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목욕탕에서 발견한 새로운 감각, 마하한남
김동현 건축가가 마하한남을 통해 전하는 감각
낡은 목욕탕에서 재탄생한 카페 ‘마하한남’. 건축가 김동현은 이 공간을 통해 ‘머문다’는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의 감각과 취향에 섬세히 반응한 건축의 디테일을 지금 소개한다.

마하건축사사무소의 김동현 소장은 “머물 사람의 경이”를 담기 위한 건축을 지향한다. 그의 건축은 형태나 구조로만 정의하기 어렵다. 서울의 복작거림에서 비켜난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카페 마하한남은 그가 건축을 통해 전하는 가치가 잘 드러나는 곳이다. 쓰임을 다한 동네 목욕탕 건물을 활용한 이곳은 긴 세월이 묻은 묵직한 외관과 동서양의 모던한 미감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가 극적으로 교차하며 머무는 이에게 감각적인 충돌과 경이를 선사한다.

김동현 건축가는 이 공간을 통해 건축이 머무는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 머문다는 행위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사람의 취향, 생활 방식에 섬세하게 반응한 설계의 결과물인 마하한남. 건축 재료, 구조, 그리고 서비스에 담긴 감각을 김동현 소장을 통해 들어본다.
Interview with 김동현
마하건축사사무소, 마하한남 소장

머물 사람의 경이를 담는 마하의 건축
김동현 소장님의 마하한남과 마하건축사사무소는 ‘마하’라는 이름을 공유합니다. 그만큼 마하한남에는 소장님께서 지향하는 건축적인 가치가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곳곳에 사람이 머무는 방식을 반영하는 완성도 있는 공간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카페 마하한남은 그 첫 번째 사례인데요. 카페가 2시간 정도 머무는 공간이라면 그다음으로는 온종일 머물 수 있는 스테이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갤러리, 산책로 등 다양한 공간을 마하만의 스타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해요. 공간에 머무는 방식에 따라 경험의 깊이를 담는 것이 마하의 지향점입니다.

마하건축사사무소 소개 글에는 “머물 사람의 경이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란 문구가 있습니다. 공간을 통해 구현되는 ‘경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건축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질이라 생각합니다. 평생 모은 자산, 힘들게 모은 자본으로 집을 짓는 등 공간을 마련하잖아요. 명품이나 자동차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드는 결과물인 만큼 머무는 이의 취향과 분위기, 생활 습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상대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건축가가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경이’로 표현했습니다.

낡은 목욕탕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
사람이 붐비지 않는 거리, 한때 목욕탕이었던 건물. 마하한남은 서울의 숨은 스팟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는 산책을 즐기는데, 특히 재개발 구역을 걷는 걸 좋아해요. 80~90년대 건축양식과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풍경은 제게 안정감을 줍니다. 한 번은 우연히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한남 5구역을 지나다가 불이 나 폐허가 된 목욕탕을 발견했고, 문이 열려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죠. 그곳에서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실을 발견했어요. 그 순간 여기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후 6개월간 건물주를 설득한 끝에 임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곳 ‘귀빈탕’은 겉보기엔 낡고 초라한 외관을 지녔지만, 내부는 의외로 단단하고 매력적인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하한남은 그런 이중적인 매력을 그대로 살려, 외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련된 내부를 통해 극적인 공간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건물 안팎에 남아 있는 목욕탕의 흔적이 방문객을 먼저 반깁니다.
이곳이 원래 어떤 장소였는지를 글이나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 부모님과 동네 목욕탕에 가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시절 목욕탕은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어요. 이웃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문을 나누거나, 사업 이야기로 분주한 비즈니스맨들의 거래처가 되기도 했고요. 어린아이들에겐 목욕을 마치고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노는 아지트였죠. 마하한남도 그런 따뜻한 소통의 장소가 되길 바랐어요.


재료, 구조, 운영의 디테일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오르면, 거칠게 남은 목욕탕의 흔적과 상반되는 모던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우드톤의 인테리어, 어두운 바닥 타일, 석재 벽, 창 너머 풍경이 인상적이에요.
시간이 지나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간을 설계합니다. 마하한남도 마찬가지예요. 유행을 타는 소재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더하는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해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벽과 천장은 따뜻한 톤의 우드로 마감하고, 어두운 돌로 바닥을 눌러 안정감을 줬어요. 벽난로와 아일랜드 바는 서로 다른 석재를 쌓는 방식으로 공간에 포인트를 줬고요. 창 프레임은 한강을 가리지 않도록 최대한 얇게 설계했습니다.

‘건축가의 서재’라는 콘셉트는 마하한남을 더욱 매력 있게 만듭니다. 정말 서재에서 볼 법한 디자인 가구들이 구획에 알맞게 놓인 점이 색달랐어요. 상업 공간에 데이베드를 배치한 것 역시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가구의 종류, 배치, 풍경까지 좌석마다 특징이 서로 달라 자리를 고르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구분합니다. 그 기준 중 하나가 공간의 구조인데요. 보통 상업 공간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홀 구조이지만, 마하한남은 크고 작은 방들이 구획되어 있어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구의 배치를 통해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카페는 동일한 테이블과 의자를 반복 배치하지만, 마하한남은 자리마다 창, 조명, 아트 피스, 가구가 모두 다릅니다. 이에 따라 방문할 때마다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공간이 되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좌석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가장 구석에 있는 브라운 소파 자리를 선호해요. 아침 햇살에 따뜻하게 데워진 가죽 소파에 앉아 혼자 차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하죠.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경험하는 마하한남
모카포트를 이용해 고객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방식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마하한남은 온전히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커피 머신 특유의 기계음조차 배제하고 싶었어요. 모카포트가 끓으며 퍼지는 증기 소리는 클래식하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있고, 원두 본연의 향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거든요. 저희는 갓 끓인 모카포트를 작은 잔과 함께 직접 테이블에 서빙하는데, 손님이 직접 커피를 따르고 마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건축가로서 직접 설계한 공간을 운영해 보니 어떤 점이 다른가요?
건축가는 타인의 공간을 지은 이후, 열쇠를 넘기고 나옵니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실제 생활을 경험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마하한남은 설계와 공사는 물론, 운영까지 모두 제가 하며 손님들의 다양한 반응을 매일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4층에 올라오는 손님들의 감탄은 제게 큰 응원이 됩니다.


마하한남을 찾는 외국인 손님도 많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시나요?
마하한남을 설계할 때,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 언어를 함께 고민했고, 옛것과 새것의 공존을 생각했습니다.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건축에 담긴 고민과 조화가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