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의 카페, 페쿨리

CFC 전채리 대표 인터뷰

노란 벽과 목재 가구, 크고 동그란 전구가 내뿜는 따뜻한 온기가 커다란 통창 너머로 전해진다. 편안한 쉼을 제공하면서도 디테일이 주는 즐거움과 이국적인 매력을 담은 페쿨리에서, 전채리 대표가 꿈꿨던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의 카페, 페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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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쿨리 내부. 노란 벽과 목재 가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 Peculi Coffee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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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한센앤선의 CH24 위시본 체어가 놓인 바 테이블 © Peculi Coffee Roasters

​“오랫동안 브랜딩을 해왔지만, 내 브랜드를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건 또 다른 고민과 설렘이 있는 일이네요. 사람과 공간, 브랜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디자인 전문 회사 CFC가 성산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지 3년 만인 지난 11월, 사옥 1층에 카페 ‘페쿨리 커피 로스터스(Peculi Coffee Roasters, 이하 페쿨리)’의 오픈을 알리며 CFC 전채리 대표는 이렇게 적었다. 페쿨리는 전 세계에서 특별한 커피를 선별해 소개하는 카페로, 전채리 대표와 그녀의 친구인 강인철 로스터가 함께 만든 브랜드다. 전채리 대표는 디렉터이자 브랜딩 디자이너, 동시에 클라이언트로 프로젝트 전반을 이끌었고, 강인철 로스터는 운영을 맡아 완벽한 팀워크를 완성했다. 브랜딩 분야의 베테랑인 전채리 대표가 자신의 브랜드를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랜딩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시각,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이 공간에는 ‘맥락을 잃지 않겠다’는 CFC의 철학도 반영되어 있다. 사람과 공간, 브랜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아이디어는 페쿨리의 세심한 디테일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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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쿨리 커피 로터스 © Peculi Coffee Roasters

Interview

전채리 CFC 설립자·디렉터, 페쿨리 커피 로스터스 대표

페쿨리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 궁금했는데, 라틴 음악도 나오고 재즈도 나오네요.

처음에는 라틴 계열 음악만 틀까 생각했지만, 다소 지루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양한 음악을 선곡했어요. 강인철 로스터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해서, 댄스 음악이나 템포가 빠른 곡들은 제외하고, 남미 음악과 오스카 피터슨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의 곡들을 많이 틀고 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OST가 나오기도 하고요. 특히 비 오는 날 쳇 베이커의 음악을 틀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CFC 사옥 1층에 카페를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전에는 이곳 1층에 임차인이 있었는데, 임차 공간보다는 직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선택지는 식당이나 카페밖에 없었고, 가볍게 ‘1층에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저는 브랜딩을 할 수 있고, 마침 커피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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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호텔 라운지 같은 공간 © Peculi Coffee Roasters
CFC에 디자인이란 “주어진 대상을 분석해 고유한 맥락을 발견하고 이를 적절한 형태에 담아내는 것”인데요, 수신인과 발신인이 CFC였던 이번 프로젝트는 접근이 달랐을 것 같아요.

브랜딩을 맡은 저와 커피를 맡은 강인철 로스터, 두 사람의 DNA를 녹이려고 노력했어요. 강인철 로스터는 스페인에서 공부하기도 했고, 스페인어를 잘해서 남미 농장을 직접 방문해 생두를 수입하기도 해요. 스페인과 남미 지역을 떠올렸을 때, 인위적이지 않은 따뜻함과 포근함, 부드러움 같은 정서가 떠올랐어요. 공간은 ‘카페는 이래야 한다’는 정해진 틀을 따르기보다는, 남쪽 나라의 부티크 호텔 로비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습니다. 스틸이나 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 추세와는 다르게, 유행을 완전히 배제하고, 전 세계의 커피를 소개하면서 남미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페쿨리’라는 이름도 스페인어에서 따왔다고요.

맞아요. 페쿨리는 다른 곳과 달리 9가지 원두를 취급해요.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인도, 케냐 등 전 세계에서 특별한 원두를 선별해 판매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는데, 여기에 스페니시 감성을 어떻게 더할지 강인철 로스터와 이야기 나누었어요. 페쿨리아르(Peculiar)는 스페인어로 ‘독특한, 특별한, 흔하지 않은’을 뜻해요. 여기에서 ‘-아르(ar)’를 빼고 간결하게 ‘페쿨리(Peculi)’로 정했죠. 보통 네이밍에 8~12주, 디자인에 16주 정도가 걸리지만, 페쿨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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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큘리는 내추럴, 허니, 워시드 등 다양한 가공 방식의 원두를 제공하며, 각기 다른 커피 산지에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원두들을 소개하고 있다. © Peculi Coffee Roasters
무드보드를 만들고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하는 과정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된 키워드는 무엇이고, 무드보드는 어떠했나요?

