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건축가 12 ①

땅의 도시, 땅의 건축

땅의 지형·생태·문화적 관계를 살피고 ‘땅의 건축’에 담긴 상호 의존적 관계성의 깨달음을 고찰한다. 또 이런 건축이 모여 만들어진 ‘땅의 도시’ 사례를 수집해 ‘서울의 100년 후’를 상상해본다. 도시에 관한 건축가들의 해법이 서울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 도시에도 훌륭한 좌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서울이 친환경과 유기성을 기반으로 계획한 독특한 도시임을 알린다. 제4회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가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인 이유다.

땅의 건축가 12 ①

앙상블 스튜디오 안톤 가르시아아브릴, 데보라 메사칸 테라(메노르카, 2020)

©Ensamble Studio
©Ensamble Studio


“앙상블 스튜디오가 요즘 강조하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찾는 것, 그리고 지구를 향한 건축이다. 이는 20세기 건축의 기계 중심적인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정신이다. 문명, 특히 새로운 건축에 대한 도전은 지구와 교감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도시화에서 비롯된 피해가 크다. 건축이 아직 자연과 땅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과 고립되거나 단절되지 않은 건축을,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연을 연결해주는 건축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은 겨울에는 태양 가까이 가고, 여름에는 그늘에 숨거나 바람을 찾아야 한다. 온도, 습도, 빛,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현대건축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었지만 인간성을 빼앗아갔다. 어쩌면 편안함이라는 개념 안에 갇힌 것일지도 모른다. ‘칸 테라’는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건축의 시작이었다. 여기서는 날이 추울 때 난방을 하기보다는 스웨터를 입고 추위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인간을 통제하기보다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환경과 교류할 것을 제안하는 건축이다.”

스뇌헤타 체틸 투르센노르웨이 국립 오페라하우스(오슬로, 2007)

©Thomas Harryson


“땅의 건축이라는 용어가 놀랍고 정말 좋다. 이런 표현을 접한 적이 없었다. 이 표현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지표면뿐 아니라 그 아래까지도 포함하는 듯하다. 지형, 땅, 물, 강, 숲, 자연 등 모든 것을 다루는 만큼 아주 광범위하지만 꽤 상세한 표현이기도 하다. 맥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러 건축 작업에서 누락된 것 하나를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바다와 해저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걷는 땅을 다루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지구의 80%가 바다와 물로 차 있고 물 밑에 많은 땅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땅의 조건을 우리는 감정적으로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먼저 오슬로의 반도에 있는 부지를 상상해보자. 오슬로는 손가락 모양으로 이뤄진 부두에 세워진 도시다. 모두 이 손가락 끝자락에 건물을 짓기를 바란다. 바다로 뻗어나가는 부두의 끝 말이다. 우리는 부두와 90도 각도를 이루도록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배치했다. 3만 년 전 빙하가 녹아 오슬로 피오르가 생겼을 때 90도 각도로 돌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스뇌헤타는 이런 식으로 교차하는 유형을 상당히 많이 다뤘다. 평면, 대지, 부지, 건축 요소의 상호작용이 드러나지 않는 곳, 건축의 전형적인 수직과 수평에서 벗어나는 곳. 1814년 노르웨이는 건국과 함께 ‘접근의 권리’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해안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어떤 종류의 해안도 사유화할 수 없다. 자신이 소유한 땅에 다른 사람이 지나가도 막을 수 없다. 사람들이 물가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말이다. 국가 집단이 법으로 사유재산의 일부를 공공에 제공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서 와요, 당신은 손님입니다. 그러니 제 해변을 사용하세요.’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웨이브 월’은 옛 해안선을 따라 만들었다. 공연장은 오슬로 땅에 놓였고, 로비는 물이 있던 곳이다. 건물에 들어오면 마주하는 벽 ‘웨이브 월’은 수면 위에 떠 있는, 노출된 부분은 공공 공간이다. 이를 해석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공공의 일원으로 이 해안선을 좋아해요. 그러니 공공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봅시다.’ 나는 이 구조물이 노르웨이 정부와 오슬로시가 시민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본다. 시민들에 대한 공공의 관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걸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한다. 그걸 알려주는 게 건축가의 책임이고, 예술 기관에는 주어진 역할 이상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다. 가장 궁극적인 보존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이다.”

롱기 아키텍츠 루이스 롱기파차카막 주택(리마, 2008)

©CHOlon Photography, Elsa Ramirez, Juan Solano

“롱기 아키텍츠는 건축에 무대 디자인을 활용한다. 건축을 삶의 무대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예술적 표현이든 창작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그 변화가 무언가를 검증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술은 물질에 정신을 부여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고, 그것이 바로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내게 땅의 건축이란 자연의 가장 최근 상태, 즉 인간이 자연 속에서 만들어낸 자연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은 여러 세기에 걸쳐 다르게 존재했다. 신이 창조한 자연을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변화시킨 것이다. 결국 땅의 건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장소의 규모, 특성을 파악하고 사용자를 이해해야 한다.

또 건축가로서의 본성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해야 한다. 파차카막 주택이 자리한 현장을 보았을 때 나는 ‘땅을 거스를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언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리고 언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 집은 문 없이 안과 밖이 아주 잘 연결된다. 잉카 사람들은 문을 쓰지 않았고, 페루에서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문이라는 구조를 들여왔다고들 한다. 땅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이 있고, 산을 향하고 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보고 싶어서 그런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땐 전기도, 물도, 사람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가능하면 현장의 자재를 사용하고, 모든 설계와 시공을 현지 인력과 함께하고자 한다. 차가 없어도 걸어서 올 수 있고, 가급적 에너지를 줄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건물은 두 철학자가 은퇴 이후 거주할 집이다. 이들에겐 땅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말년을 잘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클라이언트의 무덤을 설계했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 수도 있다. 예컨대 멕시코 사람들처럼 죽음을 친구로 여긴다면 말이다. 파차카막 주택에서는 땅 밑, 빛, 강한 빛, 다시 땅 밑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집을 빛 안에 묻었다고들 하나 보다. 잉카어로 ‘파차’는 땅을, ‘카막’은 영혼을 뜻한다. 이곳에 자리한 집은 땅의 영혼이다.”

