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우리 문화 박물지〉

지난 3월 2일 출간한 이어령 선생의 〈우리 문화 박물지〉를 소개한다. 또, 전통문화의 의미를 되짚는 이 책이 2022년을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이어령의 〈우리 문화 박물지〉

지난 3월 2일 출간한 〈우리 문화 박물지〉는 고 이어령 선생이 디자인하우스에서 선보인 마지막 책이 되었다. K-콘텐츠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요즘, 이어령만의 관점으로 엄선한 한국 문화의 원형 63가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책을 발행한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서문에 “이 책은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우리 문화의 DNA를 가장 앞서서 고민한 이어령의 탐색기이자 해독서”라며 “선생이 주목한 한국인 특유의 융통성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독특한 발상이면서 세계에 통할 미래와 맞닿아 있는 코리아 디자인의 기본 콘셉트이며, 앞으로 개발할 다양한 아이디어의 명징한 프로토타입”이라고 덧붙였다. 전통문화의 의미를 되짚는 이 책이 2022년을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김효진 덴스크 대표

“나전이 아름다운 것은 소라 껍데기의 광채 때문이 아니라 상감 기법을 통해 어딘가로 깊이 파고드는 보석의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석은 파고 들어가 자신을 숨기려 할 때 가장 보석답다’는 이어령 선생의 문장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다. 10년 넘게 북유럽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고 있는데, 책을 읽고 보니 빈티지 가구도 마치 보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의 컬러와 독특한 구조를 가진 최신 가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존재감을 찾기 어렵지만, 계속 찾아보고 들여다보면 완성도 높은 디테일과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언제 봐도 보석이 아름다운 것처럼 매일 봐도 빈티지 가구만의 미학에 새롭게 놀란다.”

하지훈 가구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우리의 ‘상’은 공간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단지 외형적인 차별성만이 아닌 개념의 차이를 가진 우리의 것만이 현시대에도 통하는 디자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동안 너무나도 익숙해서 좋은 줄 몰랐던 전통문화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쉽게 풀이해 독자들을 깨우치는 글. 이것이 이어령 선생의 글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임태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정자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쉼을 제공하고 풍경을 이쁘게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자연 안에 어떤 방식으로 위치하고 존재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자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전통 미학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이어령 선생님이 정자를 ‘에콜로지ecology로서의 건축’이라 평한 부분을 읽고 동지애를 느낀 이유다. 그런데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은 어떻게 에콜로지로서의 건축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선생님의 넓은 식견과 혜안에 감탄하면서도 더 이상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

“어떤 디자인이 평면인 경우, 예를 들어 모니터상으로 봤을 때 입체가 되면 매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만족시킬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 중 하나다. 패턴 디자이너로서는 규칙적인 패턴을 평면으로 봤을 때 안정감이 들지만,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심심할 수도 있기에 적절한 응용과 안정감을 주는 그래픽을 만드는 것이 요즘 나의 과제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우리 문화 박물지〉에서 ‘보자기는 아무것도 싸지 않았을 때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무엇을 싸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는 문장이 나의 고민과 맞닿아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 해석에 따르면 패턴 디자이너로서 보자기를 응용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셈인데, 미래에 만들어질 물건에도 보자기가 영향을 줄지 궁금해진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평소 한글과 관련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 생전 많은 글을 남긴 이어령 선생의 의견은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인상 깊은 구절은 ‘한글은 전문용어로 에틱etic이 아니라 이믹emic의 문자다’라고 해석한 부분이다. 에틱과 이믹은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 거의 쓰지 않는 용어다. 이처럼 한글을 다른 분야와 접목해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분석·비평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한글 디자이너의 일이기도 한데, 실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직접 생산하는 텍스트는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어렵더라도 텍스트 생산의 빈도와 주기를 점차 늘려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규현 프롬헨스 대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높은 해상도로 드러내려 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사물에서 문화의 본질과 상징성을 이분법적 구분을 통해 찾는 발상은 사뭇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롬헨스는 유기를 활용한 커트러리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는데, 동양과 서양 등 이분법적 연상법에 얽매이지 않는 덕분에 독창적인 커트러리 세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음과 양, 여자와 남자, 빛과 그늘 같은 이분법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내고 융합을 이끌어내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기도 한 요즘, 앞으로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전통과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내가 사용할 요소들의 역사적 배경과 깊은 의미에 대한 고민에 부딪치곤 한다. 이 책은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서까래들은 자연의 곡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인공적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선으로 짜여 있는 데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는다’라는 문장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바라본 스튜디오의 천장은 한국인의 미의식과 우주를 바라본 시선을 나무로 쓴 듯한 섬세한 필체처럼 다가온다. 일상 속 사물의 디테일을 큰 애정으로 바라보신 분이 우리 곁에 계셨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누구보다 ‘디자인’을 사랑하셨던 이어령 선생님

