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은 전진한다, 신신 신해옥·신동혁
그래픽은 전진한다
신신이 올해로 스튜디오 12년차를 맞았다. 스몰 스튜디오의 계보를 잇는 그래픽 디자인 듀오다.

신신은 종이 위에서 말문을 텄다. 책과 지면을 중심으로 이어진 시각 실험으로 자신들만의 언어를 구축했다. 이러한 축적은 어느 순간 공공의 얼굴을 다듬는 일로 이어졌다. 세종문화회관, 국립극단 같은 문화 기관의 시각 체계를 갱신하는 역할은 결과이자 일상의 확장이다. 이들에게 그래픽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삶을 정리하는 태도이며, 매체와 시대가 변해도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신신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최근 발표한 국립극단 CI를 흥미롭게 봤어요.
신동혁 어느 날 국립극단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세종문화회관 리뉴얼 프로젝트를 인상적으로 봤는지, 국립극단 CI 리뉴얼을 제안했죠. 기존 CI는 워드마크가 심벌 대비 작아서 타 기관 로고와 함께 배치했을 때 명시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극단을 대표하는 기관이니 프로젝트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한번 바꾸면 꽤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요. 작년 하반기에는 거의 이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신해옥 프로젝트는 원활하게 진행됐습니다. 어떤 클라이언트보다 우리 이야기를 경청했고, 제안도 긍정적으로 수렴해주었죠. 시안도 많이 개발하지 않았어요.
신동혁 완전히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개발하는 일이 아니라 더 수월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국립극단이 애초에 방사형으로 퍼지는 심벌을 유지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주된 고민은 이것과 글자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었어요.
신해옥 심벌은 완성도가 있었는데 워드마크는 기성 오픈소스 폰트를 그냥 대입해서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예전에 국내 CI 중엔 그런 경우가 많았죠. 우리는 확실한 인상을 만들어줄 글자를 만들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신동혁 원형극장 심벌이라는 틀 자체가 디자인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추출한 그리드 구조에 맞추다 보니 사실 글자가 꽤 투박해요. 그런데 원형성을 드러내기엔 따로 시각 보정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법 개성 있는 워드마크가 탄생했죠.

몇 해 전부터 클라이언트의 스케일이 커진 것 같아요. 얼마 전 공개한 GS아트센터 기획 시즌 그래픽이나 세종문화회관 아이덴티티를 보면 말이죠.
신동혁 우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스튜디오 초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나 신진 작가 등 주로 문화·예술계의 니치 마켓 안에서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작업을 알리며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쌓는 동안 세상도 ‘이런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에 일을 맡겨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학습한 것이죠.
신해옥 맞아요. 그 모든 요소가 결합되며 종종 큰 규모의 프로젝트도 맡게 됐어요. 국립극단의 예처럼 우리가 지원한 게 아니라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했죠.
신동혁 기관들이 고정 수요층뿐 아니라 젊은 층까지 수렴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원인 같아요. 여기에 무엇보다 1세대 스몰 스튜디오가 쌓아 올린 토대, 즉 작은 규모로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진 덕을 보기도 했고요.

클라이언트의 의사 결정 단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면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신해옥 클라이언트 조직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진과 대화가 잘 통하느냐 여부 같아요. 네이버의 두 번째 사옥 ‘1784’의 여정을 기록한 책 〈1784 The Testbed〉가 대표적입니다. 정해놓은 전략이나 시안을 디자인 스튜디오에 들이밀고 시작하는 방식이 아니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방향성을 좁혀갔죠. 이런 식으로 빅 프로젝트를 만들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무척 다사다난한 프로젝트였다고 들었어요.
신동혁 처음부터 욕심이 난 프로젝트였어요. 우리가 개발한 로고와 시스템이 서울의 랜드마크에 적용된 모습을 오가며 마주할 때마다 무척 기쁠 것 같았죠. 악보를 매개로 그린 글자라는 아이디어가 그동안 구현되지 않았던 아이디어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아이덴티티 자체가 소리를 담지하고 있죠. 소리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야 물론 있겠지만 시각적 시스템으로 귀결된 케이스는 없잖아요. 소리를 포섭할 수 있다는 게 공연 기관에 정말 잘 부합하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해옥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 측에서 계속 영문 네이밍과 로고를 원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보기엔 한글 로고가 더 옳은 선택이었거든요. 이런 의사 결정이 디자이너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건 마케팅 영역에서 맡을 사안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는 한글 로고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신동혁 한국,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기관인데 이제 서구 콤플렉스에서 좀 벗어날 때도 됐잖아요.

