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아트테이너 조셉 리: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그림으로 해체하다

조셉 리 아트테이너

조셉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두 개의 창작자 페르소나를 지녔다. 에미상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배우로 활동한다. 더불어 눈, 코, 입을 없앤 초상화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표현하는 회화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각기 다른 영역을 오가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한 비결은 무엇일까?

[Creator+] 아트테이너 조셉 리: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그림으로 해체하다

editor’s note

혹시 지난해 개봉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 보셨나요? 올해 1월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에서 남·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과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는 무려 8관왕을 휩쓴 작품으로 화제가 된 바 있죠. 오늘 소개할 크리에이터 조셉 리(Joseph Lee)는 극 중 여주인공의 남편 ‘조지 나카이’ 역을 맡아 에미상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는데요. 비록 아쉽게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글로벌 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죠.

배우로 대성(大成)할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던 찰나, 알고 보니 조셉 리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화가로도 일찍이 활동해 온 인물이더라고요. 특히 한국계 미국인으로 겪어 온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지닌 아티스트였죠. 눈, 코, 입을 지우고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린 초상화 작품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그런 그가 최근 한국에서의 전시, 그리고 파리에서 열리는 리빙 박람회 <2024 메종&오브제> 준비를 위해 서울을 찾았습니다.

마침, 그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9월 첫 주는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SEOUL)와 키아프 서울(Kiaf SEOUL)을 필두로 한 아트 위크 기간이었죠.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유독 밝아 보였습니다. ‘평생 연기하기 vs 평생 그림 그리기’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한 조셉 리. 그에게 배우이자 화가로 활동하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중인 조셉 리 배우·회화 작가

PLUS 1. TV 앞에서 낙서 하던 아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배우 겸 화가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종합 예술가인 셈인데,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걸까요?

사실 유년 시절이 특별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외롭게 지낸 것 같아요. 한국에서 결혼하신 부모님은 1986년 미국 애리조나(Arizona)로 이민을 오셨죠. 저는 이듬해인 87년도에 태어났고요. 이후로 뉴욕에도 잠깐 살았는데 금방 다시 애리조나주에 있는 도시 피닉스(Phoenix)로 돌아왔어요. 그리곤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저는 엄마와 함께 인디애나(Indiana)에서 줄곧 함께 지냈죠.

대부분의 유년 시절은 인디애나(Indiana)에서 보낸 거예요. 제가 외동아들이기도 했고, 엄마가 생계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형제자매가 없어서 어릴 때부터 혼자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죠. 주로 TV 앞에서 놀았던 기억이 나요. 그림도 그렸고, 영화도 봤는데, 그때 경험이 오늘날 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엄마가 ‘하지 마라’라는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왜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한국인 부모님들이 잘하는 말들 있잖아요. 예를 들어 게임 하지 마라, 놀지 말고 가서 공부해라 등과 같은 잔소리들. 대신 자신감을 늘 심어주려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겠어요.

저에게는 슈퍼 히어로죠. 최근에 한국을 자주 오면서는 이때까지 엄마를 ‘엄마’로만 바라봤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마가 자란 이곳에서는 제가 아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만의 이름을 가진 온전한 한 사람이었을 거잖아요. 제 가족과 친척들의 모습과 기억들, 그리고 한국만의 문화들을 마주할수록 호기심이 더 생겨요.

LA를 기반으로 배우와 회화 작가로 활동 중인 조셉 리(Joseph Lee)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말처럼도 들리는데요? 비록 가공된 혹은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배우가 된 배경일 수도 있겠고요.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했어요.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자랐을까? 와 같은 궁금증과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 머릿속에 쏟아졌죠. 고등학생 시절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갔지만, 이내 연기(acting)에 강하게 이끌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경험을 더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어요.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연기를 놓지 않았어요.

대학교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프로덕션(production)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특히 극본에 관심이 많았죠.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극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시기거든요. 작가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생겼죠. 작가들은 자기 생각을 순수하게 실행하는 반면, 화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이라는 매체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근에는 시나리오 등 글도 조금씩 써보고 있어요.

PLUS 2. LA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조셉 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배우의 꿈을 안고서 LA로 향했다.

SNS를 보니 로스앤젤레스(이하 LA)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이더라고요. LA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LA로 왔어요.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생각했거든요. 혼란과 착각으로 둘러싸인 듯한 느낌도 들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로스앤젤레스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던데요.

