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한국성 ①] 그들이 미처 몰랐던 한국, 윤서영 × 이석우

월간 〈디자인〉 Vol.581 | Special Feature

전통문화와 K‐팝으로 양분된 인식 사이에는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한국이 존재한다. 윤서영 더 서울 컬렉티브 대표가 이석우 SWNA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었다.

[지금 여기의 한국성 ①] 그들이 미처 몰랐던 한국, 윤서영 × 이석우

세계가 한국을 향해 보내는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익숙한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전통문화와 K‐팝으로 양분된 인식 사이에는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한국이 존재한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성장한 윤서영 더 서울 컬렉티브The Seoul Collective 대표는 그 간극에 주목했다. 이석우 SWNA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정관념 너머의 한국을 발견하고 이를 세계와 연결하려는 그의 시선을 따라 오늘날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었다.

20261021095529 20261021 095529
윤서영(왼쪽) 〈SEOUL: A Cultural Travel Guide〉와 〈스위스 예술 여행〉 저자. 주한 스위스 대사관 문화공보담당관을 지냈다.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각국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전략 디자인 경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자 일간지 〈코리아타임스〉에서 문화 담당 기자로 활동했고 신문, 잡지, 라디오, 방송을 넘나들며 10여 년간 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다뤘다. 영국 디자인 잡지 〈월페이퍼〉의 유일한 한국 통신원이기도 하다. ‘더 서울 컬렉티브’를 설립해 한국과 해외 간 문화 이해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이석우(오른쪽)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2016년 산업디자인 오피스 SWNA를 설립했다. 2019년 문화예술발전유공자 포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디자인은 스위스 올림픽 박물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2년부터는 SWNA의 자체 프로젝트 ‘리버럴 오피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소속 디자이너들의 역량 향상을 독려하고 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그 시절에 형성된 것일까?

나는 본래 굉장히 소심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3년 주기로 거주지를 옮겼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를, 스위스에서 중학교를, 그리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낯선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기에 오히려 위축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의 성격은 사회생활을 하며 후천적으로 체득한 것에 가깝다.

남다른 성장 배경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당시에는 한국적 정체성을 의식할 나이도 아니었고,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영자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부터다. 어떻게 하면 한국을 잘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여행 가이드북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품게 되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막연한 바람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쪽에서는 K‐팝과 엔터테인먼트에 열광하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한복과 한옥, 전통 공예 같은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한국의 다채로운 면모는 좀처럼 조명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우리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최근 출간한 〈SEOUL: A Cultural Travel Guide〉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책에 앞서 〈스위스 예술 여행〉을 먼저 펴냈다. 소개하는 나라와 독자가 서로 뒤바뀌었을 뿐 두 책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유사하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문화공보담당관으로 일하면서 현지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학교와 집을 오가는 학생이었던 터라 현지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출장 갈 때마다 스위스 곳곳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현지인들은 자신의 지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장소를 추천할지 궁금해졌다. 여행자 시선이 아닌 그들의 시선으로 스위스를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고, 이를 계기로 로컬 창작자들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이 책을 쓰면서 오랫동안 품어온 구상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싶어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막연했는데, 〈스위스 예술 여행〉을 집필하며 비로소 방향이 잡힌 것이다. 이번에는 시선을 반대로 돌려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한국 전역을 다루고 싶었지만 범위가 워낙 방대해 우선 서울에 집중하기로 했다.

〈SEOUL: A Cultural Travel Guide〉는 문화예술계 창작자 18명과의 인터뷰로 서울을 읽는 여행 가이드북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국성은 무엇인가?

책을 집필하며 인터뷰이들에게도 한국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는데, 이렇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줄 몰랐다.(웃음) 당시 건축가, 사진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각자의 작업에 비추어 한국성을 설명했다. 건축가는 공간의 미감, 디자이너는 사물의 색과 형태로부터 한국성을 짚어내는 식이었다. 저마다 다른 답변이었지만 그 안에 공통으로 흐르는 정서가 분명히 있었다. 단순함과 여백의 미, 절제와 조화, 자연스러움과 투박함, 에너지와 대비 같은 키워드가 반복해서 등장했고, 무엇보다 한국 창작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이 인상적이었다.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모르는 실험 정신이 있었다.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지만 작업에 대한 확신만큼은 분명했다. 그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태도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20261021113526 20261021 113526
20261021113533 20261021 113532
〈SEOUL: A Cultural Travel Guide〉에 실린 마장동과 을지로 사진.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 풍경을 담았다. 사진 Frederic Weber
서울이 곧 한국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분명 한계도 있다. ‘서울다움’과 ‘한국다움’은 어디에서 만나고, 또 어디에서 갈라진다고 생각하나?

