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최혜진 에디토리얼 디렉터·아장스망 대표
최혜진 디렉터는 에디팅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고방식이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또한 주관의 산물이기에 결국 사람이 궁금해질 수밖에. 동경과 불안의 마음을 넘어 에디터적 사고로 무장하기까지, 최혜진 디렉터의 여정을 물었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최혜진은 에디토리얼 에이전시 아장스망(agencement)의 대표이자 에디토리얼 디렉터입니다. 브랜드 매거진 〈디렉토리〉를 창간하며 온드 미디어의 확장 가능성과 시장에서의 에디터적 사고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2021년 아장스망을 설립했어요. 제품과 브랜드,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과잉인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이는 에디팅을 통해 나온다는 것이죠. 그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지만, 점이 깊이를 지니면 영역은 횡적으로 확장합니다. 최혜진 디렉터는 20여 년간 에디터로서 훈련받은 사고법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브랜드 전략을 만들기도 하고 그림책 업계에서 취재와 비평을 하기도 해요. 지난해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담아 책 〈에디토리얼 씽킹〉을 펴냈습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 최혜진 디렉터를 그의 다섯 번째 저서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속 코펜하겐이 연상되는 아장스망 오피스에서 만났습니다.
PLUS 1. 내가 꿈꾸던 나
인터뷰를 준비하며 2016년 출간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다시 읽었어요. “자기만의 관점으로 상황과 문제를 해석하는 사람”을 동경하던 30대 초반의 최혜진이 2023년 이를 포괄하는 에디터적 사고법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더군요.
어떻게 콤플렉스가 있던 사람이 자기 주관으로 책을 내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게 된 건지 물으시는 걸 텐데, 굉장히 거대한 질문이에요. (웃음) 질투와 동경 같은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서 덜 흔들릴 수 있을까, 30대 초반의 숙제였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희망하고 막연하게 힘들어하고 막연하게 질투하지 않으려는 매우 큰 결심을 했던 것도 같고요. 제가 이해한 질투는 내 준거집단에서 발동하는 감정이에요. 질투가 나면 ‘저 사람이 한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는구나’하고 생각했죠. 질투를 나를 이해하고 나의 바운더리를 점검하는 도구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정확한 범위를 설정한 다음 작은 나의 영역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어요.
당시 설정했던 작은 바운더리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들을 좋아해요. ‘지적 역량으로 일하기’가 저의 바운더리였어요. 생각지 못한 것을 떠올리고, 똑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제 능력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시에는 질문을 잘하는 게 큰 목표였습니다. 〈명화가 내게 묻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초기 제 책들의 제목이 ‘묻다’로 끝나는 것도 그때 제 관심사가 질문을 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저렇게 반짝이는 걸 만드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각자의 미술관〉에서는 여러 권의 책을 쓰는 동안 한 번도 에디터로서 정체성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어요. 반대로 미술관과 그림책을 탐닉하고 작가로 글을 써온 시간이 에디터적 사고에는 어떻게 작용했나요?
에디터 생활을 하다가 2014년 처음으로 제 이름을 단 책을 냈어요. 에디터는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나를 앞세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런데 작가는 어쩔 수 없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작가 활동을 하면서 에디터로서 자기 주관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 졌어요. 자기만의 관점을 지닌 에디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요.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며 끌림의 이유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이 얘기는 계속 나올 것 같은데요. (웃음) 어떤, 어떻게, 같은 방법론을 묻는 질문에는 비슷한 패턴의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디자인도, 사진도, 영상도, 감을 중요시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좋다고 느끼는 것과 저 사람이 좋다고 느끼는 것 중 무엇이 더 낫다고 과학적으로 판단할 순 없어요. ‘누구의 주관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의 싸움이죠. 그랬을 때 내 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남을 설득할 수 없어요. 내가 느끼고 감각한 것을 이성의 프레임에 넣어서 이해해야 해요. 이것이 정말 저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고, 그걸 훈련한 곳이 미술관이에요.
