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조병수

우리는 친환경 도시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과 수많은 청사진을 갖고 있다.” 서울의 잠재적 가능성을 읽은 조병수 총감독을 만났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조병수

요즘 건축가들은 서울을 SF 영화에 빗대곤 한다. 다이내믹한 공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임기응변적 도시계획에 대한 비유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조병수는 뜻밖에도 미래 도시의 가능성을 과거로부터 찾았다. 이제는 땅의 도시와 건축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무조건 옛날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로부터 출발해, 생태계가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그래서 이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고 말한다. 도시를 퍼뜨리기보다는 밀도 있게 정비하면서 자연과 연결하고 생태계를 살리자는 얘기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과제는 ‘서울의 100년 후’라는 먼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이상적 도시를 설계하기 위해 서울시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선조들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서울을 설계했다. 서울처럼 자연과 잘 어우러진 도시는 흔하지 않았을 거다. 이를 회복한다면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부럽지 않을 서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친환경 도시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과 수많은 청사진을 갖고 있다.” 서울의 잠재적 가능성을 읽은 조병수 총감독을 만났다.

조병수
비씨에이치오 파트너스BCHO Partners의 대표 건축가. 땅, 빛, 자연을 주요 철학으로 삼은 건축 작업을 30여 년간 이어왔고,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 ‘현대적 버내큘러’, ‘유기성과 추상성’ 등의 주제를 확장해왔다. ㅁ자집, 땅집, 지평집, 남해 사우스케이프, 천안 현대자동차 글로벌 러닝센터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미국 몬태나 주립 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1999~2006),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과 초청 교수(2006), 덴마크 아루스 건축대학교 베룩스 석좌교수(2014)를 지냈다. 또 광주비엔날레 건축 부문 책임 큐레이터(2009),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선정위원장(2016)을 역임했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땅의 도시, 땅의 건축: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 서울의 100년 후를 그리다’라는 주제를 통해 그간 탐구해온 건축 세계를 도시로 확장한다. 총감독을 맡으며 주제전과 〈서울 100년 마스터플랜전〉의 공동 큐레이터를 겸직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 건축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축 비엔날레다. 주최 측의 예산 지원이 없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달리 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명확한 주제를 바탕으로 전시를 전개한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가장 큰 차별점은 한 도시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참가국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화두를 던진다. 심지어 문 닫은 전시관이 콘셉트인 나라도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2017년 ‘공유도시’, 2019년 ‘집합도시’, 2021년 ‘크로스로드,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물론 이 행사가 서울시의 도시 문제만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전 세계 도시까지 사고를 확장해나간다. 다른 나라는 어떤 도시 문제에 직면했는지, 이런 고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에 더욱 뜻깊다.

국내 건축가가 단독으로 총감독을 맡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운영위원회에서 추천 인사 10명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다. 1~3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은 해외 건축가가 맡거나 국내 건축가와 해외 건축가가 공동으로 맡았다.

현장에서 일한 실무형 건축가, 한국성을 이야기해온 건축가를 통해 서울을 들여다보자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은 현재 도시의 문제를 짚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현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정체성과 맞닿은 주제 의식을 갖고, 친환경 고밀 도시를 목표로 100년 후 이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그려보고자 한다.

지금 서울의 시급한 난제는 도시의 단절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땅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옛 서울인 한양은 자연을 따라 계획한 도시였다. 1930년대에 선조들은 도시의 틀을 만들 때 산과 강과 바람의 흐름을 고려했다. 18세기 후기 자연 지세를 상세히 표기한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이 어우러진 설계였다. 사실 풍수라는 것도 바람과 물을 아우르는 말 아닌가. 배산임수는 또 어떤가. 뒤로는 산, 앞에는 물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0년간 서울은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과 도시, 또 자연과 인간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단절시켰다. 고층 빌딩을 끊임없이 지어서인지 사람들은 도시를 생각할 때 흔히 저 위에 펼쳐진 스카이라인부터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서울의 미래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여야 한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가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인 이유다.

