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쓰는 무대 위의 시, 에스 데블린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을 여는 에스 데블린에게 그녀의 디자인 철학에 관해 물었다.

디자인으로 쓰는 무대 위의 시, 에스 데블린

팝 스타의 무대부터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까지.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에스 데블린은 빛과 언어, 건축을 엮어 관객을 하나의 ‘임시적 공동체’로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8월 20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푸투라서울에서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를 여는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무대와 전시, 기술과 마법, 그리고 관객 참여가 어떻게 하나의 시적 경험으로 완성되는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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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대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 오페라, 콘서트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동시에 환경, 언어, 정체성, 다양성, 이주를 주제로 한 예술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연극 분야 방문교수 및 블룸버그-옥스퍼드 펠로(Bloomberg-Oxford Fellow)로 활동하며,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 및 캠버웰 예술대학 펠로로도 참여하고 있다. esdevlin.com

에스 데블린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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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 데블린 스튜디오의 다양한 미니어처 모형. 그녀의 실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당신이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앱스트랙트〉(2017)를 다시 봤어요.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영감을 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의 기로에서 몇몇 중요한 결정은 방에 의해 좌우됐던 것 같아요. 미술대학에서 전공을 고민하던 시절, 저는 2개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 미술 스튜디오였어요. 하얗고 아름다웠으며 텅 비어 있었죠. 다른 하나는 무대 디자인 스튜디오였습니다. 붉은색으로 가득한 그곳에는 무대 디자이너들과 축소 모형이 있었고,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죠.

붉은 방이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커리어를 결정한 셈이군요.(웃음)

결정적으로 그 붉은 방은 24시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는 잘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그것을 만들기 위해 밤새워 작업하게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붉은 방에서 수많은 협업을 이어가며 보낸 20년은 2016년 솔로 아트 작업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혼자 하얀 방과 마주하도록 저를 준비시킨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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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아델의 ‘Live in New York’ 무대(2015).
무대 디자인 이야기를 나눠보죠. 카니예 웨스트나 아델, 위켄드, 비욘세 같은 팝 스타의 대형 무대를 디자인한 것이 당신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디움은 거대한 집합의 공간입니다.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을 따라 부르면서도, 각자는 공연자와 단둘이 마주한 듯한 친밀감을 원합니다. 그래서 스타디움 무대의 조형물을 통해 거대한 규모 속에서도 친밀함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함께 작업했던 뛰어난 뮤지션들은 모두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디자인으로 관객과 공연자 사이를 오가는 에너지가 더 잘 흐르도록 돕고자 합니다.

작은 연극 무대부터 팝 스타의 대형 무대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규모나 분야를 막론하고 프로젝트에 임할 때 지키는 일관된 방식이나 태도가 있나요?

국 문학가 마야 안젤루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고, 무엇을 했는지도 잊는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는 결코 잊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작업을 하면서 터득한 교훈이죠. 많은 프로젝트는 하나의 원전(primary text)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됩니다. 때로는 이미 존재하는 희곡이나 오페라 대본, 노랫말이 그 원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제가 직접 시를 쓰기도 합니다.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나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처럼 특정한 장소 자체가 작품의 원전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조각하는 재료는 시간과 빛입니다. 관객이 공연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들이 마주하는 빛, 그리고 제가 다루는 모든 물질 안에 축적된 지질학적 시간, 나아가 그 물질을 만들고 다듬는 데 투입된 시간까지 모두 제 작업의 재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제 자신을 무대 조각(stage sculpture)을 만드는 예술가로 정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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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elson 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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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서 열린 U2의 레지던시 공연 ‘U2: UV at Sphere’ 무대(2023).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 조각으로 활용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사진 Ric Lipson

무대 위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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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무대(2026). 에스 데블린은 팝 스타의 무대뿐 아니라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도 다수 디자인했다.
사진 Es Devlin
다양한 무대를 매번 새로운 감각으로 디자인하려면 평소 많은 자극과 영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평소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프로젝트는 언제나 이전 프로젝트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늘 직전 작업에서 얻은 ‘렌즈’를 쓰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죠. 제 작업은 하나하나 축적되며 하나의 몸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죠. 저의 가장 중요한 협업자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간입니다. 냄비로 요리할 때 물을 끓이기 위해 뚜껑을 덮어야 하는 순간이 있듯이, 어떤 공간은 잠재력을 응축하고 집중시키기 위해 특정한 압력과 형태를 필요로 해요. 저에게 공간은 하나의 인격입니다. 사물과 공간을 마치 사람처럼 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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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하프타임 쇼(2022). 닥터 드레, 스눕 독 등이 오른 이 무대는 LA 컴턴을 상징화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실 현실적 조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일을 하다 보면 때로 부득이 타협해야 할 상황도 있잖아요. 상대가 연극 연출가이든 팝 스타이든 말이에요.

