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렌즈, 나가오카 겐메이 & mmmg
지역의 개성을 살리는 디자인을 전개해온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와 디앤디파트먼트의 한국 파트너 mmmg의 배수열·유미영 공동 대표가 여행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로컬리티와 지속 가능성. 현재 여행 산업에서 주요한 화두다.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가 이끄는 디앤디파트먼트는 이 키워드들이 주목받기 훨씬 이전부터 이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 디자인을 선별해 소개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지역다움을 톺아보는 매거진 〈d 디자인 트래블〉, 지역의 생산자와 창작자를 소개하는 이벤트와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까지. 이들은 언제나 로컬리티와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이번 호 기획이 한창이던 지난 5월, 마침 한국을 방문한 나가오카 겐메이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그의 오랜 파트너 밀리미터밀리그람(이하 mmmg) 배수열·유미영 공동 대표와 함께 여행과 로컬리티를 디자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나가오카 겐메이 디앤디파트먼트 창업자 겸 대표. 1990년 하라 겐야가 이끄는 니폰 디자인 센터에 입사했으며 이듬해 그와 함께 니폰 디자인 센터 하라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1997년 퇴사한 뒤 2000년 디자인과 재활용, 로컬리티를 융합한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관점 아래 지역성이 묻어나는 일상적인 물건을 소개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디앤디파트먼트’를 운영 중이다. 같은 관점으로 일본의 지역을 소개하는 잡지 〈d 디자인 트래블〉도 발행하고 있다. 저서로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 등이 있으며 최근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를 국내 출간했다. d-department.com
배수열·유미영 디앤디파트먼트의 한국 파트너 mmmg의 공동 대표. 1999년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당시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문구류에 디자인의 가치를 입히며 당대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가리모쿠60, 1616/아리타재팬, 프라이탁 등 뛰어난 디자인의 해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2013년 디앤디파트먼트 최초의 해외 지점인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열고 현재까지 운영을 맡고 있다. 2020년에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의 총괄 기획에 참여했으며, 지난해부터 〈d 디자인 트래블〉의 번역과 국내 출간을 맡아 교토 편과 가나가와 편을 출간했다. mmmg.net
7월호 월간 〈디자인〉 특집 기사의 주제는 여행입니다.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와 mmmg에게도 이 주제가 특별할 것 같은데요.
나가오카 겐메이(이하 나) 기대를 저버리는 답일 수 있겠지만, 사실 여행 자체를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좋아하죠. 누군가를 만나러 가거나 그가 자주 다니는 지역에 동행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여행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그와 동행했던 지역이 함께 떠올라요.
배수열(이하 배) 글쎄요. 식상한 표현일 수 있지만 일상이 곧 여행 같아요. 지금도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가거든요. 타자를 통해 자아를 이해한다고 하죠. 실제로 여행지에서 낯선 것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집을 나서며 마주하는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유미영(이하 유) 저는 휴식을 위한 여행을 떠난 경험이 많지 않아요. 좋든 싫든 여행 자체가 리서치가 되어버린다고 할까요?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영감을 얻고, 결국 일과 연결되는 것이죠.
무척 디자이너다운 답변이네요.(웃음)
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홋카이도라고 치면 널리 알려진 곳보다는 상대적으로 낯선 홋카이도 동쪽 끝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는 것이죠.
나 유미영 대표처럼 제 머릿속도 늘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늘 본능적으로 아이디어를 찾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어떤 목적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컨대 제가 어느 건물 외관을 집중해서 찍고 있으면 어떤 프로젝트에 참고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유 혹시 우리가 동행한 곳 중에도 영감을 준 곳이 있나요?
나 물론이죠. 제 영감의 원천은 대부분 친구들이거든요. 배수열 대표가 좋아하는 어떤 건축물의 계단이 있다고 하면 저도 곁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요.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남산 피크닉이었던 것 같군요.
두 사람 모두 디자이너의 관점을 견지한 채 여행을 하는 것 같네요. 마치 〈d 디자인 트래블〉처럼 말이죠. 처음에 어떻게 그 잡지를 기획하게 됐나요?