권영걸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내가 죽으면 구더기가 나를 먹어버릴 텐데, 마음이 바빠서 밥 먹을 겨를도 없어요.” 15년 전 이어령 선생은 오세훈 시장과 필자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밥 한술 뜨지 않으며 서울의 미래에 대해 다변多辯을 이어가셨다. 식사보다 한 말씀이라도 더 주고 싶은 연유를 그렇게 섬뜩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중에도 늘 삶과 죽음을 명상하는 지성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어령 선생에 대한 온갖 평설이 있지만,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과 고도의 식견을 가진 분임을 아는 사람은 적다. 사실 선생은 염보현 전 서울시장의 한강 정비 사업 때부터 줄곧 서울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데 알게 모르게 관여한 분이다. 필자가 서울의 도시 디자인을 주도할 당시 ‘디자인서울’ 정책에 대해 많은 고담과 준론을 펼치셨고, 비범한 아이디어를 숱하게 던져주셨다. 서울의 경관을 쌍안경적 시각으로 관찰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전화를 걸어 훈수를 아끼지 않으셨다. 한강에 대해서는 “인문학의 가치와 문화, 생명이 흐르는 강이어야 한다”고 하셨고, 남산에 대해서는 “역사성을 복원하고 자연에서 문화를 꽃피우라”고 하셨다. 그러한 말씀은 한강 르네상스와 남산 르네상스의 디자인 이념이 되었다.

디자인서울의 일환으로 부활시킨 덕수궁 앞 수문장 교대식에 대해서는 깐깐한 비판의 말씀도 남기셨다. “권 부시장, 수문장 교대식이 저렇게 화려하지 않았어요.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체면치레로 멋지게 보여주려는 욕심은 이해가 가지만, 이건 아니야.” 구한말 궐문 앞 수문장과 위병들의 사진을 놓고, 그들은 제대로 의장과 교대식을 갖출 형편이 되지 않았고, 허리춤에 새끼줄을 매고 있었던 것도 이야기해주셨다. 그만큼 서울의 역사와 전통, 법식과 의장에 대한 지식도 방대하셨지만, 허위나 과장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시청광장에서 볼 때 덕수궁 돌담은 원래 없었어. 덕수궁이 조선 역사에서 제대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건 아관파천 뒤에 있었던 일이에요. 덕수궁 돌담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부분을 허물어 철책으로 마감하고, 서울광장에서 저 깊은 덕수궁 석조전까지 투시되어 보이도록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어.” 역사에 대한 거시적·미시적 통찰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문화 기획까지 함께 고민하며 제안하신 것이 부지기수였다.

필자도 오랜 세월 디자이너, 교육가, 행정가, 경영자로 살아왔지만, 이어령 선생님만큼 전위적이면서 위력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분은 없었다. 그의 탁월한 안목과 상상력, 날카로운 분석력 덕분에 서울디자인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서울은 최초로 세계디자인수도(WDC)에 등극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세계 여덟 번째로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디자인 창의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광화문광장, 서울성곽 등 서울의 수많은 명소에 대한 선생의 애정은 지극하셔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으로 일하는 동안 선생님의 훈수는 계속 이어졌다. 역사적 조상彫像은 늘 관료들과 목소리가 높은 보수 강단 사학자들에 의해 고루한 형태로 귀결되기 마련인데, 광화문의 세종대왕상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은 세종대왕상을 지하에 조성해 한국인이 가장 존숭하는 임금님에 대한 예를 다해야 한다고 하셨다. 석굴암 형식이 떠올려지는 이 아이디어는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군왕의 상을 비바람 몰아치는 노천에 세우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진부하고 관료적인 기존의 세종대왕상을 볼 때마다 선생님의 아방가르드한 신세기적 발상이 오버랩되어 아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선지자의 뜻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 선생의 유실된 아이디어가 한둘이 아니다. 한때 난지도 일대의 개발위원장직을 맡아 ‘천년의 문’을 세우려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도 있다. 선생은 동시대의 모든 매체를 통해 국민을 각성시켰다. 잠시 문화부 장관을 지내셨지만, 사실 평생 대한민국의 문화 지형을 일구어오신 분이다. 한국인은 선생님을 통해 자기 발견이 가능했고, 문화적 자존 의식이 일어났다. 지면을 통해서, 또 지면 밖의 세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선생을 언어의 마술사라고 칭송하는데, 사실 그것처럼 선생님의 경지를 깎아내리는 말이 없다. 선생은 언어 기술자가 아니라 개념을 주조하시는 분이고 시대정신을 견인하는 방향타와 같은 분이셨다. 일상의 언어 속에 잠재된 일제 잔재를 청소하는 한편,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뜻에 얼마나 정연한 논리를 담고 있는지를 알게 하신 분이다,

지식인들에게도 생경한 ‘노견路肩’이란 용어를 ‘갓길’로 바꾸신 것뿐인가? 선생님이 순수 우리말로 명명해주신 따뜻하고 말끔한 용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에 필자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자인’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순수한 우리말을 받고자 했는데,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부음을 듣게 된 것이다. 디자인은 반세기가 넘도록 ‘도안’, ‘의장’ 등으로 번역되었고 중화 문화권에서는 ‘설계’로 통일되어 있으나, 모두 우리의 언어 관습과 맞지 않고 그 낱말들의 용례 또한 현대 디자인의 확장된 의미를 포괄하지 못한다.

지금 선생님의 영전에서 받아낼 것을 못 받아낸 넋두리를 하고 있자니, 선생님께 한 점 드릴 것도 없었고 드리지도 못했던 불충이 가슴에 사무친다. 89세의 뜨거운 생애에 존경을 드리며,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 내가 받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고 말씀하신 선생님! 돌아가신 그곳에서 편히 안식하소서.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26호(2022.04)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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