LA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친구들을 만나면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어요. 이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배우를 꿈꾸지만 동시에 화가가 되는 것을 도전해 볼 수 있죠. 그렇다고 아무도 저에게 ‘너는 배우를 꿈꾸니까 화가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지 않아요. 이러한 형태의 자유로움이 제가 또 다른 예술의 영역에 도전할 기회를 줬다고 생각해요.

“LA 가 매력적인 건 모든 서브 컬처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낚시, 모터사이클, 예술, 연기 등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든 그에 맞는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죠. 자신이 가진 관심사가 단순 재미를 넘어 업으로 발전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당시 만난 아티스트 친구들은 누구인지도 궁금해요.

맷 곤덱(Matt Gondek). LA에서 처음 만난 아티스트 친구예요. 팝 아트와 그래픽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선보이죠. 맷이 LA 아티스트 커뮤니티에 초대해 준 덕분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알게 됐어요.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레이먼드 리(Raymond Lee).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맥도날드 CF 오디션을 갈 때마다 만났어요. (웃음) 게다가 오디션도 같이 붙어서 들어갔고요. 경쟁자였죠. 한 번은 제가, 또 다음번에는 레이먼드가 캐스팅됐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도 오디션장에서 자주 만났어요. 계속 보다 보니 친해졌고 지금도 만나면 과거에 오디션 보러 다니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요. 

미술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독학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이 궁금하거든요. 

그림을 판매하는 화가가 되기 전까지 LA에서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스시 레스토랑 종업원부터 우버 드라이브, 그리고 어떤 작품이건 조단역 역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죠. 그러면서도 그림은 조금씩 그려오고 있었고요.

한 번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제가 그린 그림을 포스팅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재미로 올렸는데 주변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들이 건넨 칭찬이 자신감을 줬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가장 먼저 다니던 레스토랑을 그만뒀죠. (웃음) 운전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순간 스치기도 했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거라면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어도 스스로를 기꺼이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첫 작품을 판매했을 때도 기억나요?

당연하죠! 화가로서 가장 큰 자신감을 얻었던 순간인걸요. 사실 제가 그린 그림을 두고 어떻게 가격을 매겨야 할지 몰랐어요. 친구가 제 작품을 처음 구매했는데 잘 모르니까 가격은 100달러라고 했죠. 하지만 친구가 그 가격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현금이 든 봉투를 줬고, 약 두 달 치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죠. 스스로에게 “적어도 두 달은 충분히 화가로 활동할 수 있겠다’라고 되뇌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PLUS 3. 얼굴을 지운 초상화

Lion, 101.6×76.2cm, Oil on Wood Panel, 2024 (사진 제공. 조셉 리)

작품 이야기를 해보죠. 주로 초상화를 그리잖아요. 얼굴에 관심을 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얼굴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마치 책을 읽는 것과도 같죠. 개인적으로 전기나 자서전을 좋아하는데 초상화가 하나의 전기와 같다고 느껴져요. 저는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것 보다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 궁금하거든요. 가끔은 이면에 트라우마나 고통처럼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도 담겨 있겠죠. 물론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도 있을 테고요. 창작자라면 이 모든 걸 함께 탐구해야죠. 우리를 만드는 건 하나의 요소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모두 복잡하고 달라요. 

Grand typo, 2024 (사진 제공. 조셉 리)

초기작과 달리 최근 작품들은 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누군지 모르도록 눈, 코, 입을 지웠어요.

2018년도에 한국에서 촬영을 위해 지낸 적이 있어요. 촬영이 없는 날이면 호텔에서 그림을 그렸는데요. 그때 제 주변 환경과 단절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와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았거든요. 한국의 문화를 더 배우고, 그 일부가 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나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한국 사람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에 가까운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했죠.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작품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저 자신에 대한 것들을 덜어내기 시작했죠. 눈, 코, 입을 지우고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이 그림을 그렸어요.

조셉 리는 인물의 눈, 코, 입을 없애고, 얼굴 위로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렸다. (사진 제공. 조셉 리)

얼굴을 없애고 대신 물감으로 레이어를 쌓아 올린 모습도 인상적인데요.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구체적으로는 캔버스 위로 물감을 던져버리는 행위에서 나왔어요. 작업하다 보면 답답하거나 혹은 ‘이건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6개월간 그린 작품인데 오늘 와서 보니 그냥 다 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림 안에서 계획한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의식을 내려놓고 ‘Just do’ 하는 거죠.

