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한국성 ②] 달라진 세상을 위한 시대예보, 송길영 × 강윤성
월간 〈디자인〉 Vol.581 | Special Feature
데이터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는 송길영 작가가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내일을 예고한다. 이번 인터뷰는 영화감독 강윤성이 진행했다.

우리가 알던 한국은 빠르게 과거가 되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사이 우리에게 익숙했던 삶의 방식과 성공의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데이터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는 송길영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에서 변화의 징후를 발견한다. 아파트에 투영된 계층의 욕망부터 달라지는 노동의 가치,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개인의 등장까지. 그의 시선을 따라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다가올 내일을 가늠해 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대담 등으로 송길영과 연을 맺었던 영화감독 강윤성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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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오른쪽)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 지난 20여 년간 사람들의 일상적 기록을 관찰하며 현상의 연유를 탐색하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개인의 행동은 무리와의 상호작용과 환경에 대한 적응에서 비롯됨을 이해하고, 그 합의와 변천을 알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상상하지 말라〉 〈그냥 하지 말라〉 등이 있으며 최근 〈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을 출간했다.
오랫동안 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변화를 읽어왔다. 그 눈에 비친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외국인만 만나면 “두 유 노 김치?”부터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한국을 알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특히 서울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아닌가. 편의점부터 배달, 배송 서비스까지 무엇이든 빠르고 편리하게 누릴 수 있다. 우리야 그 속도와 자극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풍경인 거다. 이제는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이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평범한 거리와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는 걸까?
그 배경에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있다. 작품 속 인물이 먹는 음식을 맛보고 그들이 거닐던 거리를 직접 걸어보고 싶은 거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의점이나 목욕탕이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궁궐이나 문화유산을 대표적인 관광 자원으로 내세운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한국과 관광객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한국 사이에 간극이 있는 셈이다.
우리 스스로도 일상에 깃든 아름다움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지 않나. 요즘은 ‘미감’이라는 말을 밥 먹듯 쓰고 말이다.
이제는 ‘미감’이나 ‘취향’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민망할 정도다. 너도나도 입에 올리다 보니 오히려 그 의미가 가벼워진 것 같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만큼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판단할 줄 아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겼던 미적 판단이 이제는 대중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무엇이 아름다운지뿐 아니라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보기 좋은 결과물을 넘어 그 안에 담긴 감각과 안목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 전체의 관심이 미감으로 향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그 뒤의 창작자에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는 것 같다. 영화만 해도 감독의 미감과 세계관에 주목하는 관객이 늘고 있다.
미감에 대한 관심은 결국 ‘누가 만들었느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영화에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만큼이나 감독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드디어 감독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람들이 작품의 표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설계를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영화의 수많은 요소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감독 아닌가. 관객이 그 사람의 감각을 믿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창작자 개인의 미감과 안목이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대중문화 확산으로 세계가 바라보는 ‘K’ 이미지는 선명해지는 반면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멀리서 보면 판타지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안에 천 가지 삶이 있다. 어릴 적 홍콩 영화를 보면서 홍콩 사람들은 모두 세련되고 멋있을 거라 상상했지만, 막상 가보면 저마다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매력적인 이미지로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욕망과 가치관을 지닌 수많은 개인이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양한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고 살아가는 속도도 다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다. 서로 다른 선택을 존중하고 개인의 존엄을 지켜줄 사회적 시스템도 충분하지 않다. 삶의 모습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태도와 제도는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한국인의 일상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욕망과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눈여겨본 장면이 있다면?
요즘 한국의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아파트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외부와 단절된 섬 같은 아파트 안에서 계층이 나뉘고 집단 간 갈등이 벌어진다. 오랫동안 집합 주거 공간에서 살아온 탓인지 세상의 종말마저 아파트를 배경으로 상상한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만큼 한국 사회의 욕망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공간도 없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파트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아파트 가격이 곧 개인의 경제적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런 아파트가 영화에서 폐허로 등장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한때 우리가 꿈꾸던 풍요로운 삶과 자본주의적 성공의 신화가 무너지는 모습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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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부의 상징을 넘어 계층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거에는 추상적이었던 부의 개념이 이제는 구체적인 숫자로 환산되지 않나.
과거에는 잘사는 집이라고 하면 2층 양옥집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를 떠올렸다. 부유함이라는 게 다소 막연했던 셈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동네, 어느 단지 몇 평에 사는지만 알면 그 사람의 경제적 지위가 숫자로 드러난다. 막연히 부러워하던 부가 구체적인 숫자로 환산되는 순간, 계층 간 격차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자산 가격은 급등했지만 노동 소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청년 세대의 좌절과 분노가 지금의 사회적 정서를 형성하고, 문학과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미덕으로 여겨온 ‘근면 성실’의 가치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실한 노동이 더 이상 그만큼의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이니 말이다.
지금 가장 고민스러운 건 ‘근면함’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든 ‘빨리빨리’를 외쳤다. 그런데 오래 일하고 바쁘게 움직인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꼴을 못 견디면서도 정작 얼마나 영리하게 일했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AI 시대에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하듯 ‘일단 대충 해봐, 내가 봐줄게’라는 식으로 일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궁리는 깊게, 행동은 짧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과거에는 묵묵히 오래 일하는 사람을 칭찬했지만, 이제는 기계에 맡길 일은 과감히 넘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영화 현장에서도 AI의 등장을 실감하고 있다. 독창성에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제작의 효율성만큼은 무시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여러 AI 에이전트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하는 ‘스웜(swarm, 군집)’ 방식까지 등장했다. 앞으로는 미술감독, 조명감독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학습한 에이전트 수십 개가 모여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했던 영화 제작의 문턱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할리우드 중심의 제작 시스템도 흔들릴 수 있다. 국적이나 자본 규모와 관계없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경쟁에 뛰어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국에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전 세계 누구나 비슷한 제작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한국 콘텐츠가 누려온 경쟁 우위도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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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도 바꾸고 있다. ‘시대예보’ 시리즈에서 이야기한 ‘핵개인’의 등장은 오랫동안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한국인의 정체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나?
한국 사람들은 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곧바로 취업을 했다면, 조직을 떠나 스스로를 정의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을 수 있다. 어릴 때는 ‘몇 학년 몇 반 몇 번’으로, 어른이 되면 ‘어느 회사 김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름보다 소속과 직함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조직에서 맡은 역할은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조직을 떠나는 순간 자신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듯한 불안을 느낀다. 문제는 이제 조직도 개인의 삶을 평생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이야기하듯 조직은 점점 가벼워지고 고용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제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내 정체성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
한국을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앞으로 세계인이 발견하게 될 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한국은 여전히 미지의 나라다. 과거에는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하다 잠깐 들르는 경유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한국을 두 번 세 번 다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만 둘러보던 이들이 부산으로 발길을 넓히는 식이다. 서울을 다녀온 뒤에도 자꾸 생각난다는 ‘서울병’에 이어 요즘은 ‘부산병’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어디일까? 제주일까?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한국의 모습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이런 신선함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한국은 한국 사람조차 따라가기 버거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나라라고.(웃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빨리빨리’가 정작 사는 사람에게는 피곤한 일이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매번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다른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