어떻게 클라이언트를 설득했나요?
신해옥 솔직히 클라이언트도 영문 네이밍을 고집해야 할 명분을 찾지 못해 결국 우리 제안을 수용한 것 같아요. 디자인이 나오는 과정에서 정말 수많은 자문 회의를 거쳤는데 자문위원의 의견을 받는 과정에서 우리의 논리가 점점 탄탄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동혁 사실 설득을 위한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시안은 처음 제안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것을 지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지난했죠. 그냥 버티고, 우리 아이디어가 왜 정답에 가까운지 설득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개선과 타협의 과정은 있었지만. 보통 회의에서 논리적으로 약한 부분을 건드리거나 오독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지적하기 마련인데, 우리가 봤을 때 이 디자인의 짜임은 처음부터 거의 완벽했어요.
신해옥 문화를 다루는 플랫폼이라는 점, 랜드마크의 성격까지 두루 반영한 로고였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필하려고 노력했죠.


신동혁 대극장의 파사드를 보면 6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어요. 그런데 세종문화회관도 6음절로 이뤄져 있죠. 당시 자문위원이었던 워크룸의 김형진 실장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완벽해서 이상하다’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웃음)
신해옥 디자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내부 조력자의 지지도 큰 힘이 됐습니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의 원승락 디자이너가 이 디자인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이게 맞다는 확신을 주었죠.
신동혁 사실 중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거든요. 우리 같은 소규모 스튜디오엔 시간이 생명이고 경쟁력이니까 프로젝트가 늘어질수록 수많은 기회비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는데 매 순간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어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지 않느냐?’라고 말이죠. 한국의 문화·예술 기관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등바등 버텼던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디자인이지만 아쉬움도 남아요. 원래 더 흥미로운 제안을 많이 했잖아요?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클라이언트가 그걸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신동혁 맞아요. 디자이너야 결국 납품하면 끝이니까. 디자인은 연장 같은 것이라서 계속 갈고 닦아 쓸모 있게 활용해야 하는데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면 아쉽습니다.
신해옥 작년에 진행한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의 로고 리뉴얼 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예입니다. 국립극단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로고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로고에 새로운 쓰임을 더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고, 실제로 그러한 프로세스를 고안하는 데 중점을 뒀죠. 결과물이 나온 이후 갤러리 측에서 이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유지할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두산갤러리가 입증하는 것 같아요.


국립극단, 두산갤러리 모두 드라마틱한 변화보단 시의적절한 업데이트에 방점을 찍고 있네요.
신해옥 우리가 최근에 갖게 된 디자인에 관한 생각과도 맞물려 있어요. 무언가 빠르게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려지는 과정에 피로감을 느끼게 됐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들어온 프로젝트라 더욱 뜻깊었습니다.
신동혁 예전에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걸 다 쏟아부어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쪽에 가까웠다면 이젠 예전 것을 부분적으로 손봐서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게 만들고, 지금 일하는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작업의 일부가 됐습니다. 예전 것을 잘 다듬어 사용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의미 있어요. 전쟁 이후 줄곧 없던 것을 만드는 데에만 급급했잖아요. 과거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기관들도 이런 역사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우리가 일본과 왕래하면서 자주 의식하는 감정이죠. 때로 그 역사성에 대한 지나친 의식이 답답하기도 하지만.(웃음) 어쨌든 한국 사회가 이런 점에서 점차 성숙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대와 관계


