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련요양병원 사인 디자인 프로젝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한 병원 전문 사인 디자인 기업 '드림디자인'. 이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지켜온 비결과 디자인 철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고려대련요양병원 사인 디자인 프로젝트

올해 병원 전문 사인 디자인 기업 ‘드림디자인’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획부터 시공까지 전담하는 사인 디자인 회사의 모수 자체가 적고 병원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곳은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불모지 같은 시장에서 28년째 같은 자리를 뚝심 있게 지켜온 드림디자인의 이승진 대표, 김민정 경영기획실장, 성현호 디자인 1팀 차장을 만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수상작인 고려대련요양병원 사인 디자인과 이들의 철학에 대해 물었다.

왼쪽부터 김원중 대리, 김현아 매니저, 김민정 경영기획실장, 이승진 대표, 김대현 차장, 성현호 차장. 배경은 사인이 비치된 산책로 지도이다.
병원에 특화된 사인 디자인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승진(이하 이) 창업 초기에는 다양한 업계를 대상으로 사인을 디자인했는데 제때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심지어 일부 프랜차이즈 클라이언트들은 자신들의 경쟁 업체와 일할 수 없게 지불 시기를 2~3개월씩 미루기도 했다. 회사 운영에 난항을 겪던 중 병원 전문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한 지인의 권유로 병원 프로젝트에 주력하기 시작했는데 비용 지급 시기를 엄수할뿐더러 의사들의 커뮤니티를 활용한 홍보와 영업이 용이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니치 마켓에 집중하게 된 셈이다. 고려대련요양병원 프로젝트도 우리의 디자인을 좋게 본 이전 클라이언트의 소개로 진행하게 됐다.

병원 산책로에 사인을 설치한 점이 독특하다.

김민정(이하 김) 우리가 역제안한 아이디어다. 디자인 논의 과정에서 병원 인근 숲속의 산책로에 표지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 특성상 인지 능력과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환자가 많아, 산책로 자체는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길을 잃거나 넘어져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음성 발생 장치를 부착한 사인을 이용해 안전한 산책을 돕고자 했다.

새집 모양을 직관적으로 형상화한 사인.
추상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사인과 달리,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그래픽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파랑새는 꽤 직관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현호(이하 성) 중증 노인 환자가 주 고객인 요양 병원 특성상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 있다. 산책하는 동안이라도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연과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핵심 콘셉트로 삼아 디자인했다. 고령 환자에겐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컬러는 가시성 높은 레드와 화이트, 블루만 제한적으로 사용했으며, 자석을 활용해 탈부착이 용이하도록 했다.

음성 모듈과 확성기를 탑재한 사인 보드.
음성 모듈과 움직임 감지 센서로 사인에 다가갔을 때 소리가 나도록 한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청각을 자극해 지각 능력이 저하된 환자들의 감각을 되살리고자 했다. 자연을 연상시키는 새소리와 더불어 경로 안내, 안전 정보 등을 담은 사운드를 제작했다. 사인 디자인의 전형에서 벗어나 사용자 입장에서 디자인을 고민하고 전개한 것이다.
새집 모양의 사인은 음성 모듈과 확성기, 센서를 제거하고 새집으로도 쓸 수 있다. 새집 모양이 아닌 사인에도 새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여럿 만들어두었다. 숲 한가운데 비치하는 만큼 실질적인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 디자인이다. 내년까지 설치 완료 예정인 이 디자인은 본격적인 상품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산책로에 실제로 설치한 사인. 사인에 쓰인 그래픽에는 자석을 활용해 탈부착이 용이하도록 했다.
28년간 축적한 노하우가 빛난 프로젝트인 것 같다. 드림디자인만의 강점을 꼽자면?

기획과 디자인을 비롯해 생산, 시공, 사후 서비스까지 전부 가능한 회사라는 점. 사인업계의 많은 회사가 인테리어 회사나 브랜딩 기업의 요청을 받아 작업할 뿐, 스스로 디자인을 제안하지 못한다. 하지만 드림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해 그에 최적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며 고급화 전략을 취한다. 최대한 ‘정직한’ 재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데 제품 외관은 물론 속까지 명품이어야 한다는 드림디자인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2023년 옥외 광고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옥외 광고 산업 매출액이 4조 원을 돌파했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사인 시장도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 저가형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고 본다. 요즘 들어 젊은 디자이너들이 후발 주자 업체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산책로 벽면 하단에 설치한 사인. 펼쳐서 의자로도 활용 가능하다.
사인 디자인은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올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할 때도 사인 디자인 분야가 독립되어 있지 않아서 적합한 부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사인 디자인은 인테리어와 건축, 브랜딩에 귀속되는 경우가 많고,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학과도 사실상 전무하다. 그래서 회사 인근의 부천대학교와 업무 협약을 맺고 학생들을 직접 교육하며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사인 디자인은 새롭게 문을 여는 모든 매장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타인의 인생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많은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만족감을 위해 디자인하지만, 사인만큼 직관적으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영역도 많지 않을 것이다. 사인 디자인의 잠재력을 발견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적극적으로 이 업계에 뛰어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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