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닦고, 고쳐 쓰는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말하다
문화역서울284 기획 전시, 〈돌봄의 디자인〉
문화역서울284에서 〈돌봄의 디자인〉 전이 지난 9월 17일부터 오는 11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물과 공적 공간을 유지·관리하는 실천을 주제로, 수선과 청소 등 일상을 지탱하는 행위의 공공적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총 4개 섹션을 통해 20명(팀)의 다채로운 시각 작업을 소개한다.

문화역서울284에서 2026년 9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기획 전시 〈돌봄의 디자인(Caring by Design)〉(이하 〈돌봄의 디자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을 역임한 CAC 정다영 큐레이터가 총괄 기획을 맡았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새로 짓고 만들어내는 개발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사물과 공적 공간을 유지·관리하는 ‘돌봄’의 실천에 주목한다. 결과보다 과정에, 형태보다 시간에, 설계보다 지속적인 운영에 초점을 맞추며 수선과 청소, 보수 등 일상을 지탱해 온 행위의 공공적 가치를 환기한다. 전시는 1부 ‘쓸기, 닦기, 지우기’, 2부 ‘건축을 가꾸다’, 3부 ‘도시를 돌보다’, 4부 ‘보이지 않는 노동’ 등 총 4개 섹션으로 전개된다. 김태동, 보칼(Vokal), 박선민, 서지우, 이병엽과 차진엽, 한성필 등 국내외 20명(팀)의 창작자들은 일상의 작은 몸짓에서 출발해 건축과 도시, 그 이면의 노동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궤적을 다채로운 시각 언어로 짚어낸다.
공공디자인, 쓸고 닦는 일상에서 출발하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공간은 1층 중앙홀이다. 정면에 상영되는 백윤석 작가의 영상 작업은 도시 외부에서 옛 서울역사 내부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돌봄 기물들을 기록해 전시의 도입 역할을 한다. 영상 앞에는 ‘스테이션 1: 돌봄 디자인 사물 읽기’ 코너를 마련했다. 우수 공공디자인으로 선정된 길거리의 기물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만화가 란탄과 『그거 사전』의 홍성윤 기자가 쓴 사물 해제를 엮어 일상 기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내도록 제안한다.

중앙홀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1부 ‘쓸기, 닦기, 지우기’는 일상 환경을 지탱하는 유지관리 행위를 조명한다. 1부의 중심 작업은 핀란드 건축가 그룹 보칼(Vokal)의 다채널 영상 설치 ‘파빌리온-돌봄의 건축’(2025)이다.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출품된 이 작업은 알바 알토가 설계한 핀란드관을 다룬다. 보칼은 원작자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사실, 즉 건물이 세 번의 증축과 보수 과정을 거쳐 유지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세기 넘게 건물을 쓸고 닦으며 고쳐온 세 명의 유지관리 책임자를 화면 전면에 세워 건물을 지탱해 온 이들 역시 원작자와 동등한 ‘공동 저작자’임을 강조한다.

초입에 자리한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의 아카이브는 미술관 계단과 도로를 직접 청소했던 기록을 통해 일상 뒤편에 가려진 노동을 가시화한다. 하라 켄야가 디렉팅한 무인양품 영상 캠페인 ‘청소(Cleaning)’부터 대표 청소 도구의 부품을 낱낱이 분해해 부착한 아카이브 월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는, 쓸고 닦는 행위가 개인과 환경의 균형을 맞추는 디자인 시스템임을 보여주며, 규격화된 청소 도구의 기능적 구조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짚어낸다.
낡아가는 건축을 가꾸는 손길
이어지는 ‘건축을 가꾸다’는 완공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가는 건축을 어떻게 유지하고 고쳐 쓸 것인가를 묻는다. 한성필 작가의 대형 사진 연작 ‘파사드(Façade)’(2009-2011)는 국가유산이나 건축물이 수리·해체되는 현장의 가림막을 담아왔다. 보수 현장 위에 완성된 외관 이미지를 겹쳐 한 공간이 거치는 여러 시간대를 한 화면에 펼쳐 보인다.



