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최혜진 에디토리얼 디렉터·아장스망 대표
최혜진 디렉터는 에디팅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고방식이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또한 주관의 산물이기에 결국 사람이 궁금해질 수밖에. 동경과 불안의 마음을 넘어 에디터적 사고로 무장하기까지, 최혜진 디렉터의 여정을 물었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최혜진은 에디토리얼 에이전시 아장스망(agencement)의 대표이자 에디토리얼 디렉터입니다. 브랜드 매거진 〈디렉토리〉를 창간하며 온드 미디어의 확장 가능성과 시장에서의 에디터적 사고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2021년 아장스망을 설립했어요. 제품과 브랜드,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과잉인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이는 에디팅을 통해 나온다는 것이죠. 그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지만, 점이 깊이를 지니면 영역은 횡적으로 확장합니다. 최혜진 디렉터는 20여 년간 에디터로서 훈련받은 사고법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브랜드 전략을 만들기도 하고 그림책 업계에서 취재와 비평을 하기도 해요. 지난해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담아 책 〈에디토리얼 씽킹〉을 펴냈습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 최혜진 디렉터를 그의 다섯 번째 저서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속 코펜하겐이 연상되는 아장스망 오피스에서 만났습니다.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1 인물 05](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인물-05-832x1109.jpg)
PLUS 1. 내가 꿈꾸던 나
인터뷰를 준비하며 2016년 출간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다시 읽었어요. “자기만의 관점으로 상황과 문제를 해석하는 사람”을 동경하던 30대 초반의 최혜진이 2023년 이를 포괄하는 에디터적 사고법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더군요.
어떻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 책을 내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게 되었는지 물으시는 것 같은데, 사실 굉장히 거대한 질문이에요. (웃음) 질투와 동경 같은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서 덜 흔들릴 수 있을까, 이것이 30대 초반의 숙제였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희망하고, 막연하게 힘들어하고, 막연하게 질투하지 않으려는 크고 단단한 결심을 했던 것도 같고요. 제가 이해한 질투는 ‘내가 속한 준거집단 안에서 발동하는 감정’이에요. 질투를 느낄 때마다 ‘저 사람이 한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는구나’ 생각했죠. 질투를 나를 이해하고 나의 바운더리를 점검하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한 뒤, 작은 나의 영역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어요.
당시 설정했던 작은 바운더리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해요. ‘지적 역량으로 일하기’가 저의 기준이었어요. 생각지 못한 것을 떠올리고,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이 저에게 있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질문을 잘하는 것이 큰 목표였어요. 〈명화가 내게 묻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초기 제 책들의 제목이 모두 ‘묻다’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저렇게 반짝이는 걸 만드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각자의 미술관〉에서는 여러 권의 책을 쓰는 동안 한 번도 에디터로서 정체성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어요. 반대로 미술관과 그림책을 탐닉하고 작가로 글을 써온 시간이 에디터적 사고에는 어떻게 작용했나요?
에디터 생활을 하다가 2014년 처음으로 제 이름을 단 책을 냈어요. 에디터는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정작 자신을 앞세우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런데 작가는 다르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작가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에디터로서 자기 주관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그리고 ‘자기만의 관점을 지닌 에디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고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2 DSC02748](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748-832x1109.jpg)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며 끌림의 이유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이 이야기는 계속 나오게 될 것 같은데요. (웃음) 어떤, 어떻게, 같은 방법론을 묻는 질문에는 비슷한 패턴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디자인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모두 감각을 중요시하는 분야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좋다고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이 좋다고 느끼는 것 중 무엇이 더 낫다고 과학적으로 판단할 순 없어요. 결국 ‘누구의 주관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의 싸움이죠. 그런 상황에서 내 감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남을 설득할 수 없어요.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이성의 프레임 안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하죠. 이게 저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고, 그것을 훈련한 곳이 미술관이에요.
PLUS 2. 프랑스로 떠난 3년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11년 전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나셨어요.