“제 작업 과정은 20%의 기쁨과 80%의 좌절로 이루어져 있어요. 좌절감은 때로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고 그냥 감각적으로 직진하게 만들어요. 무의식의 상태에서 밀고 나갈 때 오히려 작품의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봐요.”

한편, 얼굴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할 때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구사하는 배우의 일과도 분명 맞닿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연극과 연기를 배우면서 얻은 많은 영감이 초상화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반영됐죠.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그들의 감정과 행동에 맞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상대방이 느끼는 것을 분석하고,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덕분에 제가 그림을 통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도 훨씬 수월했어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연기를 먼저 배운 덕분이죠.

PLUS 4. 두 개의 정체성, 두 가지 페르소나

한국계 미국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 조셉 리. 이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여전히 하루하루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민 역사나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른 채 자랐어요. 그래서 커뮤니티에서는 무엇을 원하고,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쉽지 않았죠. 어릴 때는 나를 숨겨야만 모두와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느꼈어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지 않았고, 튀는 옷을 입고 싶지 않았고, 그저 배경에 있으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죠. 겸손함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웃음)

집 안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인으로 살아가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저는 미국인이 돼요. 마치 다른 모자를 쓰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듯한 느낌이죠. 그래서 스스로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여기서는 내가 무엇을 취하고, 저기서는 또 무엇을 취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는 비로소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사회적인 변화도 있다고 봐요. 오늘날 사회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진정성을 갖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창작자로서도 두 가지 정체성을 지녔잖아요. 배우로 일할 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점에서 다르게 임하는지도 궁금했어요.

무엇보다 균형(balance)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죠. 세트장에서 배우로 일할 때는 엄청난 겸손함이 필요해요. 공동 창작물이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다양한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협력이 필수죠. 반면, 예술가로 임할 때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스튜디오에 가면 오직 저 자신만을 생각해요. 모든 일의 중심에 저를 두죠.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도 있어요? 감독에도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봤거든요.

글쎄요. 솔직히 감독은 잘 모르겠어요. 좋은 감독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 감정조차 다루기 어려울 때도 있거든요. 모든 사람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영화 제작에는 관심이 있어요. 영화를 제작하고, 극본을 쓰는 일이 저에게 더 잘 맞는 일이지 않을까 싶네요.

PLUS LIST

조셉 리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터 3

  • 헨리 테일러 & 제니 사빌

조셉 리에게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두 인물. 헨리 테일러(Henry Taylor)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현대 화가다. 대부분의 작품은 인물화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흑인 인물이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 가족, 친구,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까지 담아낸다. 주목할 건 단순히 인물 외형을 통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흑인 사회와 문화를 바탕으로 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삶의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점. 이는 화가로서 조셉 리가 초상화를 선택한 이유와도 닮아있다.

제니 사빌(Jenny Saville)은 영국 출신의 현대 화가다. 대형 인물화를 그리는데 주로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정체성을 주제로 다룬다. 특히 신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성을 강조해 그린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창작자의 자세가 돋보인다.

  • 박찬욱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이다. 오래전 인터뷰에서부터 늘 박찬욱과 그의 작품을 언급해 왔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박쥐>(200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그리고 아이폰 13프로로만 촬영한 <일장춘몽>(2022)를 꼽았다. 복수, 한국사, 샤머니즘 등 각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조셉 리의 관심사와도 맞닿아 있다. 

  • 하워드 스턴

조셉은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터뷰에 있어서는 예술가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라고. 사람들의 심리와 취약한 부분을 끌어내는 데 매우 능숙해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는다. 

TIPPING POINT

한국계 미국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조셉 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가꾸는 데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술에 관심이 있는 이는 조셉 말고도 많을 터. 인터뷰라는 짧은 만남에도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의 태도를 보자면, 그가 배우로서도, 화가로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자기 기준이 확실한 자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5년 뒤, 10년 뒤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자체를 즐긴다.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다 통제할 수 없으니까. 가능한 많은 것을 건강하게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창작자에게는 삶의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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