맞은편 서지우 작가의 조각은 녹색 대리석 ‘베르데 아첼리오’ 등 철거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파편과 세운지구의 파편을 수집해 엮은 작업이다. 일정한 심장 박동 소리를 내며 사물이 본래 쓰임을 다한 뒤에도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음을 환기한다. 박선민의 ‘버섯의 건축’ 과 스페인 건축가 안드레스 하케의 작업 역시 건축의 지속성을 다룬다. 박선민은 곶자왈 버섯 생태와 건축가들의 내레이션으로 자연과 건축의 시간을 잇고, 안드레스 하케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지하실의 청소 도구를 꺼내놓으며 모더니즘 건축 이면의 관리 체계를 드러낸다.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세 팀의 제안도 이어진다. 에이루트와 에이코랩은 건물을 전면 철거하지 않고 기존의 물질성을 살려 고쳐 쓰는 ‘적응적 재사용’을 제시하며, 에스오에이(SoA)의 ‘파괴적 창조’(2023)는 인구 소멸 지역 빈집을 안전하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해체 도구를 보여준다.

건축가 이병엽과 안무가 차진엽의 협업작 ‘평평(Flat-Flatter)’(2026)은 한옥 바닥을 콩기름으로 닦던 전통 ‘콩댐’을 신체 움직임으로 재해석한 참여형 작업이다. 200여 명의 손길이 거쳐 간 바닥 판 위에 관람객의 움직임이 더해지며 표면에 시간의 결을 덧쌓는다. 전시 기간 내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도 함께 운영해 몸으로 공간을 돌보는 감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도시의 이면, 보이지 않는 손길

시선은 사물과 건축을 넘어 ‘도시를 돌보다’로 확장된다. 일본 디자인 콜렉티브 라드, 독일 작가 얀 보르만의 작업을 비롯해 조경가 정영선의 ‘선유도공원’(2002) 아카이브, 지역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해 온 중소도시포럼의 ‘소멸의 건축’(2024)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거대 인프라에 가려진 도시의 틈새를 매만지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을 짚어낸다.

2층으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서는 도시와 건축의 일상을 묵묵히 지탱하는 손길에 주목한다. 김태동 작가는 건축을 기록하는 작업 과정에서 만난 관리자와 현장 근로자들의 초상을 담은 사진 연작 ‘현장의 사람들’(2018-2025)을 통해 그들의 존재감을 전면에 드러낸다. 배윤호 작가의 ‘서울역’(2013) 역시 이번 전시의 장소성과 긴밀히 맞물린다. KTX 개통 이후 방치되었던 옛 서울역사가 문화역서울284로 복원되는 과정을 기록한 84분짜리 에세이 다큐멘터리다. 극적인 서사 대신 벽돌을 닦고 벽면을 다듬는 노동자들의 반복적인 손짓을 묵묵히 응시한다. 완성된 건물의 화려함 이면에 가려져 있던 이름 없는 노동의 시간을, 과거 노동의 흔적이 서린 2층 ‘그릴 준비실’로 되돌려 놓는 자리다.

