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본 서울의 풍경은?

<서울 하이라이트>전

공공 한옥 서촌라운지에서 한국의 조명 브랜드 아고(AGO)와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ECAL) 학생들의 협업 프로젝트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 곳곳을 탐색하며 영감을 얻은 스위스 학생들이 소개하는 조명 디자인을 소개한다.

스위스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본 서울의 풍경은?

공공 한옥 서촌라운지에서 국내 조명 디자인 브랜드 아고(AGO)와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이하 에칼) 산업디자인과 학사 학생들의 협업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이름은 <서울 하이라이트>. 그 이름처럼 26명의 에칼 학생들이 13개 팀으로 종로, 강남, 마포, 다산로 등 서울 내 랜드마크를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영감을 조명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스위스 디자이너 애드리언 로베로(Adrien Rovero)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박물관, 호텔 로비, 커피바 등 공공장소에 사용될 조명 설치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아고의 제품을 활용해 새로운 조명 구조물을 제작했다.

서촌라운지에서 아고(AGO)와 에칼(ECAL)이 협업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아고라이팅(AGO)

서울의 풍경을 투영한 조명 디자인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서울은 조명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서울의 각 장소가 지닌 특성과 맥락을 반영해 제작한 다섯 가지 조명 구조물은 서촌라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다섯 가지 조명 구조물을 전시하는 <서울 하이라이트> ⓒ아고라이팅(AGO)

실내 공간에서 조경 식물을 돋보이게 하면서 공간을 밝히는 ‘PLANTA’는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식물관 PH에서 영감을 얻었다. PLANTA를 디자인한 Charlotte Jobin과 Joab Schneiter는 스웨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요나스 바웰(Jonas Wagell)이 디자인한 아고의 ‘Alley’ 조명을 활용했다. 주변을 은은하게 비추는 동시에 특정 식물 강조하는데 자연과 빛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조명과 화분이 일체형으로 합한 외형도 눈길을 끈다. 화분을 배치하듯 어느 곳에나 둘 수 있고, 별도의 설치 장치 없이 화분 무게만으로도 안정감 있게 조명 구조물을 지탱할 수 있다.

지상에서 케이블을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점이 곧 디자인 독창성과 연결된다. ⓒ아고라이팅(AGO)

서촌라운지 마당에 세워 둔 두 개의 조명 구조물은 어딘지 낯이 익은 모습이다. 길거리에서 익숙하게 봐 온 전봇대를 닮았다. Neitzke Nikita와 Matthieu Rigelo가 디자인한 조명 구조물 ‘POLE’은 서울 을지로의 전기 가로등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조명이 전선을 관리하는 디자인 시스템이다. 지상에서 케이블을 깔끔하게 관리하면서도 독창적인 요소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 덕분일까? 단조로운 한옥 마당 공간은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두 가지 구성인 조명은 한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주한 스위스 대사관 건축에 배치하는 것을 가정했는데 전통과 현대 건축의 조화에 어떻게 동화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바 테이블 형태로 디자인된 조명 구조물 ‘UPPER’는 활용도가 높다. 레스토랑, 바, 전시회, 모임 등 행사에서 실내외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전시와 연계해 진행된 토크 프로그램 당일에도 행사를 찾은 사람들이 UPPER 아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Oriana Gonzalez Fernandez와 Flavia Renaud는 아고의 조명 ‘Mozzi’을 활용해 ‘UPPER’를 디자인했다. 서울 내 랜드마크 중 1970년대 저장 탱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마포구의 문화 비축기지 유리 파빌리온 실내를 대상으로 제작했는데 밝고 화사한 색상을 적용해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UPPER 옆에 놓인 또 다른 조명 구조물은 ‘FRAME’이다. Aleandre Li와 Mael Sandoz가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윤현상재의 로비를 대상으로 디자인했다. 테이블, 의자, 책상, 암체어, 사이드 테이블, 3인용 소파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로비에 들어선 방문자에게 따뜻한 빛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빅게임(BIG-GAME)이 디자인한 아고의 ‘Probe’ 램프를 활용했다. 특히 천장에 조명을 달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해 조명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여러 공간과 상황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지막 조명 구조물은 ‘QUILT’다. 서울 다산로에 자리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 PAF) 플래그십 스토어의 공간에서 영감을 얻은 Laura Cotnoir와 Abla Bolassi Owoussi가 디자인했다. 빛을 발산하는 조명이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은 형태는 아방가르드 스트릿웨어와 퓨처리스틱 패션의 교차점을 전개하는 브랜드 ‘파프(PAF)’의 지향점을 공유하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무선으로 설계해 옷처럼 자유롭게 착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QUILT는 디자인과 혁신의 균형, 패션과 기술의 융합 등을 상징하며 미래적 감각을 반영한 하이브리드 조명인 셈이다.

<서울 하이라이트> 프로젝트 비하인드를 말하다

지난 11월 8일에는 이번 <서울 하이라이트>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조명 브랜드 아고의 공동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유화성 디자이너와 에칼 산업디자인 학사 프로그램 책임자인 스테판 알마이-보이사르(Stéphane Halmaï-Voisard)가 참여한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된 것.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브랜드와 학교 사이에 협업이 이루어진 배경과 진행 과정, 아고와의 협업 특징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하이라이트>전 연계로 진행된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화성 디자이너와 스테판 알마이-보이사르 책임자 ⓒ아고라이팅(AGO)

스테판 알마이-보이사르는 이번 협업이 에칼이라는 학교가 지닌 DNA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에칼은 지난 20년간 모든 학과 과정에서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실제로 그 또한 약 10여 년 전에 홍익대학교와의 첫 번째 협업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아고와의 프로젝트는 지난해 한국과 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 준비 과정에서 주한 스위스 대사관으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다고. 그는 에칼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고 자신의 디자인 작업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생각처럼 마냥 쉬웠던 건 아니다. “적합한 조건을 갖춘 협력 파트너를 찾기까지 약 1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스테판 알마이-보이사르는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아고의 유화성 디자이너를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아고의 차별점은 기존의 대형 브랜드와 달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경향이다. 덕분에 200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 안에서 단순히 결과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피드백을 공유하며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었다.

유화성 디자이너와 함께 에칼 학생들은 아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수용하면서도 학생들의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명 제품을 디자인했다. 수차례의 논의와 워크숍을 거쳐 초기 콘셉트 스케치를 완성한 이후 최종 디자인을 선택해 프로토타입으로 개발했다. 약 6, 7개월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아고는 프로토타입 제작을 지원했고, 개발 과정에서 브랜드가 쌓아온 제작 노하우와 피드백을 공유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한편 토크 프로그램 말미에 유화성 디자이너가 전한 말에 따르면 <서울 하이라이트>로 공개된 다섯 가지 조명 프로젝트 중 일부를 아고 브랜드에서 실제 제작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채택되었을지 아직 모르지만 서울의 풍경을 반영한 디자인 아이디어가 양산 단계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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