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미술가, 서도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21년 만에 돌아온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대표작 천으로 만든 집이 아닌 작가의 사유를 통해 탄생한 작품을 소개한다.

집 짓는 미술가, 서도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작가 서도호의 개인전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가 아트선재센터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21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지난 20년간 이어온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을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Artist Do Ho Suh. Photo: Gautier Deblonde. © Gautier Deblonde, all rights reserved DACS 2024.

무엇보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천으로 만든 한옥집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없다. 서울, 런던, 베를린, 뉴욕 등에서 자신이 실제 거주했던 집과 작업실 공간을 천을 이용해 섬세하게 묘사한 설치 작품은 예술가로서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두고 “천으로 만든 집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과거의 작업 결과물을 나열하고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사유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시 제목이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변, 추록, 사색 등을 뜻하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그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탄생한 드로잉, 축소 모형, 시뮬레이션 영상 등의 작품을 펼쳐 보인다.

사변적 사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게 중요한 매체였다. 다른 세계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급진적인 잠재력이 사변적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서도호 작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주문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 2024, 애니메이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약 24분. 작가, 리만머핀 (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코오롱스포츠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서도호 작가의 작업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처음 서울 집을 천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좌대를 받치고 있는 조그만 군상들이 움직인다고 했을 때, 서울과 뉴욕 그리고 런던을 잇는 브릿지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에도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러한 작업들이 수년 혹은 십여 년에 걸쳐 마침내 실현될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상상에 그치지 않고 실현해 내는 그를 보면서 다음에는 과연 어떤 작업을 할지 항상 알고 싶다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예술감독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 2024, 애니메이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약 24분. 작가, 리만머핀 (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코오롱스포츠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예술감독의 말처럼 서도호 작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그의 작품은 ‘만약에’라는 물음과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일종의 주문과도 같다. 아트선재센터 1층 더그라운드에서 소개하는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는 가정과 가설 그리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앞서 작가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면서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첫 번째 다리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두 도시의 주간 지점인 태평양 위에 ‘완벽한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건축가, 생물학자, 물리학자, 산업 디자이너 등과 협업해 태평양의 조류와 바람을 버틸 수 있는 집 만들기를 시도했다.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180개의 드로잉)>, 2010–2012, 혼합 재료, 각 29.7 x 42 cm.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180개의 드로잉)>, 2010–2012, 혼합 재료, 각 29.7 x 42 cm.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서도호, <다리 프로젝트 (구명복 프로토타입)>, 2024, 혼합 재료, 가변 크기,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이번 전시에서 서도호 작가는 두 번째 다리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서울과 뉴욕 그리고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는 세 도시를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에 ‘완벽한 집’을 설계하는 상상을 제안한다. 세 도시를 잇는 곳은 북극 보퍼트해 인근 축지(Chukchi) 고원. 그는 약 180여 점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북극으로 향하는 수천 킬로미터 길이의 다리 건설부터 완벽한 집을 향하는 길에 마주할 위기와 고립 상황 등을 대비해 만든 구명복의 프로토타입도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이주, 이민, 기후 위기, 장벽, 전쟁 등의 사회적 문제를 포괄하는데 그의 상상들이 마냥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탐구하는 개념들이 많은 경우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도시들을 어떻게 국경 없이 연결할 수 있을까? 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다른 장소로 들고 이동할 수 있을까? 집은 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히 동일한 개념일까? 그래서 나는 사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 영상 등을 제작한다. 제작 과정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벗어날 수 있기에 나의 실천 중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다.

서도호 작가

결국 모든 것은 집으로 귀결된다?

서도호, <향수병 (1/80 스케일)>, 2024, 혼합 재료, 119.5 x 80 x 80 cm.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1, 2 전시장에서 소개하는 작가의 작품은 건축 모형, 영상, 설치 등 형태와 장르가 다르다. 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 한 가지다. 바로 ‘집’이다. 그가 ‘집’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한 배경은 작가 본인의 개인사와도 맞닿아 있다. 서도호 작가는 수묵 추상의 거장인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의 아들로 태어나 성북동의 전통 한옥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수학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오늘날까지도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개인의 취향, 정체성, 기억, 그리고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한데 섞여 있다. 2층에 자리한 스페이스 1 전시장에서는 과거에 소개한 대형 설치 작품을 축소한 모형 작품부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신작까지 살펴볼 수 있다.

서도호, <연결하는 집, 런던 (1/125 스케일)>, 2024, 판수지, 레진, 종이, 스테인리스스틸, 144.6 x 144 x 144 cm. 작가, 리만머핀 (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서도호, <비밀의 정원>, 2012, 혼합 재료, LED 조명이 부착된 디스플레이스 케이스, 199 x 180 x 82cm, 작가, 리만머핀 (뉴욕, 홍콩,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서도호, <나의 집/들, 양(1/30 스케일)>, 2024, 알루미늄, 166 x 224.9 x 17.1 cm. 작가, 리만머핀 (뉴욕,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3D 건축 모형 작품 ‘연결하는 집, 런던’은 영국 런던의 웜우드 스트리트의 육교에 한옥 모형을 심은 작품을 축소했다. 이방인으로서 이주하는 과정에서 느낀 기억과 감정, 이민의 역사 그리고 문화 충돌 등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담았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정원을 16분의 1 크기로 줄여 제작한 ‘비밀의 정원'(2012)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18륜 트럭 위에 집과 정원이 실려 있는데 이는 미국적인 풍경을 상징하며 작가가 지냈던 한옥집과의 대조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신작 ‘나의 집/들'(2024)은 서도호 작가가 그간 지내온 집과 작업실 공간을 축소해 하나의 건축 모형 설치물로 만든 것이다. 과거 자신의 공간들의 파편을 한데 모은 작품은 이방인의 삶을 살아온 작가의 또 다른 초상화로서도 기능한다.

서도호,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 2018,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반복재생, 사운드, 28분 34초. 작가, 리만머핀 (뉴욕, 홍콩, 서울), 빅토리아 미로 (런던, 베니스) 제공. 사진: 정태수. © 서도호.
서도호, <동인아파트>, 2022,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20분 32초. ©서도호.

한편, 3층에 자리한 스페이스 2 전시장에는 두 개의 영상 ‘동인아파트'(2022)’와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0HG'(2018)이 순차적으로 상영된다. 재개발로 사라지는 공동 주택 단지를 작가는 카메라로 느리게 기록했다. 켜켜이 쌓인 기억의 현재를 탐구하며 집이 가진 기억들과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또 다른 비결

이번 전시에서 서도호 작가의 거대하고 거침없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건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가는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에서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북극에 자리한 완벽한 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함께 하는 구명복을 함께 제작했다. 흥미로운 건 집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옷을 바라봤는데,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집이자 옷인 ‘완벽한 집 S.O.S(Smallest Occupiable Shelter)’을 만들었다. 이는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로 남극 탐험대 지원 피복인 ‘라이프텍 재킷’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력, 보온성, 태양열 패널, 조난신호기 등 일주일간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생존 기술 솔루션을 적용한 점이 특징이다.

또 다른 협업은 업사이클링으로 옷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함께 했다. 래코드와 서도호 작가는 업사이클링 티셔츠 5종을 이번 전시의 굿즈로 선보였다. 해체된 요소들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래코드의 브랜드 철학은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 놓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 철학과 일견 닮아 있다. 이들은 프린트 티셔츠 위에 맥락을 잃어버린 사물들과 소외된 재료를 패치한 디자인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아울러 전시 기간 예약을 통해 선주문 판매 방식을 택해 기후 위기 속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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