아르키움 김인철히말레스크(네팔, 2013)

©전명진

“건축이 다른 창작 분야와 차이가 나는 요인은 다름 아닌 땅이다. 건축은 땅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땅은 건축뿐 아니라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절대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환경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평야가 아닌 이상, 한국의 땅은 대부분 산맥과 구릉으로부터 이어지며 지형이 형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평선을 기준으로 블루와 그린을 이분화하기보다는 산, 들, 언덕, 계곡 그리고 하늘을 하나의 특정 공간으로 인식한다. 건축을 땅과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르키움은 땅의 이치와 역사를 읽는 것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 서양이 쌓고 올리는 조적식 건축을 한다면, 우리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건축을 ‘놓는다’고 할 수 있다. 앞산과 뒷산 같은 자연적 경계까지 확장해서 공간감을 만든다. 서구의 현대건축으로 접근하면 건축의 개념적 형태가 없는 셈이다.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지 특정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축의 목적은 사람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형태는 그 건축을 위한 공법과 재료에 따른 부수적 결과물일 뿐이다. 무엇보다 건축가의 가장 큰 덕목은 ‘땅을 어떻게 잇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갖는 것이다.

히말레스크는 MBC가 KOICA와 함께 진행한 네팔 라디오 방송국 재능 기부 프로젝트였다. 나는 새로운 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축가로서의 기대감 때문에 오지를 가기로 결정했다. 최종 결정권을 건축가에게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재밌게도 처음 사이트에 방문하자 지역 주민 대표가 나에게 어느 땅이 적합한지 직접 고르라고 했다. 지적도와 측량도, 정해진 구획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선입견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마을의 구성 원리에 따라 내가 처음 원한 분지와 언덕이 아닌 산기슭으로 결정되었지만, 당시 1년 6개월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동안 히말라야 전경을 보며 서양에서 셈하지 않는 ‘억겁의 시간’이 어떤 환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원오원아키텍츠 최욱가파도 프로젝트(제주도, 2018)


“서양 건축에서 말하는 경관, 즉 랜드스케이프는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풍경을 뜻한다. 땅, 터, 대지를 읽고자 노력해온 한국 건축에서는 ‘랜드스케이프’보다 ‘그라운드스케이프’라는 말이 적합하다. 여기서 그라운드는 바다와 호수부터 그 안에서 움직이는 미생물, 식생, 물고기까지, 지표면 위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가파도는 세계적으로 드문 ‘평지 섬’이다. 해수면에서 제일 높은 지점이 20m다. 평지 섬에 가면 섬이 보이지 않고 주변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고,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가 보이고,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경관이 수평적이다. 자연에게는 일종의 무대 같은 섬이다. 가파도는 면적이 30만 평을 넘지 않는다. 섬 전체를 걸어 다닐 수 있기에 그 자체로 커뮤니티가 된다. 육지에서도 가깝다. 생태적으로 잘 복원한다면 중요한 공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오원아키텍츠가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일 년 열두 달의 풍경이었다. 지표면 풍경, 바다 풍경, 마을 풍경 그리고 생업의 풍경. 그라운드스케이프를 본다는 것은 선형적으로 나열한 이 시간의 풍경을 보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땅이 보인다. 이곳에 우리가 만든 것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다. 콘크리트를 배에 싣고 섬의 섬으로 들어가서 완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물이었다. 마을의 생태를 건들지 않고, 낭비를 최소화하고, 노인들이 고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그 시간을 기록하고 보존한 것. 가파도 프로젝트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매스스터디스 조민석원불교 원남교당(서울, 2022)

©Mass Studies


“종교의 역할은 근대화 과정에서 많이 바뀌었다. 원불교가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이미 신에 대한 질문을 한 이후인 20세기 초반에 생겨난 종교라는 것이다. 부처도, 윤회도 믿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자기 마음을 공부하는, 개인 수양에 가깝다. 원불교를 ‘생활 종교’라고 말하는 이유다. 원불교 원남교당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모토는 ‘막다른 길이 없게, 죽은 공간이 없게(No Dead End, No Dead Space)’였다. 하지만 결국 지형의 고저 차 때문에 서쪽 부분이 미완인 채로 남게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무엇도 하지 않는, 죽어 있는 어떤 곳이 되어야 했는데 지금은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지고 있다. 조경가 정영선 선생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대법당의 모서리 땅에 무척 높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걸 보시더니 없애면 안 되는 나무라고 일러주었다. 공사 과정이 복잡해졌지만 나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단절의 연속이었던 이 도시는 이제 지난 세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움직여야 한다. 원불교 원남교당은 특히 더 그래야 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나무 심지. 흔하고 냄새 나는 나무인데’라며 이해를 못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를 존중했다. 이 도시 안에서 중요한 위치는 이제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매듭이 꼬여 있는 곳이 많다. 결국 건축이 그 장소에서 시작할 때 잠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선물 상자를 열듯 장소의 서사를 애써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게 건축가의 역할이다. 영웅적으로 결과물을 던져놓는 게 아니라 의료진처럼 계속 돌봐야 한다.”

■ 관련 기사
– 땅의 건축가 12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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