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과 미학의 공존을 제안하다, 비저블 보이스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운영한 플랫폼이 등장했다. 비저블 보이스는 장애를 다루지만 무겁지 않은, 생동감 있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공간을 지향한다.

접근성과 미학의 공존을 제안하다, 비저블 보이스

최근 몇 년 사이 ‘접근성’을 주제로 한 디자인 프로젝트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포용적 디자인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것과 별개로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에서 출발한 작업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5년 5월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운영한 플랫폼이 등장했다. 시각장애인으로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베레니스 마지스트레티(Bérénice Magistretti)와 신경다양성과 기면증을 앓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루벤 셀비(Reuben Selby)가 공동 창업한 비저블 보이스(Visible Voic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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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저블 보이스의 공동창립자, 베레니스 마지스트레티(왼쪽)와 루벤 셀비. ⓒVisible Voices

비저블 보이스는 콘텐츠, 전시, 커머스를 결합해 장애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 서사를 제안하는 플랫폼이다. 창업자들은 장애인인 본인들이 원하는, 그리고 자부심을 느낄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다루되 무겁거나 임상적이지 않은, 생동감 있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은 플랫폼의 방향성을 ‘보그와 모마의 만남(Vogue meets MoMA)’으로 설정했다.

플랫폼은 약 18개월의 디자인 작업을 거쳐 완성했는데, 전체 브랜딩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드로가5와 협업했다. 또한 호주 멜버른의 타입 디자이너 그룹 모던 타입과 접근성과 심미성을 고려한 폰트를 개발했으며, 런던의 작곡 듀오 럭키앤밤바와 협업해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사용자를 위한 사운드 로고도 제작했다. 브랜드명을 점자로 표기한 뒤 이를 음계로 변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다크/라이트 모드를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는 토글 버튼, 기사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는 기능 등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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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저블 보이스의 사운드 로고. 브랜드명을 점자로 표기한 뒤, 이를 음계로 변환했다. ⓒVisible Voices

루벤 셀비는 “접근성은 부가 옵션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본적으로 탑재돼야 한다. 많은 웹사이트가 접근성 팝업을 통해 사용자가 직접기능을 켜도록 유도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혼란스럽고 불편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처음부터 사용자가 아무런 추가 조작 없이 다양한 감각으로 웹사이트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플랫폼은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했다. 이 중 ‘매거진’은 장애와 미학의 교차점에 주목해 접근성을 다루는 패션, 예술, 뷰티 관련 콘텐츠를 큐레이션한다. 점자를 활용한 작업을 전개하는 직물 예술가 카테리나 프론지아(Caterina Frongia),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활동가 나디아 오카모토(Nadya Okamoto) 등의 인터뷰와 에세이가 실려 있다. 갤러리 섹션에서는 장애인 또는 장애 표현의 확장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터 플로렌스 번스(Florence Burns), 사진작가 아나 노이바우어(Anna Neubauer) 등의 작업이 포함된다. 마지막 섹션인 셀렉트 숍은 제품 큐레이션 공간으로 조형적인 지팡이, 보청기용 주얼리, 적응형 이너웨어 등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갖춘 제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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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미학의 교차점에 주목해 접근성을 다루는 패션, 예술, 뷰티 관련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매거진 섹션. ⓒVisible Voices

베레니스 마지스트레티는 “비저블 보이스는 장애인들의 영감의 허브가 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더 크게,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5호(2025.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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