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조셉 리의 A to Z: 넷플릭스 〈BEEF〉부터 파리의 〈메종&오브제〉까지
조셉 리 아트테이너
최근 조셉 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메종&오브제>에 작가로 참여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한지를 알리는 전시 <시간의 결, 한지>에 참여한 것. 그간 캔버스를 사용해 온 그가 한지를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LA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다시 파리까지. 아트테이너 조셉 리가 있기까지의 지난 창작 환경을 살펴본다.
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종합예술가 조셉 리(Joseph Lee). 두 가지 창작자의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심어가는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금의 조셉 리, 그리고 이조연을 있게 한 창작 환경을 ‘A to Z’ 키워드로 살펴보자.
프로젝트 A to Z
BEEF |
B |
배우 조셉 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성난 사람들>(2023)이다. 영어 원제는 <BEEF>. ‘Beef’는 영어에서 갈등이나 불화 혹은 입씨름 등의 뜻으로 은어처럼 사용된다. 이처럼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분노를 다루는 모습과 분노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한다. 그는 여주인공 에이미 라우의 남편이자 일본계 이민 2세대인 ‘조지 나카이’ 역을 맡았다. 조지 나카이는 저명한 예술가 부친을 두고 도예가가 되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술가로도 활동하는 조셉 리의 배경과 극 중 인물 설정이 닮아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그는 ‘조지 나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참조했다고 한다.
Color palette |
C |
화가 조셉 리의 작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색 조합이다. 넓은 색 범주에서 조화로움을 추구하지만, 자연스럽게 손이 자주 가는 색상도 있지 않을까? 그에게 물었다.
“특정한 색상을 선호하는 건 없어요. 단지 제 기분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좋은 무드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밝은색을 쓰게 되죠. 반면 차분할 때는 단색조에 가까워져요. 그래서 그림을 다시 보면 ‘아, 그날 내가 기분이 안 좋았구나’ 혹은 ‘이때는 좋은 날이었네’라는 걸 알 수 있죠. 의식적인 선택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의 색상 조합에 반영되는 부분이에요.”
인터뷰를 한 날, 그는 청바지와 블루 계열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가 말한 색 선택 메커니즘을 따르면 적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작품 이외의 환경에서 그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일까?
“최근에는 브라운 계열이 좋아요. 어두운 나무 색의 톤이 끌려요. 그리고 미드 센추리 디자인에도 관심이 생겨서 버건디(burgundy)와 같은 색감에도 관심이 있죠. 대담한 색보다는 잔잔한 색 안에서 임팩트를 주는 걸 선호해요.“
Don John |
D |
대학 시절 연극을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역할은 셰익스피어의 1598년 작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 등장하는 악역 돈 존(Don John)이다. 아시아인이라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주로 빌런을 연기하는 걸 즐겼다고.
Fabric & Stitching |
F |
조셉 리의 초기작을 살펴보면 천 조각을 캔버스 위에 덧대고 기워낸 작품도 여럿 보인다. 자수에 대한 어릴 적 기억 혹은 한국 문화와의 연관성을 기대했으나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옮길 때마다 작품 스타일이 달라지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했어요.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거든요. 제 스튜디오가 어디에 있든 혹은 제가 그림을 그리는 장소가 어디든, 그 환경을 흡수하면서 작업하죠.”
LA 정착 초기 그가 마련한 스튜디오 주변에는 자바 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관광지로도 손꼽히는 이곳의 실제 정식 명칭은 패션 디스트릭트(Fashion District). 주로 저렴한 의류와 액세서리, 신발류를 다양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면 그는 자바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작품에 활용할 다양한 소재를 탐구했다. 패브릭(Fabric)이 대표적이다. 바느질 키트를 엄마에게 빌려 캔버스 위에 그린 얼굴 곳곳에 패브릭을 덧대어 새로운 질감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HANJI |
H |
지난 9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2024 메종&오브제(Masion&Object)>에 조셉 리는 작가로도 참여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한지의 멋을 알리기 위한 전시 <시간의 결, 한지(Skin of Time, HANJI)>에 구본창, 한기주, 김선형, 남궁환 작가와 함께 한류 문화 예술가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전시는 작가들의 원화를 데이터로 전환해 한지 판화 에디션과 한지 포스터로 제작한 작품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표현 매체로서 한지의 실용성을 조명한 것. 조셉 리는 한지 위에 할아버지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한 작품은 한지가 지닌 매체의 특성으로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었는데 현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는 후문.
“한지는 캔버스와 아주 달랐어요. 처음 사용해 보는 재료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처음에는 약하고 쉽게 찢어질 거 생각했는데 한지는 튼튼하고 강한 재료더라고요. 팔레트 나이프로 초상화를 작업했는데 일정한 붓질의 흐름이 있는 캔버스와 달리 한지 위에는 여러 굴곡이 있어 붓질을 예측하기 어려웠는데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한지 위에 조금 더 크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Kiaf SEOUL 2024 |
K |
지난 9월 4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린 국내 최대의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 마침 조셉 리의 한국 방문과 행사 기간이 겹쳤다. 키아프 서울에는 다녀왔느냐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인터뷰 포문을 열었는데, 그는 세계 2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보다 키아프 서울이 훨씬 궁금했다고 말했다. 문화는 상대적이다. 나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새롭게 보일 테고, 그들에게 익숙한 건 나에게 새로운 세계다. 조셉 리의 시선이 그러했다. 뉴욕과 LA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갤러리보다 국내 기반의 갤러리,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갤러리와 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Rico GR Series |
R |
그가 여행을 떠날 때, 촬영을 갈 때, 스튜디오에 사람을 초대할 때 늘 사용하는 카메라. 얼굴 이면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한 그는 인물 사진 찍기를 즐긴다. 이번 한국 여정을 소화하면서도 다양한 사진을 담았을 터. 인터뷰 일자 기준으로 다음 주에는 처음으로 경주에 갈 거라며, 경주에 가면 경주 박물관도 가보고 싶다고 기대에 부푼 얼굴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