신신을 이야기하면 TW*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동혁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캠퍼스가 한남동에 있었어요. 그때까진 우리도 다른 디자인과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죠. 학점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그런데 갑자기 학교가 죽전으로 이전한다는 거예요. 청천벽력 같았죠.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 이유가 필요했어요. 그때 눈에 띈 게 학교에서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해옥과 갓 연애를 시작한 때였는데 이곳을 활용해보고 싶어서 어설픈 제안서를 작성해 교수님에게 들고 갔어요. 엄청 생색을 내긴 하셨지만 결국 공간을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웃음) 그 과정이 일종의 각성 효과를 주었던 것 같아요. 쓰임을 재발견한 것이잖아요. 이후로 학교에서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순순히 따르기보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조직하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나 선생님을 초빙하는 등의 활동을 했어요. 한 가지 주제로 밤샘 토론을 하기도 했죠.
*Typography Workshop의 약자로, 신동혁과 신해옥을 주축으로 결성한 단국대학교 동아리였다. 당시 기존 대학 동아리와 차별화된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존속 기간은 짧았지만 많은 것을 배운 것 같군요.
신동혁 실속은 차린 것 같아요. 당시 TW를 디자인 스튜디오처럼 운영해 적잖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진행해 번 돈으로 학비 정도는 충당할 정도였죠. 또 최소한 사무실 월세는 절약했으니 학비가 아깝지 않았습니다.(웃음) 또 한 가지 배운 것은 동료의 중요성입니다. 학교 이전 문제로 당시 재학생 사이에선 묘한 패배감이 흘렀어요. 그런데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기회와 가능성을 찾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지금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신덕호 디자이너와 양장점, 프론트도어가 대표적이죠. 학교에서 교수진이나 인프라보다 중요한 건 곁에 누가 있느냐 같아요.

그들뿐이 아닙니다. 사실 두 사람은 여러 파트너와 장기적인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미디어버스나 헬리콥터 레코즈(박다함), 길종상가도 마찬가지죠. 단순한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신동혁 우리에겐 아주 큰 자산이죠. 신신은 여전히 작은 규모로 움직이지만 협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몸집을 불릴 수 있으니까. 이와 동시에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기도 해요. 다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런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고. 그들의 기대치를 충족해야 한다는 사실이 늘 엄청난 동기부여가 됩니다.

관계라고 하니 두 사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사실 연인과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 늘 낭만적이진 않잖아요? 독립된 작업자로서 의견 차이도 있을것 같은데.
신동혁 물론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처음에는 요령이 없다 보니 상대방을 자기 방식에 맞추려 했고 그래서 자주 다퉜어요. 성숙하지 못한 단계에서 협업하다 보니 욕심이 앞서 부작용과 갈등을 일으킨 거죠. 그럼에도 관계가 이어진 것은 해옥에게 제가, 저에게 해옥이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알아보는 유일한 상대였기 때문이에요. 대학생 시절 디자인과 선후배, 동기를 다 합치면 160명은 족히 되었을 텐데 그중에서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친구밖에 없었어요. 아마 모수를 대한민국 전체로 넓혀도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같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아마 기본적으로 다 외로울 거예요.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는 대중적인 디자인이 아니니까. 스스로 만족하는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사소한 갈등 같은 것은 툭 넘길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원래 앙숙 관계여도 대재앙을 만나면 힘을 합치잖아요.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도 하이파이브를 하게 되죠.(웃음)
신해옥 굳이 노하우라고 한다면 같은 일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입니다. 약간의 첨언은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는 각자가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대신 시시각각 과정을 말로 공유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따로 일하는 셈이니까. 디테일을 공유하기보단 지금의 과정을 꾸준히 동기화시키고 상대 의견을 경청하며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죠.
일과 일상을 모두 공유하는 것이 때때로 피곤하진 않나요?(웃음)
신해옥 사람마다 상황과 생각이 다를 것 같네요. 일과 일상을 철저히 분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완전히 뒤엉켜 분리가 안 되는 사람도 있죠. 우리는 후자입니다. 저만 해도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동혁에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애초에 디자인을 일로 보지 않아요.
신동혁 좀 추상화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는 시각적 경험과 인상에 자극받고 이걸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게 일이라는 결과로 나올 뿐이죠. 그러다 보니 여전히 소꿉장난하는 기분도 듭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즐거운 것은 아니에요. 예컨대 업무 메일을 쓰거나, 불필요한 조율에 지나치게 시간을 빼앗기거나 할 땐 하기 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죠.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일이잖아요. 정작 디자인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일 뿐이죠. 디자인을 구상하고 이런 자극을 어디에 활용할지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즐거워요.
신해옥 우리처럼 경계 없이 일하는 디자이너도 드물 거예요. 절대 밤을 새우거나 무리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과 생활이 경계 없이 흐르는 것 같아요. 사실 오늘 인터뷰를 하러 오는 차 안에서도 짬을 내어 인쇄 파일을 만들어 보냈습니다.(웃음)
신동혁 요즘은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삶이란 결국 무리하지 않는 삶 같습니다. 디자인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되죠. 그런데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상황이 달라져요. 우리는 경기도 숲속의 단독주택에 살아요. 기본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집이죠. 그런데 10여 년 이 집에 살면서 적응됐어요. 집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진 것이죠.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그런 경지에 다다른 듯해요.