두 개념은 상당 부분 겹치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다. 한국다움이 오랜 시간 축적된 미감과 정신적 가치를 아우른다면, 서울다움은 그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동시대적 감각에 가깝다. 서울은 변화의 속도가 유독 빠른 도시다. 새로운 시도가 끊이지 않고 사람도 공간도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한다. 비유하자면 모듈형 가구 같은 도시다. 필요에 따라 요소를 조합하고 해체하며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변신할 수 있다. 정해진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유연함,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서울다움이다.

해외에 나가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는 한국의 모습도 있을 것 같다. 익숙해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면모가 있다면?

대도시는 어디나 비슷한 면이 있지만, 유럽의 여러 도시에 머물다 보면 한국 특유의 빠른 속도와 편리함이 새삼 실감 난다.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결속력도 눈에 띈다.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응집력과 연대감이 두드러지는 순간이 있다. 공공시설 곳곳에 스며 있는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히 누리는 것이지만 해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많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고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섬세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20261021113945 2JW00074
더 서울 컬렉티브의 로고는 스위스 디자인 스쿨 ‘아카데미 드 뫼롱’과의 협업으로 완성했다. ‘컬렉티브’를 강조하고 그 위에 ‘서울’을 배치해 다른 도시의 이름으로도 유연하게 바꿔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사진 김지웅
그런 결속력은 한국인 특유의 국가적 자부심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자국에 대한 아쉬움이나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SEOUL: A Cultural Travel Guide〉를 집필하면서도 실감했다. 해외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책이라고 하니 모든 인터뷰이가 왠지 모를 사명감까지 느끼며 성심성의껏 참여해 주었다.(웃음) 〈스위스 예술 여행〉을 집필할 때는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스위스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자국 문화를 알리는 데 한국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강한 결속력을 형성해 온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 대목이기도 하다.

해외 독자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때 느끼는 어려움은 없나? 당장 한국어만 해도 일대일로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은데, 문화적 맥락과 미묘한 뉘앙스까지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인을 잘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융통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단어에 정확히 대응하는 영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이처럼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부의 시선으로는 읽어내기 어려운 것이 많다. 특히 한국은 몇 가지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한복, 한옥, 한식 같은 전통문화 아니면 K‐팝과 K‐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뿐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풍부한 문화적 층위는 좀처럼 조명받지 못한다. 디자인,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지만 해외 독자에게는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책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창작자들의 시선을 빌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익숙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기존 이미지로는 설명되지 않는 서울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20261021114056 20261021 114056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지고 그 영향력이 세계로 확장될수록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국 문화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수록 그 경계가 점차 흐려질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 고유의 정체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생각해 보면 쉽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 문화를 향유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그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한국 문화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K‐팝과 한식, K‐뷰티처럼 눈에 보이는 영역을 넘어 한국 특유의 미감과 가치관이 다른 사회의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소박함과 겸손함, 절제와 조화 같은 가치 말이다. 어쩌면 한국 문화가 세계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더 이상 그것을 특별히 ‘한국적’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는 때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문화 교류 플랫폼 ‘더 서울 컬렉티브’의 설립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책과 기사를 통해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했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그 경험을 확장해 나갈 계획인가?

‘컬렉티브’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는 집단을 뜻한다. 더 서울 컬렉티브라는 이름에는 서울을 거점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교류의 장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궁극적으로는 해외에서 한국을 찾는 이들에게 보다 깊이 있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현재 더 서울 컬렉티브에서는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분야의 창작자와 전문가를 만나거나 스튜디오와 기업을 방문하며 한국 문화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뿐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과 과정, 그 이면의 이야기까지 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책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한 것과 같이 앞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