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진화, 디자인의 진화, 영화관의 진화를 말하다
[디자인을 캐스팅한 박스 오피스]
멀티플렉스의 도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영화관 산업은 스마트폰과 IPTV 등 대체 매체의 발달로 치열한 생존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의 영화관들은 차별화된 콘셉트와 공간 디자인 전략을 통해 단순한 상영관을 넘어선 복합 문화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를 ‘꿈의 공장’에 비유한다. 영화가 꿈의 공장이라면 영화관은 그 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진열해놓은 전문 매장쯤 되지 않을까?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위한 매장 전략이 있듯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진 영화관 디자인의 역사와 스크린 뒤에 숨은 다양한 디자인 전략에 대해 알아봤다.

단관 극장 전성시대
영화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였다.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뤼미에르(Lumière) 형제는 “영화는 상업적 미래가 전혀 없는 발명품”이라는 말을 남기고 영화 제작을 중단했지만 에디슨은 영화가 지닌 무한한 상업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가 1903년에 만든 서부 영화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는 영화 역사상 최초의 ‘흥행’을 기록한다. 이 영화는 주로 니켈로디언(Nickelodeon)이라는 곳에서 상영했는데, 구멍가게를 개조해 만든 이 영화관은 입장료 5센트를 내면 단편 영화들을 릴레이 형식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니켈로디언’이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의 5센트 주화에 사용하던 금속 ‘니켈’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가 상업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자 도심을 중심으로 영화만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하나 둘 생겨났다.
초기 영화관은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을 하는 예술 극장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랐다. 근대 시민사회의 촉발과 함께 ‘도시의 보석’으로 떠오른 극장 디자인이 영화관으로 계승된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개화기에 최초의 영화관이 생겼다. 광무대(光武臺)라는 이름의 이 극장에서 낮에는 소리패의 공연이 이어지고 밤에는 활동 사진을 상영했다고 한다. 1907년에는 단성사가, 이듬해에는 원각사가 세워져 광무대의 뒤를 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더 많은 영화관이 세워졌다. 1980년대에 들어와 소극장이 확산되면서부터는 전체 영화관 수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 1998년 우리나라의 상영관 수는 총 507개였다. 당시 영화관은 스크린을 단 한 개만 보유하고 있어 오늘날 ‘단관 극장’이라고 불리는데,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상영되는 영화에 차이가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중심부에는 새로 들여온 영화만 상영하는 개봉관이, 부도심 지역에는 이미 개봉관에서 막을 내린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재개봉관이, 그리고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3급 영화관인 동시 상영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구 밀집도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영화관 건물은 모두 교통의 요충지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영화관이 각각 도시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또 ‘간판쟁이’들이 손수 그린 영화관 간판은 도시에 마법 같은 판타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1950년대에 설립한 명보극장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김중업이 디자인을 맡았는데,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와 의견 충돌이 잦자 소송을 건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건축가의 작가주의와 자본 논리가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일 뿐 아니라 그 시기 영화관 건축이 도시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계의 지각 변동,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도입
1998년 한국 영화 산업은 크나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CJ그룹이 홍콩의 영화 제작사 골든 하베스트(Golden Harvest), 호주의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업체 빌리지 로드쇼(Village Roadshow)와 함께 CJ 골든 빌리지를 설립하고 1998년 4월 강변 테크노마트에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11을 세운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서울극장과 명보극장, 시네코아 등이 스크린 수를 늘려 멀티스크린의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CGV 강변11이 처음이었다. 단관 극장과 달리 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영화 중 골라 볼 수 있다는 점은 금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CGV의 시도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에 뛰어든다. 오리온그룹은 2000년 5월 삼성동 코엑스에 메가박스 1호점을 열었는데, 이 영화관은 국내 최초로 스타디움식 좌석을 설치해 관람 환경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롯데는 이보다 조금 앞선 1999년 10월 일산에 롯데시네마 1호점을 오픈한다. 자체 유통 시절이 없는 CGV나 메가박스와 달리 롯데백화점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던 롯데시네마는 기업의 장점을 살려 백화점 안에 자체 영화관을 입점시켰다. 유통 매장과 영화관을 엮어 관람객과 쇼핑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은 것인데 여기에서 발생한 시너지 효과는 롯데시네마를 단숨에 업계 2위로 성장시켰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도입 초기부터 다양한 디자인 전략을 구사했다. 영화관 로비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 대비로 관람객을 매혹시켰고 테마파크에서나 볼 수 있던 다양한 조명 시설로 공간을 풍성하게 꾸몄다. 브랜드 간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강화하기도 했다. 건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단관 극장과 달리 유통 시설이나 복합 문화 시설에 입점 형태로 들어가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로고나 그래픽 디자인은 브랜드를 어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소였다.
그렇다고 이런 입점 형태가 영화관의 브랜딩을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특성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도심 중심부에만 일부 집중되어 있던 상영관이 주거 지역 깊숙이 침투하며 집 앞까지 들어서게 된 것인데, 이런 확산의 결과 영화관을 찾는 연령층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 과거에는 영화관이 주로 젊은 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높은 접근성은 중·장년층까지 상영관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늘어난 상영관의 개수만큼 증가한 영화관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화관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직접 영화 제작 및 배급에 뛰어들었는데, 그 결과 영화 산업의 양적 성장이 이뤄지기도 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과잉 생산이 스크린 독과점 같은 병폐를 낳았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반대로 영화 산업계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맞서는 영화관의 자세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확산은 단관 극장들에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단관 극장은 문을 닫거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전향해 명맥을 유지했다. 몇몇 영화관에서는 시니어 전용 실버 극장을 마련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공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힘없이 사라져간 한국의 단관 극장들과 달리 외국의 영화관들은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대규모 침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상황과 유사했지만 일부 극장들은 독특한 콘셉트와 수준 높은 디자인으로 단장하고 관람객을 맞이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젊은 관객층을 포섭했고 추억이 담긴 장소라는 점을 강조해 중·장년층의 발길도 상영관으로 돌린 것이다. 지난 10월 프랑스 라시오타(La Ciotat) 에서는 세계 최초의 영화관 중 하나로 알려진 에댕(Eden) 시네마가 재개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단관 극장만이 아니었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멀티플렉스 영화관 산업 역시 도입기와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돌입했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던 영화관 시장이 둔화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늘어나면서 상영관들 사이의 상권이 중첩될 수밖에 없었고 경쟁 역시 치열해졌다. 스마트폰과 DMB 등 기술의 발달과 여가 활동의 다양화는 영화관의 입지를 더욱 좁혀놨다. 특히 IP TV를 중심으로 한 부가 판권 시장의 빠른 성장은 영화관 산업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는 영화가 막을 내리고 DVD나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 최소 몇 주에서 최대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영화를 내리고 며칠 안 있어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집 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다양한 시도를 전개한다. 음향 설비를 전문화하고 3D 상영관, 스크린X, 아이맥스 스크린을 마련하는 등 시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한편 클래식 공연이나 콘서트 실황을 중계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파리 13구에 자리잡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MK2에서는 토요일마다 철학자이자 영화감독인 올리비에 푸리올(Olivier Pourriol)의 철학 강의를 진행하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던 프랑스 철학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디자인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로고나 공간 장식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게 되자 차별화된 콘셉트와 공간 디자인 전략이 영화관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최근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급화 전략을 펼치거나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공간을 선보이는 등 입체적인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영화관 전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포지셔닝해 다양한 즐거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결국 단관 극장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정교한 디자인 전략은 시대적 흐름에 도태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의 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