무대 예술가로도 활동했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모든 협업은 타협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타협(compromise)’을 부정적인 의미로 보지는 않아요. 이 단어를 문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함께 약속한다(to promise together)’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즉 타협이란 서로가 함께 맺는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라이브러리 오브 어스Library of Us’ 무대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선 사람이 아닌 오브제가 주인공이었잖아요. 이럴 때 사람이 주연인 무대와 어떻게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나요?

대규모 설치 작업에서 관객은 더 이상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참여자가 되죠. 마이애미의 ‘라이브러리 오브 어스’, 밀라노에서 선보인 ‘라이브러리 오브 라이트(Library of Light)’, 그리고 최근 요크에서 공개한 ‘라이브러리 오브 포 윈드(Library of the Four Winds)’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함께 듣고 함께 읽습니다. 사실 이 작업은 매우 개인적인 작업이기도 해요. 내가 관객에게 읽어주는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 내가 읽어온 것이죠. 내 세계관을 빚고 형성해 온 책들에서 가져온 문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책장으로 그린 자화상’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남긴 “나는 내가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이며,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고, 걸어온 모든 길이다”라는 말에 대한 개인적 응답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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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오브 어스’(2025) 마이애미 아트 위크 기간에 선보인 몰입형 공공 설치 예술 프로젝트다. 에스 데블린에게 영향을 준 책과 관람객이 기증한 책으로 구성했다. 250권의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직접 낭독한 오디오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채웠다. 사진 Oriol Tarridas
잠시 〈앱스트랙트〉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영상에서 당신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보급이 당신의 무대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어요. 기술과 디자인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만든 대목이었습니다.

미래학자이자 작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술과 환영(illusion)으로 마법을 만들어냅니다. 관객의 관성을 흔들고,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도록 초대하기 위한 것이죠. 우리는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사고합니다. 손끝에도 뉴런이 있고, 발바닥과 팔의 솜털을 통해서도 세상을 배우죠. 한 권의 책, 그림 한 점, 영화 한 편, 혹은 ‘몰입형’을 표방하는 설치 작품 속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 자신의 경계가 조금씩 스며드는 듯 느껴지고 작품과, 나아가 주변 환경과 지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경험한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몰입적(immersive)’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단지 ‘좋은 작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경험을 만들 때 마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말이네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이 덧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의식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예술과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작품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죠. 달리 말하면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만들어낸 기억의 구조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가장 명료하게 말하는 조각,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시적인 도구를 만들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적이라는 것은 언어가 가장 응축된 상태를 의미하고요. 한 곡의 노랫말처럼, 혹은 하나의 시처럼. 의미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현장에 머무르는 각자가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해석해야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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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로랑 맨즈 2023 S/S 컬렉션 무대(2023). 모로코 아가파이에서 열린 이 쇼는 강렬한 백색 광을 발산하는 둥근 대형 조형물이 떠오르는 듯한 연출로 화제가 됐다. 사진 Es Devlin

서울에서 쓰는 에스 데블린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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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Home Again’(2022), 런던의 멸종 위기 생물 243종을 드로잉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8월에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서울에 맞춰 새롭게 드로잉했다. 사진 Daniel Devlin
오는 8월 20일부터 푸투라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처음 이곳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됐나요?

2024년 푸투라서울의 구다회 대표와 함께 처음 갤러리를 방문했어요. 이번 전시는 이미 그때부터 구상을 시작했죠. 서로 스며들 듯 연결된 방들을 차례로 거닐며 하나의 서사가 서서히 제 상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번 이곳을 찾으며 이 건축물이 지닌 고유한 문법을 조금씩 익혀 왔습니다. 사실 제 남편은 건물이 공사 중일 때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덕분에 저 역시 건물의 피부 아래와 뼈대까지 들여다봤습니다. 한국 관객에게 제 작업을 처음 선보이게 되어 영광입니다.

푸투라서울은 공간 자체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아티스트로서 이 건축물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공간적 조건에 맞춰 기획한 부분도 있는지 궁금하군요.