시작점은 ‘태양’이었어요. 따뜻한 남미의 공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컬러와 형태가 태양이었죠. 태양이 노란색이기도 하고요. 남미의 유적이나 옛사람들이 해석했던 태양의 형태감을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했어요. 한 장짜리 무드 보드에는 공간의 전반적인 무드를 담았어요. 노란색, 태양 모티프, 아치 형태, 바닥의 디테일, 동그란 볼 전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뒷장에는 부분별로 제가 좋아하는 디테일을 정리했는데, 어떻게 보면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석운동’에서 그것을 정말 잘 해석해 주셨어요.

페쿨리 로고타입도 소개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수평에 맞추지 않은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다양한 인더스트리의 브랜드를 다루다 보니, 디자인할 때 항상 유연하게 접근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호텔 브랜드라고 해서 꼭 호텔 인더스트리의 느낌만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분야의 언어를 빌려올 수는 없을까 고민하죠. 물론, 해당 산업의 정체성이 너무 드러나지 않아도 안 되겠지만요. 이번 로고는 카페 브랜드 같으면서도 남미 맥주 브랜드 같기도 하고, 귀여운 맨투맨 티셔츠를 만드는 패션 브랜드 같기도 한 유쾌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선 구도의 상승하는 느낌에 ‘i’의 포인트로 모티프인 태양을 넣었죠. 로고의 P 머리 부분은 커피 원두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요. 필기체는 아니지만 스크립트 폰트처럼 부드럽게 이어지게 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조형적 요소를 반영한 거예요. (웃음) 하나의 카페 브랜드이지만, 나중에 큰 브랜드로 성장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새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가 그린 캐릭터예요. 중남미 지역에 서식하는 투칸(큰부리새)을 모델로 했습니다. 강인철 로스터는 이 새를 ‘커피새’라고 부르기도 해요. 남미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남미에 서식하는 새가 브랜드의 캐릭터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보통 로고를 만들면 시스템을 철저히 설계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느슨한 바운더리 안에서 많은 자유를 주고 작업했어요. 예를 들어, 드립백 패키지를 보면 새가 서 있는 형태뿐 아니라 날아가는 형태도 있습니다. 꼭 새가 서 있을 필요만은 없잖아요. (웃음) 새 캐릭터가 발산하는 귀여움과 엉뚱함이 있어요. 앞으로 굿즈 제작에도 활용할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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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바 테이블과 키친. 고소한 스콘과 부드러운 바스크 치즈케이크도 매일 아침 이곳에서 만든다. © Peculi Coffee Roasters
공간에 대해 자세하게 여쭤보고 싶어요.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스튜디오와 함께했는데, 페쿨리의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석운동’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보통 협업하는 곳들은 주로 기업과 일하는 큰 규모의 스튜디오가 많아요. 이번에는 조금 규모가 작고 제가 잘 몰랐던 곳과 협업해 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공간 디자이너를 만나기 전부터 구상했던 무드보드를 봤을 때, 목재를 잘 다루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죠. ‘맙소사(MARCSOSA)’의 김병국 소장님이 석운동을 추천해 주셨고, 첫 미팅에서부터 합이 잘 맞을 것 같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석운동에서 한 장짜리 무드보드를 잘 해석해 주셨다고 하셨죠.