나 국내 출장과 여행 중 느낀 문제의식이 프로젝트의 발단이 됐습니다. 어느 지역의 기차역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일이 있었는데 문득 어떤 역이나 전부 똑같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도 인근도 지역 특유의 개성이 없이 죄다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머지않아 일본의 모든 지역이 전부 똑같아질 거라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지역의 창작자와 기획자들을 소개하고, 그 지역다움을 추출해 정리하는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d 디자인 트래블〉을 창간하게 됐어요. 2009년 홋카이도 편을 시작으로 14년 동안 33개 도시를 소개했죠.
초기에는 발행인뿐 아니라 편집장 역할도 겸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잡지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나 〈d 디자인 트래블〉은 편집장 한 명이 취재와 기사 작성 대부분을 맡아서 합니다. 분량도 한 사람이 두 달쯤 공들였을 때 나올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잡지는 만드는 디자이너 한 사람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게 돼요. 그의 관점에서 지역다움을 파악해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제가 편집장을 그만두더라도 이런 기조가 변하지 않도록 몇 가지 룰을 정해두었어요. 이를테면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의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물론 디자이너이기에 얼마든지 그 지역의 인상을 창조해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리면 디자이너 개인의 창작물이 되기에 이를 지양하는 것입니다. 〈d 디자인 트래블〉의 무게중심은 ‘창작’이 아닌 ‘셀렉트’에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픽업을 하고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것이죠. 실제로 취재를 할 때도 편집장이 자비로 그 지역에 가서 숙식을 하면서 직접 소개할 물건을 구매해 확인합니다. 진심으로 감동하지 않은 것은 절대 소개하지 않아요. 사진 촬영도 특수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표지 이미지에 현지 작가의 작품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배 예전에 유미영 대표가 어떤 관점으로 시안을 고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가 그 지역의 엄마의 품 같은 이미지를 고른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mmmg은 〈d 디자인 트래블〉을 접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유 저는 이 잡지가 롱 라이프 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 관점에서 문화 전반을 다루는 에세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보가 아닌 관점을 담았다는 뜻이죠. 그리고 호가 거듭할수록 관점의 깊이가 점점 깊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배 사실 우리는 〈d 디자인 트래블〉 이전부터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의 활동과 디자인 철학에 매료된 팬이었습니다.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시 흔치 않았던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매장까지 직접 운영했죠. 경험도 없이 모든 것을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익혀야 했기에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2003년 일본 출장에서 우연히 디앤디파트먼트 도쿄 매장에 방문했을 때는 선배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반나절 이상 매장에 머물며 상품은 물론 상품을 소개하는 방식, 매장을 전개하는 방식을 통해 디앤디파트먼트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죠. 정작 물건은 많이 사지 않았으니 좋은 고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이후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가 한 환경 단체의 초청을 받아 내한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한국에 처음 방문했던 그는 젊은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주최 측이 mmmg을 소개했습니다. 그때 만나게 되어 현재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죠. 11년 전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오픈을 제안하려던 찰나에 〈d 디자인 트래블〉 오키나와 편을 제작 중이던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유미영 대표와 함께 취재가 한창이던 오키나와 현지로 날아갔는데, 취재와 촬영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정말 인상 깊은 경험이었죠. 디앤디파트먼트의 정신이 매장을 넘어 잡지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곧 나올 〈d 디자인 트래블〉 제주 편은 국경을 넘어 오랫동안 쌓은 우정의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 처음 mmmg이 한국 지역을 다룬 〈d 디자인 트래블〉을 출간하고 싶다고 했을 때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미 30편 이상 발간한 우리의 경험을 전수해주고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좋은 잡지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죠.
유 〈d 디자인 트래블〉의 기존 원칙에 따라 편집장이 직접 제주도에 방문해서 2개월간 취재했습니다. 저와 배수열 대표도 종종 현지를 방문해 취재를 도왔는데, 덕분에 ‘지역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디앤디파트먼트가 추구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국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조성하게 된 공간인가요?
배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방문해 우리의 활동을 보고, 제주 탑동에 예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간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의 기획을 mmmg에 맡겼습니다. 그 당시 김지완 아라리오 제주 대표는 에이팩토리 카페와 베이커리,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카페와 베이커리를 합쳐 ABC베이커리로 리브랜딩하는 일부터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과 프라이탁 제주점을 유치하는 일까지 맡게 됐죠. 김지완 대표와 함께 마스터 플랜을 세운 뒤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를 찾아가 상의하면서 상점과 더불어 숙박 기능을 추가하는 계획으로 확장되었습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디앤디파트먼트 본사 측과 긴밀하게 기획하고 세부적인 지역 조사를 기반으로 준비한 프로젝트였죠.