신해옥 실장의 유학 이야기를 좀 해보죠. 유학은 어떻게 결정한 건가요?
신해옥 사실 처음에는 제가 동혁에게 공부를 권유했어요. 저보다 빨리 공부할 주제를 찾은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역제안하더군요. 본인은 작은 규모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재밌게 보낸 시간이 있는데, 저는 졸업 직후 곧바로 직장 생활을 했고 이어서 스튜디오를 설립하다 보니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더군요. 이전에도 관심사나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디자인에 투영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언어로 정립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을 땐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국내에 남아 있으면 여전히 제가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에요. 언제 유학을 가는 것이 가장 좋냐는 질문엔 딱히 답하기 어렵지만 저는 분명 최적의 시기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의 작업 스타일도 전후로 많이 달라졌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신해옥 스스로 돌아봤을 때 저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영감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더군요. 그동안 흥미롭게 보고 읽었던 것, 단순히 시각적인 끌림으로 모아둔 폴더 속 이미지를 엮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자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유학 시절엔 이러한 프로세스를 주로 탐구했어요. 당시 경험이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요.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김성환 작가의 전시 도록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데 아티스트로부터 한 섹션을 기록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신신이라면 이 전시를 어떻게 기록할지 물어본 것이죠. 실제로 당시 김성환 작가와 기획자, 큐레이터와 함께 느슨한 워크숍도 진행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때도 무언가를 서로 엮거나 떨어져 있는 것들을 접합하는 방법론이 작동했던 것 같아요.
AI와 책


신신 같은 스튜디오도 AI를 쓰는지 궁금했어요.
신동혁 작업에 직접 사용하진 않고 리서치하거나 패턴을 파악할 때 쓰곤 해요. 남들이 늘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써보기도 하고요. 좀 쓸데없는 것을 막 넣어보는 거죠. 예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 포럼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하기 위해 미술관의 기존 심벌을 해체해 활자체를 만든 적이 있어요. MMCA를 알파벳순으로 재정리한 다음 솔 르윗의 벽화 아이디어를 차용해 새롭게 구성해보았죠. ‘ACMM 산스’라고 명명했는데, 만들고 나니 펑크록 밴드 로고로 쓸 수 있겠다 싶어 챗GPT에 “MMCA가 이니셜인 밴드 이름 10개만 지어줘”라고 지시한 적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 아니에요.(웃음)
신해옥 작년에 미디어버스에서 〈책은 전진한다〉라는 책을 냈어요. 당시 임경용 대표가 챗GPT에 내용을 간략히 입력하고 어떤 책 제목이 좋은지 물어봤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 그 제목은 챗GPT가 알려준 목록에 들어 있던 게 아니었어요. 우리와 통화하다가 “그 뭐였더라? ‘책은 전진한다’였나?”라고 엉뚱한 제목을 읊어준 거예요. 그런데 그 제목이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신동혁 우발적이잖아요. 챗GPT로 평균율에 수렴하는, 제일 잘 팔릴 것 같은 단어들의 조합이 나왔지만 결국 휴먼 에러에 의해 이상하게 꼬인 제목이 등장했죠. 그런데 그 제목이 엄청나게 단순 명쾌하고 고도로 함축된 문장 같았어요.