땅은 조병수 건축의 오래된 정체성이기도 하다. 건축가로서 그리고 총감독으로서 바라보는 땅의 맥락은 어떻게 다른가?

건축가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 땅 안에 건축물을 짓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건축가들이 바라보는 땅은 이 경계에서 한발 벗어난다. 이상적인 설계안을 먼저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혹 법이 장애물이라면 그 또한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공공을 위한 녹지나 보행로, 편의 시설을 확보한 건물과 단순히 사익을 위해 높게 지은 건물 사이의 건폐율, 용적률에 차등을 두는 것이 있다. 건축가로 일하며 답답하게 느낀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돌이켜보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도시적 상상력을 폭넓게 발휘해보는 거다.

친환경 도시의 회복을 위한 여러 청사진 중 한강을 둘러싼 계획안들이 눈에 띈다.

건축 비엔날레는 왠지 모르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전시 패널을 보면 다 그 건물이 그 건물 같다.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 것인지도 다소 막연해 보인다. 작가의 의도와 세부 내용을 파악해도 썩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건축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 시민들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기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강을 소재로 도시 건축에 관한 여러 아이디어를 모았다. 만약 한강 다리가 녹색 정원이라면 어떨까? 이런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데 비용은 과연 얼마나 들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도 있을까? 이렇게 생긴 공원에서 걸어 다닐까, 새로운 모빌리티로 이동할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며 모두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다.

서울의 100년 마스터플랜은 물론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서울시에서도 처음에는 이 획기적 설계안들을 보며 반신반의했지만, 그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해 현재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사실 건축 비엔날레는 당장 주어진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건축가들이 다양하고 실험적인 제안을 펼칠 기회를 다양하게 주는 자리에 가깝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이를 구체화하면서도 좀 더 색다른 방식을 모색하고자 했다. 실질적인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서울을 넘어서 해외까지 확장할 방안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올해 비엔날레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주 전시장으로 활용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이다. 개막에 앞서 지난 5월 공개한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관 ‘하늘 소所’는 한 달 만에 누적 방문객 5만 명을 넘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전은 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다. 장소 특성상 디자인학과 학생 혹은 업계 종사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그래서인지 전시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부족했다. 올해는 접근성을 높였다. 주 전시장이 광장 부근을 지나는 모든 시민에게 활짝 열려 있다. 또 송현동 부지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담은 상징적인 땅이다. 경복궁과 북한산, 인왕산을 잇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자 북악산, 인왕산, 남산으로 향하는, 자연의 중심축이다. 110여 년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이 땅은 지난가을 시민을 위한 휴식 장소로 개방되었다. 올가을에는 서울의 원풍경을 지닌 이곳의 지하 전망대 ‘땅 소’와 지상 전망대 ‘하늘 소’에서 서울 풍경을 멀리 내다보며 다양한 현장 전시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현재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꼽힌다. 100년, 10년은 고사하고 1년 후도 예측하기 힘들다. 이런 서울의 100년 마스터플랜이 과연 유의미할까? 또 이것이 유의미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서울시가 수립하는 도시계획은 줄곧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봤다. 이때 문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주어진다면, 진정으로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이상적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도시를 완전히 뜯어고쳐 재개조할 수 있다면 건축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비엔날레의 마스터플랜으로 꼭 서울의 100년을 결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큰 방향성을 결정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를 기록해야 함을 전달하고자 한다. 1995년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1년간 강의했을 때가 떠오른다. 학생들과 함께 카이저슬라우테른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공무원이 우리에게 꺼내 보인 지도가 다름 아닌 100년 후 도시의 청사진이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더 놀랍게도 지난 100년 동안의 도시 계획안을 다 갖고 있었고, 심지어 2~3년 단위로 그 변화를 추적한 흔적이 있었다. 시민들이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그래서 시는 무엇을 개선하고 있는지, 그리고 100년 후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계획안은 계속해서 수정되겠지만 거시적으로 도시를 계획하고, 그 출발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그들을 보며 깨달은 바가 많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변화를 기록하며 100년을 설계하면 도시는 무조건 좋아진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43호(2023.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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