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디자인] 디자인하우스 50년 기념 전시 〈막, 크리에이티브!〉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막' 정신에 대하여.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디자인하우스가 조금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디자인하우스가 조금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바로 50주년 문화 캠페인 〈막, 크리에이티브!(Mak, Creative!)〉다. 이번 전시는 막사발, 막걸리, 막국수, 막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에 담긴 ‘막’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일단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태도다. 이를 주제로 그래픽 디자이너 권준호,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 가구 디자이너 박길종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참여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막’의 정신을 풀어낸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가 열리는 디자인하우스 사옥 곳곳은 서로 다른 감각과 개성이 어우러진 창작의 무대로 변신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막’의 정신은 무엇일까? 이번 주 위클리 디자인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0명의 인물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막’의 의미와 창작에 임하는 태도를 물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막’의 정신을 함께 살펴보자.
디자인하우스 50년 기념 전시 〈막, 크리에이티브!〉
기간 2026년 10월 27일 (화) ~ 11월 25일 (수)
운영 평일 10:00 ~ 18:00 (토·일 휴무)
장소 디자인하우스 사옥 (서울시 중구 동호로 272)
월간 〈디자인〉 이영혜 발행인
—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끝없이 이어가는 모습에 디자인하우스 50주년 캠페인 ‘막, 크리에이티브!’를 떠올렸습니다. 이 캠페인을 시작한 배경도 말씀해주시죠.
50주년을 준비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막춤, 막걸리, 막사발… ‘막’은 때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달리 보면 엄청나게 생동감 있는 부사입니다. 생명력이 있죠. 한국인의 DNA에는 막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영국의 해양 엔지니어링 회사를 찾아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이밀며 “우리는 16세기에 이미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잖아. 그렇게 대한민국의 조선소 신화를 일궜지. 그게 바로 막 정신이라고 봐요.
오창섭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올해 디자인하우스의 연간 캠페인의 주제는 ‘막’ 정신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통적인 개념의 디자인은 합리적인 이성을 발휘해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신뢰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근대적인 믿음이 20세기부터 이어져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빈부격차 심화, 젠더 이슈, 기후변화 등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디자인이라는 논리적인 행위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와 동등하며, 그동안 대상화했던 존재들이 주체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막’이라는 개념이 디자인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
— 앞으로 건축가로서 ‘막’의 미학을 어떻게 실천하고자 하나?
막을 실천하기 위해 일부러 불완전함을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땅의 흐름, 재료의 성질, 시공 과정에서 생기는 흔적 등을 굳이 지우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작업에서도 땅의 구조를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보다 덜 만들고 덜 말하는 건축을 이어가고 싶다. 건축이 자연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조용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스튜디오 신유
— 올해 디자인하우스 창립 50주년 기념 문화 캠페인의 핵심 키워드는 ‘막’이다. 그간 동서양의 디자인과 미학을 연구해온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속성 가운데서도 한국의 특징을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자연, 공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관점에는 결함을 품는 관용과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막’은 정해진 답 없이 미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결점 역시 포용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하나의 기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스튜디오 신유의 작업에서도 ‘막’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목재를 사용할 때 원목의 표면을 그을리는데, 이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하며 표면에 자연스럽게 금이 생긴다. 우리는 이를 결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재료의 자연스러운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작품에 그대로 적용한다. 재료 본연의 성질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기보다 드러내는 방식이다.
정다영 CAC 대표
— 실천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은 ‘막’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건축 디자인 큐레이터 아릭 첸이 비슷한 질문에 대해 “Just do it”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결국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 다음이 이어진다. 그렇게 막 시작된 일들이 쌓이면서 하나의 흐름과 생태계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일해 온 것 같다. 한 작업의 시작은 또 다른 작업을 이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놓일지는 시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나의 경험을 ‘막’이라는 개념과 연결해 본다면, 그 막은 아카이브라는 외롭고도 불가해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용기였다.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
—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도를 ‘막’ 해봤기에 가능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렇다. 다만 우리는 ‘막’ 해왔을지는 몰라도 무작정 해온 것은 아니다. 예전에 ‘무작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계획 없이 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런데 우리가 해온 일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지만, 그 안에는 늘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경험과 방향성이 있었다. 또 우리는 아무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완성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회사다. 오히려 그 집요함 때문에 힘들 때도 많다. 결국 디스트릭트에게 ‘막’은 아무렇게나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을 계속 실험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김대균 착착건축사사무소 소장
—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하우스 창립 50주년의 키워드인 ‘막’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막’의 가치는 시간성과 생명력, 그리고 재료를 알뜰하게 쓰려는 제작자의 마음에 있다. 막걸리나 막국수처럼 지역의 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과 질감을 살리고, 살아 있는 시간성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막’은 표준화된 대중성과는 다른, 개별성을 품은 대중성을 지닌다. 그런데 사실 나는 ‘막’을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와비사비나 원시 공예처럼 세계 곳곳에 비슷한 문화가 존재한다. 다만 한국의 재료와 식생, 삶의 방식이 더해지면서 한국적인 ‘막’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교집합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은 한국의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것이기도 하다.
김지원 석운동 대표
— 석운동에게 ‘막’은 어떤 의미인가?
일반적으로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표현이지만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창의성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장애와 다양한 몸에 관심을 가진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막’이라는 단어가 늘 헐레벌떡 움직이고, 무언가를 겨우 해내며, 어설퍼 보인다고 여겨지는 몸과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늘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막’은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을 함축하기도 한다.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공동대표
— 어머니의 ‘막’ 정신이 건축가가 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이었나?
꼭 그렇지는 않다. 어머니의 임기응변이 싫어서 계획대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가가 됐다. 순발력이나 재치보다 철저하게 계획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긍정하는 측면도 있다. 계획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우연성과 다양성 역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도를 추구하다 보면 일정한 규칙이 생기는데, 때로는 즉흥적인 방식에서 그 규칙을 깰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막’은 완성도의 반대편에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훈 계원예대 리빙디자인과 교수
— 그렇다면 하지훈의 작업에서 ‘막’은 어떤 영향을 끼쳤나?
내게 ‘막’은 작업의 단서에 가깝다. 과거 사람들이 ‘막’ 만들어낸 것에서 감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금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 병산서원의 기둥을 보면 철저하게 계산된 비례나 정돈된 형태와는 다른,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손길에서 오는 멋이 있다. 나는 이를 일종의 ‘추상적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없다. 결국 이미 존재했던 것에서 출발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나 역시 과거에 존재한 것을 지금의 기술과 소재로 재해석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편집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있는 것을 조합하고 편집해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수공예의 손의 감각과 자연스러움을 오늘날의 산업과 생산 방식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지를 고민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창조이고, ‘막’을 작업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Design+의 콘텐츠를 해체하고 조립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위클리 디자인]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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