초반에 제가 에디터로 일했던 메체들은 로컬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었어요. 라이선스지와 달리 로컬지는 모든 페이지를 커스텀 해서 제작해야 하죠. 극강의 노동력이 필요한 환경에서 10년을 보냈어요. 제가 그곳을 떠난 이유는, 제 시간의 거의 전부를 쏟아 만든 콘텐츠가 너무 쉽게 휘발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인터뷰하고 취재한 콘텐츠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 달이 지나면 유통기한 지난 우유처럼 모든 서점에서 사리지죠.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면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공부하던 프랑스로 떠났어요. 22살 때부터 쉼 없이 일해왔기 때문에 다시 한번 스스로 탐구할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요.
그 시기를 회고해보면 무엇을 배우고 얻었던 시간으로 기억하시나요?
그전까지는 몰랐어요.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는 한 번도 제 시간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요. 처음으로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기쁘기보다는 스스로 시간표를 짜야 한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러웠어요. 내세울 만한 성과 없이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죠. 다른 사람들은 퇴직 후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 보고 부럽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마치 혹독한 사춘기 같은 시간이었어요. 낯설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 제 안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게 됐죠. 앞서 이야기한 질투 같은 감정들을 ‘나의 자산’으로 바꾸어 가는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때 깊숙이 내려가 제 감정의 곳간을 열어보는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감각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그 3년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3 인물 04](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인물-04-832x555.jpg)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매거진을 만들었죠. 계간 〈볼드저널(Bold Journal)〉 팀에 합류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유럽에 있으면서 책을 한 권 냈고, 당시 블로그에 썼던 글들로 여러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차례차례 책을 내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죠. 소모적인 ‘잡지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은 확고했고요. 그런데 이 매체는 콘텐츠의 수명이 길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저희의 코어 독자는 ‘모던 파더’라고 명명한 30~40대 아버지들이었어요. 가부장적 아버지상에서 벗어나 ‘나답게’ 아버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을 향해 발신하는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도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일이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 이 콘텐츠가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요. 2호를 만들던 도중에 합류해서 마무리 작업을 했고, 3호부터 기획을 맡아 11호까지, 약 3년간 만들었어요. 그때 제 화두는 ‘관점’이었어요. 감각으로 판단되는 영역에서 뚜렷한 관점 없이 자신을 인식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최혜진이 편집장을 맡으니까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말을 스스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하며 기획을 했어요.
어떤 이슈가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줬나요?
한 호를 꼽으라고 하면 젠더 이슈를 다룬 8호예요. 매체에 합류하자마자 “아버지들도 달라진 시대에 맞는 젠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말 ‘모던 파더’다운 잡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내부 경영진을 설득하고, 제 제작 역량에 대한 신뢰를 쌓는 데 1년 정도 걸렸고, 결국 2018년에 출간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책만 낸 것이 아니라 출판 전 펀딩을 진행하고, 포털사이트 다음(Daum)과 협업해 메인 화면에 콘텐츠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화제성을 키우는 데도 신경 썼어요. 마침 당시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가 격렬하게 변화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일간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어요.
“저는 호기심도 많고 걱정도 많아요. 모험과 불안을 겨누는 줄이 양쪽으로 팽팽하죠. 그래서 미리 계산하고 준비하고 생각하면서 시도해요.”
단순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넘어 전략까지 함께 고민하셨네요.