본 전시 외에 마련된 4개의 특별 거점 공간도 눈길을 끈다. 1층 로비의 ‘스테이션 1’에 이어, 스테이션 2에서는 유지관리와 공공의 가치를 실현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수상작들을 조명한다. 스테이션 3에서는 유튜브 쇼츠 등 숏폼 영상을 통해 거리 환경을 가꾸고 고치는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을 아카이빙해 보여준다. 2층에 자리한 ‘스테이션 4: 공공디자인 라운지’에서는 관련 도서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Mini Interview
정다영 〈돌봄의 디자인〉전 총괄 큐레이터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것을 유지·관리하고 돌본다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이 화두를 이번 전시에 꺼내 든 배경은?
무언가를 계속 새로 짓고 만들어내는 시대에, 기존의 것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돌봄’이라는 행위가 지닌 공공성에 주목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관심사가 단일 건축물을 넘어 사물과 가구, 도시의 다양한 인공물 전반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도시를 채운 수많은 사물과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리와 보살핌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오랜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돌봄’이야말로 도시와 일상을 실제로 지탱하는 핵심적인 힘이라고 생각하여 이번 전시에 이 화두를 꺼내 들었다.
사실 공공디자인은 ‘가시적 성과’와 결부되어 왔다는 인상을 지우기 쉽지 않다. ‘새로 만들지 않고 돌보는 것’을 이야기할 때 행정적 관행이나 현실적인 한계와 부딪힌 지점은 없었나?
공공디자인을 주관하는 기관이 주최하는 만큼, 정책적 맥락과 성과를 시민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다행히 역대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수상작의 궤적을 짚어보니, 정책의 방향성 자체가 과거의 가시적인 ‘경관 관리’에서 시민의 삶에 밀착한 ‘공감과 포용’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었다. 덕분에 ‘돌봄’이라는 개념이 정책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물릴 수 있었고, 이를 딱딱한 행정 언어가 아닌 시민 일상에 와닿는 친근하고 넓은 스케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건축 큐레이팅 영역에서 줄곧 활동해 왔다. 공공디자인이 주제인 전시를 기획하며 느낀 차이점은?
과거 미술관 화이트 큐브에 머물 때는 ‘건축가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늘 증명해야 했고, 건축을 거장의 예술적 창작물로만 묶어두는 제도권의 시선이 다소 답답하기도 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권위적 문법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와 일상을 지탱해 온 주변부의 관계들을 환기하고자 했다. 관람객들이 사물과 공간에 깃든 돌봄의 시간을 자연스레 발견하길 바랐고, 개인적으로도 미술관이라는 틀 밖에서 호명되지 못한 대상들의 숨은 맥락을 살피는 태도를 다시금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국가유산이라는 특성으로 문화역서울284는 공간 제약이 큰 곳이다. 물리적 한계는 어떻게 극복했나?
벽에 못을 박거나 조명을 설치하기 힘든 까다로운 공간이다. 현장에서 목공 가벽을 치는 대신, 디자인 스튜디오 ‘포스트 스탠다즈’와 협업해 공장에서 미리 만든 모듈형 시스템 가구를 들여와 조립했다. 철거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옛 서울역이라는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공간에 가설 구조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하영 디자이너의 공간 그래픽도 문화역서울284에 섬세하게 녹아든 것 같다.
참여 작가를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기준은?
작가를 먼저 정하기보다 ‘돌봄’이라는 공적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먼저 찾았다. 주제에 맞는 작업을 추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모였다. 또한 작가 개인의 이름 뒤편에서 전시와 작품을 함께 지탱한 실무자, 협력자들의 노동을 조명하는 일도 중요하게 챙겼다.

전시 관람을 위한 팁도 있을까?
‘청소’라는 일상적 행위에서 출발해 건축과 도시,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1부부터 4부까지의 순서대로 관람하길 권한다. 방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공간 구조상 이 동선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작품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닦고 지우는 행위의 공공적 의미를 담아낸 보칼의 대형 영상 작업과 2009년 공간사 사옥의 한 시절을 포착한 한성필 작가의 사진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다. 보칼의 작업은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던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당시 이웃이라 할 수 있는 핀란드관의 작업이었고, 한성필 작가의 사진은 과거 공간 사옥에서 근무했던 시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사연이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한편, 작품 옆 캡션에 적힌 수많은 협력자와 실무자의 이름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돌봄의 디자인〉
주소 문화역서울284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기간 2026년 9월 17일 – 11월 1일
운영 시간 10:00 – 18:00(화요일-일요일), 10:00 – 19:00(수요일) *매주 월요일 휴관
참여작가 김태동, 데이지 지옌 장, 라드,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 박선민, 배윤호, 백윤석, 보칼, 서지우, 안드레스 하케, 얀 보르만, 에스오에이, 에이루트, 에이코랩, 이병엽+차진엽, 정영선, 중소도시포럼, 첸트랄라+알렉산드라, 켕지오렉, 최정화, 한성필
총괄 큐레이터 정다영(CAC)
큐레이터 김희정, 정성규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 김민, 임선우
그래픽 디자인 일상의실천(시각), 임하영(공간)
공간 디자인 포스트스탠다즈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주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협력 대구미술관, 무인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