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건축가 12 ②

땅의 도시, 땅의 건축

땅의 지형·생태·문화적 관계를 살피고 ‘땅의 건축’에 담긴 상호 의존적 관계성의 깨달음을 고찰한다. 또 이런 건축이 모여 만들어진 ‘땅의 도시’ 사례를 수집해 ‘서울의 100년 후’를 상상해본다. 도시에 관한 건축가들의 해법이 서울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 도시에도 훌륭한 좌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서울이 친환경과 유기성을 기반으로 계획한 독특한 도시임을 알린다. 제4회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가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인 이유다.

땅의 건축가 12 ②

도르테 만드루프 A/S 도르테 만드루프바덴해 센터(리베, 2017)

©Adam Mørk
©Adam Mørk
©Adam Mørk

“땅을 이해하려면 지형, 형식, 물질뿐 아니라 문화적 관계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간섭이 없는 자연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바덴해 센터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었다. 매일 바뀌는 조류와 서식하는 새뿐 아니라 바이킹족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 했다. 건축에 집중하기보다는 땅에 있는 것을 연속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건축가들은 항상 의견을 나누고 숭고한 것을 창조하고자 노력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가끔 건축물에 감동하는 것이 도리어 사적으로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미숙한 마음에 대중이 건축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지만 바덴해 센터를 설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이해한 건축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건축은 학술적이고 전문적일 때보다 모두와 소통할 수 있을 때 더 좋다.”

헬렌 비네 – 만드는 것의 친밀함(2021)


“건축, 공간, 사진의 관계는 무엇일까? 건축과 건축 사진은 엄연히 다르다. 사진작가로서 건축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여전히 건축 사진에 관심이 가는 것은 실재하는 공간과 사진으로 소통한 공간 사이의 차이에 큰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건축의 가장 미묘한 측면을 기록하는 것이 내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지었는지, 어떻게 풍화되었는지, 어떻게 사람에 의해 물들어가는지 알아가고, 찍고 싶다.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나는 항상 땅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카펫의 역사 같은 것. 유목민의 삶에서 카펫은 다른 텐트로 이동할 때 가져가는 유일한 가구였다. 땅과 태양의 관계 또한 내 작업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람이 태어나고 움직이고 살고 죽는 터전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땅이라는 존재는 내 작업을 구체화하고 내 생각을 어떤 장소로 안내해준다. 종묘는 땅과의 관계가 독특했다. 건축물은 잊고, 우주를 연상하게 하는 곡선에만 집중하게 됐다. 계단 하나하나에 인간, 시간 그리고 신성한 존재 사이의 관계가 적혀 있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건축물에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종묘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병산서원과 소쇄원은 자연에 묻혀 있어서 건물을 구분할 수 없었다. 대나무 길을 걸으며 도시에 대한 모든 고민과 생각을 뒤로하고 자연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건축과 자연의 경계선을 느끼지 못했다. 굉장히 자유롭고 몰입되었다. 건축가 존 헤이덕의 말처럼 건축은 가장 복잡한 형태의 예술이다. 작품의 몸속에 들어가 그것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던 곳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느리고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멀리서 보아야 하는 멋스러운 것이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워로필라 징가 엠부프, 니콜라 롱데NKD 하우스(다카르, 2021)


“세네갈의 다카르는 생긴 지 200년 가까이 된 현대적 도시다. 과거에는 원주민 마을이 밀집했고, 이후 프랑스 식민 지배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하이브리드 도시로 변했다. 현재 다카르의 항공사진을 보면 온통 회색이다. 도시 건축에 주로 사용한 재료, 시멘트의 색이다. 세네갈은 시멘트를 둘러싼 경제 규모가 아주 크다. 다들 어떤 식으로든 시멘트 가격을 알고 있다. 해방과 자긍심을 위한 소재나 다름없다. 시멘트로 건물 짓기가 쉬워 보이기도 해서 다들 시멘트공이 되었다. 주거용 건물의 85%가량은 건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직접 짓는다.