저는 5년 차에 피처 디렉터를 달았고, 퇴사 직전의 2년은 디지털 콘텐츠 디렉터로 일했어요. 그러면서 페이지 단위가 아니라, 책 한 권 단위로 사고하고, 더 나아가 매체가 놓일 환경까지 고민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거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소심하고, 콤플렉스도 많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계산 없이 무작정 질러보는 타입은 절대 아니에요. 다만, 과거에 부족해 보이고 못났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오히려 저를 유니크하게 만드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됐어요. 그래서 여전히 소심하게 일하지만, 지금은 저를 보고 전략가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웃음)
PLUS 3. 에디팅이 필요한 시대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4 DSC0227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273-832x555.jpg)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5 DSC0225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253-832x555.jpg)
2021년 ‘아장스망(agencement)’이라는 에디토리얼 컨설턴시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에디토리얼 디렉터라고 소개하셨는데요. 에디토리얼 디렉터와 에디토리얼 컨설턴시에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에디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재료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배열하거나 재맥락화해, 기존에 없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에디토리얼 디렉터와 에디토리얼 컨설턴시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에디토리얼 씽킹’이라는 사고 방식을 통해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실행 단계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만이 에디터가 아니라요. 기업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발신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도 에디터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지금까지 그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 시점이었나요?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을 위해 〈디렉토리(Directory)〉 매거진을 창간한 이후 온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직감을 했어요. 그 무렵 마케팅 업계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의 시대가 저물고, 브랜딩이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었어요. 브랜딩이란 하나의 기업이나 브랜드를 인격체처럼 바라보고, 이를 통해 어떤 인지적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죠. 즉각적인 퍼포먼스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브랜드 팬덤을 형성하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제가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했던 20년 전만 해도, 에디터란 매체사의 편집부에 소속된 직업군을 의미하는 작은 단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업마다 인하우스 콘텐츠 에디터를 두고 있는 시대가 되었죠.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것도 체감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편집’의 가치를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설득력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미 부여와 가치관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에서 통로가 되는 것은 콘텐츠예요. 온드 미디어의 전략을 함께 고민해 주는 컨설팅 회사가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의뢰를 받는 형식이나 전략을 고민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기존 에이전시들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컨설턴시로서 프로젝트가 어떻게 다르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요.
자칫하면 변별력 없이 같은 카테고리로 묶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유념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편집권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에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고객을 만난 퍼스널 트레이너를 떠올려 보세요. 고객의 목표는 체중 감량이지만, 현실의 다양한 이유로 맥주도 마시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어요. 그때 퍼스널 트레이너가 이러한 이율배반적 욕망을 제한 없이 허용한다면, 과연 그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 제가 하는 일도 비슷해요. 기업 내부의 논리에 따라 더 나은 콘텐츠를 향한 방향성이 흔들릴 때, 저는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편집권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예요.
브랜드에 그런 믿음은 어떻게 주셨어요?
글쎄요. (웃음) 하지만 이 구도를 잘 설정하려면, 처음 기획을 발표할 때 놀라움을 선사할 필요가 있어요. 브랜드가 당연시하는 전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브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신념의 레벨까지 내려가 보면 어떤 전략이 만들어져요. 그런데 대부분 그 과정 자체에 감동해요. 우리도 각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관이 있지만, 매일 신경 쓰지는 못하잖아요. 그러다가 가끔 이런 인터뷰 같은 기회를 통해, 내가 어떤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다시 점검하고 정렬하게 되죠. 기업과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고 전권을 맡기는 거죠. 그만큼 저는 더 잘해야 해요. 최종 산출물의 결과와 퀄리티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제몫이니까, 오히려 더 무거워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6 디렉토리매거진 창간호 미리보기 compressed 6](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디렉토리매거진_창간호_미리보기_compressed-6-832x552.jpg)
직방과 함께한 〈디렉토리〉 매거진이 첫 브랜드 매거진이 작업이었어요. 당시 직방이 지닌 업의 본질을 ‘물리적 조건과 심미안이 극적 타결하는 공간’으로 정의했는데요. 이를 콘텐츠로 어떻게 구현하셨나요?
물리적 조건과 심미안이 극적으로 타협되는 순간을 담아내려면, 당연히 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20대의 집을 이야기하면서 보증금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자립 이후 거쳐온 집들의 연대기와 보증금, 월세를 공개하는 형식의 인터뷰 콘셉트를 잡았어요. 집을 통해 자립의 기술을 배워가는 MZ세대의 경제적 불안과 취약함까지 솔직하게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만들었죠.
