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사랑방에서 영감을 얻다, 공예 상품 시리즈 ‘사랑(SARANG)’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 첫 번째 시리즈
서울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 시리즈 '사랑(SARANG)'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다섯 명의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한 전시를 소개한다.
서촌에 자리한 서울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 시리즈 ‘사랑SARANG’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월 13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서울시가 수립한 한옥정책 장기 종합 계획 ‘서울한옥 4.0 재창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K-리빙’을 대표하는 한옥 주거문화의 가치와 매력을 활용해 공예 상품을 개발하고, 본격적인 양산 전 단계를 공유하는 자리로 이를 통해 한옥에 대한 관심과 브랜드로서의 성장을 추구한다.
전통 한옥 사랑방에서 영감을 얻다
첫 번째 시리즈로 소개된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 ‘사랑SARANG’은 전통 한옥의 사랑방(舍廊房)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랑방은 과거 선비들이 외부 손님을 모시고, 동시에 일상을 보내며 예술과 자연을 즐기고, 학문을 논하며 철학을 탐구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지적 사고에 방해가 되지 않는 단정한 가구와 물건을 주로 두었는데,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공간인 만큼 각각의 물건에는 쓰는 이의 안목과 취향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과거 사랑방의 기능이 오늘날 서재에 맞닿아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사랑SARANG’은 서울한옥의 서재 공간에 어울리는 물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왔다. 과거 선비들이 솜씨 좋은 장인의 손을 빌렸듯이 권중모, 박선민, 안지용, 이예지, 전보경 다섯 명의 공예 작가·디자이너와 함께 제작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곁에 두고 오래 쓸 수 있는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과 크리에이티브랩이 운영하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아티브’와의 협업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티브는 핀란드 가구 회사 아르텍Artek의 아이코닉 한 디자인부터 최신 컬렉션까지 큐레이션 해 전시장 내 ‘사랑SARANG’과 함께 자리했다. 흥미로운 건 전통 한옥의 요소에서 시작한 공예 상품과의 이질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그만큼 공예 상품 ‘사랑SARANG’이 다채로운 브랜드가 만연하는 현대인의 일상 공간 속에서도 조화롭게 소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시장을 찾는다면 다섯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의 단독 작품들과 함께 주변에 자리한 아티브의 큐레이션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도 살펴보길 권한다.
5인 5색, 공예의 매력
조명 디자인, 유리 공예, 금속 공예, 목가구, 한지 공예 등 다섯 가지 공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의 특징이다. 전통 한옥 사랑방에서 시작해 오늘날 서재 공간까지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면서도 주변 공간과 어우러지는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들을 만나보자.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권중모 작가는 전통 종이인 한지로 빛을 디자인하는 조명 디자이너다. 그는 한지 테이블 조명 ‘고요GOYO’를 소개했다. 일상에 고요가 깃든 나만의 ‘사랑’을 위한 불빛을 만든 것. 특히 ‘고요GOYO’는 한옥의 창호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한옥 창에 햇볕이 스미듯 겹겹이 접어둔 한지의 결 사이로 비치는 은은한 빛이 인상적이다. 한지 주변으로 황동으로 만든 테두리를 덧대어 현대적인 감각을 살렸다. 공간 속 어디든 놓일 수 있도록 배터리 전원을 사용한 편의성도 눈길을 끈다.
유리공예가 박선민은 ‘사색 한잔’이라는 제목의 유리병을 소개한다. 그녀는 버려진 유리병에 공예적 터치를 더해 새로운 미감과 역할을 부여하는 ‘리보틀(Re:Bottle)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사색 한잔’ 또한 리보틀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연장선으로 갈색 유리는 제주맥주 공병을, 불투명한 흰색유리는 한라산소주 공병을 활용했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모두 품은 업사이클링 유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한옥의 미감과도 닮아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 곁에 더 오래 머물길 바라는 창작자의 마음을 담았다고.
한편 업사이클링 유리를 소재로 한 ‘사색 한잔’에는 한옥의 창 모양을 한 문양도 새겨 넣었다. 이는 사용자가 유리병을 들고 마실 때 한옥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다. 아울러 유리병을 덮는 뚜껑은 찬 음료를 담았을 때 표면에 생긴 물로 컵 아래가 젖지 않도록 받침으로 사용할 수 있고, 차를 마실 때면 우려낸 찻잎을 받쳐두는 용도로 쓸 수 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안지용 작가는 목조각, 금속조각, 일러스트레이트 등 장르를 오가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서울한옥 브랜드 공예 상품으로 소개한 작품은 ‘매화 풍경’이다. 한옥의 처마 끝 풍경을 사랑채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흥미로운 건 가장 산업적이고 단단한 물성인 금속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금속을 소재로 사용했지만 금속인지 모를 정도로 크고 작은 곡선을 활용한 유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아울러 서재에 두고 사용하는 상황을 고려해 단순 오브제가 아닌 다양한 기능을 첨가하고자 한 작가의 고민도 엿보인다. 하단에 ‘ㄱ’ 자로 벽을 세워둬 서재에서 연필 등 문구류를 손쉽게 둘 수 있도록 했고, 작은 나무와 식물 형상은 다과를 먹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포크로, 또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와당 필함과 운문 트레이를 만든 이예지 디자이너는 섬유 공예를 전공하고 나무를 소재로 소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특히 섬유 공예 전공을 살려 패턴 디자인을 나무 소재의 소품에 적용한다. 이때 상감 기법을 활용하는데, 나무 위에 또 다른 색과 결을 지닌 나무를 입히는 것이다. 이번 서울한옥 공예 브랜드 상품을 디자인할 때 디자이너는 전통 한옥의 기와 끝 와당(瓦當)의 조형성을 패턴 디자인으로 활용해 함과 트레이를 제작했다. 트레이는 물건을 담아내는 용도뿐만 아니라 뒤집어서 사용하면 작은 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와당 필함에서는 나무의 소리와 촉감을 강조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참나무, 호두나무, 너도밤나무 등 각기 다른 나무 종류를 하나의 필함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줄무늬, 색, 표면, 질감이 각기 다른 목재를 활용한 덕분인지 직사각형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리듬감이 느껴진다. 또한, 필함에는 자석을 덧대었는데 한옥의 문과 창을 열고 닫을 때 경험할 수 있는 나무 부딪치는 서걱거림을 경험할 수 있다.
전통 한지를 제작할 때 나오는 닥나무 섬유 줄기(일명 닥줄기)와 옻칠을 활용하는 전보경 공예 디자이너는 발을 제작했다. 흑색과 백색의 ‘돌담 발’은 그 이름처럼 자연 속에서 마주한 돌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평소 일상 속 자연 풍경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의 시선에 포착된 것. 흑색 발과 백색 발은 각각 천연가죽끈과 삼베실을 달리 사용했는데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디자이너의 의도이다. 발에 매달린 모양 돌의 모양과 순서 또한 규칙적인 배열을 적용했다.
돌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닥줄기의 질감이 재료 본연에 가까운 점도 전보경 디자이너의 작품 특징이다. 결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찹쌀 풀을 이용해 닥줄기를 고정시키고 그 위에 옻칠을 해 내구성을 높여 일상생활에서 오랜 기간 사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