나 mmmg 덕분에 김지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구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그의 사명감에 감명받았습니다. 아라리오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숙박 기능을 더한 디앤디파트먼트 지점을 실현할 기회인 것 같아 함께하게 됐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건축가가 필요했는데,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을 설계한 스키마타 건축의 조 나가사카와 함께하게 되었죠. 우리는 건물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자는 데에 뜻을 함께했습니다. 기존 건물을 허무는 대신 레노베이션을 선택했고, 건축가는 ‘보이지 않는 개발’을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되, 건축물이 지닌 본질에 충실한 자연스러움을 녹여내고자 했죠.
유 구체적인 건물 모습을 미리 떠올리기보다는 이곳에서 하고 싶은 서비스와 활동을 먼저 구상하고 그에 맞는 공간을 구상했던 것 같아요. 현재는 제주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숙박 공간 ‘d 룸’, 장기 체류형 렌털 상점 프로그램 ‘d 뉴스’를 운영 중이죠. 디앤디파트먼트가 제안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이 반영된 제품을 활용해 공간을 구성하고, 아라리오가 보유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듯 다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대도시 중심에,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이 닮은 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성이 살아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로컬리티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그다지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 글쎄요, 저는 솔직히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 안에서 개성을 발견한다면 나라 전체가 풍성해질 것이고요.
배 일본의 지역성은 1600년대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막부 정권 체제였던 일본에서는 지역 분권과 더불어 지역 경제도 고르게 발전했을 것이고요. 하지만 20세기의 급격한 변화로 두 국가 모두 지방이 쇠락하면서 균형 발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를 처음 시작할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mmmg은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통해 롱 라이프 디자인의 관점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지역다움을 찾아내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유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 같기도 합니다. 일본은 대도시에 모든 것을 집중하기에는 한국보다 국토가 넓으니, 자연스럽게 지역별 특성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죠. 한국은 1일 생활권이 되면서 오히려 지역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중앙집권도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도시에 싫증을 느끼는 이들이 조금씩 고향으로 회귀하고 있죠.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도 2018년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d 디자인 트래블〉의 최종 목표는 ‘이주’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나 네, 변함없습니다. 그 인터뷰 이후 일본은 도심을 이탈하는 현상이 한층 더 심화되었습니다. 개성 있는 지방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욕구도 강해지고 있죠. 지방 행정기관들이 강하게 이주를 촉진하고 유치하고 있기 때문에 조성금이 나오는 지방 중에서 이주하고 싶은 곳을 고르는 사람도 있는데, 단순히 경제 상황만 고려하는 것을 넘어 지방의 개성에 매력을 느껴 이주지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이주’에서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창작자들의 도시 편중 현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 결과물도 대도시에 몰려 있고요. 좋은 디자인이 대도시에 있으니 디자이너가 도심에 몰리고, 디자이너가 도심에 몰리니 좋은 디자인이 도시에만 쏠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나 15년 전 일본도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의 환경도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스미디어가 힘을 잃고 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발신할 수 있게 되어 도시에 몰려 있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지방에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대도시 디자이너보다 더 멋지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어요.
배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디자이너의 위치는 대도시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소도시보다 대도시에서 더 많은 정보가 오갈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대단한 업적과 성공보다 올바른 삶과 일의 기준,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디자인에 관한 관점을 바꿀 수만 있다면 소도시나 지역성을 갖춘 지방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 커질 것입니다.
생각과 관점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이 되는 것 같은데,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한 나가오카 겐메이 대표의 저서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지난 23년 동안 제 생각에 동의해준 스태프와 파트너, 거래처, 고객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2012년 10월부터 ‘나가오카 겐메이의 메일’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이 책은 그중 107개의 이야기를 추려 묶은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격동의 시대에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써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책입니다.
〈d 디자인 트래블〉이 디자인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매체라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어떤 눈을 갖고 여행이라는 주제를 대해야 할까요?
유 요즘에는 모두가 같은 정보를 접하면서 점차 다양성과 지역성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고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누구나 다른 국가의 디자인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국경을 초월한 교류가 가능해졌지만, 어떤 국가의 디자인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d 디자인 트래블〉 같은 잡지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디자인의 관점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로컬리티를 살피고, 지역이나 나라의 개성을 품은 디자이너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나 저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것’ 속에 로컬의 답이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