에디터는 디자이너와 다른 방향으로 글과 이미지를 다루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인상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해요.
제 원칙 중 하나는 디자이너와 논의할 때 핀터레스트에서 시안을 찾아 무드보드를 만들지 않는 거예요. 저는 일단 표현하고 싶은 무드를 매우 구체적인 문자 언어로 설명해요. 레퍼런스를 찾아 보여주는 건 쉬운 선택지죠. 무난하게 넘어갈 수는 있지만, 진짜 흥미로운 가치는 때로 더 불편하거나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선택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자이너도 창작자인 만큼, 그 세계와 해석할 여지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7 일점오도씨 5호 앞표지](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일점오도씨_5호_앞표지-832x1137.jpg)
강렬한 인상을 남긴 〈1.5℃〉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완성하셨어요?
소울에너지의 브랜드 매거진 〈1.5℃〉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근간인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매체예요.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매체죠. 창간 당시인 2021년, PC(Political Correctness)는 강력한 도그마였어요. 하지만 PC함을 떠올렸을 때, 그것이 매력적이거나 ‘내 삶을 저렇게 바꾸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는 의문이었어요. 사람들은 언제 스스로 변화를 원할까요? 멋있다고 느낄 때, 나를 바꾸면서까지 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 매체는 ‘멋있음의 끝판왕’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경 콘텐츠가 어떻게 멋을 낼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되바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그랬더니 여러 단어가 제 안에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넘어도 되는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12개의 형용사로 규정했고, 무드로 떠올린 것은 1980년대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아키라〉였어요.
다른 매체에서 영향을 받았군요. 블랙과 레드 컬러에서 정말 〈아키라〉가 떠오르기도 해요. (웃음)
〈아키라〉는 종말론적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애니메이션이에요. 기후위기 역시 현실에서 진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문제죠. 사실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세기말적인 정서와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당시의 감성이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새롭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제가 정리한 형용사 목록과 함께 “사이버펑크 장르의 비주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라는 가이드라인을 전달했어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8 DSC02295](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295-832x1248.jpg)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팀을 빌딩하고 에디터들을 이끄는 리더이기도 해요. 브랜드 및 서로 간의 유대감이 없는 팀원들을 어떻게 한 방향으로 달리게 하는 동시에 열정을 이끌어낼 수 있나요?
팀원들도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아무래도 저 자신이 그렇게 일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웃음) 브랜드 매거진 한 권을 함께 만든다고 하면, 제가 하는 일은 큰 틀에서 우리가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태스크로 세분화하고 가시화하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태스크를 엑셀에 정리해 팀원들과 공유하죠. 내가 직접 담당하는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현재 진행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요. 하지만 태스크 하나하나를 단순히 ‘거쳐 가는 과정’으로만 보면 금방 권태로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태스크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함께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요. 또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마감 날짜만 정해두고 일정 관리는 스스로 하게 맡긴다는 점이에요. 물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요.
프로젝트 진행 과정 중 어떤 단계를 가장 좋아하세요?
저는 전례 없는 일들에 흥미를 느껴요. 그래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기획 단계를 가장 좋아해요. 아무것도 지어진 것 없는 허허벌판 같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그게 저에게 가장 매력적이에요.
PLUS 4. 정확한 사랑의 작업자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9 DSC02283](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283-832x1248.jpg)
에디토리얼 디렉터, 작가, 번역가, 모더레이터, 방대한 업의 영역과 작업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모든 것을 꾸준히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비결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들이 재밌어요. 일도 재밌고요. 싫은 데 억지로 하는 게 없어요.
계속 생각하고 아웃풋을 내다보면 소진되는 느낌이 드시진 않나요?