책 제목 자체가 신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신신에게 책이란 물성은 어떤 의미인가요?
신동혁 우리는 책을 만들 때 물리적인 요소 역시 고려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포토샵에서 투명도를 조절해 투명한 느낌을 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인쇄한 뒤 뒷면에 비치는 것들을 다시 촬영해 보여주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투명도를 원한다는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는 적절한 선택지를 고르려고 애쓰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선택이 필연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고요.
신해옥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전제는 이것이 만져진다는 것입니다. 책을 만질 때를 고려해서 판형과 두께, 재질 등을 고려하죠. 책을 쥐는 장면을 상상해 만듦새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매체 환경은 계속 변하잖아요. ‘텍스트힙’이 대세라고 하고, 서울국제도서전이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출판 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 같습니다.
신동혁 사실 우리가 만드는 책의 수요는 대부분 몇백 부 수준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그런 문제에선 좀 자유로운 것 같아요. 그런데 앞으로 출판 시장에서는 모두 우리가 만드는 책처럼 될 것 같아요. 수만 부에 달하던 기존 시장이 니치 마켓으로 파편화되고, 출판사의 전략도 애초에 1000부 시장을 정확히 타기팅하는 쪽으로 재편되는 것이죠. 그만큼 대중이 다변화됐다는 것 아닐까요? 다만 플랫폼으로서의 출판물은 유효할 것이라고 봐요.

바뀐 것은 매체 환경만이 아닙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창작 환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신동혁 학교 다닐 때 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선배들이 있었어요. 특정 프로그램을 신봉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 그것을 추종하고. 그런데 역사적으로도 기술과 자기 작업을 동일시할 때 발생하는 폐해를 우리는 반복적으로 경험했잖아요. 금속활자에 목을 맨 작업자는 사진 식자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DTP가 대세가 되자 다시 사진 식자 기술에만 집착한 사람들은 사라졌죠. 기술에 집착하기엔 패러다임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기술이 보편화되고 인공지능으로 한 사람의 역량이 강화되었을 때 중요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 같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금방 적응할 수 있죠. 결국 유연한 태도와 확실한 자기 정체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일군 성장, 유행에 편승하는 태도가 어쩌면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요.


신신도 햇수로 12년 차가 됐어요. 예전과 달라진 점과 변치 않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동혁 달라졌다기보단 선명해진 것에 가까워요. 예전에는 외부는 명확했는데 스스로가 불확실했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할 수 없는 일에 욕심을 냈죠.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해요. 반대로 세상의 엔트로피가 높아졌죠. 하루아침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잡아가는 세상이 됐잖아요. 눈만 뜨면 생성형 AI가 만든 가짜 뉴스 같은 소식들이 들려오죠. 여기에 대중의 피로도 높아진 것 같아요. 북 페어나 공연장, 야구장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도 결국 불확실성의 시대에 경험의 가치를 재인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닐까요?
신해옥 아주 어릴 적부터 즐겨 찾던 일본의 고서점 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요새 거기가 완전 힙스터의 성지가 됐더군요. 이젠 그들의 무대가 된 기분마저 들어요. 우리가 책을 계속 만드는 것도 결국 눈앞의 확실한 것으로부터 출발할 때 드는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이 너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흐르니까요.
신동혁 작년에 해옥이 〈이음말〉이라는 단행본을 펴냈고, 이를 낭독하는 전시를 선보였어요. 이 책을 만들 당시에 어린 시절 책을 바닥에 펼쳐놓고 징검다리 삼아 건너며 놀던 모습을 상상했거든요. 독서 경험이 직관적으로 신체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내가 알고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한 발 한 발 착실히 수행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분명한 건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감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할 것이라는 점이에요.
신해옥 최근에 둘이서 2026년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스튜디오의 몸집을 키울 생각은 없어요. 지금의 규모를 지키면서 늘 해오던 일을 이어가자고 했죠. 예산의 규모에 상관없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라면 기꺼이 받을 수 있는 크기를 유지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