PLUS 2. 프랑스로 떠난 3년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11년 전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났어요.
제가 초반 에디터 생활을 한 매체들이 로컬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었어요. 라이선스지와 달리 로컬지는 모든 페이지를 커스텀 해서 만들어야 해요. 극강의 노동력을 요하는 매체에서 10년을 다녔죠. 제가 떠난 것은, 내 시간의 거의 전부를 몰입해 만드는 콘텐츠가 너무 쉽게 휘발되는 게 힘들었어요. 제가 인터뷰하거나 취재한 이 콘텐츠의 가치는 시간에 크게 관여 받지 않을 것 같은데, 한 달이 지나면 유통기한 지난 우유 버리듯 모든 서점가에서 빠지죠. 계속 소모되고 있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공부하던 프랑스로 떠났어요. 22살 때부터 쉼 없이 일해왔기 때문에 다시 한번 스스로 탐구할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요.
그 시기를 회고해보면 무엇을 배우고 얻었던 시간으로 기억하시나요?
그전까지는 몰랐어요.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가 제 시간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요. 처음으로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기쁘기 보다는 스스로 시간표를 짜는 것에 당혹감을 느꼈고, 내세울 만한 성과 없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퇴직하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으니 부럽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혹독한 사춘기 같은 시간이었어요.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반응하는 제 안의 여러 모습을 마주하며, 앞선 질투와 같은 감정을 나의 자산으로 만드는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때 깊숙하게 내려가서 제 감정의 곳간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제가 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그 3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예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매거진을 만들었죠. 계간 〈볼드저널(Bold Journal)〉 팀에 합류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제가 유럽에 있으면서 책을 한 권 냈고, 당시 블로그에 썼던 글들로 여러 출간 제안을 받은 상태였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차례차례 책을 내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소모적인 ‘잡지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은 확고했고요. 그런데 이 매체는 콘텐츠의 수명이 길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저희가 ‘모던 파더’라고 명명한 3040 아버지들, 가부장적 아버지 상과 다른 ‘나답게’ 아버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코어 독자였거든요. 그런 사람을 향해 외치는 콘텐츠가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 이 콘텐츠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요. 2호를 만들던 도중에 합류해서 마무리하고 3호부터 기획해 11호까지, 3년 정도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의 화두는 ‘관점’이었어요. 감으로 판단되는 영역에서 관점 없이 자신을 뚜렷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최혜진이 편집장 하니까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이야기를 저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획을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어떤 이슈가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줬나요?
한 호를 꼽으라고 하면 젠더 이슈인 8호예요.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들도 달라진 시대에 맞는 젠더 감수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 모던 파더의 잡지처럼 보일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내부 경영진을 설득하고 저의 제작 역량에 대한 믿음을 쌓아 가는데 1년 정도 걸려서 2018년에 출간되었어요. 단순히 책만 낸 것이 아니라 출판 전 펀딩과 포털사이트 다음과 협업해 다음 메인 화면에 콘텐츠가 연재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신경 썼습니다. 당시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격렬하게 사회가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일간지의 주목도 많이 받았어요.
“저는 호기심도 많고 걱정도 많아요. 모험과 불안을 겨누는 줄이 양쪽으로 팽팽하죠. 그래서 미리 계산하고 준비하고 생각하면서 시도해요.”
전략도 함께 고민했네요.
