적으로 기울 수 있다. 민음사가 경계한 것도 이 지점이었다. 500번째 세계문학전집과 함께 선보인 한지 에디션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윤종숙 작가의 회화를 선택해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떠나온 고향의 풍경을 색채로 표현한 회화는 이미륵의 작품과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으면서도 동시대적 인상을 준다. 특히 색과 형태가 번지고 겹치는 원화의 특징을 한지의 비침과 접힘으로 확장한 점이 돋보인다. 표지를 접어 경계 면을 만들고, 뒷면에도 이미지를 인쇄해 종이가 포개질 때 회화의 층위가 달라지도록 했다.

한국어 제목과 독일어 제목 역시 서로 다른 면에 놓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지의 발색과 인쇄 안정성을 확보해야 했다. 기계 한지의 색 재현은 예상보다 뛰어났지만 섬유질 때문에 잉크가 고르게 묻지 않아 인쇄 압력과 건조 시간을 조정했다. 이 책에서 한지는 회화가 인쇄되는 표면에 머물지 않는다. 접고 겹치는 구조를 통해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읽게 하는 장치가 된다.
디자인 최정은
겉표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두성종이, 인의예지 구름지) 120g
속표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두성종이, 인의예지 구름지) 250g
내지 천양피앤비, 인견지 백색(두성종이, 인의예지 바람지) 80g
사랑 시를 감싼 세 가지 색의 한지,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
젊은 한국 시인들의 사랑 시를 엮은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는 노랑, 분홍, 하늘색 한지를 사용해 서로 다른 세 가지 모습으로 제작한 시집이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과 선명한 색, 탈네모틀 한글꼴인 안상수체가 만나 전통 종이에 대한 익숙한 인상에서 벗어난다. 표지와 본문에 같은 색의 한지를 사용해 책장을 넘기는 동안에도 색의 경험이 이어지도록 했고, 책등의 제본 실을 드러내 종이와 구조 자체를 디자인의 일부로 삼았다.

한지의 앞뒷면에서 서로 다른 촉감이 느껴진다는 점은 처음에는 제작상의 우려였지만, 인쇄 테스트에서 가독성을 확인하면서 책의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한영 대역으로 제작한 이 책은 베를린에서 한국어를 읽지 못하는 독자에게도 아트북처럼 받아들여졌다. 언어를 이해하기 전에 색과 형태, 촉감으로 책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지가 출판물의 경험을 넓히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국어를 읽지 못하더라도 한지의 색과 질감에 관심을 보이며 아트북처럼 책 자체를 보고 고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 조아란 민음사 부장
디자인 최지은
표지·내지 천양피앤비, 인견지 노랑/분홍/하늘 80g
문학과지성사
시 한 편을 책의 얼굴로,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시인의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하는 대신 시 자체를 표지에 내세웠다. 최승자의 47년 시 세계를 9명의 동시대 여성 시인이 다시 읽고 선정한 91편의 시를 엮은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이야기다. 표제시 전문은 앞표지에서 책등까지 이어지며 책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여기에 금은박 조각이 흩어진 한지를 사용해 책마다 다른 표면을 만들었다.

처음 검토한 거친 갈색 한지는 수급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대안으로 선택한 종이의 불규칙한 무늬가 오히려 한 권 한 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본 책과 9명의 시인이 쓴 산문을 담은 별책은 미색 한지 케이스로 묶었다. 반면 본문은 한지의 규격과 종이 낭비를 고려해 일반 인쇄용지를 사용했다. 재료를 책 전체에 적용하는 것보다 어디에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시 전문이 인쇄된 표지와 우연한 금은박 무늬가 겹치면서, 책의 얼굴은 고정된 그래픽이 아니라 인쇄된 활자와 종이의 상태가 함 께 결정하는 결과물이 됐다.


디자인 김은혜
표지 천양피앤비, 인견지 백색(두성종이, 인의예지 바람지 백색) 80g
케이스 천양피앤비, 지젤 미색(두성종이, 지젤 미색) 240g
한국 젊은 시인들의 감각을 엮은 시집, 〈시 보다 2026〉
매년 같은 판형과 디자인 체계를 유지하는 시리즈에 새로운 종이를 적용하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문지문학상 시 부문 후보작을 모은 〈시 보다 2026〉은 익숙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재료와 제작 방식에 변화를 준 사례다. 표지에는 이지영 작가의 다기 세트 그림을 사용하고 기존의 제목 레이아웃을 유지했다.

가장 많이 논의한 부분은 오히려 본문 종이였다. 한지는 일반 인쇄용지와 전지 규격이 달라 기존 판형에 맞추면 버려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작 조건을 충족하는 바람지를 선택한 뒤에는 종이의 가벼운 무게와 앞뒷면의 서로 다른 촉감을 책의 특징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무선 제본을 책등의 실이 보이는 사출 제본으로 바꾸면서 펼침성도 높였다. 본문의 별색과 제본 실, 띠지 색을 연결해 시리즈의 인상을 유지했다. 종이의 규격이라는 제약이 제본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 결과 책 구조 자체가 디자인 요소가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디자인 김은혜
표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두성종이 인의예지 구름지) 250g
띠지·면지 천양피앤비 인견지 연분홍(두성종이 인의예지 바람지) 80g
내지 천양피앤비 인견지 백색(두성종이 인의예지 바람지) 80g
인간의 영적 성장을 한지로 은유한 〈아름다운 새벽〉
마해송의 자전적 수필 〈아름다운 새벽〉의 디자인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한 문장에서 출발했다. “자욱한 안개에 덮인 거리를 엷은 햇살이 걷어 헤치는 것 같이 차츰 지붕들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조슬기 디자이너는 이 장면을 책의 앞뒤 표지에 걸친 새벽 풍경으로 옮기고, 연노랑 띠지와 책등을 가로지르는 실로 햇살 이미지를 연결했다.


종이 선택도 문장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검토한 종이는 발색이 예상보다 선명해 어슴푸레한 새벽의 인상과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표면의 요철이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구름지를 선
택했고, 본문에는 앞뒷면의 촉감이 달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미묘한 변화가 느껴지는 인견한지를 적용했다. 제작 과정에서 가는 서체의 획이 고르지 않은 한지 표면에 제대로 인쇄되지 않아 일부를 재인쇄해야 했다. 한지의 물성이 의도한 표현을 돕는 동시에 제작상의 제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철 제본으로 드러난 책등에는 연노랑 실을 배치해 표지
의 빛이 책 구조로 이어지도록 했다. 본문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이미지와 색, 종이의 표면, 제본의 세부 요소로 번역한 결과다.
디자인 조슬기
표지 천양피앤비, 순수운용지(두성종이, 인의예지 구름지) 120g
띠지·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백운지 노랑(페이퍼프라이스, 백운지) 170g
내지 고감한지엔페이퍼, 인견한지(페이퍼프라이스, 인견한지) 80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