무드보드를 보신 석운동 김지원 소장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무드보드에 담긴 내용을 조금 더 풀어보자면, 여행지에서 보이는 네모반듯하지 않은 돌을 넣은 바닥 느낌을 구현하고 싶고, 모든 마감이 직각으로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매끈하지 않으며, 아치 형태를 포함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특히 아치의 둥근 부분은 R값이 너무 크면 유행하는 느낌이 날 수 있었을 텐데, 벽이 자연스럽게 패인 듯한 디자인으로 완성해 주셨어요. 이런 디테일이 공간 곳곳에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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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패키지 디자인에서 파생된 그래픽이 조각된 우드타일. © Peculi Coffee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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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만든 입구의 손잡이. 이 또한 외부와 내부의 디테일이 다르다. © Peculi Coffee Roasters
정성이 많이 들어간 공간이네요. 이런 디테일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큰 공간을 보면 심심한 듯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지만, 디테일 하나하나를 봤을 때 재미와 공예적 감성이 느껴졌으면 했어요. 천장에는 우드워킹을 하는 최주현 작가님이 손으로 직접 새긴 우드타일을 붙였고, 벽의 동그란 조명 덮개도 작가님이 칼집을 내서 수작업으로 제작된 거예요. 가까이서 보면 매끈하지 않고 조각된 듯한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입구의 손잡이는 석운동이 디자인하고 랩크리트가 콘크리트로 제작한 건데요, 커피 찌꺼기 같은 느낌이 나도록, 그리고 바닥재와 어우러지는 컬러가 나올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징해 주셨는데, 방문하는 분마다 독특하다고 많이들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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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리 대표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구매한 가면과 엄유정, 노석미 작가의 그림이 한 벽에 걸려 있다. 모두 전채리 대표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 © Peculi Coffee Roasters
대표님 소장품들도 이 공간에 독특한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요.

여기 있는 그림이나 소품 대부분은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이국적이고 조금은 특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들이나 여행 중에 사 온 독특한 소품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저 위에 있는 가면은 이탈리아 풀리아주의 그로탈리에(Grottaglie)라는 도자기 마을에서 샀어요. 그곳에 로마 시대 유적의 형태를 복원해 제작하는 도예가들이 있는데, 저런 가면이 수백 개나 걸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여행할 때 지역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소품을 자주 사 오는 편인데, 그런 것들이 모이니 이국적인 냄새가 나더군요. (웃음)

내부에 단차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차는 김지원 소장님이 제안해 주셨던 건데, 보통 바 테이블에서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의자를 높여야 하잖아요. 저는 높은 바 체어가 불편해요.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과 언제든지 의자를 앞뒤로 자유롭게 빼고 당기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점은 꼭 지켜달라고 요청했거든요. 홀의 바닥을 높인 대신 안쪽 키친의 바닥은 그대로 유지해 눈높이가 맞도록 했어요. 반면, 홀의 테이블 하나는 커핑(Cupping)을 고려해 높였고요. 비즈니스 커핑뿐만 아니라 퍼블릭 커핑도 계획 중인데, 커핑을 앉아서 하기는 어렵다고 해요. 서서 향을 맡으며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하나 정도는 높은 테이블이 필요하다는 강인철 로스터의 의견에 따라 진행한 부분이에요.

테이블을 비롯한 목재 가구들도 모두 맞춤 제작된 건가요?

석운동에서 인테리어와 함께 가구 디자인도 맡아주셨어요. 테이블과 의자의 측면을 만져보면 매끈하지 않고 굴곡이 살아 있어요. 너무 정제되지 않은 덕분에 약간 둔탁해 보일 수 있지만, 그래서 매력적이고 남미라는 지역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바 체어와 라운지 체어는 칼한센앤선(Carl Hansen & Son) 제품이에요. 처음에는 모든 가구를 제작할까 했지만, 공간 전체가 이런 분위기로 채워지면 너무 힘을 준 듯한 느낌이 날 것 같았어요. 제가 클라이언트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하잖아요. ‘내가 계속 오고 싶은 공간일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니 오히려 조금 쉽게 풀렸던 것 같은데요, 컨셉추얼한 것을 좋아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아침이나 주말에 편안하게 와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거든요.

이곳이 상업적인 지역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통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편안하고 한적한 느낌이에요.

안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잘 볼 수 있고, 밖에서는 내부의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실 수 있어요. 유리는 색상과 투명도에 따라 밖에서 안이 얼마나 보이는지가 달라지는데, 저희는 투명도가 가장 높은 유리를 선택했어요. 내부의 따뜻하고 즐거운 기운이 밖을 지나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길 바랐거든요. 실제로 공사 중에도 지나가는 분들이 “기대된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많이 말씀해 주셨었죠. 차도 건너편 노란 은행나무 뒤에는 벚나무가 심겨 있는데, 봄이 되면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도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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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을 때는 바깥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셔도 좋다. 페쿨리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 있기 때문에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쉬시는 할머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벤치에 달린 고리는 반려견을 위한 것이다. © Peculi Coffee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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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 몰딩을 반영해 디자인된 외부 메뉴판 © Peculi Coffee Roasters
밖에서 바라본 모습도 독특하고 매력적이에요. 파사드와 간판 같지 않은 간판, 그리고 측면 디테일이 눈에 띄었는데요. 외부 디자인에서 신경 쓰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측면 덕분에 건물의 룩이 정말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매끈한 통창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유리가 하나하나 사선으로 들어가 있어요. 처음엔 통창으로 뚫을지, 벽으로 막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바깥에 항상 주차된 차량이 있어 통창의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하지만 벽으로 완전히 가리면 답답할 것 같았죠. 최대한 바깥과 안쪽 사람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안에서는 바깥을, 밖에서는 안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해 주셨어요. 저도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웃음) 그리고 건물 위층 창의 그리드와 1층 그리드가 조금 다른데, 김지원 소장님께서 중간에 차양 같은 요소를 추가해 한 번 끊어 주셨어요. 멀리서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간판은 많은 분들이 시트지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스텐실로 작업한 거예요. 스텐실을 워낙 잘해 주셔서 시트지처럼 보이더군요. 별도의 조명 없이 자연스럽게 두었습니다.