저는 5년 차에 피처 디렉터를 달고, 퇴사 직전의 2년은 디지털 콘텐츠 디렉터로 일했어요. 그러면서 페이지 단위가 아니라 책 한 권 단위, 그리고 매체가 놓일 환경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성장의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대범한 인간이 아니에요. 소심하고 콤플렉스 많던 시절을 이겨내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계산 없이 지르는 타입이 절대 아니죠. 단지 과거 부족하고 못나 보였던 점이 저를 유니크하게 만드는 훌륭한 재료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똑같이 소심하게 일하지만, 지금은 저를 보고 전략가라고 말하시잖아요. (웃음)
PLUS 3. 에디팅이 필요한 시대
2021년 ‘아장스망(agencement)’이라는 에디토리얼 컨설턴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디토리얼 디렉터라고 소개하셨는데요. 에디토리얼 디렉터와 에디토리얼 컨설턴시에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에디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재료를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고 재배열하거나 재맥락화해서 기존에는 없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토리얼 디렉터와 에디토리얼 컨설턴시라고 명명한 것은 ‘에디토리얼 씽킹’이라는 생각의 방식을 통해서 기업에 솔루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실행단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에디터가 아니라 기업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발신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 에디터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지금까지 그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그 시점이었나요?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을 위해 〈디렉토리(Directory)〉 매거진을 창간한 이후 온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 거라는 직감이 있었어요. 그 무렵 마케팅 신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이 저물고 브랜딩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브랜딩은 하나의 기업이나 브랜드를 인격체로 보고, 그럼으로써 어떤 인지적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이에요. 즉각적인 퍼포먼스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브랜드 팬덤을 모으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제가 에디터로서 일했던 20년 전 에디터는 매체사의 편집부에 소속된 직업군만 일컫는 작은 단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기업마다 인하우스 콘텐츠 에디터를 두고 있어요. 에디터에 대한 업의 정의와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것도 느껴졌기 때문에, 이 시기에 ‘편집’의 가치를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미 부여와 가치관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에서 통로가 되는 것은 콘텐츠예요. 온드 미디어의 전략을 함께 고민해 주는 컨설팅 회사가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의뢰를 받는 형식이나 전략을 고민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기존 에이전시들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컨설턴시로서 프로젝트가 어떻게 다르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중요한 질문이에요. 자칫하면 변별력 없이 같은 카테고리로 들어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유념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편집권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고객을 만난 퍼스널 트레이너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고객의 지향점은 체중 감량이지만, 현생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맥주도 당기고, 떡볶이도 당겨요. 그때 퍼스널 트레이너가 고객의 이율배반적 욕망을 제한 없이 허용한다면 그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 제가 하는 일도 비슷해요. 기업 내부의 상황 논리로 더 나은 콘텐츠를 향한 이상향이 무너질 때,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주는 일을 하기 위해 편집권을 챙기는 거예요.
브랜드에 그런 믿음은 어떻게 주었나요?
글쎄요. (웃음) 그런데 이 구도 설정을 잘 하려면 처음 기획을 발표할 때 놀라움을 선사할 필요가 있어요. 브랜드가 당연시하는 전제를 계속 들여다보면서 브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신념의 레벨까지 내려가 보면 어떤 전략이 만들어져요. 그런데 대부분 거기까지 내려간 사실에 감동해요. 우리도 각자 인생에 중요한 가치관이 있지만, 매일 신경 쓰진 못하잖아요. 그러다가 가끔 이런 인터뷰와 같은 기회로 내가 어떤 목표와 지향점으로 사는 존재였는지 다시 점검하고 정렬시키죠. 그 같은 것을 기업과 브랜드도 원해요. 그리고 기대하며 전권을 준 만큼 더 잘 해야 하는 거예요. 최종 산출물의 결과와 퀄리티에 대한 책임을 제가 지는 거니까, 오히려 더 무거워요.
직방과 함께한 〈디렉토리〉 매거진이 첫 브랜드 매거진이 작업이었어요. 당시 직방이 지닌 업의 본질을 ‘물리적 조건과 심미안이 극적 타결하는 공간’으로 정의했는데요. 이를 콘텐츠로 어떻게 구현했나요?
물리적 조건과 심미안의 극적 타결을 담아내려면 돈 얘기를 당연히 해야 했어요. 20대의 집에서 보증금을 어떻게 빼고 이야기하겠어요. 자립 이후 거쳐온 집들의 연대기와 보증금, 월세를 공개하는 형식의 인터뷰 콘셉트를 잡았고, 집을 통해 자립의 기술을 배워가는 MZ세대의 경제적 불안과 취약함까지 솔직하게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만들었어요.
