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에 이끌려 차에 머무르다, 일지(ilji) 안국점

향과 차, 공예를 품은 공간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향과 차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해 온 ‘일지’가 지난 1월 10일 안국동 지점을 리뉴얼 오픈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향과 차 문화를 보다 친숙하게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

향에 이끌려 차에 머무르다, 일지(ilji) 안국점

향과 차는 우리의 감각과 마음을 일깨우는 특별한 도구다. 향은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며, 차는 그 순간을 음미하게 한다. 옛 선조들 또한 향기로운 연기를 통해 정신을 맑게 하고, 깊은 차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일상의 고요한 풍류를 누려왔다. 이처럼 향과 차 문화는 오래전부터 삶의 여백을 채우는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중요한 체험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향과 차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해 온 ‘일지(ilji)’가 지난 1월 10일 안국동 지점을 리뉴얼 오픈했다. 2009년 설립된 일지는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향도(香道)를 소개하며 이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지 안국점은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해 고즈넉한 윤보선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마주하는 작고 단정한 회색 건물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깊이 있는 향과 차 문화를 보다 친숙하게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층층이 배치했다.

지하의 향, 지상의 차

20250120 011121
20250120 011100
일지 안국점 지하 1층 향을 위한 공간 © ilji

일지 안국점은 차와 향을 주제로 완성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곁에 공예가 자리한다. 먼저 지하층에서는 향 관련 소장품을 소개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향 박물관 못지않은 컬렉션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도가 낮은 공간은 차분한 마음으로 공간을 둘러보고 향에 집중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침향, 단향, 용연향 등 고대부터 신성하게 여겼던 귀한 향 재료와 향료 및 기물과 함께 문인들의 수양 방식이었던 향도를 경험할 수 있다. 일지에서는 일상에서도 향의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전통을 기반으로 한 향 레시피로 선향, 나선향, 향유 등 다양한 향 제품도 선보이고 있는데, 음식만큼 안전한 재료가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모든 향 제품은 인공 향로나 색소, 접착제를 배제하고 천연 재료만으로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50120 010753
일지가 선보이는 차 © ilji

​1층은 일지의 차 공간인 ‘티하우스 일지’로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녹차와 황차를 비롯해 보이차 등 중국의 6대 다류(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를 풍성하게 만나볼 수 있다. 동아시아 차뿐만 아니라 인도와 스리랑카의 차도 준비되어 있어 다양한 차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차를 즐기는 방법 또한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어 깊이 있는 체험을 통해 차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창문을 통해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2층은 워크인은 물론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티룸이다. 고요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중국에서 온 은행나뭇잎

리뉴얼 오픈과 함께 중국 금속공예가 듀오 아잔(阿展)과 주사(周四)의 전시 〈지지(迟迟)_Slowly〉도 진행되고 있다. 아잔과 주사는 베이징 교외 작은 마을에 거주하며 바람, 비, 구름과 빛, 초목의 생장과 쇠락 등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금속의 언어로 세심하게 표현하는 부부 작가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따뜻한 감성과 수공예의 매력이 담긴 향로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아전은 향을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주사의 어머니를 위해 처음 향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노란 은행잎의 색감과 결을 그대로 살린 브로치도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명인 ‘지지迟迟’는 마음이 유연하고 느긋하다는 뜻을 지닌다. 이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조금은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쌓아온 일지의 시간이 교차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금속을 찬찬히 두들겨 만든 다기와 향합, 일용품과 커틀러리, 그리고 모빌을 1층과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월 26일까지 열리며, 이후에도 일지만의 안목과 취향을 담은 공예 전시를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라고.

20250120 010809
일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향도 © ilji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향과 차에 대한 일지의 진정성과 섬세함이 공간 곳곳에서 엿보인다. 향이 전하는 고요한 순간, 차 한 잔이 선사하는 따스한 여유, 그리고 공예품이 담아낸 정성 어린 손길이 감각과 마음의 휴식이 된다. “차 한 잔이 주는 작은 변화(The Come Back to Yourself)”라는 티하우스 일지의 슬로건처럼, 차분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향과 차와 함께 나만의 작은 변화를 발견해 보자.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