내 브랜드를 만드는 데서 온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면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추진력만 있다면 한 달 안에도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더군요.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도 프로세스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 더 느슨하게 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 즐겁게 참여하고요. 한눈 팔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쿨리에서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곳에 빛이 가장 잘 드는 시간이 오후 4시에서 5시 정도예요. 빛이 살짝 걸쳐 있는 그때 기분이 좋아요.

좋아하는 커피 메뉴는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좋아하는 커피가 너무 많거든요.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저는 ‘마라타라(Maranata)’를 가장 좋아해요. 콜롬비아 우일라 지역이 산지로, 제일 맛있다고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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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쿨리에서 맛볼 수 있는 9가지 원두들. 메뉴 카드는 원두에 따라 각기 다른 폰트와 컬러로 디자인되었다. 블렌딩 원두는 브라운, 싱글 오리진 원두는 올리브그린, 디카페인 원두는 그레이 컬러를 사용해 구분했다. © Peculi Coffee Roasters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도 있나요?

강인철 로스터 콜롬비아와 페루 원두는 여기에서만 맛보실 수 있어요. 저는 게이샤 품종의 ‘라 세달리아(La Sedalia)를 많이 추천하는 편이에요. 모든 필터 커피의 가격은 동일하게 책정되어 있지만, 사실 생두 가격은 천차만별이거든요. (보통 원두 품종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는데 동일하게 하셨네요. 그럼 손해 아닌가요?) 다양한 맛있는 커피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7~8천 원에 하루 2잔을 판매하는 것보다, 5천 원에 하루 10잔을 판매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보통 가격을 확인하지 않고 필터 커피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시는데, 가격이 같다고 말씀드리면 다시 고민하시면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채리 대표 여기에서는 필터 커피를 정말 좋은 퀄리티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어서, 도장 깨기를 하듯 찾아오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다음에 이걸 마셔봐야지’ 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저도 하나씩 맛보며 결국 정착하게 된 원두가 생겼고요. 그 과정에서 나라별 원두, 가공 방식, 배전 방식 등 커피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평일과 주말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평일에는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에 닫고,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운영시간을 밤 9시까지 연장해 와인을 소개합니다. 와인 프로그램은 강인철 로스터가 아닌, 소믈리에 친구가 진행해요. 와인은 병째 판매하기보다는, 다양한 종류를 구비해 테이스팅을 중심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손님들이 와인의 향과 맛을 느끼며 즐길 수 있도록, 페쿨리의 ‘특별함’과 ‘독특함’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커피뿐 아니라 와인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디제잉과 함께 했던 오프닝 파티처럼, 계획하고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일단 커핑과 같은 커피 이벤트를 염두에 두고 있고요. 이 지역은 디자이너나 음악가들이 많은 곳이라, 평일 5시 이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공간의 단차는 공연을 하기에도 적합해서 클래식 기타 연주 같은 작은 음악회를 열 수도 있고요. 스페인어나 스페인 문화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어요. 또, 아트북을 모으는 친구들이 많아서 서로 가장 아름다운 아트북을 자랑하며 공유하는 행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웃음) 이 근처에는 출판사도 많아서 북토크 같은 행사에도 잘 어울리는 환경이고요. 많은 것들이 열려 있고,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해요.

앞으로 페쿨리가 어떤 브랜드, 그리고 이곳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따뜻한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감성과 편안함을 계속 유지하며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공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동네 할머니들, 학부모들, 주민들이 언제든지 위화감 없이 머물다 가실 수 있도록요. 그러면서도 이 동네에 거주하는 음악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손님들이 찾아오시는데, 그 모든 사람에게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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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쿨리 커피 로스터스 © Peculi Coffee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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