에디터는 디자이너와 다른 방향으로 글과 이미지를 다루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인상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해요.
제 원칙이 디자이너와 논의할 때 핀터레스트에서 시안을 찾아 무드보드를 만들어 가지 않는 거예요. 저는 일단 표현하고 싶은 무드를 매우 구체적인 문자 언어로 설명해요. 레퍼런스를 찾아서 보여주는 것은 쉬운 선택지이잖아요. 무난하게 넘어갈 수는 있지만, 흥미로운 가치는 조금 더 불편하거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쪽의 선택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죠. 그리고 디자이너도 창작자인 만큼 그 세계와 해석할 여지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강렬한 인상을 남긴 〈1.5℃〉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완성했나요?
소울에너지 브랜드 매거진 〈1.5℃〉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근간인 기후위기를 이야기해요. 정의롭고 올바른 매체죠. PC(Political Correctness)함이 2021년 창간 당시의 강력한 도그마였어요. 그런데 PC를 떠올렸을 때, 그것이 매력적이거나 내 삶을 저렇게 바꾸고 싶다고 생각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언제 스스로 바꾸려고 할까요? 멋있다고 느끼면 나를 바꾸면서까지 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 매체는 ‘멋있음의 끝판왕’으로 보여야 했고, 환경 콘텐츠로서 어떤 멋을 낼 수 있을까 했을 때 되바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랬더니 여러 단어가 제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넘어도 되는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12개 정도의 형용사로 규정했어요. 그리고 무드로 떠올린 것은 1980년대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아키라〉였어요.
다른 매체에서 영향을 받았군요. 왠지 블랙과 레드 컬러에서 〈아키라〉가 떠오르기도 해요. (웃음)
〈아키라〉는 종말론적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그려지는 애니메이션이에요. 기후위기도 정말 종말을 향해 가고 있죠. 사실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세기말의 정서와 잘 맞을 것 같았어요. 또 그때의 감성이 지금 시대에 새로운 느낌으로 보일 것 같았고요. 저의 형용사 목록과 함께 “사이버펑크 장르의 비주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전달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팀을 빌딩하고 에디터들을 이끄는 리더이기도 해요. 브랜드 및 서로 간의 유대감이 없는 팀원들을 어떻게 한 방향으로 달리게 하는 동시에 열정을 이끌어낼 수 있나요?
팀원들도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아무래도 제가 그렇게 일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웃음) 브랜드 매거진 한 권을 함께 만든다고 하면, 제가 하는 일은 큰 틀에서 우리가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태스크로 쪼개고 가시화하는 거예요. 모든 태스크는 엑셀로 만들어서 팀원들과 공유합니다. 내가 담당하는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죠. 그리고 하나하나의 태스크를 최종장을 위한 중간 터미널로 보기 시작하면 권태로울 수 있어요. 그래서 이 태스크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여기에 저는 마감 날짜만 정하고 일정 관리는 스스로 하게 해요. 물론,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 중 가장 좋아하는 단계는 언제인가요?
저는 전례 없는 일들에 흥미를 느껴요. 그래서 백지의 기획 단계를 가장 좋아해요. 아무것도 지어진 것 없는 허허벌판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저에게 가장 매력적이에요.
PLUS 4. 정확한 사랑의 작업자
에디토리얼 디렉터, 작가, 번역가, 모더레이터, 방대한 업의 영역과 작업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모든 것을 꾸준히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비결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들이 재밌어요. 일도 재밌고요. 싫은 데 억지로 하는 게 없어요.
계속 생각하고 아웃풋을 내다보면 소진되는 느낌이 들진 않나요?