당연히 소진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번아웃까지 가는 일은 없어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일기를 쓰기 때문이에요. 일기가 저의 동아줄이에요. (웃음) 소진된다는 감정은, 결국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오는 것 같아요. 감정을 이해하면, 그렇게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아요. 저는 25년째 일기를 써왔고, 이제는 일기 쓰기가 습관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떤 감정이 저를 흔들려고 할 때면, 일기를 써서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요. 그럼 다시 차분해질 수 있어요.
과거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며 책들의 씨앗이 여기에 있구나 싶었는데요. 블로그 이외에 미술과 그림책, 정보 등을 아카이빙하는 툴이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워드 파일에 모아두고 있어요. 벌써 10년 가까이 쌓였고, 1,100페이지 넘어서 1,200페이지를 향해 가고 있어요. 단어수로는 30만 단어가 넘죠. 제가 어떤 생각을 풀어야 할 때, 그 파일을 열어서 관련된 단어를 검색해요. 예를 들어 ‘우정’에 대한 입장이 필요하면, ‘우정’을 검색하는 거예요. 그러면 7년 전 읽은 인문학책과 철학책 속의 우정, 3년 전 시집에서의 우정, 몇 달 전 자기계발서에서 다룬 우정이 한눈에 정리되죠. 즉각적으로 에디팅이 되는 셈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문장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요.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내가 좋다고 느낀 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좋다고 느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파일은 일기장과 함께 과거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에요.
![[Creator+] 에디토리얼 디렉터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으로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10 DSC02797 복사](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4/09/DSC02797-복사-832x555.jpg)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고 싶으세요?
제가 맨 앞단으로 나아가거나, 제일 밑단으로 내려가 백지 상태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최근 브랜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마케팅을 위한 결과물이나 커뮤니케이션 산출물을 총괄하는 브랜드 디렉터 역할이 자리 잡아 가고 있어요. 하지만 한 브랜드가 발신하는 모든 텍스트를 관장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콘텐츠뿐만 아니라 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기업의 텍스트가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은 생각보다 많아요. 앞으로 브랜드가 더 고도화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한 기업의 모든 룩을 총괄하듯, 메시지와 버벌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언젠가 브랜드의 모든 언어적 요소를 하나의 맥락으로 관리하는 역할이 생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거대한 희망을 품고 있어요.
스스로 어떤 작업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확한 사랑을 하는 작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형철 평론가님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좋아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자아로 일하든, 저는 정확성에 끌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감정 차원의 신호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꿔내는 힘이 있다, 나만의 해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단어가 저에게는 ‘정확성’이에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싫은 일은 하지 않아요. 에디토리얼 디렉터로 일하면서 억지로 한 프로젝트는 단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작가 최혜진이 책 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기업이나 대상을 위해 쓰겠다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건 저에게 정말 큰 낭비죠. 그런 맥락에서 저는 정확한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어요. (웃음)
PLUS LIST
최혜진 디렉터가 추천하는 미술관 3
- 덴마크 국립미술관
-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
- 퐁피두 센터
“덴마크 국립미술관(Statens Museum for Kunst)은 저에게 북유럽 회화의 매력을 알려준 미술관이에요. 덴마크 미술의 황금기이기도 한 19세기에서 20세기 회화 컬렉션이 무척 좋고, 북유럽 회화를 개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은 공간이 지닌 매력과 전시 방식 덕분에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곳이에요.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현대미술의 보고 같다고 할까요. 전시 방식 역시 인상적이고요. 지난 6월에 다녀왔는데, 만화의 세계를 조명하면서 만화와 현대미술의 평행이론을 찾아내 다시 의미 부여한 전시가 좋았어요.”
TIPPING POINT
“내 느낌의 출처와 이유와 원인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어요.”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있다고 모두가 에디팅으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경하고 질투하는 마음, 이루고 싶은 목표 지점과 욕망, 나의 기대치, 그리고 모호하고 뭉뚱그려 오는 느낌,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짚고 이해하며 최혜진 디렉터의 센서는 더욱 예민하게 벼려졌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비스, 제품, 브랜드를 관찰하고 의미를 발견해서 이성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방식은 더 큰 설득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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