푸투라서울은 유기적으로 흐르는 곡선과 직선적 기하학이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도시와 자연을 오가며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 있죠. 저는 그 특성에 직접 응답하는 작업을 만들었습니다. 건축물이 빛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방식마저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음표를 따라 연주하듯 빛을 공간 곳곳으로 흘려보냅니다. 이곳에서 열린 앞선 두 전시가 모두 투사된 빛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창과 천창을 어둡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자연광과 작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면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이 순간 건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저는 모든 전시를 한 편의 시처럼 구상합니다. 이번 전시는 푸투라서울에서 이어져 온 전시의 흐름 속에서 세 번째 시가 되도록 작업했습니다. 공간이 서로 이어지듯 전시 또한 자기 자신을 비추며 연속성을 만들어냅니다. 각각의 전시가 하나의 렌즈가 되어 공간과 관객이 스스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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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s Dev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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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오브 어스’(2021). 인간의 폐포 구조와 나무의 대칭성에서 영감을 받은 몰입형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으로 2021년 4월 미국 슈퍼블루 마이애미에서 선보였다. 사진 Andrea Mora
전시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푸투라서울에는 ‘100개의 시(Hundred Poems)’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개관전 〈지구의 메아리: 살아 있는 기록 보관소〉가 열리던 당시 계단 위에서 이곳에 펼쳐진 레픽 아나돌의 작업을 보았어요. 그 순간 관객이 이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가장 먼저 내린 결정은 이 공간을 전시의 클라이맥스가 아닌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관객이 처음 들어섰을 때 이 공간이 작아져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마치 작은 도서관처럼 말이죠. 이 공간은 전시 전체를 예고하는 하나의 서곡(overture)입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다시 한번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벽이 열리면서 공간이 거울로 이루어진 미로로 확장되기 때문이죠. 원래도 천장고가 10m에 이르는데, 천장과 벽을 덮은 거울이 그 높이를 두 배로 느끼게 만듭니다. 관객은 원래는 비어 있던 공간에 설치된 계단에 올라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한국 관객에게 당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기존 작품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일곱 작품은 모두 이전에도 다른 장소에서 여러 차례 변주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지닌 물리적·문화적 조건에 맞춰 작품을 다시 조율합니다. 이번에도 각각의 작품을 푸투라서울의 공간 구조에 맞게 기하학적 구성을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여러 설치 작업에 흐르는 텍스트 역시 전시에 맞춰 수정하고 번역했죠. 전시에서 소개할 작품 ‘Come Home Again’ 속 생물들도 모두 서울에 서식하는 종을 새롭게 드로잉해 완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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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Home Again: A Choral Sculpture'(2022). 까르띠에의 후원으로 영국 테이트 모던 가든에 설치한 작품이다. 사진 Daniel Devlin
무대 위 경험을 설계해 온 만큼 이번 전시에서도 정교한 사용자 경험 설계가 뒤따르리라 짐작합니다.

관람객이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작품과 관계 맺는 방식을 먼저 설정합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은 극장이나 영화관의 관객처럼 함께 자리에 앉죠. 오프닝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그들은 하나의 시선을 공유하는 임시 공동체가 됩니다. 그러나 영상이 끝나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관계는 다시 변합니다. 이제 관객은 거울로 이루어진 미로 조각의 일부가 되고, 서로를 반사된 빛의 파편 너머로 바라보는 공동체가 됩니다. 평소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향하던 시선은 이제 공동체 속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뒤섞인 자신의 파편을 향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각각의 작품 사이를 이동하는 경험, 그리고 작품과 푸투라서울의 건축물이 나누는 대화를 가장 기대합니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낯선 개인에서 출발해, 자신과 타인이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깨닫고, 그 연속성을 인간을 넘어 다른 생명종으로까지 확장해 나가도록 이끄는 여정을 구상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했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시는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어떤 예술가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관람객들이 ‘Come Home Again’이라는 제목처럼 이번 전시를 하나의 초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일곱 작품을 하나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일곱 단계로 경험하고, 갤러리를 떠난 뒤에도 그 실천을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조애나 메이시(Joanna Macy)의 저서 〈World as Lover, World as Self〉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하죠. “이제 우리는 서로를 분리해 온 경계를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본래 함께 속해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자아와 타인 사이, 인간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스며듦’의 감각을 몸으로 체험케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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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Dear England’의 무대(2023) 사진 Daniel Dev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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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Hamlet”의 무대(2025) 사진 Daniel Devlin
마지막으로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Screenshare’라는 작품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가 사용한 수백 권의 스케치북으로 만든 하나의 스크린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작업이죠. 영상은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스크린의 한 조각을 가져가세요. 스케치 한 장을 당신의 것으로 가져가세요.” 그렇게 스케치는 씨앗처럼 사람들의 삶과 집, 그리고 각자의 실천 속으로 퍼져나갑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 오래도록 남는 것입니다. 이 건물에서 무언가를 하나 품고 나왔다는 감각,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한때 이 공간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8호(2026.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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