당연히 소진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번아웃까지 가진 않아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일기를 써서예요. 일기가 저의 동아줄입니다. (웃음) 소진된다는 느낌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해서예요. 감정을 이해하면, 그렇게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아요. 저는 25년째 일기를 쓰고 있고, 일기 쓰기가 습관이다 보니 어떤 감정이 저를 흔들려고 할 때면 일기를 써서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럼 다시 차분해질 수 있어요.
과거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며 책들의 씨앗이 여기에 있구나 싶었는데요. 블로그 이외에 미술과 그림책, 정보 등을 아카이빙하는 툴이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워드 파일에 모아놓고 있어요. 거의 10년 치가 있죠. 하나의 워드파일이고 1,100페이지 이상 1,200페이지를 향해서 가고 있어요. 단어수로는 30만 단어가 넘고요. 제가 어떤 생각을 풀어야 할 때 그 파일을 열어서 단어를 검색해요. 예를 들어 ‘우정’에 관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한다면 ‘우정’을 검색하는 거예요. 그러면 7년 전 읽었던 인문학책과 철학책에서 나왔던 우정, 3년 전 읽은 시집에서의 우정, 몇 달 전 읽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우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즉각적으로 에디팅이 되는 거죠. 그런 다양한 문장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요. 처음 문장을 옮겼던 이유는, 내가 좋다고 느낀 부분을 소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빼놓고 싶었어요. 좋다고 느낀 것을 내 걸로 만들기 위한 중간 과정을 하나 만들기 위해 시작한 거예요. 일기장과 함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에요.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가 맨 앞단으로 가고, 제일 밑단으로 내려가서 규정된 것 없이 백지상태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브랜딩이 중요해지다 보니 마케팅을 위한 결과물이나 커뮤니케이션 산출물을 총괄하는 브랜드 디렉터가 생기고 있는데, 한 브랜드가 발신하는 모든 텍스트를 관장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콘텐츠 말고도 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기업의 텍스트가 소비자와 만나는 일이 꽤 있잖아요. 어느 시점이 되면 브랜드도 더 고도화될 것이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한 기업의 모든 룩을 관장하듯 메시지와 버벌의 총책임자가 있어서 모든 것을 하나의 맥락으로 관리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거대한 희망 사항이 있어요.
스스로 어떤 작업자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정확한 사랑을 하는 작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신형철 평론가님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좋아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자아로 일하든, 저는 정확성에 끌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감정 차원의 신호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꿔내는 힘이 있다, 나만의 해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포괄한 단어가 저에게 정확성이에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싫은 일은 하지 않아요. 에디토리얼 디렉터로 한 일 중 억지로 한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작가 최혜진이 책 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기업이나 대상을 위해 쓰겠다고 결정한 거예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건 저에게 정말 큰 낭비죠. 그런 맥락에서 정확한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어요. (웃음)
PLUS LIST
최혜진 디렉터가 추천하는 미술관 3
- 덴마크 국립미술관
-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
- 퐁피두 센터
“덴마크 국립미술관(Statens Museum for Kunst)은 저에게 북유럽 회화의 매력을 알려준 미술관이에요. 덴마크 미술의 황금기이기도 한 19세기에서 20세기 회화 컬렉션이 무척 좋고, 북유럽 회화를 개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은 공간이 지닌 매력과 전시 방식 덕분에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곳이에요.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현대미술의 보고 같다고 할까요. 전시 방식 역시 인상적이고요. 지난 6월에 다녀왔는데, 만화의 세계를 조명하면서 만화와 현대미술의 평행이론을 찾아내 다시 의미 부여한 전시가 좋았어요.”
TIPPING POINT
“내 느낌의 출처와 이유와 원인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어요.”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있다고 모두가 에디팅으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경하고 질투하는 마음, 이루고 싶은 목표 지점과 욕망, 나의 기대치, 그리고 모호하고 뭉뚱그려 오는 느낌,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짚고 이해하며 최혜진 디렉터의 센서는 더욱 예민하게 벼려졌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비스, 제품, 브랜드를 관찰하고 의미를 발견해서 이성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방식은 더 큰 설득력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