세네갈에서는 신용 대출을 받기가 상당히 힘들어 자금도 직접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건물을 조금씩 지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단 땅을 한 필지 사는 것부터 시작한다. 돈이 조금씩 생길 때마다 시멘트를 몇 포대 사고, 물과 모래를 섞어 벽돌을 만든다. 토대를 짓고, 기둥을 올린다. 돈이 더 생길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둘 때도 있다. 건물에 조금씩 늘어난 면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모델이다. 최근 건축계에선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퇴행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큰 퇴보인지 모르는 것 같다. 진정 최신 재료로 건물을 지으면서 전통 건축 체계를 따라 만든 건물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간단한 기술을 활용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체계에 집중하도록 해방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지식, 몸과 바로 이어지는 재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축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토착 건축물과 그곳에 재료가 쓰이는 방식을 보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모방하지 않고 현재 삶의 방식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NKD 하우스 같은 건물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

네임리스 건축 나은중, 유소래콘크리트월(제천, 2023)

©노경
©노경


“콘크리트월의 핵심은 다르게 보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단어로 얘기하면 불이不二. 즉 두 개가 아닌 하나라는 주제 의식이었다. 콘크리트가 과연 돌과 다른가? 콘크리트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돌은 자연이 만든 거다. 그럼 과연 인간은 자연이 아닌가? 자연안에 나무도 있고 돌도 있고 다람쥐도 있고 사람도 있지 않나.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다시 ‘사람이 만든 물질이 과연 자연적이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콘크리트는 인간의 거주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20세기에 만든 것이다. 자연의 물질을 혼합해 인위적으로 물리적 형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공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관점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든 무엇은 결국 자연의 일부 안에 녹아든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하게 된다. 그래서 콘크리트월에서는 콘크리트뿐 아니라 돌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고,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했다. 우리는 항상 관계 속에서 핵심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콘크리트 단면에 돌이 노출되네?’, ‘돌이 왜 여기 있지?’ 같은 질문을 하며 진짜와 가짜, 콘크리트와 돌의 본질을 스쳐 지나가듯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이 의미 있지 않을까. 자연과 인공, 진짜와 가짜, 물질과 비물질. 상반된 두 언어에 내재된 어떤 힘의 작용에 대해 묻곤 한다. 콘크리트월 역시 그 질문의 연속이었다. 네임리스 건축은 늘 관계와 경계에 집중한다.”

리즈비 하산로힝야 문화 기념 센터(아담푸르, 2022)

©Rizvi Hassan
©Rizvi Hassan


“처음 난민 캠프에 갔을 때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보통은 당연히 여기는 것들, 비나 햇볕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할 그늘막이나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을 수백만 명의 난민은 몇 달이나 누리지 못했다. 몇 주 만에 보호소와 위생 시설을 지었다. 몇 년 걸릴 도시의 성장을 2~3개월 만에 이룬 듯했다. 이런 시설 제공에 제동을 거는 제도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난민 시설은 가건물로만 짓게 하는 법률 같은 것. 종종 정부가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할 때도 있었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날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신뢰하며 우정을 쌓자, 한곳에서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중요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로힝야 문화 기념 센터를 말하며 여전히 장소의 영속성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센터는 영구적인가, 일시적인가?’ ‘난민들이 여기에 머무르게 만드나, 떠나고 싶게 만드나?’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일주일, 사흘, 아니 단 하루라 해도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 또한 로힝야 난민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5년 이상 일한 지금은 다르다. 그들이 대나무를 얼마나 잘 엮을 수 있는지 안다. 자연의 소재로 얼마나 아름답게 작업할 수 있는지도 안다. 난민 캠프에 사는지, 영구 정착지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힝야 문화 기념 센터가 계속 존재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문화적 규범과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기 때문이다.”

오픈패브릭 프란체스코 가로팔로지중해 이주 지도(지중해, 2022)

©Open Fabric


“오픈패브릭이 하는 모든 일은 토양에 기반을 두고 있다. 건축학은 대체로 토양의 종류에 대한 질문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토양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다양하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연구한다. 이 지식을 심화하면서 토양을 주인공으로 프로젝트를 전개한다. 제인 허튼의 책 〈Reciprocal Landscapes〉는 랜드스케이프가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이뤄지는 장소라는 것을 일러준다. 예를 들어 내가 조경가로서 나무를 심는다면 이 나무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어느 양묘장에서 재배했는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이 질문을 해결하다 보면 내가 디자인한 길이 200km 떨어진 곳의 양묘장과 상호작용한 풍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픈패브릭의 ‘지중해 이주 지도’는 이런 질문을 유발하며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초대장이다. 완전한 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코 알 수 없고, 알면 안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땅과 건축,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우리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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