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율로 쓴 계율, 브라운
정돈된 구조, 절제된 형태, 과장되지 않은 비례. 브라운과 디터 람스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단순히 ‘아름답다’는 수식만으론 이 디자인 아이콘에 담긴 비율을 설명하기 어렵다. 브라운 제품에서 비율은 형태를 꾸미는 기준이 아닌, 기능을 이해하게 만드는 질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디터 람스의 디자인은 거실 풍경을, 기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며, 기술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기능주의 디자인을 확립하다
브라운은 1921년 엔지니어 막스 브라운(Max Braun)이 프랑크푸르트에 설립한 ‘막스 브라운 기계 및 장치 제작소’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구동 벨트 같은 산업용 부품을 제작했지만, 이후 라디오와 전기면도기 등 소비자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1951년 막스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 뒤 회사는 두 아들, 에르빈과 아르투어 브라운에게 넘어갔다. 이때 디자인의 방향을 주도한 인물은 에르빈 브라운이었다. 그는 제품을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기능과 사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울름 조형대학 출신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시작한다. 오틀 아이허(Otl Aicher), 한스 구겔로트(Hans Gugelot), 헤르베르트 히르헤(Herbert Hirche) 등 이른바 울름파 디자이너들은 바우하우스를 계승한 기능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브라운의 디자인을 새롭게 정립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브라운은 제품을 장식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와 사용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을 확립해 나간다.
디터 람스의 시대정신
그리고 1955년, 브라운은 회사의 운명을 바꿀 인물과 마주한다. 바로 디터 람스다. 프랑크푸르트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사내 건축가를 채용한다는 브라운의 신문 광고를 보여 주었고, 디터 람스는 브라운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지원을 한다. 그리고 약 1년간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하지만 입사 1년이 되던 해에 제품 디자이너로 전향하게 된다.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디자인한 ‘슈퍼 포노그래프’ SK4가 계기였다.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를 결합한 이 제품은 기존 전자 제품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적용했다. 당시 전자 기기는 대부분 목재 캐비닛 안에 숨겨 가구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기술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감춰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SK4는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를 통해 내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조작부 역시 측면이 아닌 상판 위에 배치하며 기계를 하나의 ‘보이는 대상’으로 전환시킨다(이로 인해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떻게 이러한 노출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느냐는 점이다. 디터 람스는 우선 전체를 낮고 길게 눕힌 수평 비율로 설정해, 드러난 기계 구조가 안정적인 오브제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또한 넓은 상판 위에 턴테이블과 조작부를 정돈된 간격으로 배치해 각 요소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질서를 이루도록 했다. 이러한 비율과 구조는 사용자가 기능의 관계와 위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장치로 작동했다. SK4는 단순히 형태를 바꾼 제품이 아니라, 기술을 드러내면서도 일상 속에 안착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출발점이었고, 이후 이와 같은 비율과 구성은 레코드 플레이어 디자인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디테일로 완성된 비율
디터 람스가 브라운 입사 초기부터 이러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업 방식 자체에 있었다. 그에게 디자인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비율을 조율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디자인은 곧 디테일의 문제였다. 그는 mm 단위까지 집요하게 조정하며 제품을 다듬었고, 자신이 이끌던 팀 안에 제품 그래픽을 전담하는 부서를 별도로 둘 정도로 전체 구조의 완성도를 중시했다. 디터 람스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디트리히 루브스 또한 “디테일에 관한 문제에서 람스는 매우 철저했다. 그는 이미 훌륭한 제품을, 곡선의 반경을 조금 늘리거나 줄이는 것과 같은 미세한 조정을 통해 한층 더 개선해 나가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비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브라운의 다른 제품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가령 1958년에 발표한 T3 포켓 라디오는 손바닥 크기의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였지만, 전면의 스피커 패턴과 조작부가 정교한 간격으로 배치되며 밀도와 여백 사이의 균형이 유지된다. 작은 크기 안에서도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율한 비율이 이 제품의 핵심이다. 계산기 ET66에서는 이러한 비율이 한 단계 더 확장된다. 이 제품은 버튼 형태보다도 전체 구성의 위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스플레이, 기능 키, 숫자 키가 층위에 따라 배치되고, 노란색의 ‘=’ 버튼이 시각적 중심을 형성하며 기능의 우선순위를 강조한다. 여기서 색상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를 읽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즉 ET66은 비율에 색이라는 체계를 도입해 정보의 질서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체계적 구조가 비단 단일 제품 내에서만 통용된 것은 아니다. 디터 람스는 이러한 체계성을 제품 간의 관계에도 적용하고자 했다. 즉 개별 제품을 넘어 브라운 제품 전체를 하나의 패밀리로 구성하려고 한 것이다. SK4에서 확립된 디자인 언어와 비율은 이후 아틀리에 1과 L1 스피커로 이어졌고, 나아가 L45 스피커, TS40 앰프/튜너, TG60 테이프리코더 등은 동일한 비례로 설계해 서로 조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의 제품은 독립적인 오브제이면서도, 함께 놓였을 때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구조다. 이처럼 람스에게 비율은 단일 제품의 미감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제품과 제품, 그리고 사용 환경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조직하는 방식이었다.
비율을 넘어 하나의 기준이 되다
디터 람스가 브라운에 몸담았던 40여 년 동안 브라운은 1200개가 넘는 제품을 생산했고 그중 514개 제품의 디자인에 람스가 직접 관여했다. 이처럼 방대한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며 보다 자유로운 형태와 표현이 확산되었지만, 람스는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유지했다. 오히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더욱 명확한 언어로 정리하며 ‘좋은 디자인 10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들은 비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반에 걸쳐 깊이 스며 있는 걸 알 수 있다. 가령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은 요소 간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비율의 문제이며, ‘가능한 한 적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 뒤 남은 것들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또한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는 태도는 mm 단위의 비례 조정을 의미하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원칙은 과장되지 않은 비율을 전제로 한다. 결국 람스에게 비율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그의 디자인 전체를 관통하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이후 세대 디자이너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후카사와 나오토, 재스퍼 모리슨, 샘 헥트 등은 어린 시절부터 브라운 제품을 접하며 성장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철학을 계승해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만들었다. 특히 조너선 아이브가 T3 포켓 라디오를 바탕으로 아이팟을, ET66 포켓 계산기를 토대로 초기 계산기 인터페이스를 설계했다는 에피소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결국 브라운과 디터 람스의 비율은 아름다움을 위한 공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물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찾아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
참고 자료 〈디터 람스 디자인 아카이브〉(소피 로벨 지음, 유엑스 리뷰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